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리운 얼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31 08:25:40
  • 호수 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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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아쉬운 작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진보 정치의 큰 별이 떨어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졌다. 국민도 울었다. 장례식장에는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평생 약자를 위해 싸웠던 노 의원의 삶을 돌아봤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께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드루킹 자금 
의혹 수사 중…

노 의원은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그의 죽음에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노 의원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자유한국당조차 노 의원 죽음에 대해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서 오셨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애초 정의당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장례 절차는 26일부터 국회장으로 위상이 격상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국회의원 299명 전원이 장례위원을 각각 맡게 됐다. 노 의원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지 나흘째,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서민·노동자 대변한 3선
기득권에 맞선 정치 인생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3000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매일 밤 늦게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꽤 많은 이들이 통곡했다. 정치권 관계자보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 두드려진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약자를 위해 싸운 노 의원이 갑자기 떠났다는 게 믿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시민 장례위원도 3380명이나 모였다. 조 의원과의 추억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선후배 정치권 인사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공평하게 일반 시민과 나란히 줄을 서 오래 기다렸다.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정의당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 당원 가입 방법 문의가 이어졌고, 당 홈페이지를 바꿔 마련한 추모 페이지에도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정의당이 전날부터 운영 중인 추모 페이지에는 3000여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의당에 오늘 당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정의당을 지지하겠습니다” “후원금 한 번 못 내고 당신의 좋은 정치 혜택을 받은 게 참 미안합니다” “못 다 이룬 진보정당 집권의 길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정의당은 고인의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당원 가입과 후원금 증가 수치를 확인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시민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후원금을 주시는 것은 너무 감사하다”며 “총무팀장과 이를 확인하지도, 공개하지도 말자고 이야기했고, 당내서도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노동자의 편
민노당 첫 원내

노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동자의 편이었다. 지난 23일 발표할 메시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모임과 사측의 조정합의와 12년의 투쟁 끝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준비했던 노 원내대표는 23일 회의에 불참하며 이 메시지를 직접 전하지 못했다.

정의당이 이날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통해 삼성 백혈병과 KTX 승무원 복직 관련 메시지를 준비했다. 

노 의원은 사전 보도자료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며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며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대중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이기도 했다.

1956년 부산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경도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전쟁 직후 결혼해 둘 사이에 노회찬, 노회건 형제를 뒀다. 

고인은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문화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한다.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통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음악뿐만 아니라 펜싱과 육상도 뛰어났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서 생활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비판 유인물을 제작해 학교에 배포했다. 


고2 때인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시위 때는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이 시절을 함께 보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노 의원의 부고를 접한 뒤 “노 의원과 <창작과비평>도 읽고 함석헌, 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 그러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사회관이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다녀온 그는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재학 내내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던 노 의원은 4학년이던 1982년 용접 기술을 배워 인천의 한 공장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노동운동가 김지선씨와 1988년 결혼했으나 1년 만인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 의원과 김씨 사이에는 자녀가 없는데, 오랜 수배 생활과 감옥살이로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운동’을 넘어 ‘정치’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것은 1992년 대선이다. 당시 백기완 민중 후보 선거대책본부서 활동하던 그는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서 초대 부대표,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기반을 다졌다.

2004년은 노 의원의 정치 인생서 기점으로 꼽힌다. 당시 17대 4·15 총선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가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17대 총선 개표 막판의 관심사는 ‘10선에 도전한 자민련 비례대표 1번 김종필이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노회찬이냐’였다. 최종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13.03%, 자민련 2.82%였다. 노회찬이 당선됐고, 낙선한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48세이던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며 원내에 처음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한국 정치사에 남을 일대 ‘파란’이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촌철살인 
무수한 어록

2008년 18대 총선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통합진보당 후보로 당선됐다. 하지만 곧이어 2013년 대법원이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기소된 노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인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쏟아낸 촌철살인의 발언들은 지금도 흔히 회자될 정도다.  특히 복잡한 정치 문제를 서민의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해 진보 진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의원이 대중에 처음 각인된 것은 TV토론 발언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그는 한 방송사 토론회서 다른 야당들을 향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며 소위 ‘삼겹살 판갈이론’을 제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만큼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 기성 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17대 국회 입성 뒤 법제사법위 첫 국정감사에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평소의 소신대로 사법부를 질타해 입심을 과시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연한 한 TV토론회에선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당시 여당 의원의 발언에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격해 화제가 됐다.

진보 정치 큰 별 졌다 
끊이지 않은 추모 행렬

그의 발언은 20대 국회 들어 정의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1월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 때는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관련 상황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고 하자 “지단(遲斷)이다”라고 응수한 것은 동영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지난해 7월에는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자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역시 지난해 9월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똑같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 원내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서 달변의 이유를 묻자 “진보정치를 하다 보니까 마이크도 적게 오고 또 저희 주장이 사변적인 측면이 많아서 쉽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척박한 진보정치 현실에 나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촌철살인의 정치인, 노회찬 어록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됐다.

보수·진보 
애도의 물결

노 의원은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노동운동의 교두보인 창원 성산으로 내려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통합 후보로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해 대선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여성,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고,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돌파하며 자유한국당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진보 정치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아이콘이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회찬 유서 전문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18.7.23. 노회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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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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