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민주당 당권 잡은 이해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03 16:53:19
  • 호수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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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친노 좌장…문과 호흡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변은 없었다. 문재인정부와 함께 국정운영의 쌍두마차인 여당을 이끌 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었다. 선거에 앞서 이미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이 신임 대표는 ‘집권 20년 플랜’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신임 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서 열린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서 대의원·권리당원·국민여론조사·일반당원 여론조사 등 4개 항목 모두 송영길·김진표 의원을 압도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일반국민여론조사 10%, 일반당원여론조사 5%, 대의원투표 45%, 권리당원 4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변 없었다
높은 인지도

45%가 반영돼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의원 현장투표서 이 대표는 40.57%를 득표해 각각 31.96%와 27.48%를 얻는 데 그친 송·김 후보를 눌렀다. 10%가 반영되는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44.03%을 기록, 송(30.61%)·김(24.37%)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5%가 반영되는 일반당원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38.2%)와 송 후보(36.3%)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며 김 후보는 25.5%에 그쳤다. 월 1000원의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은 71만명 규모인 반면, 당비를 납부하지 않고 당원명부에만 올라있는 일반당원은 360만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김 후보의 강세가 점쳐졌던 권리당원 ARS 투표서도 우위를 보였다. 이 대표는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서 45.79%로 송 후보(28.67%)와 김 후보(25.54%)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오히려 대의원 투표보다 격차가 더 컸다.

당 안팎서 추진력과 경륜을 높이 평가받는 이 대표는 2년 임기 동안 당을 이끌며 2020년 총선도 진두지휘한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민단체·노동조합 등과 민생경제연석회의를 구성해서 노동·고용 문제나 민생 관련 사안들을 최우선으로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또 치열한 3파전에 따른 후유증이 예상되는 만큼 송영길·김진표 후보에게 중책을 맡겨 ‘원팀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표는 “송영길 후보는 북방경제에 관심과 조예가 많다. 김진표 후보는 경제정책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과 열정을 가졌다”며 “(그분들이 주도하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더 다양하고 유기적인 ‘당정청 협의’ 구상도 밝혔다. 이 대표는 “정기적으로 국무총리가 중심이 돼 총리·당대표,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만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안에 따라서 ‘국무조정실장-청와대 수석-장관-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또는 ‘당 정책위의장-장관-차관-기획조정실장’이 만나는 다양한 협의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야당이 강하게 요구하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선 “선거제도 개혁만 다루면 협소하게 다뤄질 수 있다. 개헌과 연계해야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다”며 개헌과 연동해 논의돼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이 대표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이해찬 대표와 인연이 많아 당청 관계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입법 문제는 당에서 크게 도와주셔야 한다”며 당 신임 지도부를 곧 청와대로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김현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집권 중반기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파트너가 된 그에게는 국회 입법 과정서 성과를 내고 ‘여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당정청 관계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민주당 전대 현장에 직접 나와 투표권을 행사한 대의원들은 이 대표를 지지한 이유로 그의 개혁성과 추진력을 내세웠다. 

집권 2년차 성과 급한 청과 균형
여권 전반 전열 재정비 광폭행보

다시 ‘올드보이’(오래된 정치인)가 전면 등장하는 것에 대한 당 안팎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경륜과 리더십이 다른 후보들을 제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 당선은 곧 ‘강한 여당’을 의미한다. 이 대표는 선거 과정서 수차례 ‘강한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특히 ‘고용쇼크’라고 불릴 만큼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이에 따라 정권 출범 2년차를 맡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이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당면한 과제로는 ‘경제 성적’, 최대 난제로는 ‘야당과의 협치’가 꼽힌다. 이 대표는 이날 당선 수락연설서 2020년 총선 승리와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역설했다. 

그는 “경제도 통합도 소통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철통같은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더 유능한 민주당, 더 강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험과 연륜을 앞세우는 그는 당정청 간의 긴밀한 소통도 강조했다. 
 

노무현정부서 총리를 역임한 만큼 당청 관계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이 대표의 당면 과제는 당연 경제 성적이다. 정부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서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밑바닥 민심도 긍정적이지 않다. 

고용통계 등 각종 경제 관련 지표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결국 여당이 정책적으로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얼마만큼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의 성과는 2020년 치러질 21대 총선서 평가받게 된다. 당이 제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보이고 문재인정부의 지지율을 지켜낸다면 21대 총선 승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 승리는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이 되면서 2022년 치러질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년 집권플랜
그래도 협치

이 대표 역시 수차례 총선 승리와 재집권을 강조해왔다. 그는 당 대표 선거 기간 내내 민주·개혁진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최소 20년 집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한 여당을 표방하는 만큼 최대 난제로는 야당과의 협치가 꼽힌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정견 발표서도 유일하게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대표는 “촛불혁명 뒤편서 기무사 적폐 세력은 쿠데타를 모의했다”며 “적폐 청산과 사회개혁으로 나라다운 나라, 자랑스러운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보수의 정치공세를 단호히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야권은 이 대표에게 ‘협치’와 ‘책임 있는 자세’를 당부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를 향한 날선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협치를 주문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언급하며 또 다른 버전의 협치를 당부했다. 최근 규제개혁을 놓고 이견차를 보이는 정의당은 민주당의 우클릭을 지적하며 날을 세웠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집권여당의 당 대표로서 민생을 살리고 여야 협치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것에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민생경제가 고초를 겪는 지금에야 말로 여당이 경제위기를 직시하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국당은 민생경제를 살리고 국익을 위해 협조를 요청한다면 초당적으로 힘을 합치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도 “고용 쇼크, 소득 양극화, 최악의 민생경제 상황서 집권당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변인은 “올해 안에 민심 그대로 선거구제 개편,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막는 개헌이 국회서 협치로 반드시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여소야대 국회서 야당과의 협력, 협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압박했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파의 이익을 떠나 선거제도 개혁과 민생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주길 당부드린다”며 개헌을 강조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금 여당은 곳곳서 우클릭을 하려는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민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여당을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최다선 현역 의원이자, 친노(친 노무현)계의 좌장이다. 실제로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안철수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때문에 금방 자리서 내려와야 했지만,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던 현역 정계 거물이다.

이 대표는 1952년 7월10일 충청남도 청양군 출생이다. 3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아버지 이인용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해방 이후 청양면장을 지냈으며 4·19 혁명 때까지 재직했다.

1965년에 청양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1968년 덕수중학교를 졸업했다.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해 1971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고, 이듬해인 197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 충고에
학생운동 시작

1972년 10월17일 유신 선포를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신 선포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청양에 내려왔는데 아버지가 “나라가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며 질책을 받고 바로 상경해 학생운동 서클에 가입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서 그는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후 이 대표는 생계를 위해 무역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동아일보>서 해직된 기자과 번역소를 차리기도 했다. 엠네스티 한국지부 상근자로 일하다 평소 관심이 많던 출판일을 익히려고 범우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78년 사회학과 학술모임서 만나 사귀어 오던 김정옥씨와 결혼했다. 광장서적을 설립, 출판사 ‘한마당’과 ‘평민서당’을 설립했으나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당했다. 그는 ‘돌베개’ 출판사를 설립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했다.

이 대표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됐다. 재판을 받고 투옥됐다가 수감 2년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나왔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됐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 8월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이해찬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출됐고,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았다. 1987년말 <한겨레> 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재야 운동 출신…노정부 실세 총리
30년 전 평민당 입당 후 내리 7선

대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서 평민당 후보로 입후보해 당선된 이후 내리 7선 국회의원이 됐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관악구을에 다시 나오지 않고, 당시 신설된 지역구이자 자신이 건설을 지휘했던 세종시로 내려가 당선됐다.

이 대표는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1992년 6·27 지방선거 때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면서 조 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어 처음 선거 기획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후 자신이 선거 전략에 관여하면서 대통령 세 명을 배출해 ‘킹메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돼 역대 국무총리 중 JP(김종필 전 총리)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도 이 총리 때 이뤄졌다.

당시 인연으로 이 대표는 민주당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계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노계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로 예우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

7선 국회의원으로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다.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무소속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다. 하지만 서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 대표가 최다선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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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