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리운 얼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31 08:25:40
  • 호수 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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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아쉬운 작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진보 정치의 큰 별이 떨어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졌다. 국민도 울었다. 장례식장에는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평생 약자를 위해 싸웠던 노 의원의 삶을 돌아봤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께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드루킹 자금 
의혹 수사 중…

노 의원은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그의 죽음에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노 의원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자유한국당조차 노 의원 죽음에 대해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서 오셨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했다. 

애초 정의당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장례 절차는 26일부터 국회장으로 위상이 격상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국회의원 299명 전원이 장례위원을 각각 맡게 됐다. 노 의원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지 나흘째,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서민·노동자 대변한 3선
기득권에 맞선 정치 인생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3000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매일 밤 늦게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꽤 많은 이들이 통곡했다. 정치권 관계자보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 두드려진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약자를 위해 싸운 노 의원이 갑자기 떠났다는 게 믿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시민 장례위원도 3380명이나 모였다. 조 의원과의 추억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선후배 정치권 인사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공평하게 일반 시민과 나란히 줄을 서 오래 기다렸다.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정의당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 당원 가입 방법 문의가 이어졌고, 당 홈페이지를 바꿔 마련한 추모 페이지에도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정의당이 전날부터 운영 중인 추모 페이지에는 3000여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의당에 오늘 당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정의당을 지지하겠습니다” “후원금 한 번 못 내고 당신의 좋은 정치 혜택을 받은 게 참 미안합니다” “못 다 이룬 진보정당 집권의 길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정의당은 고인의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당원 가입과 후원금 증가 수치를 확인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시민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후원금을 주시는 것은 너무 감사하다”며 “총무팀장과 이를 확인하지도, 공개하지도 말자고 이야기했고, 당내서도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노동자의 편
민노당 첫 원내

노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동자의 편이었다. 지난 23일 발표할 메시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모임과 사측의 조정합의와 12년의 투쟁 끝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준비했던 노 원내대표는 23일 회의에 불참하며 이 메시지를 직접 전하지 못했다.

정의당이 이날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통해 삼성 백혈병과 KTX 승무원 복직 관련 메시지를 준비했다. 

노 의원은 사전 보도자료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며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며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대중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이기도 했다.

1956년 부산서 아버지 노인모와 어머니 원태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경도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전쟁 직후 결혼해 둘 사이에 노회찬, 노회건 형제를 뒀다. 

고인은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문화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한다.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통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음악뿐만 아니라 펜싱과 육상도 뛰어났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서 생활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비판 유인물을 제작해 학교에 배포했다. 


고2 때인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시위 때는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이 시절을 함께 보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노 의원의 부고를 접한 뒤 “노 의원과 <창작과비평>도 읽고 함석헌, 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 그러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사회관이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다녀온 그는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재학 내내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던 노 의원은 4학년이던 1982년 용접 기술을 배워 인천의 한 공장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노동운동가 김지선씨와 1988년 결혼했으나 1년 만인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 의원과 김씨 사이에는 자녀가 없는데, 오랜 수배 생활과 감옥살이로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운동’을 넘어 ‘정치’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것은 1992년 대선이다. 당시 백기완 민중 후보 선거대책본부서 활동하던 그는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서 초대 부대표,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기반을 다졌다.

2004년은 노 의원의 정치 인생서 기점으로 꼽힌다. 당시 17대 4·15 총선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가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17대 총선 개표 막판의 관심사는 ‘10선에 도전한 자민련 비례대표 1번 김종필이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노회찬이냐’였다. 최종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13.03%, 자민련 2.82%였다. 노회찬이 당선됐고, 낙선한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48세이던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며 원내에 처음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한국 정치사에 남을 일대 ‘파란’이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촌철살인 
무수한 어록

2008년 18대 총선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통합진보당 후보로 당선됐다. 하지만 곧이어 2013년 대법원이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기소된 노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인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쏟아낸 촌철살인의 발언들은 지금도 흔히 회자될 정도다.  특히 복잡한 정치 문제를 서민의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해 진보 진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의원이 대중에 처음 각인된 것은 TV토론 발언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그는 한 방송사 토론회서 다른 야당들을 향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며 소위 ‘삼겹살 판갈이론’을 제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만큼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 기성 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17대 국회 입성 뒤 법제사법위 첫 국정감사에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평소의 소신대로 사법부를 질타해 입심을 과시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연한 한 TV토론회에선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당시 여당 의원의 발언에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격해 화제가 됐다.

진보 정치 큰 별 졌다 
끊이지 않은 추모 행렬

그의 발언은 20대 국회 들어 정의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1월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 때는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관련 상황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고 하자 “지단(遲斷)이다”라고 응수한 것은 동영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지난해 7월에는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자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역시 지난해 9월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똑같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 원내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서 달변의 이유를 묻자 “진보정치를 하다 보니까 마이크도 적게 오고 또 저희 주장이 사변적인 측면이 많아서 쉽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척박한 진보정치 현실에 나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촌철살인의 정치인, 노회찬 어록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됐다.

보수·진보 
애도의 물결

노 의원은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노동운동의 교두보인 창원 성산으로 내려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통합 후보로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해 대선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여성,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고,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돌파하며 자유한국당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진보 정치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아이콘이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회찬 유서 전문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18.7.23. 노회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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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건희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준수가 3년간 수백 차례 연락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특검팀이 확보했다. 이준수는 주식·코인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구속된 이희진에게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소개한 인물이다. 앞서 이희진이 구속된 2016년에도 그를 옹호하는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려 친분을 과시했다. 이준수는 과거 무자본 인수합병(M&A)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김건희 계좌와 연관된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같은 부류 서로 옹호 지난 7월15일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와 이준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에서 단순한 투자 조언을 넘어선 사적 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메시지에는 주식 매매 관련 대화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 표현과 비공식적 만남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 결과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처음 소개한 인물로 드러났다. 2013년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보낸 문자에서 “무당이라기보다는 거의 로비스트에 가깝다. 정치권 네트워크가 막강하다”고 표현하며 전씨를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 관계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준수→건진법사→김건희’로 이어지는 핵심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특히 건진법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후에도 대통령실 인사들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특검은 이 라인과 김건희의 대선 이후 행보와의 연속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후 특검은 이준수의 최근 행적 단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이준수가 음주 운전 혐의로 적발됐는데, 경찰 조사에서 “가까운 지인이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아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혐의’를 받은 인물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김건희를 의미한다. 경찰 조사 조서에는 ‘지인’이라고만 기록됐지만, 특검은 실제 진술 내용과 시점을 대조해 그 ‘지인’이 김건희임을 확인했다. 이는 2023년 말까지도 김건희와 이준수 간에 연락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준수가 차명계좌 등을 통해 거래에 참여한 정황을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음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수배된 상태였으며, 특검팀은 지난달 압수수색 현장에서 그를 발견하고 체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수는 김건희의 금융 거래와 밀접한 인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대선 당시 김의겸 의원은 김건희가 2010년 4월 주가가 급등락하던 태광이엔씨 주식을 대량 매수한 뒤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보고 매도했다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이준수, 김건희-건진법사-도이치모터스 핵심 코인판으로 진화한 주가조작 조직 ‘VIP’까지 당시 태광이엔씨를 실질적으로 인수해 주가를 띄우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인물이 바로 이준수였다. 김건희가 이준수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아 주식을 사고 팔았던 것 아니냐는 과거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건희 측은 이에 대해 “이준수가 일방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연락을 취한 적은 있으나, 김건희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적이 없으며 이준수와 밀접한 관계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이준수와 지난해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으로 불린다. 과거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유명한 그는 여러 투자자 명의 계좌를 동시에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건희의 계좌 출고 명령을 직접 수행했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그를 기소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과 4범, 닉네임 ‘새강자’”로 유명했다. 이희진 주가조작 사건 당시 검찰 전관 변호사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개했다. 해당 사실은 이준수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으면서 드러났다. 이희진은 지난 2016년 9월 무인가 투자매매사를 설립했고,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600억원대의 주식을 판매해 자본시장법·유사수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희진과 조기축구 모임에서 친해진 이준수는 2016년 8월 이희진에게 오광수 등 변호사를 알선하고 그 대가를 받거나 약속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희진은 증권방송 회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매도한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끼리끼리 축구 모임 이희진은 수사기관에서 이준수가 검사·수사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변호사들을 소개하고, ‘착수금’ 2000만원과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경우 성공 보수 50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준수의 혐의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이희진의 진술에서 비롯됐다. 이희진에 따르면 이준수는 “변호사들에게 적지 않은 선임료를 주는데 나도 그동안 너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돈을 달라. 변호사들은 앞선에서 일하고 나는 뒷선에서 일을 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승낙한 이희진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이준수에게 현금 1000만원을 줬다. 또 며칠 뒤 이준수는 이희진에게 “검찰 수사관에게 알아보니 너 골인(구속)될 것 같다. 약속한 1000만원을 달라”고 해 나머지 1000만원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이준수는 “1000만원은 비상장 주식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을 추진하기 위해 수고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의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희진과 다른 증인의 진술이 상반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희진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준수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받았다고 했지만, 해당 차량 운전사는 이 같은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짚었다. 이희진의 진술은 동생 이희문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희진은 동생과 이준수에게 돈을 지급할지, 깎을지 상의했다고 했지만, 동생은 “당시 변호사 소개비 등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고 나중에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 2월14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희진과 그의 동생을 사기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피해자 28인에게 허위, 과장된 내용을 말하며 대략 41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하며 추가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며 비상장주식 종목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한 주식을 판매해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2020년 2월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122억6000만원이 확정됐다. 최근 이씨 형제는 현재 가상화폐(피카코인) 시세조종 사건에 연루돼 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국가권력으로 범죄 네트워크 이희진의 절친이자 김건희와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담 브로커로서 “증권사 내부망 접근, 차명계좌 운용, 대포폰 관리” 등을 통해 시세조작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이희진 코인 사건의 자전거래 구조 및 주식시장 조작 방식과 유사하다. 통정·자전 거래 구조가 동일하다. 차명계좌·직원을 동원해 리딩방을 운영하고, 허위 보도자료·루머형 호재를 유포하는 패턴도 동일하다. 지난 2016년 이준수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희진을 두둔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언론이 사건을 과장했다”며 혐의 전반을 축소하고, “1600억 허가 안 받은 것뿐이지 큰 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유사수신죄는 원금 보장 약속이 있어야 성립한다. 계약서엔 그런 말이 없다”며 기소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또 이준수는 “주가가 4배, 5배 간다고 했다가 떨어졌다고 죄는 아니”라며, 주가조작을 단순한 ‘예측 실패’로 치부했다. 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목표가를 제시하는 것도 죄냐”고 반문하며, 이희진이 진행했던 거래를 “시장 참여자의 일반적 행위”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이준수는 전환사채 거래와 내부자 정보 이용 혐의를 언급하며 “브로커들이 조작했고, 희진이는 오히려 그 사실을 검찰에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IS동서 전환사채권은 큰 잘못이지만 희진이는 계약 불이행 피해자”라며 범죄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이는 공소장과 재판기록상 사실과는 상충되는 주장이다. 수백억 먹은 이희진 절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소개 또 다른 발언에서 그는 “사기적 부정거래는 회사가 거짓말로 주식을 파는 행위”라며 “이희진은 단지 회사 공시를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리패스 등 현재 상장폐지된 기업을 언급하며 “공시가 취소됐다고 사기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감독 규정상 ‘허위 공시 정보 활용’과 ‘공모 행위’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해석이다. 영상 말미에서 이준수는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 가능성마저 부정했다. “이희진한테 피해 입었다고 나라가 받아주지 않는다. 민사·형사도 성립 안 된다”며 “다 변호사들이 사기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조계를 “돈에 눈먼 집단”이라 비난하며, 피해자들의 소송을 “쓸데없는 짓”이라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준수가 옹호한 주가조작범 이희진은 코인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2023년 10월4일자로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 이희진과 이희문은 A, B, C 토큰을 이용한 대규모 가상자산 시세조종·사기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두 형제는 실체가 불분명한 ‘스캠(Scam) 코인’을 발행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허위 공시와 자전거래(봇 프로그램 활용)를 통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뒤 투자자들에게 고점 매도를 유도하는 ‘물량 털기(Pump & Dump)’ 방식으로 약 700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A 토큰 피해자는 1만564명으로 피해액은 약 217억원, B 토큰 피해자는 4342명, 피해액은 약 341억원, C 토큰 피해자는 1만5641명, 피해액은 약 339억원이다. 김건희 특검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는 그의 단순한 과거 인연을 넘어, 사적 네트워크가 실제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현재 ‘김건희·이준수·건진법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실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이희진과 이준수는 변호사·브로커 인맥을 공유하고, 자전거래 기술을 활용해 주식과 코인 양쪽의 시장 조작 기술도 공유했다. 이희진과 김건희의 접점은 없으나 이준수를 경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이희진 형제는 ‘코인판 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준수에 대한 직접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소장과 언론 보도를 교차 검증할 때 자전거래 시스템, 차명계좌 운용, 허위 호재 유포 패턴 등이 모두 이준수의 과거 주가 조작 수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보강 수사 필요성이 높다. 국정으로 연결 범죄 네트워크 이씨 형제의 범행은 과거 주가조작 사건의 복제판이며, 그 배후에는 이준수 같은 ‘조작 기술자’가 존재한다는 정황이 공소장 등에서 확인된다. 김건희 계좌가 활용된 도이치모터스 사건과의 연계가 입증될 경우, 이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닌 ‘국가권력과 민간 조작 네트워크의 교차 지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