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공식’ 없는 매력 양준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20.01.13 10:51:57
  • 호수 12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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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소환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가수 양준일이 데뷔 30년 만에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1년 데뷔한 가수가 2019년 말에 소환돼 2020년형 아티스트로 칭송받고 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인기로 ‘신드롬’을 일으키는 중이다. 

▲ ▲ 가수 양준일 ⓒJTBC

“20대 때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 50대가 돼서야 K팝 스타가 됐어요. 이건 지금의 제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모든 게 제 계획과 반대로 된 거죠. 인생은 결국 원하는 것을 내려놔야 마무리가 되는 건가 봐요.”

데뷔·복귀
다시 좌절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을 열게 된 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 기자간담회서 밝힌 소회다. 취재진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이 낯선지 그는 연신 “모두 저를 보러 오신 것이 맞느냐”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식당서 서버로 일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고 언급했다.

지난 4일 양준일은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19년 만에 국내 지상파 음악 방송 무대에 다시 섰다. 30년 만에 인기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준일은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를 부른 가수다. 

1991년이라는 데뷔 연도는 서태지와아이들, 김건모(이상 1992년)보다 앞선다. 세련된 음악에 자유분방한 안무와 패션, 순수한 노랫말은 요즘 젊은 세대가 듣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평가다. 비주얼도 요즘 세대 못지않다. 시대를 앞서간 양준일의 무대를 접한 대중은 그의 매력에 하나둘씩 빠져들었다.


1990년대 초 활동하던 그가 2019년에 다시 소환된 것은 유튜브 덕분이었다. 90년대 음악방송을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 등을 통해 양준일의 음악과 무대가 화제를 일으킨 것.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와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탑골 지디’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대중은 양준일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걸까?

대중이 양준일에게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와 <뉴스룸>이다. 음악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넘치지만, 양준일의 진짜 매력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의 인간 됨됨이에 있다. 

“나의 매력을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감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 매력을 파악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공식이 생기고, 그러면 공식대로 행동할 것 같아서입니다.”

1991년 데뷔한 재미교포 청년 
대중에 외면 받고 가요계 은퇴

기자간담회서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그의 말처럼 ‘공식 없음’이야말로 매력의 근원이다. 데뷔곡 ‘리베카’는 당시 미국서 인기를 끌던 ‘뉴 잭 스윙’을 가져온 것이었다. 춤 역시 잘 짜여진 안무가 아니라 느낌 가는 대로 춘 것이었다. 그는 카메라 워킹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휘저었다. 이 같은 양준일의 음악과 춤은 당시의 ‘공식’에는 맞지 않았기에 외면 받았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현재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그의 성품 또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음악에 열정을 다 바쳤지만 돌아온 건 멸시와 조롱뿐이었던 30년 전의 대한민국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해맑은 미소로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인터뷰 갖고 있는 가수 양준일 ⓒJTBC

양준일은 팬들을 향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자신을 외면했는데도 끊임없이 그리워했다는 점도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앞서 JTBC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표현했던 양준일은 이날도 그런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서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무언가를 한국서 느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한국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극적인 ‘서사’도 대중의 마음을 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미동포 출신으로서 활동 당시 좌절하고 미국서 서빙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극적인 상황, 양준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맞물려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시대·세대 
초월한 신드롬

‘꼰대’로 곧잘 치환되는 50대 남성과는 달리,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도 인기 요인이다. 시대에 물들지 않고 앞서 나가려 한 양준일의 도전정신은 요즘 세대에게 남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주류 음악에 반기를 들었던 양준일의 모습은 ‘꼰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와 일맥상통한다.

고루한 시대가 알아보지 못한 아티스트에 대한 청년층의 공감과 중년층의 죄책감은 그에 대한 호감으로 돌아섰다.

양준일 신드롬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만들어 선보이기 전에, 대중이 먼저 스타를 발굴한 사례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과거 음악방송을 연속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을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양준일의 음악은 1990년대 당시 이질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공명했다.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음악과 춤을 선보였다는 점 등 사실상 당시 양준일이 방송가서 퇴출된 요소들은 오히려 지금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줬다.

급기야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호평을 등에 업고 대세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슈가맨 진행자 중 한 명인 작사가 김이나는 양준일을 만난 뒤 SNS에 ‘시대를 타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시대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고 썼다.

더욱이 방송서 전해진 양준일의 안타까운 사연들과 계속된 실패에도 도전을 이어간 그의 열정은 다양한 세대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가히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인기로 작용됐고, 그는 데뷔 30여년 만에 첫 전성기를 맞았다.


양준일은 연예, 광고계를 주름잡는 블루칩으로 우뚝 섰다. 그의 나이 50대, 연예계를 떠난 지 30여년 만에 처음 맞는 ‘늦깎이’ 전성기다. 방송과 광고 등 전방위적으로 러브콜이 쏟아졌다. 양준일 본인도 활동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한국 정착 소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음원이나 광고, 뮤지컬 등 굉장히 많은 제안이 들어오는 데 다 할 것이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도 “시간이 되면, 여러분들이 저를 원하는 동안은 그걸 다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화제성만큼이나 상당한 규모의 팬덤도 이미 형성됐다. 3600석 규모(2회)의 팬미팅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팬층도 다양하다.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30∼60대는 물론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튜브 과거 영상 등으로 그에게 ‘입덕’한 1020 팬들도 많다.

그의 팬 카페 회원 수는 5만5000명을 넘어섰고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등장하는 옥외 광고까지 내걸렸다.

떠오르는 블루칩
방송·광고 쇄도

1990년대 초반 활동 당시엔 빛을 보지 못한 그가 30년 공백이 무색한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복고 열풍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짚어낼 수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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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양준일은 정작 덤덤하다. 양준일은 기자간담회서 ‘20대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50대에 복귀하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현실에 무릎을 꿇으면 오히려 그 일이 마무리 된다”고 답했다.

그는 “대중이 실망하고 필요 없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다. 20대 양준일에게 ‘네가 인생서 원하는 그것을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20대도 제 계획대로 안 됐는데, 50대인 지금도 제 계획과 다르게 가고 있다”며 웃었다.

양준일은 책과 음반을 발매하며 한국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현재 책을 집필하는 중”이라며 “많은 분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신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남기면 좋을 것 같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준일은 1969년생으로 부모를 따라 베트남서 출생하고 홍콩, 일본, 한국서 살다가 9세 때 미국 LA로 이민을 가서 정착한 재미교포 출신이다. 1990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 재학 중 한국 가수로 데뷔했다. 양준일은 당시 재미교포라는 이유로 한국서 가수 활동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10년짜리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스탬프를 받아야 한국서 활동이 가능했다. 

양준일 본인이 <슈가맨3>서 밝힌 바에 따르면 6개월마다 체류연장 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던 담당자가 갑자기 멋대로 “나는 네가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엔 절대 스탬프를 안 내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결국 부산 공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일의 노래는 한국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노래의 정서 자체는 동시대의 다른 한국 가요에 비해 상당히 미국에 근접해 있어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준일은 음악적으로 미국 팝계의 뉴 잭 스윙, 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를 한국 가요에 이식하려 했다. 뉴 잭 스윙 음악은 1992년 3월 서태지와아이들 1집, 같은 해 8월 현진영 2집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본격적으로는 1992년 11월에 발매된 양준일 2집 앨범과 1993년 4월 발매된 듀스 1집(이현도) 등을 통해 한국 가요에 접목됐다. 터보나 룰라가 춤의 트렌드를 일부 계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020세대 유튜브로 재발견 
30여년 만에 전성기 맞아

다만 마른 몸에 큰 키와 긴 머리, 지나친 미국식 퍼포먼스, 노래에 심히 몰입해 정신없어 보이는 춤 등은 1990년대 초반의 코드와 맞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외모는 물론, 의상, 퍼포먼스도 9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탁월했다. 하지만 당시 트렌드에 맞지 않아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이나 H.O.T 음악의 경우, 순정적인 가사는 물론 당시 한국의 교육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등 가사 내용이 당시 10대들에게 공감이 가는 면이 많았다. 하지만 양준일은 재미교포 출신답게 한국 정서와 조금은 동떨어진 노래를 불렀다. 

‘Dance with me 아가씨’ 역시 많은 영어 가사로 한국 가요계에서는 유행하지 않은 작사법이었다. 이런 탓에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던 단점이 있었다. 양준일의 음악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더 깊은 공감이나 열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며 마치 팝송을 듣는 듯한 이질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양준일은 2001년 V2의 정규 1집인 <Fantasy>를 냈다. 타이틀곡인 ‘Fantasy’ 무대는 물론 가사 또한 매우 독특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소속사와 계약 문제로 가수활동을 중단했으며, 결국 은퇴했다. 이후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30년 후, 지난해 빅뱅 지드래곤을 닮은 활동 당시 양준일의 모습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며, 1990∼2000년대생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네티즌 사이에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방송국서도 양준일의 근황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양준일씨를 찾습니다’라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년층은 공감
중년은 죄책감?

2019년 5월 양준일의 근황이 확인됐다. 2015년부터 한국인 부인과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 중이며, 한인 레스토랑 서빙 일을 하며 지냈다. 지난달 12월6일 방송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에 출연하면서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가맨> 출연 후 선한 성품,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센스, 자유로운 댄스 퍼포먼스 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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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