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삼성 2인자’ 이학수 빌딩 미스터리

‘이건희 그림자’ 몰래바이트 뛰었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한때 ‘이건희 오른팔’로 삼성그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전 삼성 전략기획실장).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이 고문의 심상치 않은 바깥 행보가 포착됐다. 아무도 모르게 강남 대형빌딩을 샀는데, 이를 두고 제기되는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이학수 빌딩’은 안 그래도 재계에 이 고문을 둘러싼 요상한 소문들이 돌던 터라 더욱더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서 물러나 두문불출…심상찮은 바깥행보 포착
일가족 회사 통해 강남 테헤란로 19층 건물 매입

‘삼성 2인자’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이 강남 테헤란로에 대형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이 고문은 시세 차익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매입 경로와 시기 등 ‘이학수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학수는 누구?]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과를 나와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 고문은 1982년 고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된 후 삼성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왔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에 오른 후엔 더욱 그랬다.

계열사 사장들은 이 회장에게 보고하기 전 이 고문을 거쳐야 했다. 한때 이 회장의 인감이 이 고문 손에 있었을 정도다. 그룹의 주요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신뢰를 받았다는 방증이다.

이 고문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등 삼성그룹이 위기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또 1996년 세풍, 2005년 X파일, 2006년 에버랜드CB 등 잇따른 ‘외풍’도 몸소 막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칠수록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08년 ‘특검 쓰나미’는 피하지 못했다. 이 고문은 특검에 의해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고, ‘삼성 쇄신안’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왔다.

[어떤 경로로 매입?]

이 고문은 자신의 명의로 직접 빌딩을 매입하지 않았다. 이 고문과 부인, 자녀 등 일가족이 대주주와 경영진으로 있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LNB Investment)란 회사를 통해 사들였다.

화제의 빌딩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0-6, 890-7번지에 있는 엘앤비타워. 대법원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부지를 먼저 매입하고, 이 자리에 엘앤비타워를 세웠다.

땅 주인이 된 것은 2006년 3월. 엘앤비인베스트먼트(당시 다성양행)는 두 필지의 토지를 각각 김모씨와 박모씨로부터 매입, 곧바로 관할구청의 허가를 받아 그해 8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이 완공된 것은 2008년 8월이다. 당초 대치동오피스빌딩에서 현 상호로 바뀌었다.

엘앤비타워는 지하 4층 지상 19층의 상업용 빌딩으로, 대지면적 1222㎡(약 370평)에 연면적 1만3936㎡(약 4223평) 규모다. 현재 이 빌딩은 우리은행(128억원),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37억원) 등으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상태다.

[엘앤비는 어떤 회사?]

이 고문의 땅 매입 사실을 전한 언론들은 대부분 회사명을 L&B인베스트먼트로 표기했다. 그러나 법인등기부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확한 사명은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확인됐다. 빌딩도 L&B타워가 아닌 엘앤비타워다.

1990년 4월 설립된 이 회사는 사무실 등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체로, 지난 4월 다성양행에서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상호가 변경됐다. 다성양행은 수출입품 대행과 물품매도 확약서를 발행한 ‘오퍼상(개인 무역회사)’이었지만, 빌딩을 매입하면서 업종을 임대업체로 전환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수차례의 증자를 거쳐 현재 200억원으로 불어났다. 총자산은 681억원, 총자본은 190억원, 총부채는 491억원로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59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4억원, 12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매출 58억원, 영업이익 36억원, 순이익 11억원으로 비슷했다. 직원은 4명이 전부다.

[이학수와 엘앤비 관계?]


그렇다면 이 고문과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어떤 관계일까. 이 고문은 부인 백운주씨와 사이에 2남1녀(상훈-상호-상희)를 두고 있는데, 지난 8월 말 기준 이들 5명은 똑같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20%씩 보유하고 있다. 자본금이 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각자 40억원씩 투자한 셈이다.

정확한 투자 시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학수 일가’가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시기와 건물 부지 매입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백씨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부지를 매입하고 보름 뒤인 2006년 3월 말 이 회사의 이사로 선임됐다. 외동딸 상희씨도 같은날 감사로 등재됐다. 모녀는 2009년 3월 다시 중임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과 같은 경로로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재용씨와 이 고문의 인연이다. 둘은 고향이 경남 밀양으로 동향이다. 특히 박씨는 삼성물산·삼성자동차 이사 등을 역임한 ‘삼성맨’출신. 이 고문이 삼성화재 부사장 등으로 있었을 당시 박씨는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장 등을 맡기도 했다.
이 고문의 두 아들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장남 상훈씨는 BoA메릴린치에서, 차남 상호씨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익 얼마나 되나?]

이 고문 일가는 엘앤비타워 부지와 건물의 시세차익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면서 ‘돈방석’에 앉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교통부 조회 결과 엘앤비타워 부지의 공시지가는 이 고문 일가가 땅을 매입하기 직전인 2006년 1월 단위면적(㎡)당 2110만원에서 지난 1월 2760만원으로 올랐다. 공시지가만 따져도 5년 만에 약 250억원에서 340억원으로 뛴 것이다.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공시한 보유 토지의 장부가액은 이보다 많은 410억원이다. 여기에 국세청이 산정한 건물 기준시가(약 250억원)를 더하면 총 6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훨씬 웃돈다. 엘앤비타워는 건축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축빌딩에 속한다. 위치 또한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 중 노른자’라 할 수 있는 테헤란로변 요지에 있다. 지하철 2호선이 약 2분 거리(80m)인 최고 상권으로 꼽힌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추정가는 대략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단순 계산상으로 이 고문 일가는 200억원을 투자한 회사를 통해 2000억원의 부동산을 거머쥔 셈이다. 다시 말해 식구 1명당 360억원의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한 중개인은 “엘앤비타워는 평당 450만원 안팎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매매를 할 경우 토지 및 건물가격과 건축비 등을 합치면 2000억원 정도로 평가된다”며 “얼마 전 이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이 이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매입 시기 문제없나?]

문제는 이 고문 일가가 빌딩을 매입한 시점이다. 이 고문이 ‘삼성 2인자’시절 별도의 회사를 세워 ‘딴짓(?)’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 고문 등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빌딩 부지를 매입한 것은 이 고문이 삼성그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다. 이 고문은 땅을 사들인 2006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맡았다.

이 고문 가족들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에 참여한데 이어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우연일까. 이 고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고문을 맡은 것은 2008년 7월.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 엘앤비타워가 완공됐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 관리에 철두철미한 삼성그룹은 임직원의 겸직이나 외부 투자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고문의 규정 위반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윤리규정에 따르면 삼성 임직원은 회사 업무와 동일하거나 무관한 별도 개인회사를 설립하거나 투자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 고문의 빌딩과 관련해 자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대부분 임직원의 겸업·투자를 금지하고 있다”며 “지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회사의 기회를 유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회사의 업무에 전념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규범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일선 복귀 무산?]

이 고문은 3년 넘게 이렇다 할 업무를 맡고 있지 않지만 거대한 존재감은 여전하다.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뒤에도 항상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회장이 가는 곳엔 항상 이 고문이 먼저 나타난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인 만큼 퇴진 후에도 삼성그룹과 이 회장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고문이 연말 쯤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학수 빌딩’논란이 확대될 경우 이 고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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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