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그루밍족의 여름나기’ 백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15 10:23:05
  • 호수 1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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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을 뽑았다 밀었다 몸에 지웠다 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그루밍족의 계절인 여름이 다가왔다. 과거에는 머리 스타일과 패션으로 개성을 표현했다면, 요즘은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만의 멋을 내고 있다. <일요시사>가 왁싱, 타투 등 다양한 그루밍에 대해 알아봤다. 
 

▲ 해나문신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타투는 방송이나 광고 등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대중화됐다. 

문양을 
내 몸에

노출이 많은 여름철, 개성을 표현하는 아이템으로 타투가 선호되고 있다. 타투에 매료된 남성들도 많을 뿐 아니라, 요즘 20대들은 타투를 피어싱과 같은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용이나 호랑이 등 위협적인 동물을 새기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에는 타투의 디자인과 크기가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무늬를 고를 수 있다. 

과거에 문신은 팔뚝이나 등을 휘감아 새기는 것으로 인식했지만, 최근에는 10㎝ 안팎의 타투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목선을 타고 셔츠 안쪽으로 이어진 한 줄의 레터링(짧은 문구를 새겨넣은 타투)은 구릿빛 팔에 불거진 힘줄 못지않게 섹시한 인상을 풍긴다.

손등의 나침반, 아킬레스건 아래 화사하게 펼쳐진 꽃잎 등 문신의 형태와 콘셉트는 무궁무진하다. 타투의 종류도 다양하다. 파스텔 톤의 감성적 타투, 반려묘나 반려견을 캐릭터화한 일러스트 타투,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블랙워크 등 다양한 장르의 타투가 있다. 


자기만족으로 타투를 새기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디자인보다 상징성이 있는 무늬나 문구를 담기도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성함이나 자신의 좌우명 등을 새기는 경우도 많고,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나 명언을 새기기도 한다.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세월호 리본을 새겨넣기도 한다. 

작은 문양과 짧은 글귀로 표현하는 타투는 개인의 의지와 신념을 담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취향과 성격도 가늠케 한다. 타투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일본의 전통문신’이라 불리는 이레즈미 장르는 가슴부터 긴 팔을 한 번에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위치·크기 따라 타투 가격 천차만별
평균 10만∼12만원…4∼6주마다 시술

위치에 따라 가격은 23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치솟는다. 경기도와 강서구에선 200만원 초중반대이지만, 강남과 홍대 등에서는 300만원대다. 팔에 수채화 느낌의 장미를 새기고 싶다면 50만원가량이 든다. 

보통 반팔을 입었을 때 타투가 살짝 비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새기는 타투인데 강남서 50만원, 홍대와 그 외 지역서 40만원 정도가 든다. 여름철엔 왁싱에 대한 관심도 높다.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노출이 많아지는 만큼 제모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때 제모는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제모하는 남성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모의 부위도 다양하다. 턱수염과 콧수염, 다리털부터 전신 제모를 하는 ‘브라질리언 왁싱’도 있다.

전문가들은 털이 제거된 몸을 사회가 요구하면서 제모를 많이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회에선 털이 있는 것은 동물이나 짐승에 가까운 상태로 간주하기 때문에 동물과 구분하기 위해 털이 많지 않은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왁싱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 소프트왁싱은 약 70도서 90도 이상의 고온서 녹인 왁스를 얇게 도포하고 천이나 부직포 등을 붙인 다음, 털의 반대 방향으로 제거하는 방법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부위의 체모를 효과적으로 제거를 할 수 있고 신체의 모든 부위에 사용이 가능하다. 

소프트왁싱의 장점은 0.1m의 작은 솜털까지도 왁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반대 방향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털이 끊기거나 피부가 약할 경우 홍반이나 피부 탈락에 의한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위생과 멋 
왁싱의 세계

슈가왁싱은 고대시대 상처부위나 화상부위가 생겼을 때 감염 예방과 치료를 위해 사용하던 방식으로 설탕을 녹여서 사용한다. 우연히 털도 같이 제거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의 미용 시술로 발전됐다. 

슈가왁싱은 인체 온도와 동일한 36.5도로 왁스를 녹이기 때문에 화상의 위험이 극히 적다는 장점이 있다. 주성분이 흑설탕과 레몬즙, 물이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 또 털의 방향으로 제모를 하면서 모근의 윤활작용을 도와 털의 끊김 없이 제거가 가능하다. 

하드왁싱은 왁스를 시술 부위에 바른 후 굳어졌을 때 왁스를 떼는 방식이다. 피부에 자극이 거의 없어 동일 부위에 여러 번 왁스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방법은 주로 얼굴과 겨드랑이 또는 비키니 라인과 같이 예민하면서도 약한 부위를 왁싱할 때 사용된다. 두꺼운 털을 제거하기가 쉽고 화상 위험도 적다. 

더운 여름은 왁싱숍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세미누드와 올누드가 있다. 세미누드는 회음부에 난 체모를 없애고 음모는 남겨둔다. 올누드는 음모까지 모두 제모해서 가격이 2만원 정도 비싸다. 가격은 평균 10만∼12만원으로 보통 4∼6주마다 한다.

왁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체모 양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털이 너무 촘촘하게 나거나 잘 안 빠지는 사람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예를 들어 브라질리언 왁싱은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예민한 사람의 경우 40∼45분가량이 걸리기도 한다.
 

여름하면 태닝도 빼놓을 수 없다. 태닝이란 피부를 햇볕에 노출시켜 구릿빛으로 태우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한국에는 하얀 피부에 대한 집착이 컸다. 최근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모델과 연예인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태닝의 원리는 자외선을 이용해 피부 속 멜라닌 색소를 자극하고, 피부톤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면 멜라노사이트가 자극돼 색소가 침착되면서 피부색이 어둡게 변하기 때문이다. 

야외 태닝은 실제 자외선을 이용하는 것이라 피부를 좀 더 강하게 태울 수 있다. 다크 브라운빛의 피부톤을 원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태닝 방법이지만, 일광화상 등의 피부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기계 태닝은 기계의 인공 자외선을 이용해 피부를 태닝하는 것으로, 야외 태닝보다 안정적인 환경서 고르게 태닝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태닝을 하는 사람들은 다리가 너무 하얘서 평소 짧은 치마나 반바지 입는 것을 꺼리는 사람, 근력 운동의 심미 효과를 높이고 싶은 사람, 좀 더 탄탄한 보디라인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흰 피부를 골드 브라운빛의 고른 태닝 피부로 만들기 위해선 10회 정도의 기계 태닝이 필요하다. 태닝숍의 패키지 프로그램이 대부분 10회 구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태닝을 할 때는 처음 3∼4회는 이틀 간격으로 약한 출력의 태닝 기계를 5∼7분 미만으로 쏘며 피부 트러블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태닝 색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초 베이스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피부톤을 보면서 태닝 시간과 기계의 강도를 점차 높이며 주 1회씩 5∼6회 정도, 발부터 겨드랑이 안쪽까지 고르게 태우면 매끈한 골드 브라운빛 피부를 만들 수 있다. 

약한 출력의 레이저로 짧은 시간 동안 태닝을 한다면 예민한 피부도 기계 태닝을 할 수 있다. 단, 남들보다 피부가 민감하거나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사람, 기미 등의 색소 침착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전문가와 충분히 상담한 후 태닝을 진행해야 한다.

자외선을 반복적으로 피부에 쐬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피부 노화가 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태닝을 할 때 얼굴은 태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태닝으로 인한 피부 손상과 노화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태닝 전후의 보습과 진정 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질이 과도하게 많은 경우 태닝을 하면 피부가 얼룩덜룩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적당량의 각질은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만약 각질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라면 태닝 3∼4일 전, 곡물가루를 함유한 저자극 스크럽제나 화학적 각질제거제를 이용해 가볍게 제거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습 로션을 듬뿍 발라 촉촉한 피부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돈 주고 
구릿빗 피부


10회 태닝 기준 컬러 유지 기간은 한두 달 정도다. 태닝을 멈춘 시점부터 한두 달 후에는 본래의 자기 피부색으로 돌아간다. 만약 태닝을 하고는 싶은데 까만 피부가 너무 오래 지속될까 걱정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태닝을 한 번 한다고 피부가 금세 까매지지도 않을뿐더러, 그 컬러가 평생 지속될 가능성은 적다. 태닝 컬러를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태닝 후 피부 보습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반영구 눈썹문신은 남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술이 됐다. 눈썹만 어느 정도 정리해도 인상이 한층 깔끔해진다. 반영구 눈썹문신은 영구적이지 않다. 짧게는 6개월서 1년 넘게 지속력을 갖는다. 눈썹문신이라고 하지만 ‘반영구 눈썹 화장’이 올바른 표현이다. 
 

▲ 눈썹 문신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시술 전 문신 잉크나 색소, 약품에 알레르기 반응 여부를 확인 후 시술을 진행한다. 1차 시술을 마치면 2차 리터치 시술을 하고 마무리한다. 일반적인 문신의 경우 진피층에 적용하지만, 반영구는 표피와 진피 사이에 적용하기 때문에 1차 시술 후 2∼4주 후에 리터치 시술을 해야 원하는 모양으로 자리가 잡힌다.

2차 감염을 막기 위해서 항생제 복용은 필수다. 상처 부위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재생 크림을 꾸준히 바르는 것이 중요하다. 자외선 차단제는 상처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1주일 뒤 어느 정도 피부가 아문 다음 사용해야 한다.

현행법상 문신은 마취크림 등 전문의약품 및 의료기기 사용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행위로 의료기관서 시술을 받는 것이 맞다. 부적격 장소서 시술할 경우 2차 감염, 색소 침착, 피부 괴사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저렴한 곳을 찾기보다는 합법적이고 전문적인 의료 장비와 경험을 갖춘 의료진이 시술하는 곳을 선택하는 곳이 우선이다.

전문가와 충분히 상담 후 태닝 
눈썹문신 6개월∼1년 넘게 유지

시술 전 전문의와 상의 후 부작용 검사를 철저히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서도 의료 시술이 갖춰진 곳이라면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인들이 미용 목적의 문신을 맡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이 때문에 암암리에 불법 문신 시술이 이뤄지는 것도 사실이다. 

1992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반영구 화장은 의료행위로 분류돼 병원서 의료인만 시술할 수 있다. 피부에 상처를 내고 염료를 주입하는 과정서 감염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모씨는 눈썹문신이 붉게 변색하는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다. 유씨는 “병원서도 쉽게 지울 수 없다더라”며 좌절했다.

하지만 불법임을 모르고 받는 사람이 대다수고, 알면서도 병원 시술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안전보다 예쁜 디자인 등 미용적 측면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고모씨는 “반영구 화장에도 유행이 있어 의료 지식보단 미적 감각이 뛰어난 시술자를 찾게 된다”며 “소문난 곳은 위생이나 안전도 신경 쓸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병원이 미덥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취업준비생 윤모씨는 “일부러 유명 의원에 찾아갔지만 의사는 주의사항만 안내하고 시술은 다른 직원이 했다”며 “병원 안이나 밖이나 인력 풀은 동일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지방자치단체서 매년 1~2차례 집중 단속을 벌이지만 불법 눈썹문신 시술을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서울시가 올 3분기까지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으로 행정처분을 내린 유사 의료행위는 점 빼기, 문신, 반영구 시술을 포함해 단 7건에 불과하다. 

서울민생사법경찰단 관계자는 “제보나 인터넷 검색에 기대 수사를 하고 있는데 보통 오피스텔 등지서 은밀하게 영업하다 보니 적발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불법 시술을 일망타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양성화해달라는 게 업계의 요구. 송강섭 한국타투협회장은 “외국처럼 시술 주체를 자격화하고 이용기기, 색소 등을 규제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시술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작용 속출
불법도 기승 

의료계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서양인과 동양인은 피부 두께가 다르고, 부작용 양상서도 차이를 보인다”며 “외국서 합법이니 따라가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시술 안 되고 교육은 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비의료인들의 문신 시술을 단속하고 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병원서 시술하는 문신사도 있다. 병원이 고용한 이들이다. 하지만 병원서 문신 시술을 하더라도, 의사가 아닌 문신사가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강남구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서 일하고 있는 문신사는 “의대까지 나와서 주사 놓고 수술하는 사람들이 뭐하러 손기술 익혀서 문신 시술을 하겠느냐”며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서 하는 반영구 문신 시술은 거의 100% 문신사가 하는 거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지만 문신 시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학원에서는 네일, 헤어, 메이크업 관련 수업과 함께 문신 시술 수업을 진행하는 곳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발표한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보면 17개 신직업 중에는 ‘타투이스트’(문신사)가 포함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미용학원에서는 한 달에 2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반영구 문신술’ 수업을 듣는다.

이 학원 운영자는 “문신 시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의사가 아니어도 합법이고 시술은 불법이라 수강생들한테 편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며 “메이크업 자격증을 따서 가게를 차려 미용업으로 신고한 뒤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 형태로 반영구 문신 시술 영업을 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되니 ‘문신사법’을 만들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문신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 등 50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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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