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산악인 박영석 대장

‘산 사나이’ 히말라야 품에 안겨 전설로 남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산 사나이가 산에서 죽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지….”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지난 2003년 자신의 등반인생을 기록한 책 <끝없는 도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을 런지도 모른다. 산을 사랑하고, 산과 벗하고, 산에서 삶을 배우고, 그러다 결국 산으로 돌아간 산악인 박영석. 불굴의 의지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 온 그의 족적을 따라가 봤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세계 최단 기간 완등
편한 자리로 오라는 제의 받았지만 끝없는 도전

박영석 대장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사격 선수 생활을 하던 고교 2학년 때 서울시청 앞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마나슬루 원정대를 보고 산악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동국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뒤 산악부에 가입해 산악인으로의 첫 발을 딛었다.

산은 그에게 숱한 훈장을 달아줬다.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로 등정해 주목 받은 뒤, 8년 만인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세계 최단 기간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다.

동국대 체육과 진학
산악부 가입해 첫발

이후 그랜드슬램에 도전해 당당히 성공해 냈다. 그랜드 슬램은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등정과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 그리고 3극점(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산 정복)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영광스런 위업이다.

세울 수 있는 기록은 다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저런 편한 자리로 오라는 제의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도전을 발표했다. 히말라야 14좌에 ‘코리안 루트’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지상 최대의 거벽에 한국인의 힘으로 남들이 간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숱한 실패에 직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2009년 히말라야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은 것은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이룬 결실이다.

박 대장은 김영도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의 미수(米壽) 기념 기고문에서 “사람들은 ‘그랜드슬램을 이뤘는데 왜 또 도전하는가’라고 묻지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탐험가에게 정년은 없고 내 나이에 맞는 탐험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보였다.

산은 그에게 영광만큼 많은 시련도 줬다. 1993년 에베레스트 남동릉에서는 동행한 학교 후배 둘이 추락해 죽었다. 1996년 같은 산 북동릉에서는 셰르파 우두머리가 사망하고 자신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2007년 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개척 시도 때는 7900m 캠프에 머물던 후배 둘이 눈사태에 밀려 1300m 아래로 추락해 사라졌다. 5년 넘게 한 지붕 아래 살며 피붙이처럼 지내던 대원들이었다. 이후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끓어오르는 도전의 피였다.

박 대장은 유난히 숫자에 집착하는 산악계에서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등로주의는 남이 닦아 놓은 쉬운 길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길, 힘든 길을 셰르파나 산소탱크 등 특수장비의 도움 없이 오르는 알피니즘을 일컫는다. 결과보다 과정에 가치를 두는 셈이다.

우리 산악계는 8000m급 14좌 완등자가 너댓명이나 나왔지만 여전히 정상에 오르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기록 경쟁에 몰두하는 ‘등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리안 루트 개척에는 극한의 등반을 통해 모험을 추구하는 박 대장의 도전정신이 응축돼 있다.

도전정신은 다시 한 번 박 대장의 등을 밀었다. 지난 9월12일 히말라야 3대 거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길 도전에 나선 것. 박 대장 일행은 9월17일 안나푸르나 남벽 밑으로 이동, 18일 등정에 나섰으며 해발 6500m 지점에서 비박을 한 뒤 4일간 절벽에 매달린 채 식사와 잠을 해결하는 ‘알파인’ 방식으로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서벽 출발점 근처에서 눈사태와 낙석을 만나 연락이 두절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즉시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 추정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다.

가족과 친지 지인들
수색 나섰지만 결국

기다리다 못한 가족과 친지들은 네팔 현지로 떠났다. 박 대장의 동생 상석 씨와 아들, 함께 실종된 신동민 대원의 아내와 처남, 강기석 대원의 등은 2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또 박 대장과 친분이 깊은 만화가 허영만 화백, 산악인 김재수, 김창호, 구조 전문 요원 등도 함께 히말라야로 향했다. 이들은 모두 박 대장과 탐험대원들이 살아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천근같은 발걸음을 이끌고 출국장을 빠져나갔고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색·구조 활동에 동참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지난달 30일 대한산악연맹은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공식적인 수색을 종료했다. 내년 봄에 수색을 재개하기로 했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사망을 인정하고 수색대를 철수한 셈이다.

대원들 잃고 술독…끓는 피가 다시 일으켜 세워
눈사태·낙석 만나 연락 두절→수색 실패→영결식


대한산악연맹은 해발 고도 4200m 베이스캠프의 돌탑 앞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또 원정대의 합동분향소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 3일 산악인장으로 합동 영결식을 진행했다. 그와의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온 것.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는 애도의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이디 ‘zi**’는 “박영석 원정대를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겠다”며 고인을 추모했고 아이디 ‘ref**’는 “당신들의 강인한 개척과 도전정신을 조국 대한민국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디 ‘KRIS***’는 “후에 추모영화라도 제작했으면 좋겠다”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박영석 원정대에 대한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아이디 ‘Wye***’은 “안나푸르나에 당신의 영혼을 묻어 보내드립니다. 그러나 내년 봄에는 꼭 고국으로 돌아오세요”라며 유해라도 고국으로 귀환하길 바랐다.

또한 생존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원정대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아쉬운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디 ‘Areum**’는 “아직 그분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고 말했고 아이디 ‘kang**’는 “아,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일까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나푸르나 품속서
영원한 전설로

이들의 모교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무사귀환을 바랐다. 박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의 김희옥 총장은 지난 25일 “박영석 대장! 신동민ㆍ강기석 두 대원들과 무조건 살아서 돌아오라”는 서한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강기석 대원의 모교인 안동대학교 역시 24일 학교 홈페이지에 “강기석 동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박 대장의 인생은 도전 그 자체였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조에 따라 그는 탐험 활동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지독히도 산을 사랑했고 늘 도전에 목말랐던 영원한 산 사나이, 박영석 대장은 결국 안나푸르나의 품속에서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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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