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리운 얼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31 08:25:40
  • 호수 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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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아쉬운 작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진보 정치의 큰 별이 떨어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졌다. 국민도 울었다. 장례식장에는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평생 약자를 위해 싸웠던 노 의원의 삶을 돌아봤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께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드루킹 자금 
의혹 수사 중…

노 의원은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그의 죽음에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노 의원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자유한국당조차 노 의원 죽음에 대해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서 오셨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애초 정의당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장례 절차는 26일부터 국회장으로 위상이 격상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국회의원 299명 전원이 장례위원을 각각 맡게 됐다. 노 의원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지 나흘째,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서민·노동자 대변한 3선
기득권에 맞선 정치 인생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3000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매일 밤 늦게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꽤 많은 이들이 통곡했다. 정치권 관계자보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 두드려진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약자를 위해 싸운 노 의원이 갑자기 떠났다는 게 믿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시민 장례위원도 3380명이나 모였다. 조 의원과의 추억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선후배 정치권 인사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공평하게 일반 시민과 나란히 줄을 서 오래 기다렸다.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정의당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 당원 가입 방법 문의가 이어졌고, 당 홈페이지를 바꿔 마련한 추모 페이지에도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정의당이 전날부터 운영 중인 추모 페이지에는 3000여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의당에 오늘 당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정의당을 지지하겠습니다” “후원금 한 번 못 내고 당신의 좋은 정치 혜택을 받은 게 참 미안합니다” “못 다 이룬 진보정당 집권의 길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정의당은 고인의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당원 가입과 후원금 증가 수치를 확인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시민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후원금을 주시는 것은 너무 감사하다”며 “총무팀장과 이를 확인하지도, 공개하지도 말자고 이야기했고, 당내서도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노동자의 편
민노당 첫 원내

노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동자의 편이었다. 지난 23일 발표할 메시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모임과 사측의 조정합의와 12년의 투쟁 끝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준비했던 노 원내대표는 23일 회의에 불참하며 이 메시지를 직접 전하지 못했다.

정의당이 이날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통해 삼성 백혈병과 KTX 승무원 복직 관련 메시지를 준비했다. 

노 의원은 사전 보도자료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며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며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대중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이기도 했다.

1956년 부산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경도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전쟁 직후 결혼해 둘 사이에 노회찬, 노회건 형제를 뒀다. 

고인은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문화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한다.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통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음악뿐만 아니라 펜싱과 육상도 뛰어났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서 생활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비판 유인물을 제작해 학교에 배포했다. 


고2 때인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시위 때는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이 시절을 함께 보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노 의원의 부고를 접한 뒤 “노 의원과 <창작과비평>도 읽고 함석헌, 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 그러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사회관이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다녀온 그는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재학 내내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던 노 의원은 4학년이던 1982년 용접 기술을 배워 인천의 한 공장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노동운동가 김지선씨와 1988년 결혼했으나 1년 만인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 의원과 김씨 사이에는 자녀가 없는데, 오랜 수배 생활과 감옥살이로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운동’을 넘어 ‘정치’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것은 1992년 대선이다. 당시 백기완 민중 후보 선거대책본부서 활동하던 그는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서 초대 부대표,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기반을 다졌다.

2004년은 노 의원의 정치 인생서 기점으로 꼽힌다. 당시 17대 4·15 총선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가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17대 총선 개표 막판의 관심사는 ‘10선에 도전한 자민련 비례대표 1번 김종필이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노회찬이냐’였다. 최종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13.03%, 자민련 2.82%였다. 노회찬이 당선됐고, 낙선한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48세이던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며 원내에 처음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한국 정치사에 남을 일대 ‘파란’이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촌철살인 
무수한 어록

2008년 18대 총선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통합진보당 후보로 당선됐다. 하지만 곧이어 2013년 대법원이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기소된 노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인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쏟아낸 촌철살인의 발언들은 지금도 흔히 회자될 정도다.  특히 복잡한 정치 문제를 서민의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해 진보 진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의원이 대중에 처음 각인된 것은 TV토론 발언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그는 한 방송사 토론회서 다른 야당들을 향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며 소위 ‘삼겹살 판갈이론’을 제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만큼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 기성 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17대 국회 입성 뒤 법제사법위 첫 국정감사에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평소의 소신대로 사법부를 질타해 입심을 과시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연한 한 TV토론회에선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당시 여당 의원의 발언에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격해 화제가 됐다.

진보 정치 큰 별 졌다 
끊이지 않은 추모 행렬

그의 발언은 20대 국회 들어 정의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1월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 때는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관련 상황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고 하자 “지단(遲斷)이다”라고 응수한 것은 동영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지난해 7월에는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자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역시 지난해 9월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똑같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 원내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서 달변의 이유를 묻자 “진보정치를 하다 보니까 마이크도 적게 오고 또 저희 주장이 사변적인 측면이 많아서 쉽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척박한 진보정치 현실에 나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촌철살인의 정치인, 노회찬 어록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됐다.

보수·진보 
애도의 물결

노 의원은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노동운동의 교두보인 창원 성산으로 내려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통합 후보로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해 대선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여성,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고,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돌파하며 자유한국당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진보 정치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아이콘이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회찬 유서 전문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18.7.23. 노회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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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