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접수한 <기생충>의 아이러니

봉준호와 <기생충>이 만든 역설적인 현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국 영화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사가 생겼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한 것. 자본주의의 빈틈을 꼬집은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작부터 ‘오스카 캠페인’까지 지원한 국내 콘텐츠 분야 1위 기업인 CJ ENM이 있다. CJ ENM은 그간 줄곧 외쳐온 ‘해외 경쟁력’을 <기생충>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빈부격차의 아픔을 전달한 <기생충>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내세운 주장의 결실이 된 아이러니한 현실을 짚어봤다.
 

▲ 오스카마저 접수한 봉준호 감독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기생충>은 전 세계 영화 관련 155개 시상식서 174개의 상을 휩쓸었다. <기생충> 이전 영화들이 유수의 영화제서 거둬들인 상의 총합(약 150개)보다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전 세계 영화인은 물론 비평가들마저도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후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석권했다. 

한국영화 
100년 쾌거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1955년 <마티> 이후로 <기생충>이 두 번째다. 비영어권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최초며, 아시아계 최초 각본상 수상 등 최초로 세운 기록도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기생충>이 남긴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힘에 있다.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추구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놓여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서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예측대로 흘러가는 부분이 없다. 영화의 중점적인 사건이 예고 없는 실수와 실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우연을 맞이하며 나아간다. 그런데도 개연성은 탄탄히 유지된다. 

모든 국가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주제로 한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도 깬다. 매우 중립적인 관점으로 부자와 빈자를 바라본다. 이전부터 부자는 옳지 못한 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나쁜 인물로 묘사됐으며, 가난한 자는 선하거나 게으른 인물로 표현됐다.


하지만 극 중 부자로 나오는 박 사장(이선균 분)은 성실한 노력으로 부를 쌓았으며, 딱히 악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누구보다 순진하다. 빈자로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면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나 남을 속이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부자보다 악한 행동을 잘한다.

‘빈부격차’에 대한 기존 ‘영화적 질서’를 두 가족의 이야기로 완전히 무너뜨린 이 영화는 마치 축구 경기처럼 전·후반부로 나뉜 형태로 구성됐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의 가족 곁으로 투입되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로 이어지던 전반부를 지나, 문광(이정은 분)이 돌아오는 기점부터 마지막까지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갖춘다.

<기생충>의 영화 같은 시작과 끝 
전 세계가 인정한 ‘봉준호 장르’ 

풍자와 해학, 드라마와 공포,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장르의 혼종 형태를 보인다. <기생충>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돌자 한 외신 기자는 “<기생충>은 그냥 봉준호 장르다.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겨 화제를 모을 정도로 <기생충>은 ‘이상한’ 영화다. 

독특한 구성과 장르,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에 이어 본질에 접근한 주제 의식, 기존 인식을 깬 빈부를 바라보는 관점, 아울러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빈부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 가까운 슬픈 엔딩까지, 이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수준의 작품으로 꼽힌다.

또 봉준호 감독이 보였던 인간존중의 태도 역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각종 시상식서의 그의 수상 소감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서 미국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존경한다는 소감은 전 세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유머와 해학을 섞어 촌철살인과 같은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은 그의 영화와 닮아있다. 봉 감독과 함께 그의 뇌에서 나온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던 통역 담당자까지 덩달아 화제에 올랐다. 제작 초기부터 ‘오스카 작품상’으로 귀결되기까지, 그 긴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왔다. 


현재 한국 사회 전체가 <기생충>의 쾌거에 취해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 미래는 그리 밝지 않으며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 박 사장의 잔디밭이 받아내는 태양광과, 기택의 반지하에 겨우 떨어지는 빛의 양처럼 닮았다. ‘포스트 봉준호는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인물이 없다. 이는 감독 개개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해석된다.

세계가 감동
매력에 흠뻑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개봉한 2003년도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 식사>,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이 함께 개봉했다.

이들 감독들은 현재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대표되고 있다. 흥행과 무관하게 당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수작으로 회자된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영화 제작자들이 작가주의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일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필성 감독은 유튜브 채널 ‘직격탄’과의 인터뷰서 “그때를 생각하면 서부개척시대 같은 느낌이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와 배우, 장르의 영화를 감독이나 제작자, 배우, 투자사 모두가 만들어 내보자는 폭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 세대 수많은 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 중심의 거대 자본 투입과 함께 수많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고 국내 영화산업서 경제적 파이가 늘어나면서, 영화는 제작자 중심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중시하는 풍토서 흥행을 중시하는 풍토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소위 ‘양산형 영화’로 불리는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들이 한국 영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늘어났지만, 200만서 500만 관객을 모으는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줄어들고 있다. 호평을 받는 영화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받은 영화는 <기생충>과 <극한직업> <엑시트> <사바하> 정도에 그친다. <벌새>와 <메기> 등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은 대부분 저예산 독립영화계서 탄생했다.

봉 감독이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한국 영화 위기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제2의 봉’
찾아보니…

작품 중심서 흥행 중심으로 변화된 풍토 속에서 영화인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대목은 수직 계열화다. 국내에서는 CJ와 롯데가 해당한다. CJ는 영화 유통 플랫폼 CGV와 투자·배급을 하는 CJ ENM을 갖고 있다. 롯데는 롯데시네마와 롯데컬처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1938년 미국서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로 세계적으로 제작·배급과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스크린 15∼27개를 보유한 멀티플렉스서 한 영화는 최다 4개 스크린만 점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크린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실제로 4대 배급사로 불리는 영화들은 첫 주에 상영점유율과 좌석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에 따르면 <백두산>은 개봉일 상영점유율 44.5%, 좌석점유율 50.6%를 기록했다. 이는 총 상영작 128편의 상영 횟수 중 44.5%를, 좌석 수 중 50.6%를 차지한 것.
 


반독과점영대위는 “올해만 해도 영화 13편이 스크린을 독과점했고 3사 극장 체인이 매출 97%를 독차지하는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 내에서 자율적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개봉 후 극장서 벌어들이는 수입 외에는 다른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개봉 후 관람 비용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별히 입소문을 얻고 역주행을 하지 않으면 첫 주에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다. 대다수 스타가 출연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4대 배급사 작품은 작품성과 별개로 각종 영화관으로부터 수많은 스크린을 확보한다.

약 2600개의 스크린서 한 영화가 1800개까지 확보한 예도 있다. 반대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다양성 영화관으로 밀려나거나, 새벽과 심야에만 대관이 되는 일명 ‘퐁당퐁당 상영’을 하게 된다. <기생충>의 박 사장과 기택 가족처럼 영화계 내 양극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기대하기 힘든 ‘포스트 봉’ 
영화계 양극화 짚어야 할 시점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CJ와 롯데를 향한 수직계열화 관련 지적은 이전부터 지속됐다. 그럴 때마다 두 기업은 ‘해외경쟁력’을 내세워 수직계열화의 명분을 찾으려 했다. 2016년 열린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서 당시 CGV 대표였던 서정 CJ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대표는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적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물론 문화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서 더욱 산업적인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J의 이 같은 방침은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빈부격차의 슬픈 현실을 노골적으로 직시한 <기생충>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계 내 빈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는 CJ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자본의 중심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을 수상함으로, 그동안의 CJ 측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려를 낳게 됐다. 일각에선 이번 수상이 이재현 CJ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얻어진 결실이라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봉준호의 역설’이 함의하는 핵심이다. 
 

▲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직후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봉준호 감독

그런 가운데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의 쾌거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영화계에 존재하는 양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봉준호 감독이 일궈낸 쾌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들 쾌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2의 봉준호 등장이 가능해지려면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과 생태계, 곧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영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급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대기업과 대자본의 후원으로 세계 영화계에 알려진 건 의미 있고, 반가운 현실이지만, 영화산업의 문제나 왜곡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여긴다. 쾌거 이면에 독립예술 영화계나 창작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측면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봉 감독의 쾌거가 순기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일 뿐?
순기능 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서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봉준호를 못 만든다”며 “왜곡된 시장과 독점 상황을 바로잡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게 혈맥을 뚫어주는 제도가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적 화법’ 봉준호의 말말말 

영화를 만드는 능력만큼 봉준호 감독은 뛰어난 언변을 갖고 있다. 전 세계를 비롯해 미국 전역을 돌면서 수백번의 수상 소감 발표 및 기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국 MC들의 수많은 질문에 위트와 재미, 존중과 배려, 솔직한 진심을 담은 그의 말솜씨는 감동적이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이 스피치 강사로도 손색없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으며, 시사평론가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서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영화적”이라고 평가했다. 듣기만해도 미소가 번지는 봉 감독의 어록들을 모아봤다. 

▲BAFTA 영국 아카데미 백스테이지 인터뷰 = “어느 나라나 가난한 자와 부자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되게 가파른 계단이 있다. 여기 로얄 앨버트 홀에도 계단이 많아서 땀이 나려고 한다.(웃음) <기생충>도 계단에 관한 영화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계단을 올라가려던 한 가난한 남자가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담고 있는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HCAA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소감 =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 시나리오를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서 쓴다.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 가보면 그 커피숍이 망해서 없어졌다.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조용하다는 것은 장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커피숍 주인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또 저의 파트너가 있다. 오늘 약간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저의 멋진 공동작가 한진원씨를 소개한다.”

▲피트 해먼드와의 인터뷰 = “정치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장르적인 흥분 내지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대신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인물들에 대해 파내려갈수록 사회, 역사와 저절로 연결되는 것 같다. 무인도서 평생 사는 사람이 영화를 찍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산타바바라 영화제 감독상 수상 후 인터뷰 = “이 영화와 함께 한국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혁명은 부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혁명의 대상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는 영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소감 = “어렸을 때 영화 공부하며 계속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은 마틴 스코세이지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내가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중략) 오스카 측이 허락한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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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