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8)항복

남건의 결심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당나라가 신성을 점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본격적으로 고구려 침공을 개시했다.

당 고종은 이세적을 요동도 행군대총관 겸 안무대사로 삼고 남생을 길잡이로 해서 전군을 출정시켰다. 

소식을 접한 남건은 두방루, 검모잠, 뇌음신 등 장수들과 군사 5만명을 부여성(지린 성 눙안)으로 보내 당나라군의 침입을 저지토록 했다. 

그러나 기세 좋게 달려나갔던 고구려군은 이세적이 이끄는 당군에 패하고 많은 희생자를 내며 대행성(大行城, 압록강 연안)으로 후퇴하였고, 역시 그곳도 함락되자 압록수를 기점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쳤다. 

최후의 방어선

그러나 그곳에서도 고구려군이 패하고 이어 욕이성(辱夷城, 평양 서북 영유현)까지 함락되면서 평양성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남건이 급히 동생을 데리고 보장왕을 찾았다.

“전하, 부디 옥체 보전하소서.”

“그게 무슨 말이오?”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하오니 전하께서는 신하들과 당에 항복을 청하십시오.” 

보장왕이 항복을 되뇌며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산이 네가 먼저 당의 장수인 이세적을 만나 항복을 타진하거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여러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그러면 형님은?”

“아직도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게냐?”

“그러면 형님은 결국 죽음으로써 끝까지…….”

남건의 제의에 따라 보장왕이 남산과 함께 나이 든 장군 등을 비롯하여 수령 98명으로 하여금 흰 기를 들고 이세적을 찾아 항복을 타진하도록 했다.

이세적이 남건의 예상대로 보장왕의 항복을 흔쾌히 수용하고 예로써 접대하였다. 

또한 성에 잔류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글필하력 등 수하 장수들에게 뒤를 부탁하고 보장왕과 왕자들, 그리고 대신과 고구려 백성들을 이끌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그를 확인한 남건이 병사들을 소집했다.

“고구려 병사들이여!”

남건의 외침에 병사들이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소리로 답했다.

그 소리를 의식하며 다시 크게 외쳐대자 답하는 소리가 올라갔다.

“나, 고구려의 막리지 남건은 평양성과 함께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병사들 중에서 혹여나 당나라 군사들에게 항복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면 곧바로 성을 나가 당의 진으로 가라.”

잠시 말을 멈춘 남건이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누구 하나 선뜻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귀하들의 목숨은 귀하들이 판단하도록 하라. 나와 함께 평양성과 운명을 같이할 병사들만 남고 여의치 않은 병사들은 지금 당장 성을 나서도록 하라. 잠시 후 평양성의 성문은 굳게 닫힐 것이다.”

“막리지 대감!”

남건이 다시 병사들의 모습을 살피는 중에 성주인 술탈이 앞으로 나섰다.

“말해보시오!”

“저희는 오로지 막리지 대감과, 그리고 평양성과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하옵니다, 막리지 대감.” 

수인 신성과 소장(小將)인 오사와 요묘가 술탈의 뒤를 이었고 이어 모든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어 올리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고맙다, 고구려 병사들이여.”

말을 마친 남건이 병사들 속으로 들어가 일일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 성문을 닫으려는 중에 검모잠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남건이 급하게 검모잠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장군, 살아있었소!”

“면목 없소, 막리지 대감.”

보장왕, 흰 기 들고 당나라에 항복
남건의 결사항전…따르는 고구려군

“두방루 장군과 뇌음신 장군은!”

검모잠이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결국.”

남건이 허탈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검모잠의 어깨를 껴안자 검모잠의 몸이 흔들렸다.

“돌아가신 연개소문 대감께 정말…….”

“장군이라도 살아있어 주어 다행으로 생각하실 게요.”

어렵게 말을 마친 남건이 즉시 수하들로 하여금 검모잠을 치료하라 지시하고 성루로 올라가 삼족오기를 걸고 그곳에 자리 잡았다. 

성루에서 당나라 진영의 움직임을 살피며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며 돌고 있는 중에 저만치에서 신라의 증원군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남건이 신라의 증원군을, 아니 그들의 앞에 펄럭이는 깃발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자세하게 살펴도 김유신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확인하고 김유신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군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이미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사에 신라군이 합류하자 그 위용이 자못 볼 만했다. 그를 바라보는 고구려 병사들의 얼굴에 수심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막리지 대감, 이 순간을 맞이하니 대감의 아버님이 생각나는군요.”

병사들의 근심을 달래주며 독려하는 남건에게 성주인 술탈이 다가섰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소.”

“그런데 형제분들이나 숙부는 모두 저 살려고 항복했는데 막리지 대감께서는…….”

“비록 한배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 속은 모르는 거 아니겠소.”

남건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만약에 막리지께서도 항복했었더라면 연개소문 대감 명성에 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나마 막리지 대감의 충성이 있어 다행입니다.”

“아버지를 그리 생각해주시니 진정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하튼 대감과 함께 생사를 나눌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남건이 고개를 돌리자 술탈 역시 서둘러 입을 닫았다.

“진정 고마울 뿐이오.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여하튼 성주와 함께하는 나도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되어 병사들을 독려하는 중에 성의 북문 수비 임무를 맡은 신성과 오사, 요묘가 성루에서 세 사람만의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장군, 저들의 세를 보니 이거 정말 죽고 말겠습니다.”

얼굴 전체에 근심이 가득 찬 요묘가 떨리는 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야. 임금도 항복하고 당나라의 주력이 돌아가서 저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할 줄 알고 한번…….”

“저도 그리 생각하고 그저 객기를 부려보았는데 이러다가 정말 개죽음을 당하겠습니다.”

신성이 한숨을 내쉬자 오사 역시 거들고 나섰다.

“장군, 왕도 항복하고 말았는데 우리가 뭐라고. 특히 남건의 경우 저 혼자만 남고 가족들은 전부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뭐라고 개죽음을 맞이해야 합니까?”

살길을 찾아

요묘와 오사가 다시 간절하게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하자 신성이 저만치에 있는 당나라 깃발을 바라보았다.

“장군들의 생각이 그러하니 우리 방법을 모색해보세.”

“어떻게 말입니까?”

신성의 항복을 수용하겠다는 제안에 요묘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곧바로 항복할 수는 없고.”

“왜요, 오늘 해가 지면 어둠을 틈타 곧바로 당나라 진영으로 가면 될 거 아닙니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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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