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내부거래 실태 (20)귀뚜라미그룹-(주)귀뚜라미-나노켐

그렇게 받아먹고…모른 척 아닌 척 ‘귀뚤귀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곳간’을 채워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일수록 심하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부 대물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지원율 1% 밑돌다 계열 합병 후 80%로 급증
오너일가 장악 회사…매출 90% 관계사 의존 

보일러로 유명한 귀뚜라미그룹은 지난달 말 기준 총 10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귀뚜라미’와 ‘나노켐’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실적이 거의 ‘안방’에서 나왔다.
1992년 2월 설립된 ㈜귀뚜라미는 가스·기름보일러 등 냉난방기구 제조 및 판매업체다. 2009년 1월 귀뚜라미보일러에서 현 상호로 변경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5명이 지분 61.78%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귀뚜라미문화재단(20.06%), 귀뚜라미홈시스(15.81%), 나노켐(2.33%) 등이 갖고 있다.

‘일거리’까지 흡수

‘은둔형 오너’인 최 명예회장은 대구공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1962년 귀뚜라미보일러를 창업했다. 이후 45년간 CEO와 그룹 회장으로 있다가 2007년 명예회장 직으로 물러나면서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현재 대구방송 대표이사 회장으로 있다.

최근 사내 통신망에 무상급식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공지물을 게시한 ‘메일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최 명예회장은 부인 김미혜씨와 사이에 2남3녀(성환-영환-수영-혜영-문경)를 뒀다. 그룹 측은 ㈜귀뚜라미 주주명부에 ‘최진민 외 5인’이라고만 공시했으나, 여기엔 자녀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장남 성환씨는 유력한 그룹 후계자다. 귀뚜라미보일러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기획팀장 등을 거치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귀뚜라미의 자생 능력이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귀뚜라미는 지난해 매출 2389억원 가운데 80%인 1909억원을 특수관계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귀뚜라미에 일거리를 넘겨준 곳은 종속회사(198억원), 지분법적용피투자회사(1551억), 기타 관계사(160억원) 등이다.

종속회사는 귀뚜라미범양냉방과 신성엔지니어링이다. 지분법적용피투자회사는 나노켐·귀뚜라미홈시스·귀뚜라미랜드·천진귀뚜라미보일러·대구방송·터키귀뚜라미보일러·귀뚜라미동광보일러, 기타 관계사는 귀뚜라미문화재단·귀뚜라미냉동기계·귀뚜라미복지재단·닥터로빈·센추리 등이다.
㈜귀뚜라미의 관계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총매출 대비 내부거래율은 1%도 되지 않다가 주요 계열사들과 합병한 뒤부터 급증했다.

㈜귀뚜라미가 계열사와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0년 0.2%(총매출 1855억원-내부거래 3억3100만원) ▲2001년 0.2%(1995억원-4억6100만원) ▲2002년 0.001%(2040억원-300만원) ▲2003년 0.05%(1951억원-9200만원) ▲2004년 0.02%(1726억원-3500만원) ▲2005년 0.1%(1778억원-2억원)였다.

㈜귀뚜라미와 계열사들이 ‘뭉친’ 것은 2005년 말이다. 당시 귀뚜라미보일러, 귀뚜라미가스보일러, 귀뚜라미센티온 등이 ㈜귀뚜라미에 흡수 합병됐다. 이후 ㈜귀뚜라미의 내부거래율은 2006년 30%(2023억원-602억원)로 뛴데 이어 2007년 58%(2100억원-1209억원), 2008년 84%(2198억원-1849억원)까지 치솟았다. 2009년에도 관계사 매출이 80%나 됐다. 총매출 2025억원에서 내부거래로 거둔 금액이 1625억원(종속회사 186억원-지분법피투자회사 1416억원-기타 관계사 23억원)에 달했다.

㈜귀뚜라미 외에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귀뚜라미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나노켐이다. 나노켐도 내부 물량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매년 평균 매출의 90% 이상이 ‘집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991년 5월 설립된 나노켐은 자동온도조절기, 점화장치, 가스감지기 등 보일러 부품 제조업체다. 2007년 3월 귀뚜라미정밀공업에서 현 상호로 변경된 나노켐은 지난해 매출 470억원 가운데 92%인 433억원을 ‘식구’들과 거래했다.

종속회사(9억원), 지분법적용 피투자회사(417억원), 기타 관계사(7억원) 등이 나노켐에서 만든 부품들을 사갔다. 나노켐의 종속회사는 천진귀뚜라미보일러, 지분법적용 피투자회사는 귀뚜라미·귀뚜라미랜드·신성엔지니어링·센추리·대구방송, 기타특수관계자는 귀뚜라미홈시스·귀뚜라미범양냉방·닥터로빈·귀뚜라미냉동기계·귀뚜라미 동광보일러 등이다.

부인·아들 ‘쥐락펴락’

그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매출 대부분이 관계사에서 나왔다. 나노켐의 내부거래율은 ▲2000년 88%(399억원-353억원) ▲2001년 96%(469억원-450억원) ▲2002년 96%(512억원-492억원) ▲2003년 95%(509억원-486억원) ▲2004년 95%(447억원-426억원) ▲2005년 94%(392억원-369억원) ▲2006년 89%(403억원-360억원) ▲2007년 89%(407억원-361억원) ▲2008년 95%(384억원-366억원) ▲2009년 93%(345억원-320억원)로 나타났다.

이 회사 역시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3명은 지분 45.27%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귀뚜라미(31.38%), 귀뚜라미문화재단(23.35%) 순이다. 또 최 명예회장의 부인 김씨는 2000년 3월부터 나노켐 이사로 있다가 지난해 3월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최 명예회장과 성환씨도 이사를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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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