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어도 되나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6.11 10:35:15
  • 호수 1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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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조 최약체 이변의 주인공 될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다급하다. 부족한 시간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신태용호는 모든 초점을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 맞추고 있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됐다. 신태용호가 처한 현실을 따져보면 기대보단 우려감이 앞선다. 한국은 오는 11일,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남겨두고 있다. 한 번 밖에 남지 않은 모의고사를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취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외곽 레오강에 짐을 풀었다. 팀 전술 완성과 시착 적응을 위한 전지훈련이 시작됐다. 신 감독은 오는 12일, 러시아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트르부르크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표팀의 조직력의 화룡점정을 찍어야 한다. 

붙는 강호들
어떻게 꺾나

하지만 7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서 열린 볼리비아와 평가전서 아쉬움을 남겼다. 전후반 90분 내내 공격을 펼쳤지만 0-0으로 비겼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볼리비아전 대승으로 자신감을 충전하려던 신태용호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볼리비아는 남미팀이기는 하지만 한국 보다 결코 강한 전력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57위인 한국보다 2계단 낮은 59위다. 월드컵 남미예선서 10개국 가운데 9위에 그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한국전은 주전 선수 대부분이 빠지고 어린 선수들 위주로 치렀다. 사실상 2군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신 감독도 할 말은 있다.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전력을 최대한 감출 필요가 있었다. 대표팀 공격의 중심인 손흥민과 이재성 선발 명단서 제외됐다. 선수들은 원래와 다른 임시 등번호를 달고 나왔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김신욱의 선발 투입은 트릭이었다”고까지 말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 앞서 대표팀은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실시했다. 경기 이틀전 ‘삑삑이’라 불리는 셔틀런 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선수들 대부분이 지친 상태였다. 경기 내내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볼리비아전은 결과와 내용 모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김신욱과 황희찬이 손발을 맞춘 최전방은 김신욱의 몇 차례 헤딩슛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승우와 문선민이 나선 좌우 날개도 설익은 모습이 역력했다. 오히려 공격적인 부분에서 미드필더 기성용의 중거리슛이 더 인상적이었다. 

평가전 결과·내용 모두 답답
휘청거리는 태극호…숙제 산적 

포백 수비는 큰 위기 없이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볼리비아가 경기 내내 수비 위주로 나선데다 공격의 창끝도 기대보다 훨씬 무딘 탓에 조직력을 제대로 점검했다고 보기 어렵다. 신태용 감독이 의도한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연습하기에 볼리비아는 적합한 상대가 아니었다.

경기 결과와 내용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보니 팀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주장 기성용은 “그동안 팬들께 ‘최선을 다하겠다’ ‘기대해달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다”며 “사실 선수들은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다. ”격려는 바라지도 않고, 선수들이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의 과제가 산더미다. 그중 플랜 A를 정하는 것이다. 사실 신 감독의 마음 속에는 분명히 플랜A가 자리 잡은 듯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이후 꾸준하게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 소식은 기존의 구상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수비에서는 김민재, 김진수가 중도하차했고 측면 자원은 염기훈, 권창훈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공격진 역시 헌신적이고 많은 활동량이 장점인 이근호마저 낙마했다. 

하필 4-4-2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주전급들이 모두 빠지면서 신태용 감독은 스리백으로 변화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로선 플랜 A와 B의 구분이 사라진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신 감독은 대표팀의 수비 조직력 확보도 큰 과제다. 앞서 보스니아 경기서 1-3 완패로 수비 조직력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신 감독이 재차 꺼내든 스리백 카드는 번번이 상대에게 뒷공간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날 한국은 기성용에게 최후방 수비수의 역할을 맡기고 그의 양옆에 오반석과 윤영선을 배치하는 변형 스리백으로 보스니아를 상대했다. 

기성용은 좌우 측면과 전방으로 여러 차례 날카로운 패스를 뿌리며 한국의 역습을 도왔다. 특히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선 이용이 기성용으로부터 볼을 받은 뒤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여러 차례 크로스를 올렸다.

지금 같으면
세계적 망신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가던 한국 수비진은 상대의 역습 한 방에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전반 28분 왼쪽 측면에서 엘다르 사비치가 길게 올린 크로스는 중앙 공격수인 에딘 제코의 머리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수비가 제코에게 집중한 터라 오른쪽서 침투하던 에딘 비슈차를 막는 선수가 없었다. 흐르는 볼을 받은 비슈차는 골키퍼 김승규를 앞에 두고 침착하게 득점에 성공했다.

한국은 후반 33분에도 똑같은 형태로 비슈차에게 실점, 기어이 해트트릭을 허용했다. 우리 수비진의 비어있는 뒷공간으로 길게 넘어온 크로스는 비슈차의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됐다. 우리 선수들끼리 주고 받는 과정서 실수로 흘린 볼이 상대의 역습으로 연결됐다는 점이 뼈아팠다.

신 감독은 경기 직후 “스리백을 실험적으로 하다가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실수로 실점했다”며 “시간적 여유를 갖고 준비하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 스스로 겸허한 마음으로 ‘F조 최약체’를 자처하는 만큼 한국은 ‘선 수비 후 역습’의 전략으로 본선 무대에 임한다. 한국은 스웨덴(18일) 멕시코(24일) 독일(27일)에 맞서 볼 점유율서부터 뒤지는 싸움을 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볼을 소유한 한정적인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비들의 볼 키핑 능력, 공격진의 ‘원샷 원킬’ 본능이 필요한 이유다.

수비 못지않게 고민인 것이 최전방이다. 유럽 빅리그서 통하는 손흥민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하지만 손흥민의 능력치가 대표팀에선 극대화되지 않고 있다. 

신 감독은 지난 두 번의 평가전서 손흥민-황희찬 투톱을 가동했다. 손흥민은 온두라스전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황희찬은 2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록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두 선수의 시너지는 오히려 장점보단 단점이 부각되면서 물음표를 남겼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체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상대 진영서 득점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살려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지나치게 많은 움직임과 2선 플레이메이킹까지 겸했다. 

저돌적인 돌파와 공간 침투에 능하지만 슈팅 정확도, 골 결정력이 다소 부족한 황희찬이 오히려 손흥민보다 앞선서 활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두 조합은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날카로운 장면을 만들지 못했고 상당한 엇박자를 냈다.  

손흥민이 신태용호 출범 이후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경기는 콜롬비아전이었다. 당시 손흥민은 이근호와 투톱으로 출격했다. 이근호가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공간을 만들 때 손흥민이 최종 슈팅으로 해결하는 형태의 공격 장면이 매우 위협적이었다. 


당시 손흥민은 혼자서만 2골을 작렬하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상황에 따라 김신욱이 선발 출전하는 빅앤 스몰 조합을 기대할 수 있지만 최근 김신욱의 경기력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신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남은 기간 동안 신태용 감독이 최적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 감독은 1969년 10월 경북 영덕군서 태어났다. 대구공고, 영남대를 거쳐 1992년 일화 천마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프로 생활은 화려했다. 데뷔 첫해 영리한 플레이로 일화의 공수를 조율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신 감독이 합류한 일화 천마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1995년 신 감독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 리그 MVP를 차지했다. 또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그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힌다.

1996년 일화 천마는 암흑기에 들어간다. 천안시로 연고지를 옮기며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됐다.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는데 이 때부터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게 된다. 

하지만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K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신 감독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특히 MVP 2회 수상은 신 감독만 갖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했으나 무산됐다. 이듬해인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맛본다.

다급하다
과제 산더미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그해 일화 천마는 천안서 성남으로 다시 옮기며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신 감독은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했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는데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이다. 실제로 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선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났다.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또 최초 4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현역 시절 신 감독의 국가대표로서의 경력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거친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1993년과 1997년까지 A매치서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서 신 감독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6년 AFC 아시안컵 8강 이란전서 2:6 참패 이후 메이저 대회에선 국가대표팀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 이 대회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후 월드컵 명단에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비 조직력 보완 시급
주전선수들 줄부상 우려 

차범근 감독 체제에선 1997년 상반기까지는 뽑혔으나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됐다.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발탁되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감독들은 신 감독 대신 다른 젊은 선수들을 발탁해 세대교체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거나 대표팀의 리더를 맡을 고참 선수들로는 황선홍과 홍명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월드컵 출전 경력만 있었으면 K리그서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될 수 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신 감독은 은퇴 직후인 2005년 호주로 넘어가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가 첫 지휘봉을 잡은 건 2008년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성남 일화 감독 대행을 맡아 첫 감독직을 수행했다. 그는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발휘해 K리그와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지도력은 대표팀서 빛났다. 신 감독은 각급 대표팀이 벼랑 끝에 몰릴 때마다 지휘봉을 잡아 ‘구원투수’로서 맹활약했다. 

그는 축구대표팀 코치 재직 시절이던 2015년, 리우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자 중책을 이어받았다. 초반에는 우려를 표했지만 그는 와일드카드 손흥민(토트넘) 등 23세 이하 대표팀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두 번째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아시아 예선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고 팀을 변화시켰다. 이승우, 백승호(이상 FC바르셀로나) 등 개성 넘치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태용식 패스 축구로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했다.

16강 
가능할까

U-20 월드컵 본선 무대에선 조별리그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젊은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권위적인 모습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도모한 신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빛났다는 평가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신 감독의 용병술과 형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 우승 확률은?

데이비드 섬프터 박사가 개발한 ‘사커봇’의 예측서 한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회 우승 확률은 0.2%였다.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32개국 중 공동 26위다.

사커봇 예측 모델은 최근 유럽 축구팬 사이서 인기를 끄는 예측 프로그램이다. 사커봇을 만든 영국 태생의 섬프터 박사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응용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숫자와 축구>에 관한 책을 많이 펴냈고, 자신을 ‘축구 수학자’라고 소개한다. 

미국 CBS는 7일(한국시각) 사커봇의 러시아월드컵 우승 확률 계산 결과를 공개하며 “최근 2년 6개월 동안 사커봇의 예상대로 베팅했다면 18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며 정확도를 설명했다.

사커봇이 예상한 월드컵 우승 1순위는 독일이다. 사커봇은 독일의 우승 확률을 2/7(28.6%)로 점쳤다. 2014 브라질월드컵서 우승한 독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의 완장을 차고 러시아월드컵에 나선다.

유로스포츠는 지난 7일, 월드컵 출전국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독일이 가장 빈 틈없는 팀을 구성했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한국이 F조서 격돌할 상대이기도 하다. 

2위는 전통의 축구 강호 브라질이다. 사커봇이 계산한 우승 확률은 1/4(25%)이다. 유로스포츠는 “브라질월드컵에서 네이마르가 다치지 않았다면 독일과 결승전(1-7 패)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소개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아르헨티나는 1/6(16.7%)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사커봇은 많은 전문가가 다크호스로 꼽는 FIFA 랭킹 3위 벨기에의 우승 확률을 1/10(10%)로 계산했다. 잉글랜드(1/20·5%)와 포르투갈(1/25·4%), 우루과이·크로아티아(이상 1/30·3.3%)가 ‘톱 10’에 올랐다.

한국과 F조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팀들의 순위도 꽤 높다. 멕시코가 1/50(2%)로 공동 13위, 스웨덴은 1/150(0.7%)로 17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호주, 모로코, 튀니지와 함께 공동 26위(500분의 1)로 평가받았다. 사커봇이 한국보다 우승 확률이 낮은 팀으로 분류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파나마(1/1000·0.1%) 뿐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의 순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일본의 우승 확률은 1/300(0.3%·공동 24위)에 불과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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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