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실세’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빌딩 암투’ 전말

테헤란로에 600억 묻고…아직 눈 못 감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국민들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6공 실세’ 엄삼탁씨가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유족과 옛 측근이 3년째 소송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들은 강남 수백억원대 빌딩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고인이 생전 명의신탁” vs “제값 다 주고 샀다” 
유족-측근 18층 건물 소유권 두고 3년째 진실공방


고 엄삼탁씨는 ‘6공 황태자’ 박철언씨와 함께 노태우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인물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6공화국 실세 중 실세였다. 1965년 경북대 사범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학군단(ROTC) 3기로 임관한 엄씨는 수도경비사령부에 재직 당시 연대장이던 노 전 대통령과 맺은 인연으로 6공 시절 이름을 날렸다.

특유의 충성심으로 노 전 대통령의 궂은일을 도맡아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정권을 잡자 승승장구하다 예비역 소장으로 전역,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보좌관(1989년)과 기획조정실장(1990∼1993년) 등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려

기조실은 안기부 조직관리와 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따라서 역대 안기부 기조실장은 최고 통치권자의 ‘측근 인사’가 기용됐다. 이들은 안기부의 예산을 관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사금고지기’ 역할까지 맡았다. 엄씨는 노태우 정권 5년 중 무려 3년씩이나 기조실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총애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엄씨는 YS정부가 들어선 뒤 1993년 병무청장으로 기용됐으나 곧바로 슬롯머신 사건에 휘말려 낙마했다. 이후 끊임없이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1997년 대선 때 재경 경북도민회장을 맡으면서 반대편에 섰던 DJ 진영에 합류했지만, 이듬해 대구 달성 보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맞붙어 패배하는 등 정치 재기가 여의치 않자 체육계로 돌아섰다.

군 시절 국군체육부대장을 비롯해 대한체육회 부회장(1993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1998년), 한국씨름연맹 총재(1999∼2002년) 등을 지냈다. 민주당 부총재와 대구시지부장을 역임하고 2002년 탈당한 뒤 또 다시 2005년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처리되면서 완전히 정치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지병인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이렇게 국민들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6공 실세 엄씨가 최근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유족과 옛 측근이 3년째 소송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들은 강남 수백억원대 빌딩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은 무슨 이유로 어쩌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일까. 사건은 엄씨가 별세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씨의 유족에 따르면 엄씨는 사망 직전 지인에게 “차명으로 맡겨 놓은 강남 빌딩을 찾아 달라. 내 소유인데 다른 사람 명의로 명의신탁을 해 놓은 것이니 원래대로 내 가족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씨는 인감증명이 첨부된 확약서와 위임장, 각서 등도 건넸다. 문서엔 ‘위 부동산은 본인 명의로 돼 있으나, 부동산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엄삼탁이고 본인은 단순한 명의수탁자입니다’란 내용이 적혀있었다.

유족은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였던 권모씨 등이 엄씨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이를 변제하기 위해 2000년 부동산을 엄씨에게 팔았다”며 “당시 강남에 신축 중인 빌딩의 부지를 다른 사람의 명의로 옮긴 뒤 공사비용을 엄씨가 대줘서 2001년 건물을 완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인에 대한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엄씨가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 명의를 맡기고 관리하도록 했던 것”이라며 “엄씨는 실소유주가 노출될 만한 금융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는 등 빌딩과 토지가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보이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자금 추적 피해 숨겨둔 재산”
무슨 돈으로…출처 의문 증폭


‘명의신탁’은 소유관계를 공시하도록 돼 있는 부동산 등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3자의 명의로 등기부에 등재한 뒤 실질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종중(문중)재산의 위탁관리 등을 인정하기 위해 허용된 당사자간의 계약관행으로, 그동안 법률적인 규정이 없어 취득세·양도세 등의 조세부과를 회피하거나 각종 규제를 피하는 등 재산도피 수단으로 악용됐었다. 그러나 1995년 7월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외조항을 제외하고 명의신탁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엄씨가 자신의 빌딩을 명의신탁했다고 지목한 사람은 생전 측근인 박모씨였다. 박씨는 엄씨의 고교 1년 선배로, 평소 호형호제하던 막역한 사이였다. 박씨는 이같은 각별한 친분으로 엄씨가 회장을 맡았던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 엄씨가 한국씨름연맹 총재로 재직할 때 연맹 이사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차명건물 찾아달라”
사망 전 유언 남겨
 
엄씨의 사망 직후 지인에게 유언을 전해들은 유족은 명의수탁자인 박씨에게 빌딩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씨는 “내가 엄씨로부터 사들여 소유권을 이전받은 빌딩”이라며 유족들의 반환 요청을 거부했다.

박씨는 “내가 엄씨에게 130억원을 주고 신축 중이던 건물과 땅을 샀다. 이후 내 돈 160억원을 더 들여 건물을 완공했다”며 “매매대금은 매달 일정 금액을 나눠 지불했는데, (엄씨와 작성한) ‘잔금 완불 시 그 전의 관련 문서는 모두 효력을 상실한다’는 내용의 확약서까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거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내 명의의 7개 계좌에 매달 일정액을 입금하면 엄씨가 그 돈을 인출하는 방법으로 빌딩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엄씨의 유족과 박씨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빌딩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박씨 명의의 ○○빌딩은 2001년 5월 XXX-XX번지 외 2필지에 지어진 지하 6층 지상 18층 건물로, 대지면적 1128㎡(약 340평)에 연면적 1만6690㎡(약 5100평) 규모다.

이 빌딩의 매매가는 약 600억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설교통부 조회 결과 빌딩 부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1월 기준 단위면적(㎡)당 2990만원으로 나타났다. 땅값만 약 34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여기에 국세청이 산정한 건물 기준시가를 더하면 총 5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훨씬 웃돈다. 이 빌딩은 건축된 지 10년 정도 됐지만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 중 노른자’라 할 수 있는 테헤란로 변에 위치해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들이 60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박씨는 빌딩 신축 전 부지를 먼저 사들였다. 등기부등본상 땅 주인이 된 것은 2000년 4월. 박씨는 1980∼90년대 잘나가던 △△그룹 오너 권씨 형제로부터 토지를 매입했다. 이듬해 7월엔 완공된 빌딩 소유자로 등기됐다.

문제는 엄씨가 세상을 뜨면서다. 유족인 부인 정모씨와 두 아들은 엄씨가 사망하고 일주일 뒤 박씨를 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하는 한편 박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명의신탁 무효로 인한 소유권보존등기말소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냈다.

반환 요구 거부하자 민·형사 ‘줄소송’
형, 대법원 “증거 없다”측근 손들어 
민, 1심 측근 ‘승’…2심선 유족 ‘승’


우선 형사 소송은 박씨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7월 대법원이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박씨에게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대법원 형사재판부는 “박씨의 딸이 엄씨의 부인에게 80억원에 합의를 시도하는 등 박씨가 엄씨로부터 명의신탁을 받아 그를 위해 관리했다는 강한 의심이 들지만, 박씨가 명의수탁자였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는 진실이라는 확신을 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아내·자녀에 넘겨라”
원심 깨고 유족 승소

하지만 민사 소송은 1·2심이 각각 다른 결과가 나왔다. 1심은 박씨의 승소.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는 지난해 1월 엄씨의 유족이 박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엄씨가 지인 권모씨 등으로부터 토지 및 미완성 건물을 박씨의 명의로 사들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엄씨가 권씨 등으로부터 토지 등을 산 뒤 등기를 생략한 채 박씨에게 팔았으며 박씨는 대금을 여러 차례 나눠 지급했다”고 밝혔다.

또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로부터 약속어음을 교부받은 것과 130억원에 이르는 매매대금을 수차례 분할해 지급하는 방식도 매우 이례적이기는 하나 정치인인 엄씨의 신분상 자금추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매매대금 지급 방식이 약정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박씨는 엄씨로부터 사들인 미완성 건물을 160여억원을 들여 모두 지었고 이 과정에서 엄씨는 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실제 건축주의 사정으로 미완성인 건물을 인도받아 완성했을 경우 완성을 한 사람을 소유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그 근거로 들었다.

2심에선 유족이 이겼다. 서울고법 민사31부는 지난 2일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이 건물 소유권 가운데 엄씨의 아내에게 지분 7분의3을, 두 자녀에게 각각 7분의2씩 이전등기하라”며 “원고 측의 주된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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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