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30)결심(완결)

아버지와 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에 즈음하여 당 고종은 말갈군과 함께 대규모 군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에 신라는 장군 의춘과 춘장 등으로 대방(帶方, 황해도 봉산 일대) 들판에서 적을 맞아 싸우게 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그 전투에 원술은 비장으로 출전했는데 패전 책임을 지고 죽기로 싸우고자 했으나, 주변에서 후일을 기약하자며 한사코 말리는 통에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왔다.

원술의 패퇴

“어쩌시려고 일어나시는지요.”


“아니 될 일이야.”

“정신 차리세요, 대장군!”

흡사 실성한 듯 중얼거리는 유신의 모습을 보며 덜컥 겁이 났는지 지소부인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올라갔다.

이어 문이 열리면서 유신의 첫 부인인 영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영광이 방으로 들어섰다.  

영광의 남편이었던 화랑 반굴이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하자, 조정의 배려로 궁궐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배다른 동생 원술의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친정을 찾아, 지소부인에게 소식을 전했던 터였다.

“아버지!”


영광이 방으로 들어서면서 온몸을 떨고 있는 유신의 모습을 살피며 급히 다른 한쪽을 부축했다.

“가자꾸나.”

“가시다니요.”

“궁궐로 가자꾸나.”

“궁궐이오?”

“그래, 궁궐로.”

영광이 지소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이 몸으로 궁이라니요?”

“가서 석고대죄해야지.”

석고대죄를 언급하며 유신이 힘들게 팔을 들어 영광의 어깨를 감쌌다. 지소부인이 유신과 영광을 번갈아 살피며 유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양으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는 밖을 향해 차비하라 일렀다.

이어 영광과 함께 유신의 의관을 바로하게 하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하인들이 신속하게 가마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아버지, 가마에 오르시지요?”

영광이 하인들에게 신호를 주자 급히 유신 곁에 가마를 대령했다.

“죄인인 내가 무슨 염치로 가마에 오른다는 말이냐.”

“대장군!”

지소부인이 유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순간 오열을 터트렸다. 유신이 그를 모른 체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지소부인과 영광이 함께 걸음을 놓기 시작했다.

“부인은 예 있으시오. 내 혼자 다녀오리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어찌 대장군 혼자만 죄인이랍니까. 어미인 저는 별개라는 말씀입니까?”

“부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오.”

지소부인이 막 뭐라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유신이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말씀대로 집에 계시지요. 제가 모시고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얼추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영광이 다소곳하게 말을 이었다.

지소부인이 유신과 영광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힘없이 유신을 잡은 팔을 놓았다. 

“얘야.”

김유신, 힘든 몸을 이끌고 궁궐로
영광과 함께하며 옛일을 상기하다

“말씀하세요, 아버지.”

힘들게 길을 가는 중에 유신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영광을 바라보았다. 

“네 서방 일 말이다. 이 아비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영광이 답에 앞서서 잠시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유신도 따라갔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랬겠지.”

영광의 남편인 반굴이 황산벌 전투에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자신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그러니 당시 어린 나의의 영광으로서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아버지며 작은 아버지인 흠춘과 아버지 김유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후일 시간이 흘러 남편의 죽음이 신라군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인지하게 되자,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아울러 당시에 두 사람의 고뇌 역시 심도 깊게 헤아리게 됐다.

“한편 생각하면 이 아비가 네게 너무나 커다란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에요, 아버지. 당시 아버지 마음은 어떠했겠어요.”

답을 하는 영광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네가 이 못난 아비의 마음을 헤아렸었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는 신라의 영웅이신 걸요.”

영웅이라는 소리에 유신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진심이냐?”

“당연하지요.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신라가 가당키나 하겠어요?”

“오늘의 신라라! 얘야.”

막상 영광을 불러놓고 유신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영광 역시 답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갔다.

“이 아비는 말이야. 이 아비는 생전에 우리 민족의 통일을 보고 싶었구나. 오늘의 신라가 아닌, 내일의 우리 민족을 위해서.” 

영광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유신의 얼굴을 주시했다.

“얘야.”

“말씀하세요, 아버지.”

“이 아비가 너무 오래 살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영광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이 아비가 생각해도 너무 살았어. 이미 아비와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는데 아직 살아있으니.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구나.”

“오래 사셔서 반드시 민족의 통일을 보셔야지요.”

“그래야 하는데, 암 반드시 그리되어야 하는데.”

답을 하는 유신이 일순간 영광에게 기울었다.

순간 유신을 잡고 있는 영광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어 유신의 이마에서 희미하게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가마를 대령하도록 할까요?”

“왜, 힘이 부치는 게냐?”

“힘에 부치다니요, 아버지인데.”

“말만 들어도 고맙고 힘이 나는구나.”

“그런데 아버지.”

“말해보거라.”

“왜 어머니를 제치고 저와 함께 이 길을 가시는지요.”

유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영광의 얼굴을 주시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영광이 눈을 깜박였다.

“네 모습을 바라보니 당당하게 전장으로 향하던 내 사위며 조카인 반굴의 모습이 그려지는구나.”

“그래서…….”

뒤돌아보다

“그런데 네 동생 원술은…….”

“단순히 원술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 아비는 우리 민족이 아닌, 당나라 군사에 패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용납하기 힘들구나.”

힘들게 말을 마친 유신이 고개를 들어 다시 저 멀리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이 마치 연개소문이 오지 말라 손을 젓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끝>


(그 동안 <삼국비사>를 애독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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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