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리운 얼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31 08:25:40
  • 호수 1177호
  • 댓글 0개

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아쉬운 작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진보 정치의 큰 별이 떨어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졌다. 국민도 울었다. 장례식장에는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평생 약자를 위해 싸웠던 노 의원의 삶을 돌아봤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께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드루킹 자금 
의혹 수사 중…

노 의원은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그의 죽음에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노 의원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자유한국당조차 노 의원 죽음에 대해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서 오셨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애초 정의당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장례 절차는 26일부터 국회장으로 위상이 격상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국회의원 299명 전원이 장례위원을 각각 맡게 됐다. 노 의원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지 나흘째,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서민·노동자 대변한 3선
기득권에 맞선 정치 인생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3000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매일 밤 늦게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꽤 많은 이들이 통곡했다. 정치권 관계자보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 두드려진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약자를 위해 싸운 노 의원이 갑자기 떠났다는 게 믿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시민 장례위원도 3380명이나 모였다. 조 의원과의 추억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선후배 정치권 인사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공평하게 일반 시민과 나란히 줄을 서 오래 기다렸다.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정의당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 당원 가입 방법 문의가 이어졌고, 당 홈페이지를 바꿔 마련한 추모 페이지에도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정의당이 전날부터 운영 중인 추모 페이지에는 3000여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의당에 오늘 당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정의당을 지지하겠습니다” “후원금 한 번 못 내고 당신의 좋은 정치 혜택을 받은 게 참 미안합니다” “못 다 이룬 진보정당 집권의 길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정의당은 고인의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당원 가입과 후원금 증가 수치를 확인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시민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후원금을 주시는 것은 너무 감사하다”며 “총무팀장과 이를 확인하지도, 공개하지도 말자고 이야기했고, 당내서도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노동자의 편
민노당 첫 원내

노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동자의 편이었다. 지난 23일 발표할 메시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모임과 사측의 조정합의와 12년의 투쟁 끝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준비했던 노 원내대표는 23일 회의에 불참하며 이 메시지를 직접 전하지 못했다.

정의당이 이날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통해 삼성 백혈병과 KTX 승무원 복직 관련 메시지를 준비했다. 

노 의원은 사전 보도자료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며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며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대중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이기도 했다.

1956년 부산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경도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전쟁 직후 결혼해 둘 사이에 노회찬, 노회건 형제를 뒀다. 

고인은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문화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한다.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통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음악뿐만 아니라 펜싱과 육상도 뛰어났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서 생활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비판 유인물을 제작해 학교에 배포했다. 

고2 때인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시위 때는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이 시절을 함께 보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노 의원의 부고를 접한 뒤 “노 의원과 <창작과비평>도 읽고 함석헌, 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 그러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사회관이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다녀온 그는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재학 내내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던 노 의원은 4학년이던 1982년 용접 기술을 배워 인천의 한 공장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노동운동가 김지선씨와 1988년 결혼했으나 1년 만인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 의원과 김씨 사이에는 자녀가 없는데, 오랜 수배 생활과 감옥살이로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운동’을 넘어 ‘정치’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것은 1992년 대선이다. 당시 백기완 민중 후보 선거대책본부서 활동하던 그는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서 초대 부대표,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기반을 다졌다.

2004년은 노 의원의 정치 인생서 기점으로 꼽힌다. 당시 17대 4·15 총선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가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17대 총선 개표 막판의 관심사는 ‘10선에 도전한 자민련 비례대표 1번 김종필이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노회찬이냐’였다. 최종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13.03%, 자민련 2.82%였다. 노회찬이 당선됐고, 낙선한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48세이던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며 원내에 처음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한국 정치사에 남을 일대 ‘파란’이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촌철살인 
무수한 어록

2008년 18대 총선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통합진보당 후보로 당선됐다. 하지만 곧이어 2013년 대법원이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기소된 노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인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쏟아낸 촌철살인의 발언들은 지금도 흔히 회자될 정도다.  특히 복잡한 정치 문제를 서민의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해 진보 진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의원이 대중에 처음 각인된 것은 TV토론 발언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그는 한 방송사 토론회서 다른 야당들을 향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며 소위 ‘삼겹살 판갈이론’을 제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만큼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 기성 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17대 국회 입성 뒤 법제사법위 첫 국정감사에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평소의 소신대로 사법부를 질타해 입심을 과시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연한 한 TV토론회에선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당시 여당 의원의 발언에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격해 화제가 됐다.

진보 정치 큰 별 졌다 
끊이지 않은 추모 행렬

그의 발언은 20대 국회 들어 정의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1월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 때는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관련 상황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고 하자 “지단(遲斷)이다”라고 응수한 것은 동영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지난해 7월에는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자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역시 지난해 9월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똑같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 원내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서 달변의 이유를 묻자 “진보정치를 하다 보니까 마이크도 적게 오고 또 저희 주장이 사변적인 측면이 많아서 쉽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척박한 진보정치 현실에 나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촌철살인의 정치인, 노회찬 어록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됐다.

보수·진보 
애도의 물결

노 의원은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노동운동의 교두보인 창원 성산으로 내려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통합 후보로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해 대선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여성,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고,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돌파하며 자유한국당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진보 정치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아이콘이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회찬 유서 전문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18.7.23. 노회찬 올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