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몸에 좋다면 먹지 못하는 게 없는 세상. 이미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개, 물개의 성기, 지네 등 아끼지 않고 먹는 한국인의 보신행각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누군들 건강이 중요하지 않으랴만 특히 한국인의 ‘몸보신’은 유별난 데가 있다. 최근엔 개고기로 만든 파스타를 판매하는 레스토랑까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쉽게 지치는 여름철, 원기회복 솔루션으로 쏟아져 나오는 개고기의 무한변신과 국내 보신문화를 들여다봤다.
“한국의 전통 식재료 개고기를 서양식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개고기 수육 샐러드’는 새콤달콤한 들깨 비네그렛을 곁들인 개고기 수육으로 약 12시간 동안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것입니다. ‘개고기 크림 파스타’는 장시간 수비드 조리한 개고기와 부추를 곁들인 크림 파스타입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한국은 개를 먹는 민족입니다. 날씨가 더울 때 원기회복을 위해 보양식으로 먹던 개고기, 이젠 개고기 보양식도 서양식 스타일로 즐겨보세요.”
‘개고기 스파게티’
팔겠다고?
최근 인천의 한 레스토랑이 개고기를 주재료로 한 음식들을 판매하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거세지자 판매를 중지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S레스토랑은 지난 6월 12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고기를 주재료로 한 파스타와 피자, 수육 등을 판매한다”는 홍보글과 함께 음식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 소식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동물애호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해당 구청에는 ‘개고기 요리’ 판매 중지를 요청하는 민원이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판매를 개시한 지 이틀 후인 14일, 해당 레스토랑 측은 홈페이지에 판매 중단 방침을 밝히고 사과문을 올렸다.
자신을 레스토랑 대표라고 밝힌 글쓴이는 “개고기 파스타로 인해 인터넷 상에 물의를 일으킨 점, 그에 대한 잘못된 언행으로 대응한 점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며 “(개고기 요리를) 요리사의 열정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었으나 많은 분의 견해가 저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중략) 지금까지 저희가 진행해 오던 개고기에 관련된 모든 메뉴를 없애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개고기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복날 대비, 개고기 파스타와 피자, 수육 등 파는 레스토랑
‘개고기 박사’가 개발한 개고기 식품부터 화장품까지…
마지막으로 대표는 “저희로 인해 상처받은 애견애호가분들과 많은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네티즌들이 레스토랑 블로그에 방문해 개고기 요리 판매를 항의하자 대표는 “너 같은 쓰XX 하고는 격이 달라, 우리 손님들이 어떤 분들인데 감히 개들이 사람한테 맞을라고, 당당하면 전화해” 등의 댓글을 달아 논란을 일으켰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개고기로 요리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주변에 수없이 많은 보신탕집이 널려있는데 이 식당만 비난을 받는 이유가 뭐냐? 고상한 이탈리안 음식에는 천한 개고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개고기 먹는 한국인 비하한 프랑스 여배우랑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개고기 파생식품
양산도 머지않은 듯
이 논란은 예부터 이어져온 ‘개고기 식용’에 대한 일종의 음식문화에서 출발한 듯 하지만 몸에 좋다면 뭐라도 찾아 먹는 삐뚤어진 보신풍습이 낳은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고기 박사’로 알려진 안용근 교수(충청대학 식품영영학부)가 개고기 소화액으로 발효한 고추장·된장, 개고기 순대, 죽, 개고기 화장품 등을 내놓은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안 교수는 서울 송파구 송파동 모 레스토랑에서 ‘개고기 가공식품 및 화장품 발표회’라는 이색행사를 열고 외신기자들을 초청, 개고기에 대한 외국의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이날 전시된 제품은 개고기와 관련된 가공식품 등 총 28가지.
개고기 소화액으로 발효한 고추장, 된장, 간장, 김치, 식초, 장아찌, 무술주 등 전통식품을 비롯해 개고기를 이용한 순대, 칼국수, 죽, 통조림 등이 소개됐다. 또한 개고기를 첨가한 마요네즈, 케첩, 빵, 햄버거, 미트볼, 수프 등도 다채롭게 선보여 몰려든 100여명의 외신기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특히 이날 발표회에서는 다른 동물성 기름보다 칼슘 함유량이 3배나 많고 피부친화성이 우수한 개기름을 이용해 ‘You&I화장품㈜’이 산학 컨소시엄으로 개발한 크림(개기름 함유율 5%), 에센스(10%), 에멀전(15%) 등의 시제품도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당시 행사에서 안 교수는 “전통음식인 개고기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서구로부터 개고기 식용에 대한 비난을 받고 있다”며 “개고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식용 합법화를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즐겨 찾던
보양식품들
현재 안 교수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로 된 개고기 관련 홈페이지
를 운영하며 ‘사람보다 개를 더 섬기라는 주장’, ‘개고기 식용 반대의 비논리’, ‘개고기 식용 반대 세력’ 등의 장에서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정연한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이대로라면 기존의 음식에서 차별화 된 보신식품은 앞으로도 물밀듯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개’ 외에도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양음식들이 정말 효능이 있는 것일까?
보신식품의 효능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무더위에 벌써부터 보신음식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위에 지친 남성들은 무엇보다도 정력에 좋다는 보양식을 먼저 찾는다.
인간의 잘못된 탐욕이 만들어 낸 막장보신문화 어디까지?
‘묻지마 몸보신’…입증되지 않은 속설 맹신 “화를 부른다”
뱀이나 뜸부기 같은 동물들, 남근(男根)을 빼닮았다는 송이버섯, 바다의 산삼이라는 해삼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말고도 뱀탕, 해구신, 웅담, 쓸개즙 등 몇몇 것들은 예로부터 애용하는 정력제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음식들이 정력과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오히려 고열량, 고단백, 고지방 식품이다 보니 과잉섭취 시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요법 중 하나인 ‘동종요법’이 잘못 해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종요법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의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약제를 써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김소형 혜민한의원 원장은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열치열’ 동종요법의 원리가 민간에서 잘못된 속설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예를 들면 해구신은 물개의 성기라서 남성의 성기와 동일시되고, 뱀은 그 형태에서 남성의 성기와 동일시하여 정력보강을 위해서 먹거나, 도가니는 인체의 관절과 같은 부위니까,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관절이 유연하니까 막연하게 관절염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먹는 것 등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은 질병의 근본치료가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병세를 약화시킬 뿐이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에는 한마디로 관절염 치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따라서 민간요법에 의지하기보다는 전문가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함께 그에 따른 적절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치료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신이 유별나다 못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바퀴벌레 박멸을 위한 최상책은 ‘바퀴벌레가 몸, 특히 정력에 좋다더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보신왕국’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시선은 여간 따갑지 않다. 웅담을 먹겠다고 태국에 갔던 몇몇 사람들이 웃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강제 출국 당해 돌아오고, 국내에선 보신탕 애호가 3명이 5대에 걸쳐 순종 혈통을 이어온 남의 집 천연기념물 진돗개까지 잡아먹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한국인의 보신식품 선호와 맹신은 정말 못 말릴 지경이다. 갑자기 나타나 반짝 몸에 좋다고 하면 떠들썩하다가 금방 잊거나, 건강에 치명적인 경우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은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고 하면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 도전부터 하고 보니 말이다.
‘보신왕국’오명
벗어날 수 있을까
자양강장에 효과가 있다든가 몸을 보호해주고, 수술 후 체력회복에 좋다고 하는 등 한마디로 몸에 좋다고 하면 전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음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고 매매가 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근거도 없는 과장광고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거기에 현혹되어 비싼 값을 지불하며 그것을 복용하고, 보양과 보신에 좋다고 한다면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나라의 보신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언제까지 인간의 잘못된 탐욕이 만들어내는 이 끔찍한 보신문화와 이에 편승하는 악덕 상혼을 지켜만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