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재벌집 도난사

차라리 대도라면…좀도둑에 당했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재벌집이 또 털렸다. 도난 사건이야 툭 하면 터지는 일상적인 범죄지만, 그 대상이 부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십중팔구 유명 재벌이 당했다는 점과 대저택의 철통 보안이 뚫렸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끈다. 철옹성을 허문 ‘도선생’도 하루아침에 ‘대도’란 칭호(?)를 얻게 된다.

‘철통 보안’ 회장님 저택 대낮에 잇달아 털려
‘뒷말 무서워…’ 신분 노출 등 피해사실 숨겨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의 자택. 정모씨는 이날 오후 2시30분께 이 집의 담을 넘었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부촌의 철통 보안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간 정씨는 다이아몬드와 순금 거북이 등 5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가정부가 있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침입했다가 유유히 빠져나갔다. 도난이 있고 한참 지난 뒤에야 경찰에 신고될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정씨를 용의자로 지목, 추적한 끝에 지난 11일 오후 3시께 충북 영동군 황간휴게소에서 검거했다.

철옹성 ‘와르르’

이 사건은 세간에 크게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재계 유명인사의 집이 털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피해자인 이 회장은 건물 임대업체 단암산업의 오너로 현재 한국능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6공화국 시절인 1988∼1990년 동력자원부 장관과 1990∼1991년 상공부 장관을 지낸 이 회장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이 회장 집을 턴 정씨도 알고 보면 유명한 도둑이다. 한때 재벌 저택만 털어 ‘대도’로 이름을 날렸다. 정씨는 1997년 7월 친형과 함께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재계 인사들의 집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 형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한국재계인사록’을 입수해 기업 회장의 자택 5곳을 골라 대낮에 침입, 모두 5억8000만원어치의 금품을 강탈했다.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 중 한명이 바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정씨는 1997년 7월30일 오전 10시30분께 한남동 최 전 회장 집에 들어가 가정부를 둔기로 위협해 손발을 묶은 뒤 현금 200만원과 미화 1만불, 100만원권 수표 3장, 다이아몬드 예물세트, 카르티에 예물시계, 순금열쇠 등 총 5억2000만원 상당을 털어 달아났다. 정씨의 형은 범행 3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지만, 정씨는 해외로 도주했다가 2006년 7월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국내에 들어왔다 덜미가 잡혔다. 이 사건은 최 전 회장이 피해 사실을 숨겨달라고 경찰에 부탁해 묻혔다가 정씨가 검거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지난 7월 출소한 뒤에도 손을 씻지 못하고 또 다시 부촌을 뒤지다 이번에 검거됐다.

재벌가 도난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진다. 터졌다 하면 십중팔구 유명 재벌이 당했다는 점과 대저택의 철통 보안이 뚫렸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끈다. 철옹성을 허문 ‘도선생’도 하루아침에 ‘대도’란 칭호(?)를 얻게 된다.

최근 포항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시선을 모았다. 경북 포항시 남구 해도동에 사는 H사 P회장은 지난 8월31일 자택에 보관 중이던 5만원권 8000장 4억원을 분실했다. P회장은 곧바로 도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지난달 16일 황간휴게소에서 범인 유모·전모씨를 검거했다.

이 사건은 보통의 도난 사건과 달리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4억원의 현금 다발을 집에 보관했다는 점과 P회장이 국내 유명 모 그룹 계열사 전 회장의 동생이란 점에서다. 경찰은 뭉칫돈의 출처와 보관 경위, 용도 등에 대해서도 수사 의지를 보였지만, P회장의 사생활이라고 판단해 조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오너인 J부회장도 집이 털린 적이 있다.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그랬다. J부회장은 2001년 4월 자택을 관리하던 보안업체요원 이모씨에게 발등을 찍혔다. 1억5000만원 상당의 4.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와 50만원 수표 등을 절취 당했다. 이씨는 훔친 수표를 쓰다가 추적에 나선 경찰에 붙잡혔다. J부회장은 이씨가 훔친 ‘왕 다이아’반지를 “1억5000만원”이라고 신고했지만, 시중 보석상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귀띔했다.

J부회장은 2007년 6월에도 도난 신고를 했다. 범인은 또 다름 아닌 자택 경비원 김모씨였다. 김씨는 2006년 8월부터 J부회장 사택에서 27회에 걸쳐 명품 옷가지와 현금 등 57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자신의 물건과 돈이 자꾸 없어지는 것을 눈치 챈 J부회장은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결국 김씨는 쇠고랑을 찼다.
두 사건은 J부회장 측에서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첫번째 사건은 보름 동안 다이아와 수표 분실 신고를 하지 않다가 경찰이 첩보에 의해 먼저 수사에 나서자 그때서야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두번째 사건 땐 자택 관할에 신고하지 않아 뒷말이 많았다.

‘은폐’ 피해자 수두룩

이처럼 재벌집에 도둑이 들면 아무리 피해가 크더라도 신분 노출을 꺼려 숨기는 게 보통이다.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을 우려해서다.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 집만 골라서 털어 ‘대도’라 불린 조세형 사건 때도 피해를 당한 재벌들이 바짝 엎드려 있었다.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수십억원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는데, 당시 피해자는 그룹 총수, 기업체 사장 등 재계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뭐가 구린지 하나같이 피해 사실을 극구 부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조씨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수개월 추적 끝에 조씨를 검거했던 담당 형사는 퇴직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들을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그의 입에선 H사 회장, S사 회장 등이 튀어나왔다. 또 국내 유수의 S그룹 일가의 집도 조씨에게 털렸다고 증언해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