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 내려놓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05 10:55:06
  • 호수 1195호
  • 댓글 0개

스스로 내려왔나 억지로 내려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경영권서 손을 떼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불혹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지 꼭 23년만이다. 대기업 오너 경영인이 갑작스레 퇴진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습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밖에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새 일터서 성공의 단맛을 맛볼 준비가 돼있습니다. 까짓거, 행여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요.”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경영 일선서 물러난다. 지난달 28일 코오롱그룹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 회장이 내년 1월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인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 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청바지 입고… 
회장님의 변신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서 임직원 200여명과 함께 사내 포럼인 ‘성공퍼즐세션’에 참석했다. 평소 이 자리서 좀처럼 발언을 하지 않던 이 회장은 이날 포럼 말미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연단에 올라 ‘폭탄 선언’을 했다. 

검은색 터틀넥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이 회장은 “오늘 내 옷차림이 색다르죠? 제 얘기를 들으면 왜 이렇게 입고 왔는지 이해가 갈 겁니다”라고 말한 뒤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그는 “내년부터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대표이사, 이사직도 그만두겠다. 앞으로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에게 보내는 서신’으로도 퇴임을 공식화했다. 이 회장은 “1996년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는데 3년의 세월이 더 지나갔다”며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후 행보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이 회장은 “저보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특별하게 살아온 것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책임감도 컸다”며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지만,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겠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새 일터서 성공의 단맛을 볼 준비가 돼있다. 까짓거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년부터 경영권 손 뗀다”
1월1일 모든 직책서 물러나

오너 경영인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에 재계에선 배경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서신에 나온 대로 오랫동안 생각해온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며 “평소에도 ‘내가 그룹의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경영서 손을 떼겠다’는 말을 하셨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퇴진은 23년 전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이 자리를 물려줄 때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 명예회장은 1996년 예고 없이 회장직을 내려놨다. 21세기 새로운 사업은 새로운 세대가 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경영일선서 물러났다. 

당시 이 명예회장은 은퇴 후 미술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1992년 고희전, 2001년 팔순전, 2009년 미수전 등 개인전을 열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언급한 창업이 일반적인 사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평소 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뜻을 내비친 것을 감안해 사회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동안 이 회장은 서울역 쪽방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봉사현장을 직접 챙겨왔다. 2001년에 제정한 ‘우정선행상’이 대표적이다. 매년 사회 곳곳서 일어나는 선행과 미담 사례를 발굴해 시상하고 있다. 

아울러 2004년부터 ‘코오롱 어린이 드림캠프’라는 행사로 어려운 환경서도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초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12년에는 그룹 차원서 ‘코오롱사회봉사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퇴임 이후 ‘창업’의 뜻을 밝혔지만,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지는 알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평소 이 회장이 친분이 깊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기도 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20년간 투자한 끝에 세계 최초 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한 뒤 이 회장이 바이오·벤처 사업에도 관심을 보인 걸로 안다. 이런 사업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뚝심과 인내
23년 이끌어

이 회장은 1956년 4월18일 서울서 출생해 올해 나이로 63세다. 이 명예회장의 자녀 1남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 명예회장의 다음을 이어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지명됐고 코오롱의 해외지사(뉴욕 지사(1985년 2월), 도쿄 지사(1986년 2월))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1987년 코오롱 상무이사, 1989년 그룹기획조정실장을 거쳤고 1996년 1월 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97년 직후 외환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회장은 26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이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또 광고회사 한인기획을 그룹서 분리했다. A&C코오롱, 코오롱씨드50, 코오롱호텔 등 3개사를 코오롱스포렉스에 합병했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 한국화낙, 그리고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코오롱은 스위스 보스턴투자은행으로부터 5000만달러 외자를, 코오롱상사도 BMW로부터 2000만달러 외자를 도입했다. 
 

이 회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원 앤 온리(One & Only)’를 경영방침으로 정하고 유망상품, 기술, 지역을 선점해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경쟁력 있는 신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관심은 차세대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폴리이미드는 수없이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도 본래의 형태가 훼손되지 않는 특수섬유 소재다. 이 회장은 2006년부터 투명 폴리이미드의 독자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약 10여년의 연구 끝에 2016년 세계 최초로 투명 폴리이미드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양산 라인을 준공했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의 출시를 예고하면서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코오롱의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추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거론되고 있다.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시장 규모는 향후 5년 내에 1조원, 관련 시장은 4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코오롱의 10여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Invossa)는 이 회장이 20년 넘게 공을 들인 작품이다. 1996년 회장직에 오를 때부터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이 회장은 1999년 미국 현지에 ‘티슈진’(현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해 인보사 개발이 착수했다. 사업 초기부터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수백억원을 들여 임상 시험을 진행한 결과 2001년 7월 한국에서 29번째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일본 ‘미츠비시타나베’와의 인보사 기술수출 계약이 임상 시험 절차 문제로 해지되면서 해외 수출이 주춤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지난달 미국 먼디파마와 일본으로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활로를 찾았다. 코오롱은 올해 7월 미국서 임상시험을 허가받아 이르면 2023년부터 미국서도 인보사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인보사 개발을 두고 “성공 가능성이 0.00001%라고 할지라도 그룹의 미래를 생각할 때 주저할 수 없었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의 뚝심과 인내의 경영철학이 묻어나는 말이다. 

물론 뚝심과 인내가 언제나 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3000억원을 들여 15년간 육성했던 올레드 사업은 자본잠식에 빠져 2015년 사업 철수를 결정해야 했다. 2007년 환경시설관리공단을 인수해 도전했던 수(水) 처리 사업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수많은 악재도 있었다.

2014년 2월 코오롱이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서 열린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환영회 도중 강당 지붕이 무너져 10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이 회장은 모든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 


코오롱은 지난 2009년 지주사 중심의 경영체계를 구축했다.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1일, 2년 만에 코오롱그룹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다시 지정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21조 제2항에 따라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말한다. 

재계 총수들과
두루 친밀관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 순환출자 금지,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 등 추가적 규제가 적용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주식 소유현황 신고 등 기존 규제도 계속 적용된다.

세무조사에서 추징금도 부과됐다. 코오롱그룹은 2016년 4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상속세와 듀폰과의 소송 비용의 회계장부 반영에 대한 조사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요원 수십명이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코오롱인더스트리를 불시에 방문해 회계장부와 컴퓨터 등 관련자료를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은 2016년 10월 모두 743억원 규모의 추징금을 받았으나 조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해 지난 4월 617억원의 추징금에 부과 처분 취소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코오롱글로벌은 지난 6월 중부지방국세청으로부터 2013∼2017년 법인세 통합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173억9216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코오롱은 이명박정권과의 유착(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이자 전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코오롱 사장,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코오롱상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여러 최측근 인사들 모두는 코오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 전 의원은 코오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마음과 마음 통하는 ‘심통’ 경영
40세 회장직 맡아 60대 창업가로

명예회장과 이 전 의원이 고향 선후배 사이로 서로 친밀한 관계다. 이 때문에 이명박정부와 코오롱의 유착 의혹은 아직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에는 이명박정권과 연결된 관계로 현 정권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기록들로 이 회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는 그룹이 직면한 위기를 과감한 결단으로 돌파한 인물이자 임직원들을 진심으로 아낀 인덕으로 존경받았다. 

개인적인 성향 면에서 이 회장은 평소 호방한 성격으로 재계서 격의 없는 소통경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경영자로선 껄끄러울 수 있는 노조와의 만남도 직접 나서는가 하면 직원들과의 난상토론도 즐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심통’(心通)이다. 지난 4월 서울 마곡산업단지 신사옥에 입주할 당시 “새로운 60년 화두는 소통”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새 사옥에 연구와 영업, 지원 인력이 모인 만큼 협업의 장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젊은 직원들과 식당서 회사 비전을 놓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보에 ‘회장님, 밥 사주세요’라는 코너를 만들어 대리급 직원들과 난상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코오롱인터스트리 구미 공장을 여러 차례 찾아 직접 노조와 만나기도 했다. 그룹 회장이 노조를 직접 만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구미 공장 노조는 2004년 파업으로 회사와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 회장은 ‘행복 공장 프로젝트’라는 상생활동을 제안해 노조의 손을 잡았다. 그는 당시에 일에 대해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지 말자는 데 교감을 이룬 뒤 수시로 소통하는 방식이 노사 화합으로 이어졌다”라고 회고했다.

각종 사건사고
사정기관 눈치?

사교성도 좋아 재계 총수들과도 두루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골프를 비롯해 축구,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 스포츠 매니아다.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