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원수' 칭호 받은 김정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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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대장' 딱지 떼고 북한 절대권력 손에 넣나?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북한 권력판도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꼬마대장' 딱지를 달고 있던 김정은이 북한에서 6번째 원수 칭호를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딱 7개월 만이다. 김정은은 이날 발표가 나기 전까지 원수보다 두 단계가 낮은 대장 칭호를 쓰고 있었다. 단번에 두 계급이나 특진한 셈이다. 이것으로 김정은은 북한 내에서 1인자 자리를 굳히고 향후 내각은 김정은 체제로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아들로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후계자로 거론된 이후로도 그의 행보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일요시사>는 김정은의 과거사를 주목해봤다.

지난 18일 12시 <조선중앙통신>, <평양방송> 등 북한매체는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나온 것으로 김정은이 당과 군을 통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지난 15일 군부 최고실세인 이영호(70)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과 이틀 뒤 현영철의 차수 승진에 이어 속전속결로 원수자리까지 꿰차 본격적으로 김정은의 절대권력 체제가 견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수 칭호는 큰 의미
진정한 최고지도자 반열

이번 김정은의 원수 칭호 수여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오진우·최강 전 인민무력부장, 혁명1세대 이을설에 이어 역대 6번째다. 김일성은 1953년 2월 처음으로 원수 칭호를 받았고 1992년 대원수로 추대된 뒤 1994년 7월 사망했다. 김정일은 1992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원수 칭호를 받고 지난해 사망 후로도 원수 계급을 유지해오다 올해 2월15일에 이르러서야 대원수로 추대 받았다. 그리고 오진우·최광 전 인민무력부장은 각각 1992년과 1995년 원수에 올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원수 칭호를 받은 인물은 혁명 1세대로서 1995년 원수 칭호를 받은 이을설에 김정은이 합류하여 2명이다. 이을설은 항일빨치산 활동 당시 소년경호원으로 활약했고 1983년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는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자리를 굳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원수 칭호는 상징적인 의미가 굉장히 크다. 원수 칭호 받았다는 것은 최고지도자로서 갖춰야 하는 것은 다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원수 칭호까지 단번에 거머쥔 김정은. 그는 누구이며 북한체제 내에서 어떤 존재일까?


저택에 음악단원 상주시키며 호화로운 생활 즐겨
김정일은 어린 김정은을 왜 후계자로 점찍었을까?

7개월 전 타개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은 1983년 평북 창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복을 입고 자랐고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김정은의 신장은 175㎝, 몸무게는 90㎏으로 추정되며, 20대임에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결혼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은 큰형인 정남과 작은형 정철에 가려 베일에 싸여 있었다. 관련 소식이 그나마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96년 여름부터 2000년 가을까지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서 유학하면서부터이다. 동창생들은 김정은이 미국프로농구(NBA)의 팬이었으며 수학을 잘했고, 영어·독일어 등 외국어도 제법 능통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김정일의 아들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자본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택 안에 음악단원들을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담배를 즐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후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 특설반에서 군사학을 극비리에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발된 교수진이 김정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 특수유리를 사이에 두고 강의했다는 설도 있다. 또 2005년부터 2년 정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로부터 철학, 역사, 경제학 분야의 개입교습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포병과를 졸업한 김정은은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포사격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성격과 외모를 빼닮아 어릴 적부터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버지 김정일은 김정은이 7살 때 호화 별장에서 벤츠600을 운전하게 했고, 셋째부인인 고영희가 자리를 비우면 김정철 대신 자신의 옆자리에서 식사하게 할 정도로 편애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 총애 한몸에
형들 제치고 정상 올라


김정은은 대학 졸업 후 돌연 종적을 감추는데, 이때는 후계순위가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던 시점이었다. 정치적 야심이 강했던 김정은은 장남이자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견제심리도 강했다고 한다. 일례로 2004년 11월에는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형 정남을 암살하려다 현지 정보기관에 의해 제지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북한 최고지도부 내에서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결국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종 결정되었고 2009년 1월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김정은이 알려졌다. 그리고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북한 매체에 전격 등장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에 맞춰 그를 후계자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을 담은 교시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하면서 후계를 둘러싼 혼선이 정리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이보다 훨씬 앞선 2006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이 지난해 5, 6월경 배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외비 문건인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 "2006년 12월24일 김정은 대장 동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증서가 기여된 자리에서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라고 언급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이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돼 후계수업을 받다가 2008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진 뒤 짧은 시간에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리더십 남다르지만
포악한 면모도 있어

한때 김정일과 성혜림(2002년 사망)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이 후계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여성 2명과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되는 등 기행이 알려지면서 권력에서 차츰 멀어졌다. 현재 김정남은 북한을 떠나 중국 마카오와 베이징 등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00년대 초까지는 후계자로 차남 김정철이 거론되기도 했다. 김정은이 그를 제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정은이 형인 김정철보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에서 앞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김정남보다 나이가 어린 김정은을 총애하여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그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권력욕과 리더십이 남다른 김정은이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당 간부들을 무차별 해고하는 등 포악한 면모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강한 면모 외에 세심함도 갖췄다고 적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 김정일 일가와 백두산에 올랐을 때 마실 맥주가 떨어져 무심코 김정은에게 이야기 했더니 며칠 후 김정은이 직접 방으로 찾아와 주머니에서 하이네켄 맥주를 두 병 꺼내 내밀었다는 것이다.

과거 '샛별장군'으로 불렸던 김정은은 후계자 결정 이후부터 '김대장' 혹은 '청년대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2009년 4월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붙는 '친애하는'이라는 수식어가 김정은에게도 붙게 됐으며, 같은 시기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인 '발걸음'이 북한 전역에 보급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업적 쌓기'도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후계자가 되고 원수 칭호까지 부여받기 위해선 '업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로는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거의 모든 공개활동을 수행하였고, 특히 군사분야에서 김정일을 각별히 보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지난해 5월 시행된 '150일 전투',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4월15일)을 기념해 평양 대동강변에서 펼쳐진 '축포야회'(불꽃놀이) 등이 모두 김정은의 작품이라고 주민들에게 은연중에 선전됐다는 것이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또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1966년 이후 44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권력지도를 통째로 바꿨다. '김정은 시대'의 본격 진입을 앞두고 대대적인 교체·보완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리스마와 리더십 두 형들 압도…권력욕도 강해
"어머니 누구?"…베일에 싸인 출생의 비밀 아킬레스건

김정은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출생의 비밀이다. 외부에는 김정은의 생모가 김정일의 셋째부인 고영희(2004년 작고)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넷째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김정은은 김옥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의 정부인은 김영숙 1명뿐이고 고영희 김옥 모두 동거녀(첩)일 뿐이기 때문에 모계의 정통성은 취약하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김일성의 정부인으로서 '백두산 3대 장군'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서 권력핵심으로 부상하면 모든 노동당원이 먼저 묻게 되는 것이 '노동당에 언제 입당했고, 현직은 무엇이며, 부모는 누구냐'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당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띄우려면 모친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그러면 김정일의 복잡한 사생활을 언급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고영희와는 1976년부터, 김옥과는 2006년부터 동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1983년생인 김정은의 생모가 김옥이라면 김정일은 부인 김영숙과 동거녀 고영희를 둔 상태에서 당시 19세였던 제3의 여인 김옥을 통해 아이를 낳은 셈이 된다.

대북 소식통은 "당에서 김정은의 초상화 1000만 장을 찍어놓고도 못 돌리는 것이 모친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서방문화에 익숙한 만큼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개혁 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이 최종 결렬되고, 남측에서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특히 김정은 체제를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부결속을 위해서인지 대남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새로운 후계자가 확립되는 기간에는 강경한 자세를 보여 왔다.

김정은 체제
남북관계는?


다만 북한이 북미·남북대화 병행기조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김정은은 첫 연설에서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과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정권 변화 후 남북대화에 나설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는 대화의 뜻을 접었지만 2013년에 들어설 새로운 정권과는 여당이 재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관계없이 남북대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남북대화는 6자회담 재개와 남측 새로운 정부의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인정, 이행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주요 프로필>

·1983년 1월8일 출생 (1981년이나 1982년, 1984년생이라는 주장도 있음)
·북한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 다닌 기록 없음
·1996년 여름~2001년 1월 스위스 베른에서 공립 중·고등학교 유학
·2001년 귀국
·2002년~2006년 12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과 졸업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내정설 처음 나돔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설
·2009년 6월 국정원 "북한이 김정은의 후계자 선정 사실 해외 공관 전파" 국회 보고
·2009년 6월 국정원 "김정은 우상화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김정일 현지지도 수시 동행"
·2010년 9월 대장 칭호 수여
·2012년 7월 원수 칭호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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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