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궁지 몰린 ‘조폭 대부’ 김태촌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1.20 17: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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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철창신세 위기…“억울합니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조폭 대부’ 김태촌씨가 궁지에 몰렸다. 또 다시 철창신세를 질 위기에 처했다. 기업인 협박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누명을 써 억울하다’는 하소연까지 했다. 진심일까, 아니면 변명일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김씨의 사연과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를 되돌아 봤다.

“돈 받아 달라” 기업인 청부 협박 혐의 수사
소환 임박하자 입원 병원서 기자회견 자청

‘김태촌’이란 이름이 또 다시 회자되고 있다. 기업인 협박 혐의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서면서다. 김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한 상태. 혐의는 물론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어 ‘꾀병’이 아니냐는 의혹과 ‘회칼 피습설’을 부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씨는 지난 10일 입원 중인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병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입장을 밝혔다. 우선 그는 협박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욕설은 했지만 
협박이 아니다”

김씨는 “협박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기업인에게) 욕설을 한 기억은 있지만 협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협박인지 아닌지 녹취록을 듣고 (사정기관에서) 그 여부를 판단해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배우) 권상우씨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김씨는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입원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일축했다. 지난달 8일 경찰의 조사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4일 뒤인 12일 병원에 들어가 ‘위장 입원’의혹을 받았던 김씨는 “(갑자기 입원한 것은) 경찰 수사를 피하려는 게 아니다. 1989년 받은 폐암 수술 후유증이 악화돼 입원한 것”이라며 “사건 관련 언론 보도가 나기 전에도 혜화경찰서에서 강력팀 형사들이 찾아 왔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입원 후 두 차례 수술까지 받았다”며 기자들에게 왼쪽 복부에 있는 수술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최○○’이란 가명으로 입원한 것에 대해선 “내가 요구한 게 아니다. 간호사가 먼저 기자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이유와 주위 환자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가명을 쓰겠냐고 물어봐 그러겠다고 한 것뿐이다. 절대 도피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된 ‘회칼 피습설’도 언급했다. 앞서 다른 조직폭력배에게 흉기로 찔려 입원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에 대해 그는 “평생 한 번도 칼을 맞은 적이 없다”고 웃어넘겼다.

김씨는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진단서엔 김씨의 병명과 ‘2월22일까지 안정가료를 요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김씨는 “한 달 정도 병원에 더 있을 예정”이라며 “경찰 조사를 피하진 않겠다. 경찰이 소환 요청을 하면 아프지 않는 한 곧바로 출두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폭력조직 두목 출신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김씨가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씨는 기업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이 서민생활을 침해하는 조직폭력배를 집중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힌 직후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방파’우두머리였던 김씨가 국내 주먹계 거물급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김씨는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일까.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김씨가 지역 기업인을 협박해 수십억원의 돈을 뜯어 내려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김씨 등 피해자와 피의자, 참고인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며 “실제 협박 행위가 있었는지와 이 과정에 대가성 금품이 오갔는지 등에 대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기업인의 사주를 받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 다른 기업인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북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K이사는 대구의 모 기업 H대표에게 사업비 명목으로 25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H대표의 업체는 경영난에 빠졌고, K이사는 이자 등 배당금은 물론 원금도 되돌려 받지 못하게 됐다. H대표는 ‘배째라’식으로 버텼다는 후문. 졸지에 거액을 떼이게 된 K이사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조폭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했다.


K이사가 찾은 ‘형님’이 바로 김씨다. K이사는 지난해 4월 “H대표의 사업에 투자했는데 업체가 어려워져 돈을 떼이게 생겼다. 투자금 25억원을 되찾아 달라”고 김씨에게 부탁했다. 이후 김씨가 ‘행동’에 나섰다.

K이사의 청부를 받은 김씨는 4월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H대표를 찾아가 “K이사가 사업에 투자한 25억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성모씨, 위모씨 등 김씨의 ‘동생’들도 H대표에게 “돈을 달라”며 수차례 독촉했다. 이들은 김씨 수하의 옛 조직원으로 알려졌으나, 추종세력 계보도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촉” 억울함 호소
무리한 조준 수사?

김씨는 조직폭력배들과 함께 H대표의 사무실을 찾아가거나 대구시내 모 호텔 객실 등으로 불러내 K이사의 투자금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몸을 맡겨서라도 돈을 해결하라’, ‘돈 안주면 재미없다’, ‘각오해라’등 H대표가 여러 차례 신체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협박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앞서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김씨의 행위를 협박이 아닌 채무 독촉으로 간주하고, H대표에게 가해를 가한 사실이 없으며, H대표가 K이사의 투자금을 떼먹은 횡령 혐의로 기소가 된 점 등을 이유로 김씨 체포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H대표를 상대로 한 조사는 이미 마쳤고 녹취록 등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물증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며 “김씨가 이번 사건 외에도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채무를 해결해준 사례가 더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H대표를 만난 것은 맞지만 독촉일 뿐 협박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찰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한 거물급 조준 수사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서방파’는 1970∼80년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국내 3대 폭력조직으로 악명을 떨쳤다. 광주 지역 폭력조직에서 조폭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자신의 출신지인 전남 광산군 서방면을 딴 ‘서방파’를 결성했다. 김씨는 서울로 진출하기 전까지 지방의 군소 주먹에 불과했다.

그러다 ‘번개파’의 행동대장으로 있던 1976년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주차장에서 ‘범호남파’의 실질적인 보스였던 오종철씨를 칼로 난자해 불구로 만들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그해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을 지휘해 전국구 주먹으로 급부상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 1986년 출소했지만 곧바로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습격한 혐의로 다시 수감됐다.

협박 혐의 강하게 부인
‘위장 입원’ 의혹 일축
‘회칼 피습설’ 웃어넘겨

징역 5년, 보호감호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 중인 1989년 폐암 진단을 받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씨는 당시 왼쪽 폐를 잘라냈고 관상동맥이 거의 막혀 심장도 좋지 않았다. 심장협심증 수술의 통증 때문에 석방 직후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폭력을 사주한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김씨는 ‘뉴송도호텔 사건’과 관련 “지금까지 나는 권력의 희생양이었다”며 “인천 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피습사건도 모 부장검사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후 기도원에 들어가 범죄단체 ‘신우회’를 결성한 혐의로 또다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형집행정지도 취소당했다. 1997년엔 공문서 위조교사 혐의로 1년6월의 형이 추가돼 형량은 모두 16년6월 및 보호감호 7년으로 늘어났다.


2001년 건강상의 이유로 청송교도소에서 비교적 의료시설이 괜찮은 진주교도소로 이감됐으나 호화생활 등 ‘특혜 수감’사실이 드러나면서 청송으로 재이감됐다. 당시 김씨는 인터넷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김씨는 모두 10번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감옥에서 33년을 보냈다. 김씨가 올해 63세인 점을 감안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쇠창살에 갇혔던 셈이다.

‘서방파’ 보스로 악명
“신앙생활 전념” 약속

그가 마지막으로 교도소를 나온 것은 2009년. 김씨는 2001∼2002년 진주교도소 수감 당시 전화사용과 흡연 등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교도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06년 구속돼 징역 1년형을 확정 받았고, 지병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수차례 신청한 끝에 3년 만에 만기 출소했다. 같은해 배우 권상우씨에게 일본 팬사인회를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로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출소 당시 “신앙생활에 전념하면서 청소년 선도 등 사회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조폭 선후배들의 경조사에 ‘국제청소년범죄예방교육원 원장’ 직함으로 화환과 조화를 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깨끗이 손을 씻고 새 사람이 될 것을 공언했던 김씨. 그 이름이 또 다시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궁지에 몰렸다. 11번째 철창신세를 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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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