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50년 절도사 풀스토리

의적서 잡범으로…좀도둑 된 왕년의 홍길동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대도’ 조세형씨가 또 다시 쇠고랑을 찼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는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 집만 골라서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회자된 인물. 한때 종교에 귀의해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도 잠시. 잇따른 절도 행각으로 철창을 들락날락하면서 일개 ‘좀도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씨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롤러코스터 인생을 되짚어봤다.

금은방 주인 흉기로 위협해 30만원 등 금품 강탈
‘청송 동료’들과 범행…교도소 나와 경찰서 직행

‘대도’ 조세형씨가 이번엔 ‘강도짓’으로 또 다시 감방 신세를 지게 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14일 2년 전 금은방 주인과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로 조씨를 구속했다. 그동안 수차례 절도로 악명을 떨쳤던 조씨가 강도 혐의로 구속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사유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9년 4월 청송교도소 수감 동료인 공범 2명과 함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에 있는 금은방 주인 유모씨 집에 침입, 흉기로 위협해 현금 30만원과 금목걸이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5세 때 구걸 갔다가
은수저 처음 훔쳐

유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 민씨가 흘린 혈흔을 발견하고, 지난해 11월 또 다른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던 민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이때 민씨의 입에서 조씨의 이름이 나왔다. 조씨가 범행에 가담한 것을 파악한 경찰은 장물알선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씨를 찾아가 조사를 벌였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고, 지난 9일 형을 마치고 출소하던 조씨를 교도소 문 앞에서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금액이 30만원으로 크진 않지만 강도상해 범죄인만큼 죄질이 무겁고 도주 우려가 강하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구속 전 유치장에서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평생 도둑질은 했어도 강도는 안 했다”며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단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그가 철창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그랬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 경비를 뚫고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들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올해 73세인 조씨는 출생이 불분명하다. 호적이 없어 생년월일을 정확히 모르고,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학교문턱에도 못 가봤다.

조씨가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5세 때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갔다가 남의 집 부엌에서 은수저를 훔친 일이다. 당연히 나이가 어려 ‘도둑질이 나쁘다’는 범죄 의식이 없었지만,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증명이나 하듯 범죄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조씨는 1963년 특수절도 혐의로 전과자 신세가 된 이후 1970년대까지 절도 혐의로 10여 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16세께 소년원에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면서 도둑질은 나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으나 ‘배가 고파서’ ‘습관적으로’훔쳐온 그는 이미 전문 도둑이 돼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한 절도범에 지나지 않았던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재판받다 6일간 탈주
선교활동 도중 재범

조씨는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수십억원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다. 당시 수십억원은 지금의 수백억원과 맞먹는다. 피해자는 전직 경제부 총리와 국회의원, 그룹 총수,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뭐가 구린지 하나같이 피해 사실을 극구 부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씨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조씨가 한 국회의원 집에서 훔친 수억원대에 달하는 2.2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큰 화제가 됐다. 상류층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던 서민들은 조씨를 ‘의적’이라 불렀다.

1982년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추적 끝에 검거된 조씨는 재판 중 탈주해 또 한 번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1심에서 절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씨는 이듬해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경비 뚫고 ‘신출귀몰’ 고관대작 집만 털어
1963년부터 철창 들락날락 손 씻었다 도벽 다시 도져 장물아비에 푼돈 강도짓도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힌 조씨는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심청구 등을 통해 1998년 만기 출소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조씨의 ‘절도인생’은 청송감호소를 나서며 끝나는 듯 했다. 조씨는 출감하자마자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에 늘빛선교원을 열고 교인으로서 착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999년엔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조씨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대도를 벗은 지 오래됐다”며 “직장인이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약간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또 보안업체에 일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범죄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라며 “회사가 신앙을 통해 변화된 인격을 인정해준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눈앞에 천만금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참회의 눈물은 금세 말랐다. 조씨는 2000년부터 선교활동 명목으로 일본 출장이 잦아졌고, 현지에서 또 절도행각을 벌였다. 신앙간증 차 간 일본 도쿄 시부야의 부촌을 돌며 라디오와 손목시계 등 13만엔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

2001년 그는 출동한 일본 경찰관이 쏜 총에 맞고 체포돼 3년6개월 동안 일본 고부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조씨는 2004년 극비리에 귀국해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랬던 그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경찰서였다. 조씨는 일본에서 출감한 지 1년 만인 200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손목시계 6개 등 165만원 어치의 금품에 손을 댔다.

금품을 훔쳐 나오던 조씨는 집안에 설치된 전자탐지기에 감지됐고, 곧바로 출동한 사설 경비업체와 경찰에 발각됐다. 조씨는 옆집 담을 넘어 달아났지만 경찰이 쏜 공포탄에 놀라 넘어지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자신이 ‘조세형’인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조씨는 경찰에서 “나는 조세형이 아니라 48세 노숙자 ‘박성규’”라며 “노점상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지문감식 결과 신분이 확인되자 그때서야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급주택을 털 계획을 짰다”고 털어놨다.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조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철창신세를 졌다. 이후 다시 종적을 감췄던 조씨는 장물아비 사건으로 ‘대도’란 호칭에 또 한 번 먹칠을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5월 훔친 물건을 팔아주고 돈을 챙긴 조씨를 장물알선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방을 함께 쓴 노모씨가 훔친 귀금속을 처분해줬다. 노씨를 포함한 4인조 강도는 지난해 4월 광주 남구 한 금은방에 침입해 현금과 보석 3억원어치를 훔쳤다. 조씨는 노씨 등이 훔친 귀금속 가운데 1000여 돈(시가 1억1000만원)을 서울 종로구 귀금속 상가에 팔아주고 수고비 1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초라한 말년 씁쓸

조씨가 장물아비를 자처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궁핍하게 살다 내연녀와 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다리미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는 후문이다. 70대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조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지난 9일 형을 마치고 출소하던 조씨는 바깥공기도 제대로 맡지 못하고 과거 ‘강도짓’으로 또 다시 감방 신세를 지게 됐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잡범’으로 추락했다. 그것도 고작 3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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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