<충격>'조세피난처' 통한 한국기업 역외탈세 실태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02 14:33:26
  • 댓글 0개

탈세 목적 '검은돈' 890조원 해외에 은닉돼 있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탈세를 위해 해외에 은닉한 한국기업들의 '검은돈'이 890여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이 가시질 않고 있다. 이는 2012년 대한민국 1년 예산인 325조원의 두 배를 웃도는 액수로 우리나라 총가계부채(1000여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문학적인 세수가 새고 있어 탈세기업은 살찌지만 나라곳간은 비지 않을 수 없다. 이 주장은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최근보고서에서 제기된 것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조세피난처로 몰래 빼돌린 돈이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3위로 발표됐다. 한국기업들의 역외탈세(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하는 행위) 실태를 살펴봤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한국의 비자금이 무려 7천7백90억 달러(한화 890여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 여파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피난처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시민단체인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지난 22일 보고서를 통해 40여 년 간 전 세계 갑부들이 조세피난처(스위스, 룩셈부르크, 케이맨제도 등)로 빼돌린 돈이 21조달러(약 2경400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로 전 세계 총생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중 한국은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해외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자산이 총 7790억달러(약 888조4500억원)로 중국(1억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정 위기 불러온
'조세포탈' 잡아라

조세피난처에서 이루어지는 역외탈세는 국내 법인이나 개인이 조세피난처 국가에 유령회사를 만든 뒤 그 회사가 수출입 거래를 하거나 수익을 이룬 것처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해외에서의 소득은 노출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그 과정이 은밀한데다 수법도 첨단ㆍ지능화되고 있다.

한편 보고서를 작성한 제임스 헨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월드뱅크 WB, 국제결제은행 BIS 등의 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세포탈 적발분야의 최고권위자로 꼽히는 유펜 와튼스쿨의 사이먼 박 교수(한국명 박중석)의 연구성과를 기초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이먼 박 교수는 미국 국세청이 이전가격 조세포탈프로그램 개발을 맡길 정도의 뛰어난 전문가로 수년 전 조세의 이전가격 문제를 한국에서도 제기했다.

지난 2008년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해외 모처로 빠져나간 갑부들의 검은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1위 경제국가인 미국은 한해 국내총생산(GDP)이 약 15조달러인데, 그 2배가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것으로 추정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2008년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각 주요 국가들은 역외탈세 차단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음해 2009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제재조치를 위해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이후 각국은 활발한 조세외교를 통해 조세조약 체결 및 정보교환 협정을 맺고 조세피난처에게 국제적 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압박에 대표적 조세피난처이자 자금세탁처로 알려진 독일의 리히텐슈타인과 이탈리아의 산마리노가 무너지며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금융비밀주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방은 스위스에서 터졌다. 스위스는 16세기부터 프랑스 왕가를 포함한 주요 귀족들을 상대로 은행업을 시작한 이래 은행 고객의 신분과 계좌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킨다는 원칙, 금융비밀주의를 고수하며 무려 500여 년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그 결과 전 세계의 갑부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독재자에서 마피아집단까지 스위스은행을 찾아, 말 그대로 '검은돈의 성역'이 되었다.

국내자금 '보물섬'으로 빼돌려 세금 피하고
장사가 될 만한 기업에 투자하여 이윤 얻고
이윤 발생하면 다시 보물섬으로 빼돌리고…

미국이 스위스은행을 상대로 칼을 뽑아 든 것은 지난 2009년, 미 재무부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미국 재산가들의 탈세를 도왔다는 정황을 잡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 UBS에 7억8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벌금을 부과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내 UBS 지점들을 모두 폐쇄하고 자산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UBS를 압박했다. 결국 UBS는 굴복하여 미국인 갑부 수천 명의 계좌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 이어 스위스 정부는 자국 은행법을 OECD 기준에 맞추기로 하면서 금융비밀주의와 작별을 고했다. 500여 년간 지켜온 철칙이 무너진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OECD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세피난처 국가 또는 지역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조세피난처가 사라졌을 뿐, 여전히 탈법적 조세피난처는 존재하고 있으며 아직도 금융비밀주의라는 빗장을 굳건하게 걸고 있다. 현대판 보물섬이나 다름없는 조세피난처에 세계 각국의 갑부들이 어느 정도의 검은돈을 숨겨두고 있는지 명확한 통계가 없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99%를 쥐어짜기보다 1%의 보물섬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외탈세만 잡아내도 각국에서 벌어지는 재정위기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카리브해 동부에 위치한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영국령)는 인구 2만5000명가량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이다. 하지만 버진아일랜드에는 수십만 개의 기업이 등록되어 있다. 바로 역외탈세 목적으로 의심되는 세계 주요국 대기업들의 자회사들로 버진아일랜드에는 이들 기업들의 자회사(페이퍼컴퍼니)를 관리해 주는 회사들로 넘쳐난다.

이곳 버진아일랜드에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수 자회사를 세워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조세피난처로는 버진아일랜드를 포함해 케이만제도(미국령), 홍콩 및 싱가포르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판 보물섬
'검은돈' 넘치는 62개국

우리나라 국세청과 관세청은 경제거래가 활발한 국가 중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는 62개국을 우범국으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다. 하지만 해당 국가 및 지역과의 정보교환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거나 정보교환협정이 체결됐음에도 정식 발효가 미뤄지고 있어 유용한 정보를 캐내기가 불가능해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난 25일 대기업 전문 분석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30대 재벌그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 핫머니의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국가나 지역에 설립한 해외법인이 47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재벌닷컴은 자산순위 30대 그룹의 해외법인(공기업 및 민영화 공기업 제외)을 조사한 결과 작년 말 기준으로 2224개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 중 롯데, 삼성,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LG 등 15개 그룹은 OECD가 국제 핫머니의 조세피난처로 지목하고 있는 44개 국가 혹은 지역에 47개 해외법인의 주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롯데가 178개 해외법인 가운데 13개사를 조세피난처 지역에 두고 있어 30대 그룹 중 가장 많았다. 롯데는 버진아일랜드에 9개사, 케이만제도에 3개사, 모리셔스에 1개사 등의 해외법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해외법인은 모두 비금융 지주회사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롯데는 "롯데마트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인수한 타임스와 롯데홈쇼핑이 중국사업을 위해 인수한 럭키파이,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했고 또다시 타이탄 등을 인수하여 기존 법인을 버진제도에 설립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케이만제도에 투자전문회사 4개사와 버진아일랜드에 부동산개발회사 1개사를 소유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마셜제도, 버뮤다, 모리셔스, 파나마, 케이만제도 등에 1개사씩을 두고 있다. LG는 파나마에 컨설팅회사 등 3개사와 마셜제도에 자원개발회사 1개사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대는 파나마와 버진아일랜드에 해운업 관련 법인 3개사와 1개사를 각각 두고 있다.

삼성은 케이만제도에 음원유통업체 1개사, 버뮤다에 보험회사 1개사, 파나마에 해운업체 1개사 등 3개사를 갖고 있고, 한화도 케이만제도에 태양광 관련 지주회사 2개사와 버진아일랜드에 태양광투자회사 1개사 등 3개사가 있다.

국내 재벌기업
해외에 유령법인 없으면 바보?

미래에셋은 중남미지역에 위치한 바베이도스에 특수목적회사(SPC) 1개사와 케이만제도에 투자전문회사 1개사 등 2개사를, 동양은 파나마에 원유 및 천연가스채굴회사 1개사와 케이만제도에 제조업체 1개사를 갖고 있다.

이밖에 GS가 파나마에 임대업체 1개사, 한진이 키프로스에 판매대리업체 1개사, CJ가 버진아일랜드에 비금융 지주회사 1개사, 효성이 케이만제도에 변압기 제조업체 1개사, 동국제강이 파나마에 운송서비스업체 1개사, 한진중공업이 키프로스에 투자업체 1개사를 각각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이 조사대상 그룹이 조세피난처 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47개 법인 가운데 비금융 지주업이나 자원개발업, 부동산개발 등 투자 관련 회사가 60%가 넘는 30개를 차지했으며, 제조업 관련 회사는 3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24일 금융당국과 한국수출입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1968년부터 지난 3월까지 우리나라 대기업 및 갑부가 조세피난처 35곳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된' 금액만 약 24조7800억원으로 조사됐다. 또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국내기업의 페이퍼컴퍼니는 사상 최대인 약 5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투자 대상지는 싱가포르가 약 4조66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말레이시아와 케이만제도가 각각 3조3700억원, 버뮤다 약 2조9000억원, 필리핀 약 2조8000억원 등이다. 이 기간 우리나라 국외투자 총액이 1966억달러(약 225조여원)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대외 투자액의 10% 이상이 조세피난처로 향한 것이다.


이어 관세청의 집계에 따르면 홍콩과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케이만제도 등 대표적인 10개 조세피난처에 투자된 금액이 2007년 약 8조3000억원에서 2012년 약 14조5300억원으로 4년 새 약 6조 2000억원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총생산 3분의 1, 우리나라 총가계부채와 근접한 액수
돈 주체 못하는 1%, 가난에 허덕이는 99% '부익부빈익빈' 가속

아울러 관세청이 적발한 국외 재산도피 및 자금세탁 사례도 증가했다. 적발된 재산도피는 2007년 13건 166억원에서 2010년 22건 1528억원으로 금액으로만 보면 10배가량 급증했고, 자금세탁은 6건 83억원에서 43건 924억원으로 11배나 늘었다.

이와 같은 조세회피 의혹에 대해 모든 그룹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일어날 조짐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과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나온 조사결과라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그룹이미지에 큰 타격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일부 조세경제전문가들은 현재 확인된 숫자보다 더 많은 해외법인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세피난 국가에 진출한 30대 그룹의 '숨은 계열사'는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세청도 역외탈세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국세청이 SK와 삼성물산, 금호석유화학의 역외탈세 실태조사를 위해 대표적 조세피난처 중 하나인 홍콩에 직원 6명을 극비리에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들 대기업이 홍콩 법인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역외탈세 혐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사전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와 협의를 통해 개정한 한-스위스 조세 조약상 정보교환조항이 지난 25일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이는 2010년 12월 정보교환조항이 담긴 개정 조세조약에 양국이 서명한 지 1년7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국세청은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한국인들의 계좌정보를 이름, 주소 등 인적사항 없이 계좌번호만 가지고도 정보제공 요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국세청 역외탈세 세무조사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재산가들에게 스위스는 더 이상 '세금천국'이 아니게 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일본·영국 등 77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했다. 현재까지 조세정보교환협정이 체결된 조세피난처는 버뮤다, 사모아, 쿡 등 15개 국가 및 지역이지만 이 중에 쿡을 제외한 14개 국가 및 지역과 체결한 조세정보교환협정은 효력이 발효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들 국가 및 지역과 맺은 협정의 효력이 하루라도 빨리 발효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심각성 절감한 국세청

해외 세무조사단 파견

그밖에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호주, 말레이시아, 오스트리아 등 8개 국가와 금융거래정보제공을 골자로 한 정보교환조항을 개정했다. 역외탈세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급하게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잉사와 씨티그룹사 등의 조세회피를 다룬 책인 <보물섬>의 저자 니콜라스 색슨은 "세법상 구멍은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탈루행위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으나 역외탈세는 국가공조, 정보수집이 어렵고 해외투자로 탈바꿈하는 등 교묘히 위장하는 경우가 많아 조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파문을 불러온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조세피난보고서. 이를 두고 당분간 뜨거운 진실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