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정 나가요걸’ 참혹실상 공개

  • 서 준 webmaster@ilyosisa.co.kr
  • 등록 2011.09.17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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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 꿈꾸며 나갔다 ‘글로벌 진상’에 걸려 엉엉

[헤이맨라이프=서  준 대표] 취업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나가요걸’들의 얘기는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원정 나가요걸’들은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외국 여성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러나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해외로 나간 이들의 생활은 소문만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말이다. 실제로 이들 여성들 중에는 국내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빚을 지게 되거나, 인신매매의 굴레에 빠져들기도 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해외로 나간 ‘나가요’ 여성들의 비참하고 어두운 실상을 취재했다.

일본, 실제 벌이는 쥐꼬리 빚만 지고 귀국 일쑤
미국, 대부분 손님 한인…‘본전 뽑겠다’며 진상


국내의 ‘나가요걸’들이 해외취업을 위해 가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홍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호주나 캐나다 등의 나라에서도 ‘나가요’일을 하는 한인여성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나가요걸들이 해외로 나가는 목적은 단연 돈이다. 국내에서 일할 때보다 많은 수입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것. 따라서 이국으로 가는 여성들은 누구나 장밋빛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가요걸들이 선호하는 국가는 일본. 성과 향락문화가 발달 해있는 일본의 경우, 취업이 쉬울 뿐 아니라 환율차이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만 하면 한국에서 버는 돈의 10배 정도는 거뜬하다는 인식이 나가요걸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다. 
 
원정가는 나가요걸
나날이 증가 추세

하지만 여성들이 원정 취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에서 3년간 나가요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는 A(29)씨는 “‘외국’이 주는 묘한 낭만감이 나로 하여금 일본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학벌도 돈도, 마땅한 기술도 없는 그녀로서는 한국에서의 별 볼일 없는 생활이 너무도 지겨웠다고 한다.

“성매매 업소 및 룸살롱 등을 전전하는 생활에 너무 회의가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기도 했고요. 마치 ‘하루살이’처럼 사는 게 지옥 같았죠.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 숨이 턱턱 막혔어요. 아무 꿈도 없었거든요.”

특히 업소여성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눈초리가 더없이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 그래서 A씨가 선택한 길이 해외취업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 일밖에는 없더라고요. 이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그렇잖아요. 일본까지 가서 술집에 나간다는 게 내심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해외취업을 알선하는 소개소의 권유에 따라 A씨는 25살의 나이에 동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일본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장밋빛 환상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막상 현지에 가보니 소개소에서 들은 얘기랑 딴판이었어요. ‘가기만 하면 거저 돈 번다’ ‘깨끗하고 안전한 업소에서 술시중 들면 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모두 거짓말이었죠.”

최소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그녀가 소개받은 곳은 룸살롱이 아니라 ‘마사지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사지만 하면 된다는 소개소 브로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애무부터 섹스까지 이뤄지는 풀코스 업소더라고요. 게다가 국내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변태행위를 강요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불법 안마시술소는 일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결국 한 달을 못 견디고 다른 업소에 취직 했지만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업소 측에서 제시한 고액수입도 사실과 달랐어요. 한 달에 하루도 안 쉬고 죽도록 일해야 벌까말까 한 금액이었던 거죠. 업소에 적응도 안 되고 일은 너무 힘이 들고…. 월급날도 못 채우고 다른 업소들로 계속 옮겨다니다보니 돈은 금세 바닥났어요. 일본 물가가 좀 비싼가요. 빚만 잔뜩 지고 3년 만에 일본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에서 2년간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B(30)씨도 원정 나가요의 위험성에 대해 털어놨다.

“한국에서 가깝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한류’열풍으로 내심 많은 기대를 했었죠. 그러나 브로커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섣불리 일본으로 갔다가는 큰 일 나요.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도망을 쳤다가는 뼈도 못 추립니다.”

B씨에 따르면 일본에는 소위 ‘크라브’라는 술집이 있다. 룸살롱과 같이 폐쇄된 공간은 아닌 한국의 카페와 같이 오픈된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당수의 한국 여성들은 바로 이 크라브에서 일을 하게 된다. 흔히 브로커들은 이곳 크라브에서 일을 하게 되면 한 달에 약 1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금액이 아가씨들의 수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1000만원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식사비에 옷값 등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금액은 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1000만원 벌어도
실제 수령액 300만원

또 크라브에서는 아가씨들간의 규율이 엄격해서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수백만원 상당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특히 크라브에 있는 ‘도황’이라는 제도는 나가요걸들을 가장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도황은 한 달에 7번 정도는 자기 손님과 함께 출근을 해서 술을 먹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이에 응하는 남성들을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소개소의 브로커들은 일본에서의 생활이 ‘가족같은 분위기’라고 현혹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아가씨들끼리 이지메(왕따)를 하는 경향도 강하고,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다툼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실상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성매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에스데’라는 곳이 있는데 남성전용 안마 시술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말만 성매매를 하지 않을 뿐 일의 강도는 공사판의 노가다 수준이라고 한다. 30분에 3만원 정도를 받지만 안마에 샤워, 그리고 소위 입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야 한다는 것.

미국에서 1년간 나가요걸 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C(27)씨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C씨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며 몸서리쳤다. 우선 나가요걸의 가장 큰 관심사인 수입문제에 대해 그녀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해외에서 일한다고해서 무조건 고수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에요. 세상에 ‘눈먼돈’은 없는 법이죠. 물론 끝내주게 많은 돈을 버는 여성들도 간혹 있긴 해요. 그러나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그곳의 구조죠.”

홍콩, 한지붕 13명, 샤워대기 1시간 열악한 환경 
“괜한 환상 가졌다 몸고생, 마음고생만 톡톡히”

C씨는 현지의 업소생활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보통 원정취업을 할 경우 아가씨들은 매너 좋은 외국남성을 접대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이건 정말 엄청난 착각이에요.”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가요걸들이 실제로 접하게 되는 손님들은 대부분 한인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접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인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정말 가관이더라고요. 세탁소를 운영하고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는 한국 남성들이 손님의 다수를 차지하더라고요.”

C씨가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의 매너와 태도다.

“같은 한인이면 반가운 마음에 더 잘해줄 것 같죠? 전혀 반대예요. 매너가 좋기는커녕 오히려 더 ‘진상’을 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C씨가 일했던 곳은 미국 내 한인타운 내에 있는 국내의 북창동식 룸살롱이었다고 한다. 북창동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그 업소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룸살롱 ‘쇼’문화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말까지 잘 통하는 예쁜 한국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 최고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그나마 점잖은 편예요. 그러나 한인 남성들은 대부분 ‘본전’을 뽑으려는 생각으로 오더라고요.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많아서 온갖 것을 다 원해요. 특히 ‘한국 가게에서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C씨는 한국에서 일할 당시에도 만나보지 못했던 ‘진상’들을 미국에서 다 만나봤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홍콩 역시 마찬가지. 특히 홍콩은 그 열악한 시설 때문에 혀를 내두르는 여성이 많다. 방이 세 개 정도 있는 아파트에서 13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출퇴근 시간에 샤워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만 1시간에 이른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말이다.

룸살롱의 대기실이라고 해봐야 창고 같은 곳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전부. 특히 단속이라도 나오면 마치 피난민들처럼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도망쳐 피해야 한다고 한다. 또 시시때때로 엄격한 감시를 받는 등 사생활도 보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홍콩, 단속 피해
인근 식당 도주

이처럼 경험자들에 따르면 현지 나가요걸들의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소통이 안 된다는 점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불법취업자 신세이기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도 없고 또 불렀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취업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핸드폰을 개설하거나 통장을 만드는 것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등 나가요걸들의 생활에는 말못할 애로사항이 수두룩하다. 원정 취업을 경험한 많은 나가요걸들은 “그냥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이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괜한 환상을 가졌다가는 몸고생, 마음고생만 톡톡히 하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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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