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실세’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빌딩 암투’ 전말

테헤란로에 600억 묻고…아직 눈 못 감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국민들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6공 실세’ 엄삼탁씨가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유족과 옛 측근이 3년째 소송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들은 강남 수백억원대 빌딩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고인이 생전 명의신탁” vs “제값 다 주고 샀다” 
유족-측근 18층 건물 소유권 두고 3년째 진실공방


고 엄삼탁씨는 ‘6공 황태자’ 박철언씨와 함께 노태우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인물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6공화국 실세 중 실세였다. 1965년 경북대 사범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학군단(ROTC) 3기로 임관한 엄씨는 수도경비사령부에 재직 당시 연대장이던 노 전 대통령과 맺은 인연으로 6공 시절 이름을 날렸다.

특유의 충성심으로 노 전 대통령의 궂은일을 도맡아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정권을 잡자 승승장구하다 예비역 소장으로 전역,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보좌관(1989년)과 기획조정실장(1990∼1993년) 등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려

기조실은 안기부 조직관리와 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따라서 역대 안기부 기조실장은 최고 통치권자의 ‘측근 인사’가 기용됐다. 이들은 안기부의 예산을 관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사금고지기’ 역할까지 맡았다. 엄씨는 노태우 정권 5년 중 무려 3년씩이나 기조실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총애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엄씨는 YS정부가 들어선 뒤 1993년 병무청장으로 기용됐으나 곧바로 슬롯머신 사건에 휘말려 낙마했다. 이후 끊임없이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1997년 대선 때 재경 경북도민회장을 맡으면서 반대편에 섰던 DJ 진영에 합류했지만, 이듬해 대구 달성 보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맞붙어 패배하는 등 정치 재기가 여의치 않자 체육계로 돌아섰다.

군 시절 국군체육부대장을 비롯해 대한체육회 부회장(1993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1998년), 한국씨름연맹 총재(1999∼2002년) 등을 지냈다. 민주당 부총재와 대구시지부장을 역임하고 2002년 탈당한 뒤 또 다시 2005년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처리되면서 완전히 정치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지병인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이렇게 국민들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6공 실세 엄씨가 최근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유족과 옛 측근이 3년째 소송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들은 강남 수백억원대 빌딩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은 무슨 이유로 어쩌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일까. 사건은 엄씨가 별세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씨의 유족에 따르면 엄씨는 사망 직전 지인에게 “차명으로 맡겨 놓은 강남 빌딩을 찾아 달라. 내 소유인데 다른 사람 명의로 명의신탁을 해 놓은 것이니 원래대로 내 가족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씨는 인감증명이 첨부된 확약서와 위임장, 각서 등도 건넸다. 문서엔 ‘위 부동산은 본인 명의로 돼 있으나, 부동산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엄삼탁이고 본인은 단순한 명의수탁자입니다’란 내용이 적혀있었다.

유족은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였던 권모씨 등이 엄씨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이를 변제하기 위해 2000년 부동산을 엄씨에게 팔았다”며 “당시 강남에 신축 중인 빌딩의 부지를 다른 사람의 명의로 옮긴 뒤 공사비용을 엄씨가 대줘서 2001년 건물을 완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인에 대한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엄씨가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 명의를 맡기고 관리하도록 했던 것”이라며 “엄씨는 실소유주가 노출될 만한 금융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는 등 빌딩과 토지가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보이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자금 추적 피해 숨겨둔 재산”
무슨 돈으로…출처 의문 증폭


‘명의신탁’은 소유관계를 공시하도록 돼 있는 부동산 등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3자의 명의로 등기부에 등재한 뒤 실질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종중(문중)재산의 위탁관리 등을 인정하기 위해 허용된 당사자간의 계약관행으로, 그동안 법률적인 규정이 없어 취득세·양도세 등의 조세부과를 회피하거나 각종 규제를 피하는 등 재산도피 수단으로 악용됐었다. 그러나 1995년 7월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외조항을 제외하고 명의신탁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엄씨가 자신의 빌딩을 명의신탁했다고 지목한 사람은 생전 측근인 박모씨였다. 박씨는 엄씨의 고교 1년 선배로, 평소 호형호제하던 막역한 사이였다. 박씨는 이같은 각별한 친분으로 엄씨가 회장을 맡았던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 엄씨가 한국씨름연맹 총재로 재직할 때 연맹 이사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차명건물 찾아달라”
사망 전 유언 남겨
 
엄씨의 사망 직후 지인에게 유언을 전해들은 유족은 명의수탁자인 박씨에게 빌딩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씨는 “내가 엄씨로부터 사들여 소유권을 이전받은 빌딩”이라며 유족들의 반환 요청을 거부했다.

박씨는 “내가 엄씨에게 130억원을 주고 신축 중이던 건물과 땅을 샀다. 이후 내 돈 160억원을 더 들여 건물을 완공했다”며 “매매대금은 매달 일정 금액을 나눠 지불했는데, (엄씨와 작성한) ‘잔금 완불 시 그 전의 관련 문서는 모두 효력을 상실한다’는 내용의 확약서까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거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내 명의의 7개 계좌에 매달 일정액을 입금하면 엄씨가 그 돈을 인출하는 방법으로 빌딩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엄씨의 유족과 박씨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빌딩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박씨 명의의 ○○빌딩은 2001년 5월 XXX-XX번지 외 2필지에 지어진 지하 6층 지상 18층 건물로, 대지면적 1128㎡(약 340평)에 연면적 1만6690㎡(약 5100평) 규모다.

이 빌딩의 매매가는 약 600억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설교통부 조회 결과 빌딩 부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1월 기준 단위면적(㎡)당 2990만원으로 나타났다. 땅값만 약 34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여기에 국세청이 산정한 건물 기준시가를 더하면 총 5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훨씬 웃돈다. 이 빌딩은 건축된 지 10년 정도 됐지만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 중 노른자’라 할 수 있는 테헤란로 변에 위치해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들이 60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박씨는 빌딩 신축 전 부지를 먼저 사들였다. 등기부등본상 땅 주인이 된 것은 2000년 4월. 박씨는 1980∼90년대 잘나가던 △△그룹 오너 권씨 형제로부터 토지를 매입했다. 이듬해 7월엔 완공된 빌딩 소유자로 등기됐다.

문제는 엄씨가 세상을 뜨면서다. 유족인 부인 정모씨와 두 아들은 엄씨가 사망하고 일주일 뒤 박씨를 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하는 한편 박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명의신탁 무효로 인한 소유권보존등기말소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냈다.

반환 요구 거부하자 민·형사 ‘줄소송’
형, 대법원 “증거 없다”측근 손들어 
민, 1심 측근 ‘승’…2심선 유족 ‘승’


우선 형사 소송은 박씨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7월 대법원이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박씨에게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대법원 형사재판부는 “박씨의 딸이 엄씨의 부인에게 80억원에 합의를 시도하는 등 박씨가 엄씨로부터 명의신탁을 받아 그를 위해 관리했다는 강한 의심이 들지만, 박씨가 명의수탁자였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는 진실이라는 확신을 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아내·자녀에 넘겨라”
원심 깨고 유족 승소

하지만 민사 소송은 1·2심이 각각 다른 결과가 나왔다. 1심은 박씨의 승소.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는 지난해 1월 엄씨의 유족이 박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엄씨가 지인 권모씨 등으로부터 토지 및 미완성 건물을 박씨의 명의로 사들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엄씨가 권씨 등으로부터 토지 등을 산 뒤 등기를 생략한 채 박씨에게 팔았으며 박씨는 대금을 여러 차례 나눠 지급했다”고 밝혔다.

또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로부터 약속어음을 교부받은 것과 130억원에 이르는 매매대금을 수차례 분할해 지급하는 방식도 매우 이례적이기는 하나 정치인인 엄씨의 신분상 자금추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매매대금 지급 방식이 약정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박씨는 엄씨로부터 사들인 미완성 건물을 160여억원을 들여 모두 지었고 이 과정에서 엄씨는 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실제 건축주의 사정으로 미완성인 건물을 인도받아 완성했을 경우 완성을 한 사람을 소유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그 근거로 들었다.

2심에선 유족이 이겼다. 서울고법 민사31부는 지난 2일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이 건물 소유권 가운데 엄씨의 아내에게 지분 7분의3을, 두 자녀에게 각각 7분의2씩 이전등기하라”며 “원고 측의 주된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