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끄는’ SK수사 노림수

‘빙빙 도는 검찰’…1년째 SK 목줄만 잡고 ‘슬렁슬렁’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1년 이상 장기화 되면서 ‘SK 표적’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해 꼬박 해를 넘겼다. 최태원 회장을 타깃으로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특별한 물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 최재원 부회장만 구속하는데 그쳤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검찰에 하염없이 끌려가고 있는 SK그룹은 1953년 창립 이후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 넘긴 장기간 무리한 조사…‘표적수사’논란 일어
투자 등 경영계획 차질 “공백 심각…시무식도 못해”


SK그룹이 글로벌 사태 직후인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영계획에 손도 못 대고 있다. 지난해 8월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진 뒤부터 사실상 경영공백이 시작됐다. 당초 SK그룹은 새식구가 된 하이닉스 투자를 포함, 사상 최대인 15조원의 투자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그룹 단위의 글로벌 성장 특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최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다. 신입사원 채용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다행히 최 회장이 “SK의 미래인 신입사원 채용은 차질이 빚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 겨우 채용 차질은 면하게 됐다.

“임진년 경영로드맵
손도 못 대고 있다”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SK 의혹은 의외로 간단하다. SK그룹이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조성한 펀드 자금을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를 위해 유용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이를 캐기 위해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했다. 1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3시간에 걸친 방대한 압수수색과 임원 등 회사 관계자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조사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 최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물론 이미 구속된 최 부회장도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부분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은 1번, 최 부회장은 3번에 걸친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모두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측도 최 회장 형제의 혐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SK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의혹은 펀드를 통해 조성된 계열사 돈 500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그런데 3조원 가까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최 회장이 뭐 하러 회삿돈에 손을 대겠냐”며 “최 회장은 이미 글로벌 분식의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겪은 바 있고, 500억원을 조달하려면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 그 복잡한 펀드를 만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하겠나”고 강변했다.

재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4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은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무기삼아 재계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인데, 그런 그가 적당히 돈 벌어 먹튀할 생각이 아니면 회삿돈을 횡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검찰이 제기한 혐의만 해도 최 회장은 굉장히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타깃설’ 의혹 급부상
정부 정책에 비협조해서?
재계 군기잡기용 본보기?


법조계에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횡령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기업 경영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한 최 회장이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돈을 빼돌릴 수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일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또 다른 인사도 “펀드는 감독 당국의 관리와 감시를 받는 금융구조로 빼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며 “최 회장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펀드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횡령됐다는 500억원은 2008년 당시 한달여 만에 9%의 이자까지 계산돼 고스란히 회수됐다. 이 인사는 “최 회장이 만약 횡령하려 했다면 다시 돌려 놓았을 리가 없다. 이자까지 쳐서 회수가 됐다는 것은 펀드운영자인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 되자 ‘SK 표적’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무리수로 SK그룹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은 SK 횡령 수사에서 나오는 것이 없자 비자금 조성 등 압수수색에서 나온 별건을 수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을 끌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을 대상으로 먼지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은 표적수사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물가관리의 핵심 대상인 유가와 통신료 인하에 비협조적이었던 SK그룹을 손보기 위해 검찰이 나섰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때도 ‘재계 군기잡기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총수가 구속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SK그룹을 두고 ‘본보기’로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재계를 손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상을 찾다가 덩치가 있으면서 수출이 적은 기업, 즉 내수기업인 SK그룹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내수기업설’이 있긴 있으나, SK그룹이 그동안 주력 사업의 수출 비중을 60%로 늘리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 상황이라 타깃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산 3조대 총수가 
500억 횡령했겠냐”

재계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 정황만 갖고 3대 그룹 회장에 대한 횡령 수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시대적인 재벌 압박”이라며 “1년 이상 조사해서 나오는 것이 없으면 깨끗이 정리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 한 간부는 “대기업을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주체로 인정해야 하지만 검찰의 표적수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해야겠지만 대기업의 국가경제 비중 등을 판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사실상 SK는 ‘올스톱’됐다. 최 회장 등 임원들은 발이 묶여 지난해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SK그룹은 경영공백 탓에 인사를 비롯해 사상 최대인 15조원에 달하는 투자 등 경영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SK그룹 전 계열사와 임직원들은 지난해 말 송년회는 물론 크고 작은 모임들까지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195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그룹 단위 시무식도 갖지 못했다.

SK그룹은 매년 1월 첫 번째 월요일 오전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해 경영 화두와 비전을 공유하는 시무식으로 새해 경영을 시작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세계 각 지역에 기업가치 100조원의 회사를 여러 게 만들어 나가자”는 비전을 발표하며 ‘붕정만리(鵬程萬里·붕새를 타고 만리를 난다는 뜻으로 원대한 계획을 비유)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SK 측은 “검찰의 수사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최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그룹은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북한발 대형 이슈 등 경영 안팎의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당초 지난 2일 개최 예정이던 그룹 시무식마저 취소되면서 그룹 전체가 공황에 빠진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최 회장 ‘정공법’ 돌파 선택
그룹 전사적 경영정상화 노력


특히 SK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최 회장까지 나서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강력하게 추진해 온 대형 해외사업들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와 관련한 투자자나 협력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SK 한 협력업체 사장은 “검찰이 SK그룹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초초하고 불안하다”며 “만약 SK그룹이 잘못되거나 자포자기 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이라고 걱정했다.

SK그룹은 재계 3위의 기업이다. 그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또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까지 책임지게 됐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당연하다.

최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 회장이 선택한 돌파구는 ‘정공법’. 최 회장은 최근 인수업체인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경영정상화의 우려가 제기되자 직접 하이닉스를 찾았다. 그가 하이닉스에서 던진 말은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와 성장을 위해 먼저 뛰겠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다음날 주가 상승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룹 CEO들을 대상으로 비상 경영회의를 소집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신뢰를 갖고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에 대처해 달라”며 “경제가 어렵고 위기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진해 어려운 국가 경제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검찰청에서 북한발 이슈를 점검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다 잠시 휴식시간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변호인과 실무진을 통해 김영태 SK㈜ 사장에게 북한 변수에 따른 조치를 지시했다.

이날 20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를 받고 새벽에 귀가한 최 회장은 다음날 오전 일찍 회사로 출근해 SK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CEO와 임원들을 불러 북한발 이슈로 인한 파장과 영향 등을 보고받고 만전을 기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글로벌 사태 때도 ‘시장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정공법을 선택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시장에서 싫어하면 안하겠다”던 최 회장은 ‘시장 기대가 100이라면 130, 150을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SK 잘못되면 
한국 경제가 휘청”

실제로 당시 최 회장은 실무진들이 3년에 걸쳐 사외이사 비율을 70%(대표이사를 경질할 수 있는 비율)로 올리겠다는 안을 보고하자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바로 70% 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최 회장의 벼랑끝 정공법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SK그룹은 ‘지루한 검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가 더 늘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 회장의 정공법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갈 길 바쁜 SK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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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