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금고지기’ 수사 막전막후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5.17 15: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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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재현?…또 덮친 검풍에 안절부절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담철곤 회장의 비리로 큰 곤욕을 치렀던 오리온그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일단 수사선상에 담 회장의 최측근이 올랐다.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려 구속된 담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풍’에 휩싸인 오리온그룹. 한숨 돌리나 싶더니 또 다시 큰 시련에 맞닥뜨리게 됐다.

포천 골프장 추진하면서 회삿돈 횡령 정황 포착
인허가 과정 의혹…정관계 로비 여부 수사 확대

검찰이 오리온그룹 계열사인 스포츠토토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이날 오전 서울 논현동 스포츠토토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회계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USB메모리 등을 압수했다. 이와 함께 관계사 사무실과 임원들의 자택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스포츠토토가 골프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금액이 수십억원대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에 이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회계자료 등 압수
사업비 뻥튀기 조사

검찰은 스포츠토토가 2007∼2008년 골프장사업 진출을 위해 부동산 개발업체를 인수하고 포천에 골프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회사돈이 빼돌려 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골프장 땅값과 자회사 인건비, 사업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골프장 부지매입과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관할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 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비자금 조성에 오리온그룹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나아가 골프장사업 진출을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벌였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압수물 분석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분석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관련자들을 차례로 소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일단 수사선상에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을 올려놨다. 조 전 사장이 돈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조 전 사장의 자택과 사무실도 압수수색한 검찰은 지난 9일 “조 전 사장이 스포츠토토 등에서 회사 공금을 횡령한 단서를 확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회계장부를 조작해 빼돌린 자금이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골프장사업 진출을 위해 부동산 개발업체인 지파인딩 인수를 추진한다는 명목 등으로 스포츠토토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사장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급여, 관리비, 고문·자문료 명목으로 지파인딩 자금과 부동산 매수대금,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크레스포 자금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스포츠토토가 2009년 지파인딩, 크레스포로부터 차입한 수백억원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횡령 등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토토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체육진흥투표권 위탁 사업자다. 축구·야구·농구 등 운동경기의 스코어와 승패를 예측해 베팅하면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는 복권을 발행한다.
오리온그룹은 2008년 7월 스포츠토토를 통해 부동산 개발업체인 지파인딩(전 인베이스개발)을 인수해 계열사로 추가했다. 당시 매매가는 102억6000만원이었다.

오리온그룹은 스포츠토토 지분 66.64%를 소유한 최대주주. 스포츠토토는 지파인딩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지파인딩은 골프장 운영업체인 크레스포(전 인베이스포천)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지파인딩과 크레스포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골프장을 아직 오픈하지 못해서다. 오리온그룹은 당초 증손자회사인 크레스포를 통해 경기 포천 군내읍 직두리에 27홀 규모의 골프장(150만㎡·약 45만평)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크레스포는 2007년 12월 포천시에 골프장 개발을 위한 인·허가를 신청했다.


포천시는 “급증하는 국민 여가수요와 골프수요에 대처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소득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체육시설(골프장)을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했다”며 골프장 일원을 계획 관리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하고 도시시설을 체육시설인 골프장으로 결정하는 계획을 입안해 경기도에 결정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2010년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는 “골프장 부지에 보존산지가 많아 산림훼손 및 환경파괴 위험이 있는 등 골프장 건설목적으로 도시관리계획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계획관리지역면적이 50%가 넘지 않아 관계법령에 저촉된다”며 포천시의 도시관리계획안을 부결시켰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진통을 겪다 결국 지난해 5월 18홀(123만6376㎡·약 38만평)로 축소된 골프클럽을 조성하는 내용의 사업안이 의결되면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 골프장은 2014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 사업을 주도한 인사가 바로 조 전 사장이다. 조 전 사장은 2009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지파인딩 대표이사를 맡았다. 현재 김모씨와 함께 크레스포 공동 대표이사를 역임 중이다.

조 전 사장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대외에 얼굴은커녕 간단한 프로필조차 공개된 적이 없다.

여러차례 진통 겪다
작년 5월 허가 받아

다만 전현직 오리온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 전 사장은 전략통이자 재무통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막후 실력자다. 그룹 내부에선 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오리온 집사’또는 ‘오리온 금고지기’로 통한다. 그를 ‘삼성 집사’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에 비교하기도 한다.

경신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부터 오리온에서 근무한 조 전 사장은 그룹 몸집을 늘리는데 주도적역할을 하는 등 오리온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오리온일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구세력’이 대부분 숙청될 당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더 잘나갔다. 한때 온미디어 등 10여개에 달하는 계열사들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지난해 말까지 해외사업 등 그룹 전략부문을 진두지휘하다 현재 휴직 상태로 알려졌다.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보유하고 있던 오리온 주식 2000여주를 장내매도 형식으로 팔아 16억원을 챙겼다.

전직 계열사 한 임원은 “조 전 사장은 그룹 전반의 자금줄을 훤히 알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은둔의 전문경영인’으로 불리던 조 전 사장이 유명세(?)를 탄 것은 오리온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다. 담 회장은 회삿돈 226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74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치는 등 총 300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로 지난해 6월 구속됐다.


검찰은 “담 회장이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고가의 작품들을 자택에 설치하는가 하면 외제 고급차도 굴렸다”며 “또 회삿돈으로 집사와 가정부 등을 두는 황제생활을 누리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수십억∼수백억 감쪽같이 증발
수사선상에 담철곤 측근 올라

검찰은 지난해 9월 담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했고, 한달 뒤 1심 재판부는 대부분의 공소 내용을 유죄로 판단해 담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담 회장에게 실형을 때리면서 “계열사를 사유물로 여기는 범행을 했다”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질책해 눈길을 끌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 1월 담 회장은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의 항소에 따라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조 전 사장은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혐의로 담 회장에 앞서 구속됐다. 검찰은 조 전 사장에게 2006년 서울 청담동에 ‘청담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40억여원의 사업비를 빼돌려 서미갤러리와 그림 거래를 하는 것처럼 가장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적용했다.

또 오리온그룹에 포장용기를 납품하는 I사의 지분을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인 해외법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20억여원을 횡령하고 30억여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았다. 조 전 사장은 담 회장을 비롯해 오리온그룹 주요 임원들이 외제 고급차량을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룹 각 계열사의 법인자금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사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담 회장과 함께 풀려났다.

오리온그룹은 이번 검찰의 수사 배경과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포츠토토가 알짜 계열사라 그렇다. 스포츠토토는 해마다 1200회 이상 복권을 발행해 2조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며, 순이익이 연 2000억원에 달한다.

자칫 포천 골프장 등 레저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구조 개편 로드맵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2001년 동양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기존의 제과에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외식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베니건스, 온미디어, 메가박스 등을 잇달아 매각하면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그 신호탄이 레저업 진출이었다.

‘금고지기’ 조경민
‘검은돈’ 조성 의혹

뿐만 아니다. ‘오리온 순항’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해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증가, 소비심리 위축, 업체간의 경쟁 심화, 유통업체의 대형화 추세로 인한 교섭력 저하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년대비 14% 증가한 757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증권사들은 올해 실적에 대해 ‘장밋빛’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가도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오리온그룹은 담 회장이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검풍’에 휩싸여 바짝 긴장한 눈치다. 한숨 돌리나 싶더니 또 다시 큰 시련에 맞닥뜨리게 됐다. 만약 검찰의 수사가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거나 윗선으로 번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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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