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끄는’ SK수사 노림수

‘빙빙 도는 검찰’…1년째 SK 목줄만 잡고 ‘슬렁슬렁’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1년 이상 장기화 되면서 ‘SK 표적’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해 꼬박 해를 넘겼다. 최태원 회장을 타깃으로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특별한 물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 최재원 부회장만 구속하는데 그쳤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검찰에 하염없이 끌려가고 있는 SK그룹은 1953년 창립 이후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 넘긴 장기간 무리한 조사…‘표적수사’논란 일어
투자 등 경영계획 차질 “공백 심각…시무식도 못해”


SK그룹이 글로벌 사태 직후인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영계획에 손도 못 대고 있다. 지난해 8월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진 뒤부터 사실상 경영공백이 시작됐다. 당초 SK그룹은 새식구가 된 하이닉스 투자를 포함, 사상 최대인 15조원의 투자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그룹 단위의 글로벌 성장 특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최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다. 신입사원 채용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다행히 최 회장이 “SK의 미래인 신입사원 채용은 차질이 빚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 겨우 채용 차질은 면하게 됐다.

“임진년 경영로드맵
손도 못 대고 있다”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SK 의혹은 의외로 간단하다. SK그룹이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조성한 펀드 자금을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를 위해 유용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이를 캐기 위해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했다. 1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3시간에 걸친 방대한 압수수색과 임원 등 회사 관계자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조사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 최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물론 이미 구속된 최 부회장도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부분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은 1번, 최 부회장은 3번에 걸친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모두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측도 최 회장 형제의 혐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SK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의혹은 펀드를 통해 조성된 계열사 돈 500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그런데 3조원 가까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최 회장이 뭐 하러 회삿돈에 손을 대겠냐”며 “최 회장은 이미 글로벌 분식의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겪은 바 있고, 500억원을 조달하려면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 그 복잡한 펀드를 만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하겠나”고 강변했다.

재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4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은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무기삼아 재계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인데, 그런 그가 적당히 돈 벌어 먹튀할 생각이 아니면 회삿돈을 횡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검찰이 제기한 혐의만 해도 최 회장은 굉장히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타깃설’ 의혹 급부상
정부 정책에 비협조해서?
재계 군기잡기용 본보기?


법조계에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횡령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기업 경영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한 최 회장이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돈을 빼돌릴 수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일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또 다른 인사도 “펀드는 감독 당국의 관리와 감시를 받는 금융구조로 빼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며 “최 회장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펀드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횡령됐다는 500억원은 2008년 당시 한달여 만에 9%의 이자까지 계산돼 고스란히 회수됐다. 이 인사는 “최 회장이 만약 횡령하려 했다면 다시 돌려 놓았을 리가 없다. 이자까지 쳐서 회수가 됐다는 것은 펀드운영자인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 되자 ‘SK 표적’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무리수로 SK그룹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은 SK 횡령 수사에서 나오는 것이 없자 비자금 조성 등 압수수색에서 나온 별건을 수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을 끌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을 대상으로 먼지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은 표적수사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물가관리의 핵심 대상인 유가와 통신료 인하에 비협조적이었던 SK그룹을 손보기 위해 검찰이 나섰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때도 ‘재계 군기잡기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총수가 구속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SK그룹을 두고 ‘본보기’로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재계를 손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상을 찾다가 덩치가 있으면서 수출이 적은 기업, 즉 내수기업인 SK그룹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내수기업설’이 있긴 있으나, SK그룹이 그동안 주력 사업의 수출 비중을 60%로 늘리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 상황이라 타깃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산 3조대 총수가 
500억 횡령했겠냐”

재계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 정황만 갖고 3대 그룹 회장에 대한 횡령 수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시대적인 재벌 압박”이라며 “1년 이상 조사해서 나오는 것이 없으면 깨끗이 정리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 한 간부는 “대기업을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주체로 인정해야 하지만 검찰의 표적수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해야겠지만 대기업의 국가경제 비중 등을 판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사실상 SK는 ‘올스톱’됐다. 최 회장 등 임원들은 발이 묶여 지난해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SK그룹은 경영공백 탓에 인사를 비롯해 사상 최대인 15조원에 달하는 투자 등 경영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SK그룹 전 계열사와 임직원들은 지난해 말 송년회는 물론 크고 작은 모임들까지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195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그룹 단위 시무식도 갖지 못했다.

SK그룹은 매년 1월 첫 번째 월요일 오전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해 경영 화두와 비전을 공유하는 시무식으로 새해 경영을 시작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세계 각 지역에 기업가치 100조원의 회사를 여러 게 만들어 나가자”는 비전을 발표하며 ‘붕정만리(鵬程萬里·붕새를 타고 만리를 난다는 뜻으로 원대한 계획을 비유)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SK 측은 “검찰의 수사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최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그룹은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북한발 대형 이슈 등 경영 안팎의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당초 지난 2일 개최 예정이던 그룹 시무식마저 취소되면서 그룹 전체가 공황에 빠진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최 회장 ‘정공법’ 돌파 선택
그룹 전사적 경영정상화 노력


특히 SK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최 회장까지 나서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강력하게 추진해 온 대형 해외사업들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와 관련한 투자자나 협력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SK 한 협력업체 사장은 “검찰이 SK그룹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초초하고 불안하다”며 “만약 SK그룹이 잘못되거나 자포자기 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이라고 걱정했다.

SK그룹은 재계 3위의 기업이다. 그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또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까지 책임지게 됐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당연하다.

최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 회장이 선택한 돌파구는 ‘정공법’. 최 회장은 최근 인수업체인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경영정상화의 우려가 제기되자 직접 하이닉스를 찾았다. 그가 하이닉스에서 던진 말은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와 성장을 위해 먼저 뛰겠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다음날 주가 상승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룹 CEO들을 대상으로 비상 경영회의를 소집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신뢰를 갖고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에 대처해 달라”며 “경제가 어렵고 위기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진해 어려운 국가 경제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검찰청에서 북한발 이슈를 점검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다 잠시 휴식시간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변호인과 실무진을 통해 김영태 SK㈜ 사장에게 북한 변수에 따른 조치를 지시했다.

이날 20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를 받고 새벽에 귀가한 최 회장은 다음날 오전 일찍 회사로 출근해 SK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CEO와 임원들을 불러 북한발 이슈로 인한 파장과 영향 등을 보고받고 만전을 기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글로벌 사태 때도 ‘시장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정공법을 선택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시장에서 싫어하면 안하겠다”던 최 회장은 ‘시장 기대가 100이라면 130, 150을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SK 잘못되면 
한국 경제가 휘청”

실제로 당시 최 회장은 실무진들이 3년에 걸쳐 사외이사 비율을 70%(대표이사를 경질할 수 있는 비율)로 올리겠다는 안을 보고하자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바로 70% 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최 회장의 벼랑끝 정공법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SK그룹은 ‘지루한 검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가 더 늘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 회장의 정공법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갈 길 바쁜 SK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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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