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공식’ 없는 매력 양준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20.01.13 10:51:57
  • 호수 12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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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소환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가수 양준일이 데뷔 30년 만에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1년 데뷔한 가수가 2019년 말에 소환돼 2020년형 아티스트로 칭송받고 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인기로 ‘신드롬’을 일으키는 중이다. 

▲ ▲ 가수 양준일 ⓒJTBC

“20대 때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 50대가 돼서야 K팝 스타가 됐어요. 이건 지금의 제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모든 게 제 계획과 반대로 된 거죠. 인생은 결국 원하는 것을 내려놔야 마무리가 되는 건가 봐요.”

데뷔·복귀
다시 좌절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을 열게 된 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 기자간담회서 밝힌 소회다. 취재진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이 낯선지 그는 연신 “모두 저를 보러 오신 것이 맞느냐”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식당서 서버로 일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고 언급했다.

지난 4일 양준일은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19년 만에 국내 지상파 음악 방송 무대에 다시 섰다. 30년 만에 인기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준일은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를 부른 가수다. 

1991년이라는 데뷔 연도는 서태지와아이들, 김건모(이상 1992년)보다 앞선다. 세련된 음악에 자유분방한 안무와 패션, 순수한 노랫말은 요즘 젊은 세대가 듣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평가다. 비주얼도 요즘 세대 못지않다. 시대를 앞서간 양준일의 무대를 접한 대중은 그의 매력에 하나둘씩 빠져들었다.


1990년대 초 활동하던 그가 2019년에 다시 소환된 것은 유튜브 덕분이었다. 90년대 음악방송을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 등을 통해 양준일의 음악과 무대가 화제를 일으킨 것.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와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탑골 지디’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대중은 양준일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걸까?

대중이 양준일에게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와 <뉴스룸>이다. 음악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넘치지만, 양준일의 진짜 매력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의 인간 됨됨이에 있다. 

“나의 매력을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감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 매력을 파악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공식이 생기고, 그러면 공식대로 행동할 것 같아서입니다.”

1991년 데뷔한 재미교포 청년 
대중에 외면 받고 가요계 은퇴

기자간담회서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그의 말처럼 ‘공식 없음’이야말로 매력의 근원이다. 데뷔곡 ‘리베카’는 당시 미국서 인기를 끌던 ‘뉴 잭 스윙’을 가져온 것이었다. 춤 역시 잘 짜여진 안무가 아니라 느낌 가는 대로 춘 것이었다. 그는 카메라 워킹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휘저었다. 이 같은 양준일의 음악과 춤은 당시의 ‘공식’에는 맞지 않았기에 외면 받았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현재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그의 성품 또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음악에 열정을 다 바쳤지만 돌아온 건 멸시와 조롱뿐이었던 30년 전의 대한민국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해맑은 미소로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인터뷰 갖고 있는 가수 양준일 ⓒJTBC

양준일은 팬들을 향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자신을 외면했는데도 끊임없이 그리워했다는 점도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앞서 JTBC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표현했던 양준일은 이날도 그런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서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무언가를 한국서 느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한국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극적인 ‘서사’도 대중의 마음을 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미동포 출신으로서 활동 당시 좌절하고 미국서 서빙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극적인 상황, 양준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맞물려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시대·세대 
초월한 신드롬

‘꼰대’로 곧잘 치환되는 50대 남성과는 달리,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도 인기 요인이다. 시대에 물들지 않고 앞서 나가려 한 양준일의 도전정신은 요즘 세대에게 남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주류 음악에 반기를 들었던 양준일의 모습은 ‘꼰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와 일맥상통한다.

고루한 시대가 알아보지 못한 아티스트에 대한 청년층의 공감과 중년층의 죄책감은 그에 대한 호감으로 돌아섰다.

양준일 신드롬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만들어 선보이기 전에, 대중이 먼저 스타를 발굴한 사례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과거 음악방송을 연속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채널 탑골공원을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양준일의 음악은 1990년대 당시 이질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공명했다.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음악과 춤을 선보였다는 점 등 사실상 당시 양준일이 방송가서 퇴출된 요소들은 오히려 지금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줬다.

급기야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호평을 등에 업고 대세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슈가맨 진행자 중 한 명인 작사가 김이나는 양준일을 만난 뒤 SNS에 ‘시대를 타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시대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고 썼다.

더욱이 방송서 전해진 양준일의 안타까운 사연들과 계속된 실패에도 도전을 이어간 그의 열정은 다양한 세대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가히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인기로 작용됐고, 그는 데뷔 30여년 만에 첫 전성기를 맞았다.


양준일은 연예, 광고계를 주름잡는 블루칩으로 우뚝 섰다. 그의 나이 50대, 연예계를 떠난 지 30여년 만에 처음 맞는 ‘늦깎이’ 전성기다. 방송과 광고 등 전방위적으로 러브콜이 쏟아졌다. 양준일 본인도 활동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한국 정착 소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음원이나 광고, 뮤지컬 등 굉장히 많은 제안이 들어오는 데 다 할 것이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도 “시간이 되면, 여러분들이 저를 원하는 동안은 그걸 다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화제성만큼이나 상당한 규모의 팬덤도 이미 형성됐다. 3600석 규모(2회)의 팬미팅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팬층도 다양하다.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30∼60대는 물론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튜브 과거 영상 등으로 그에게 ‘입덕’한 1020 팬들도 많다.

그의 팬 카페 회원 수는 5만5000명을 넘어섰고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등장하는 옥외 광고까지 내걸렸다.

떠오르는 블루칩
방송·광고 쇄도

1990년대 초반 활동 당시엔 빛을 보지 못한 그가 30년 공백이 무색한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복고 열풍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짚어낼 수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양준일은 정작 덤덤하다. 양준일은 기자간담회서 ‘20대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50대에 복귀하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현실에 무릎을 꿇으면 오히려 그 일이 마무리 된다”고 답했다.

그는 “대중이 실망하고 필요 없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다. 20대 양준일에게 ‘네가 인생서 원하는 그것을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20대도 제 계획대로 안 됐는데, 50대인 지금도 제 계획과 다르게 가고 있다”며 웃었다.

양준일은 책과 음반을 발매하며 한국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현재 책을 집필하는 중”이라며 “많은 분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신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남기면 좋을 것 같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준일은 1969년생으로 부모를 따라 베트남서 출생하고 홍콩, 일본, 한국서 살다가 9세 때 미국 LA로 이민을 가서 정착한 재미교포 출신이다. 1990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 재학 중 한국 가수로 데뷔했다. 양준일은 당시 재미교포라는 이유로 한국서 가수 활동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10년짜리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스탬프를 받아야 한국서 활동이 가능했다. 

양준일 본인이 <슈가맨3>서 밝힌 바에 따르면 6개월마다 체류연장 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던 담당자가 갑자기 멋대로 “나는 네가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엔 절대 스탬프를 안 내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결국 부산 공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일의 노래는 한국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노래의 정서 자체는 동시대의 다른 한국 가요에 비해 상당히 미국에 근접해 있어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준일은 음악적으로 미국 팝계의 뉴 잭 스윙, 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를 한국 가요에 이식하려 했다. 뉴 잭 스윙 음악은 1992년 3월 서태지와아이들 1집, 같은 해 8월 현진영 2집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본격적으로는 1992년 11월에 발매된 양준일 2집 앨범과 1993년 4월 발매된 듀스 1집(이현도) 등을 통해 한국 가요에 접목됐다. 터보나 룰라가 춤의 트렌드를 일부 계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020세대 유튜브로 재발견 
30여년 만에 전성기 맞아

다만 마른 몸에 큰 키와 긴 머리, 지나친 미국식 퍼포먼스, 노래에 심히 몰입해 정신없어 보이는 춤 등은 1990년대 초반의 코드와 맞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외모는 물론, 의상, 퍼포먼스도 9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탁월했다. 하지만 당시 트렌드에 맞지 않아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이나 H.O.T 음악의 경우, 순정적인 가사는 물론 당시 한국의 교육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등 가사 내용이 당시 10대들에게 공감이 가는 면이 많았다. 하지만 양준일은 재미교포 출신답게 한국 정서와 조금은 동떨어진 노래를 불렀다. 

‘Dance with me 아가씨’ 역시 많은 영어 가사로 한국 가요계에서는 유행하지 않은 작사법이었다. 이런 탓에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던 단점이 있었다. 양준일의 음악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더 깊은 공감이나 열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며 마치 팝송을 듣는 듯한 이질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양준일은 2001년 V2의 정규 1집인 <Fantasy>를 냈다. 타이틀곡인 ‘Fantasy’ 무대는 물론 가사 또한 매우 독특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소속사와 계약 문제로 가수활동을 중단했으며, 결국 은퇴했다. 이후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30년 후, 지난해 빅뱅 지드래곤을 닮은 활동 당시 양준일의 모습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며, 1990∼2000년대생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네티즌 사이에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방송국서도 양준일의 근황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양준일씨를 찾습니다’라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년층은 공감
중년은 죄책감?

2019년 5월 양준일의 근황이 확인됐다. 2015년부터 한국인 부인과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 중이며, 한인 레스토랑 서빙 일을 하며 지냈다. 지난달 12월6일 방송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에 출연하면서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가맨> 출연 후 선한 성품,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센스, 자유로운 댄스 퍼포먼스 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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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