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위기론 내막

대기업 돈 먹는 하마…고삐 놓은 ‘독일 병정’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 한창 ‘잘 나가던’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갑자기 벼랑 끝에 몰렸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한마디로 앞날이 흐리다. 30여년간 성공가도를 달려온 정 부회장. 여기까지일까.

수해복구 한창 때 부인과 동반 라운딩 강행 ‘물의’
회원사 의견 수렴 없이 1조 사회공헌 추진 ‘논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롯데호텔에서 ‘2011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을 주최했다. 전경련이 매년 개최하는 하계포럼은 기업인들이 1년에 한 번 제주도에 모여 경제 현안과 산업계 이슈 등을 논의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다. 올해는 전경련 사무국 임직원을 비롯해 기업인과 그 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전경련은 ‘재계 축제’인 만큼 이 기간 요트 관광과 요가 강좌, 가수 콘서트, 클래식 공연, 한라산 등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오전에 강연을 듣고 오후엔 프로그램을 즐겼다. 이를 두고 포럼 행사와 전혀 관계없는 ‘호화 일정’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전경련은 당초 예정대로 진행했다.

‘재계축제’ 하계포럼
호화 프로그램 즐겨

문제는 28일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골프대회’. 전경련은 엘리시안, 스카이힐, 타미우스, 레이크힐스 등 컨트리클럽 4곳에서 ‘전경련 회장배 친선골프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 수해 피해가 확산되자 여론을 의식해 대회를 부랴부랴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과 국민정서를 감안해 골프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전경련 임직원들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다만 회원사 참가자들에겐 불참을 강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경련의 설명대로 일반 참석자 300여명은 85개 팀으로 나눠 이날 오후 1시부터 엘리시안CC에서 골프를 쳤다. 하지만 골프채를 잡은 기업인들 사이에 전경련 임원도 끼어있었다. 정병철 상근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부인과 함께 라운딩을 강행해 물의를 빚었다. 그 시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재계는 수해복구 지원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2일에도 전경련의 무책임한 행동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경련은 3일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4대 그룹 임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사회공헌재단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전경련은 이 자리에서 주요 그룹별로 1조원의 사회공헌재단 자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전달할 방침이었다. 전경련 산하 회장단 20개 그룹과 비회장단 5개 그룹 등 25개 그룹이 내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각출해 10년에 걸쳐 1조원 규모의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삼성그룹이 250억원, 현대차그룹·LG그룹·SK그룹이 각각 130억원씩 내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내용은 간담회 직전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고, 주요 그룹들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전경련이 회원사들과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은 주요 그룹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예정됐던 간담회를 하루 전날 긴급히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3일로 예정됐던 조찬간담회는 경제 전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계획됐던 것”이라며 “사회공헌과 관련된 재계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결정되는 자리가 아니었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받으면서도 재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업 정서 등 재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언론들도 등을 돌렸다. 전경련이 삐딱하게 나가자 연일 비난 기사가 쏟아지는 등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언론들은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물론 비난 여론마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재계의 본산’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자 ‘전경련 무용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수장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순항하는 듯 했으나 이도 잠시.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 이미지를 관리해야 할 전경련이 각종 구설로 위신이 땅에 떨어져 오히려 재계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제 기능과 역할도 못한 채 재계를 대표하는 이름표만 덩그러니 달고 있다”고 꼬집었다.

모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은 회비 내기 아까울 정도로 하는 일이 없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 먹는 하마와 다를 바 없다”며 “너무 배가 불러서인지 좀처럼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조용한 절에 비유한 ‘전경사’란 말이 딱 맞다”고 비꼬았다.

전경련에 빗발치는 화살들은 자연스레 사무국을 이끌고 있는 임원들에게 향하고 있다. 전경련이 암초에 걸려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내부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무국 수장인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임된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처지다. 훤칠한 용모에 온화한 성품으로 ‘영국신사’란 별명을 가진 허 회장과 달리 정 부회장은 작은 체구에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별명이 ‘독일 병정’이다.

기능·역할 미흡
‘본산’ 위상 흔들

올해 65세인 정 부회장은 관리형 CEO이자 재무통으로 30년 넘게 LG그룹에서 근무한 ‘LG맨’출신이다. 경복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LG화학에 입사해 LG반도체 관리본부 전무,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과 관리담당 사장 등을 지냈다. 이어 LG산전 사장, LG CNS 사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등을 거쳐 2008년 3월 상근부회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LG CNS 고문을 역임했다.

재계입장 제대로 대변 못해 오히려 반기업 정서 키운다
독선적인 조직 운영 지적 재계 안팎서 교체설 확산


정 부회장은 LG CNS 사장 재직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서울시 신교통카드 서비스사업을 직접 구축하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인터넷 수능강의시스템인 ‘e-러닝’사업 인프라 구축 등 전자정부사업의 11대 과제 중 5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전경련은 넓은 인맥과 역량을 갖춘 정 부회장이 재계와 MB정부간 가교역할을 잘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전경련은 정 부회장을 선임할 당시 “재계 화합은 물론 정부와 경제계간 가교 역할에 적임자라”라며 “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추대 배경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MB정부가 들어선 후 기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이럴 때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국가경제발전과 국민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보좌하면서 사무국을 총괄한다. 인사와 재무 등 실권을 쥐고 있다. 동시에 500여개 대기업과 60여개 업종별 단체 등 회원사의 애로를 파악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제언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재계의 대변인’또는 ‘재계와 정부의 가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전경련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재계가 정 부회장을 곱게 볼 리 없다. 허 회장보다 오히려 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대기업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대응이 부실하다는 재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모 그룹 임원은 “전경련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모두 정 부회장을 비롯한 사무국 임직원들의 책임”이라며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사고에 젖어 회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 부회장의 리더십·소통 부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가벼운 ‘입’이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장기간 공석이었던 신임 회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시간을 갖자고 했다”며 영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삼성그룹 측은 곧바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해 진실공방이 펼쳐진 바 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이 회장이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다”고 말을 바꿨고, 결국 이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뒷말이 적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제주포럼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사말(회장 대독)이 논란이 되자 언론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때문일까. 정 부회장은 자리가 날 때마다 “기자들을 출입시키지 않고 싶다”등의 발언하는 등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5월엔 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광고주협회가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을 선정 발표했는데, 해당사의 실명을 밝히면서도 입장이나 반론을 전혀 싣지 않는가 하면 구체적인 내용도 적시하지 않아 사실상 ‘언론 길들이기’란 비판이 일었다.

이 와중에 정 부회장은 전경련 내 역할보다 ‘자리’에 연연하는 행보까지 보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을 맡은데 이어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에 신설된 부회장직까지 겸직하기로 했다.

부적절 처신 뒷말
전열 재정비 시급

이에 따라 협회와 연구원은 사실상 전경련의 지배를 받게 됐다. 두 곳은 전경련에서 설립했으나 별다른 간섭 없이 자율 체제로 운영돼 왔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장악하자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었다.

한경연 한 관계자는 “전경련은 김영용 전 원장을 사퇴시키고 대신 정 부회장을 밀어 넣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는 재계로부터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자 그 화살을 한경연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년엔 나라에 큰 일이 많다. 총선이 있고, 대선이 있다. 모두 정치권 사안이지만 재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테고, 상대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수위가 높아질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오는 9월이 설립 50주년이라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하루빨리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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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