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회 문턱 넘은 3인의 헌법재판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22 10:00:55
  • 호수 1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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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사법기관 드디어 정상화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사법부 최고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한 달 만에 정상화될 조짐이다. 김기영·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인준됐다. 그동안 정치권서 여야간 이견으로 국회 추천 몫이었던, 신임 재판관들에 대한 표결 합의가 늦어졌다. 
 

국회는 지난 17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 몫 재판관 후보자 3명의 선출안을 의결했다. 교섭단체 여야 3개 정당이 각각 추천한 김기영(더불어민주당), 이종석(자유한국당), 이영진(바른미래당) 재판관 후보자의 선출안은 연기식 무기명 투표 결과 모두 가결됐다.

김기영 재판관은 총 238표 가운데 찬성 125표, 반대 111표, 기권 2표를 얻어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이종석 재판관과 이영진 재판관에 대한 찬성표는 각각 201표, 210표였다. 이종석 후보자는 반대 33표, 기권 4표를, 이영진 후보자는 반대 23표, 기권 5표를 각각 얻었다.

재판 심리 올스톱 
한 달 만에 정상화

앞서 여야는 인사청문회를 끝내고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서 선출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인준에 진통을 겪어왔다. 자유한국당이 김기영 재판관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문제 삼으며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서 사달이 났다. 

자유한국당은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단체라며 김기영 재판관에게 공정한 헌법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관 후보자를 서로 교차 지명하기로 내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나돌면서 자유한국당의 반대는 더욱 거세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기영 재판관을 선출해주는 대신 김 대법원장이 대표적인 진보성향 법조인인 이석태 재판관을 지명하기로 사전에 약속했다는 의혹이다.

정치적 편향, 내부지명 의혹 제기
여야 진통 끝에 결국 선출안 가결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김기영 재판관이 실제로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더불어민주당과 대법원장이 교차 지명에 사전교감 했는지 등 의혹을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치적 공세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오후 헌법재판소 정상화를 위해 선출안 표결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사태 해결의 물꼬가 터졌다.

한 달 가까이 이어져온 재판관 ‘6인 비상체제’가 해소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9일부터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과 서기석·조용호·이선애·이은애·이석태 재판관 등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출석해야 회의를 열 수 있다. 그런데 사건 심리에 필요한 재판관 수인 7명을 못 채운 채 한 달간 이어져온 것이다. 그동안 심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당연히 위헌 여부에 대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

낙태, 위안부…
산적한 숙제들


헌법재판소의 중요 사안을 의결하는 재판관회의 구성도 불가능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회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7명의 재판관이 출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관련된 내부규칙은 물론 새로 접수된 사건을 누구에게 배당할지에 대한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헌법재판 사건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 사건과 최저임금제 위헌 여부 사건 등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이 깊은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 사드(THAAD) 배치 승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박근혜정부서 시행된 각종 행정조치의 위헌 여부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엄격한 김기영

김기영 재판관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판사로 평가받는다. 충남 홍성 출신인 김기영 재판관은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1996년 인천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특허법원 판사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지난 2월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를 맡았다. 지식재산권 관련 재판을 오랫동안 맡아 특허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춘 판사로 평가받는다.

국가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판결을 자주 내렸다. 2015년 9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서 “긴급조치는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기존 대법원 판례를 깨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14년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맡아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자행하는 성범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법원 안팎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법원 내 진보적 성향 판사 모임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간사를 지냈다. 김 대법원장이 이 단체의 회장을 지낸 바 있다.

2009년 광주지법 부장판사 시절엔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인 신영철 전 대법관의 이른바 ‘촛불재판 개입 의혹’을 폭로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이 같은 이력이 알려지면서 인사청문회 과정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된다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다.

김기영 재판관은 청문회서 세 차례의 위장전입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두 자녀의 사립 초등학교 추첨을 위한 것으로, 아내가 했던 일이지만 제가 잘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사과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 아내의 위장 취업 의혹에 대해서도 “아내가 혼자 재산 관리도 하고 교육 문제도 해결했다”고 답변했다. 김기영 재판관 가족은 총 세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충남 논산에 거주하던 2001년 12월과 대전에 살던 2005년 12월 각각 아들과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 종로구와 양천구로 위장전입했다. 


2006년 1월의 경우엔 부동산 투기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당시 다른 가족은 경북 구미에 있는 김기영 재판관 처가 거주했는데, 아내만 1년 넘게 일산 신도시에 전입해 있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 공직 배제 7대 원칙’ 중 위장전입은 2005년 7월 이후를 기준으로 한다. 

김 후보자는 이 기준을 두 차례 위반한 셈이다. 그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야당은 김기영 재판관의 아내가 2013년부터 약 5년간 어머니 회사서 급여 명목으로 총 3억8000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위장취업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은 “상근도 아닌데 이사로 등재해 월급만 받았던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국민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유념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덕교사 이종석

이종석 재판관은 법원 내에서 ‘도덕교사’로 불릴 정도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이 내정자는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인천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전·서울고법 부장판사, 수원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원칙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판결을 내렸다. 이런 성품 덕분에 헌법재판서도 소신에 따른 결정을 내리지 않겠냐는 평을 듣는다. 원칙론자로 꼽히면서도 다양한 재판업무 경험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켜 사회통합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동양그룹, 웅진그룹, STX그룹 등 굵직한 기업 회생사건을 맡아 다양하고 복합적인 채권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회생절차를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기업회생절차를 간소화하고 채권단 의견을 반영해 단기간 내에 회생절차 졸업을 유도하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처음으로 도입해 기업회생 절차를 효율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4년 MBC가 사측에 비판적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낸 전보발령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듬해 10월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전보발령효력정지 가처분’ 항고심서 기각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종석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서 “이후 본안재판서 다른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에 기각 판단은 잘못됐다고 판단된다”며 유감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종석 재판관은 청문회 과정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키코(KIKO)에 관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2011년 5월 중장비 제조수출업체인 수산중공업이 “부당한 키코계약으로 입은 손해를 물어내라”며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서 불공정 계약이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는 키코분쟁에 대한 항소심 첫 판단이었다. 

최근에 키코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정부 운영 협력 사례로 언급돼 재판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행정처는 ‘상고법원을 위한 BH설득방안’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며 특정 판결들을 기재했다. 이 중 키코 사건은 이 후보자가 한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례가 적혀 있다. 

이종석 재판관은 “(판결 당시) 재판거래 의혹이 전혀 없는 시점이고 사건 처리와 관련해 어느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한 적 없다”며 “순수하게 민사사건 원칙과 법리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 다른 고려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이종석 재판관은 1982∼1996년까지 위장 전입을 5차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헌법통 이영진

이영진 재판관은 법원 내에서 ‘자타공인’으로 국민 기본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영진 재판관은 서울 남강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청주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과 전주지법·수원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2009년 법원을 떠나 2년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1년 판사로 재임용된 뒤에는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헌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법원 내에서는 ‘헌법통’으로 불린다. ‘헌법상 의회의 대정부견제권’과 ‘헌법상 영토·통일조항의 개정논의와 남북특수관계론’ 등 다수의 헌법 관련 논문을 저술했다. 

2015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경남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하는 우수법관으로 뽑혔고, 법원 내 ‘솔로몬 문학회’ 회장도 맡아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각종 시국사건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국가권력보다 우선시하는 다수의 판결을 내려 기본권보장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불어 각종 재판 심리 때나 판결문 작성 시 헌법적 가치와 기본권보장을 중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8월에는 ‘긴급조치 9호’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의 재심서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1975년 징역 12년의 판결이 확정된 김승효씨의 재심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삶을 그린 영화 <자백>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영진 재판관을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한 바른미래당은 “헌법의 이론과 실무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25년간 법조인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앞장서왔다”고 추천 사유를 밝히기도 했다.

인사 청문회서 이영진 재판관의 ‘편법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2009년 법관직을 그만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된 후 2011년 법관으로 재임용됐다. 이에 대해 이영진 재판관은 “2009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서 법사위 전문위원을 외부직으로 뽑는다며 제게 의향을 물었고, 전문위원 임기를 마친 후 다시 채용하는 절차를 거쳐 법관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의견 교감을 받고 국회로 갔다”고 밝혔다.

6인 체제 끝내고 9인 완성 
‘마비’ 헌법재판소 재가동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이영진 재판관이 현직 법관 신분을 유지한 채로 전문위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우회적인 방법을 썼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재판관은 2009년 수원지법 부장판사 시절 법관직을 그만두고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임명된 후 2011년 임기를 마치고 곧바로 법관으로 재임용돼 사법연수원 교수로 근무했다.

이영진 재판관은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서는 도덕성과 관련된 의혹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른 정당서도 이영진 재판관을 반대하자는 의견은 없었다. 당시 바른미래당은 이영진 재판관 한 명이라도 청문회를 통과시키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cmp@ilyosisa.co.kr>

 

[김기영]

▲충남 홍성 ▲홍성고-서울대 법대 ▲인천지법 판사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특허법원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이종석]

▲경북 칠곡 ▲대구 경북고-서울대 법대 ▲인천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수원지법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수원지법원장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이영진]

▲충남 홍성 ▲남강고-성균관대 법대 ▲청주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제도연구담당 판사·사법정책담당관 ▲서울고법 판사 ▲전주지법 부장판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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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