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민주당 당권 잡은 이해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03 16:53:19
  • 호수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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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친노 좌장…문과 호흡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변은 없었다. 문재인정부와 함께 국정운영의 쌍두마차인 여당을 이끌 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었다. 선거에 앞서 이미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이 신임 대표는 ‘집권 20년 플랜’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신임 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서 열린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서 대의원·권리당원·국민여론조사·일반당원 여론조사 등 4개 항목 모두 송영길·김진표 의원을 압도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일반국민여론조사 10%, 일반당원여론조사 5%, 대의원투표 45%, 권리당원 4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변 없었다
높은 인지도

45%가 반영돼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의원 현장투표서 이 대표는 40.57%를 득표해 각각 31.96%와 27.48%를 얻는 데 그친 송·김 후보를 눌렀다. 10%가 반영되는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44.03%을 기록, 송(30.61%)·김(24.37%)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5%가 반영되는 일반당원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38.2%)와 송 후보(36.3%)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며 김 후보는 25.5%에 그쳤다. 월 1000원의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은 71만명 규모인 반면, 당비를 납부하지 않고 당원명부에만 올라있는 일반당원은 360만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김 후보의 강세가 점쳐졌던 권리당원 ARS 투표서도 우위를 보였다. 이 대표는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서 45.79%로 송 후보(28.67%)와 김 후보(25.54%)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오히려 대의원 투표보다 격차가 더 컸다.

당 안팎서 추진력과 경륜을 높이 평가받는 이 대표는 2년 임기 동안 당을 이끌며 2020년 총선도 진두지휘한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민단체·노동조합 등과 민생경제연석회의를 구성해서 노동·고용 문제나 민생 관련 사안들을 최우선으로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또 치열한 3파전에 따른 후유증이 예상되는 만큼 송영길·김진표 후보에게 중책을 맡겨 ‘원팀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표는 “송영길 후보는 북방경제에 관심과 조예가 많다. 김진표 후보는 경제정책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과 열정을 가졌다”며 “(그분들이 주도하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더 다양하고 유기적인 ‘당정청 협의’ 구상도 밝혔다. 이 대표는 “정기적으로 국무총리가 중심이 돼 총리·당대표,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만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안에 따라서 ‘국무조정실장-청와대 수석-장관-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또는 ‘당 정책위의장-장관-차관-기획조정실장’이 만나는 다양한 협의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야당이 강하게 요구하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선 “선거제도 개혁만 다루면 협소하게 다뤄질 수 있다. 개헌과 연계해야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다”며 개헌과 연동해 논의돼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이 대표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이해찬 대표와 인연이 많아 당청 관계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입법 문제는 당에서 크게 도와주셔야 한다”며 당 신임 지도부를 곧 청와대로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김현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집권 중반기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파트너가 된 그에게는 국회 입법 과정서 성과를 내고 ‘여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당정청 관계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민주당 전대 현장에 직접 나와 투표권을 행사한 대의원들은 이 대표를 지지한 이유로 그의 개혁성과 추진력을 내세웠다. 

집권 2년차 성과 급한 청과 균형
여권 전반 전열 재정비 광폭행보

다시 ‘올드보이’(오래된 정치인)가 전면 등장하는 것에 대한 당 안팎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경륜과 리더십이 다른 후보들을 제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 당선은 곧 ‘강한 여당’을 의미한다. 이 대표는 선거 과정서 수차례 ‘강한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특히 ‘고용쇼크’라고 불릴 만큼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이에 따라 정권 출범 2년차를 맡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이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당면한 과제로는 ‘경제 성적’, 최대 난제로는 ‘야당과의 협치’가 꼽힌다. 이 대표는 이날 당선 수락연설서 2020년 총선 승리와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역설했다. 

그는 “경제도 통합도 소통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철통같은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더 유능한 민주당, 더 강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험과 연륜을 앞세우는 그는 당정청 간의 긴밀한 소통도 강조했다. 
 

노무현정부서 총리를 역임한 만큼 당청 관계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이 대표의 당면 과제는 당연 경제 성적이다. 정부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서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밑바닥 민심도 긍정적이지 않다. 

고용통계 등 각종 경제 관련 지표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결국 여당이 정책적으로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얼마만큼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의 성과는 2020년 치러질 21대 총선서 평가받게 된다. 당이 제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보이고 문재인정부의 지지율을 지켜낸다면 21대 총선 승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 승리는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이 되면서 2022년 치러질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년 집권플랜
그래도 협치

이 대표 역시 수차례 총선 승리와 재집권을 강조해왔다. 그는 당 대표 선거 기간 내내 민주·개혁진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최소 20년 집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한 여당을 표방하는 만큼 최대 난제로는 야당과의 협치가 꼽힌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정견 발표서도 유일하게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대표는 “촛불혁명 뒤편서 기무사 적폐 세력은 쿠데타를 모의했다”며 “적폐 청산과 사회개혁으로 나라다운 나라, 자랑스러운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보수의 정치공세를 단호히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야권은 이 대표에게 ‘협치’와 ‘책임 있는 자세’를 당부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를 향한 날선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협치를 주문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언급하며 또 다른 버전의 협치를 당부했다. 최근 규제개혁을 놓고 이견차를 보이는 정의당은 민주당의 우클릭을 지적하며 날을 세웠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집권여당의 당 대표로서 민생을 살리고 여야 협치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것에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민생경제가 고초를 겪는 지금에야 말로 여당이 경제위기를 직시하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국당은 민생경제를 살리고 국익을 위해 협조를 요청한다면 초당적으로 힘을 합치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도 “고용 쇼크, 소득 양극화, 최악의 민생경제 상황서 집권당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변인은 “올해 안에 민심 그대로 선거구제 개편,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막는 개헌이 국회서 협치로 반드시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여소야대 국회서 야당과의 협력, 협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압박했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파의 이익을 떠나 선거제도 개혁과 민생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주길 당부드린다”며 개헌을 강조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금 여당은 곳곳서 우클릭을 하려는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민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여당을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최다선 현역 의원이자, 친노(친 노무현)계의 좌장이다. 실제로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안철수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때문에 금방 자리서 내려와야 했지만,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던 현역 정계 거물이다.

이 대표는 1952년 7월10일 충청남도 청양군 출생이다. 3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아버지 이인용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해방 이후 청양면장을 지냈으며 4·19 혁명 때까지 재직했다.

1965년에 청양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1968년 덕수중학교를 졸업했다.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해 1971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고, 이듬해인 197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 충고에
학생운동 시작

1972년 10월17일 유신 선포를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신 선포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청양에 내려왔는데 아버지가 “나라가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며 질책을 받고 바로 상경해 학생운동 서클에 가입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서 그는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후 이 대표는 생계를 위해 무역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동아일보>서 해직된 기자과 번역소를 차리기도 했다. 엠네스티 한국지부 상근자로 일하다 평소 관심이 많던 출판일을 익히려고 범우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78년 사회학과 학술모임서 만나 사귀어 오던 김정옥씨와 결혼했다. 광장서적을 설립, 출판사 ‘한마당’과 ‘평민서당’을 설립했으나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당했다. 그는 ‘돌베개’ 출판사를 설립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했다.

이 대표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됐다. 재판을 받고 투옥됐다가 수감 2년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나왔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됐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 8월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이해찬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출됐고,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았다. 1987년말 <한겨레> 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재야 운동 출신…노정부 실세 총리
30년 전 평민당 입당 후 내리 7선

대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서 평민당 후보로 입후보해 당선된 이후 내리 7선 국회의원이 됐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관악구을에 다시 나오지 않고, 당시 신설된 지역구이자 자신이 건설을 지휘했던 세종시로 내려가 당선됐다.

이 대표는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1992년 6·27 지방선거 때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면서 조 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어 처음 선거 기획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후 자신이 선거 전략에 관여하면서 대통령 세 명을 배출해 ‘킹메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돼 역대 국무총리 중 JP(김종필 전 총리)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도 이 총리 때 이뤄졌다.

당시 인연으로 이 대표는 민주당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계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노계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로 예우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

7선 국회의원으로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다.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무소속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다. 하지만 서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 대표가 최다선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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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