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푹 빠진 대한민국 ① ‘한탕주의 공화국’ 자화상

‘권력’으로만 만족 못해?

어느 분야 못지않게 한탕주의가 판치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이 정치권력과 함께 교묘히 맞물려 가기 때문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곳이 정치권이다. 최근 경제가 갈수록 어렵다 보니 정치권력을 이용해 부정적으로 돈을 모으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 경찰에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계에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들의 한탕주의 사례를 들춰봤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도덕과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정상적, 도덕적으로 나라 살림살이를 챙겨왔더라면 사회가 이렇게 혼란과 불균형으로 혼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재계 고위층들은 피땀 없이 부를 누리게 됨에 따라 국민경제가 곤두박질쳐 서민이나 노동계층의 불만, 불신이 팽배하면서 도박과 도둑이 난무하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사례1 전두환 전 대통령 한탕주의
한국 정치에서 ‘비자금’에 대해 말할 때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치하의 제5공화국은 대규모 권력형 금융 비리사건으로 시작됐다. 그 당시 어마어마한 검은 비자금들이 나돌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겠다는  한탕주의에 빠진 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지난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전화교환설비를 새 기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봐도 충분히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바로 교체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단 반전자식 교환기로 교체한 다음 전자식 교환기로 바꿨다. 그 결과 교환기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2배나 많이 공급돼야 했고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지난 1988년 제6공화국인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야당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전두환 정부 당시 삼성과 금성 같은 대기업들로부터 전화 교환기를 구매하면서 기종에 따라 회선 당 1백40달러~69달러씩을 비싸게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낭비된 국민 세금은 지난 1982~1988년 동안 무려 6천2백억원이 넘었고, 이중 상당한 금액의 돈이 당시 권력층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곧바로 교체하지 않고 중간에 반전자식 교환기를 설치한 것은 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이다.

사례2 노태우 전 대통령 한탕주의
전직 대통령들의 이러한 비자금을 통한 한탕주의는 전두환 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제6공화국 시절이었던 지난 1990년 10월30일 대검 중앙수사부는 서울 강남구 수서ㆍ대치 택지개발지구 주택 건설을 맡은 한보가 택지 분양과 관련해 로비자금을 뿌리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이태섭 의원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담당비서관 등이 한보를 위해 서울시에 외압을 넣은 사실을 포착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민정당 이태섭 의원과 평민당 이원배 의원에게 각각 2억원, 평민당 김태식 의원과 민정당 김동주 의원에게는 거액의 로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장 비서관에게도 9차례에 걸쳐 2억 6천만원이 건네진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정태수 회장은 수서 택지분양 특혜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구속됐고,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99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당시 정 회장은 풀려난 지 석 달 뒤인 1995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서사건과 관련해 1백억원을 노 전 대통령에게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구속됐다. 정 회장은 1997년 2월 한보특혜대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이 외에도 막대한 로비자금이 당시 권력층에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

사례3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 한탕주의
한참 잘 나가던 시절, 돈을 만지거나 받은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정치인은 이외에도 많다. ‘떡을 만지면 떡고물이 손에 묻기 마련’이라는 이후락 전 안기부장의 말에서 보듯 각 정권의 실세 주변에는 늘 돈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다.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정부패사범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매서웠다. 2003년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해 윤창열 대표 등 관련자 30여명을 기소했다.
조사 결과 윤 대표는 2001년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자기 자본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리 사채나 금융기관 대출금 차입에 의존, 사업을 개시해 피해자 1천2백9명으로부터 분양대금 3천7백33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윤 대표는 이 과정에서 회사자금 1백69억원을 개인 채무금 변제, 개인명의 투자, 가족 주택 구입 등의 명목으로 횡령했으며 (주)한양 인수 및 다단계판매회사 설립 등 쇼핑몰 사업 외에 수백억원을 임의로 유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윤 대표는 당시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와 중구청 등에 로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탁병오, 서울시의정회 사무총장 김인동씨 등 고위 공무원에게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뿌렸다. 또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는 윤대표에게서 건축 인허가 명목으로 4억원의 뇌물을 받는 등 20억여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 받았다.

사례4‘6공의 황태자’박철언 한탕주의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을 통한 한탕주의에 빠진 정치인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정권 시절 정치권 사정의 첫출발인 1993년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자민련 의원이 또 대표적인 인사다.
YS 정권 초기 당시 슬롯머신계의 대부인 정덕진, 정덕일 형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홍준표 검사는 정씨 형제를 선처해주는 대가로 많은 단서를 얻어냈고(유죄거래협상, plea bargaining), 이를 근거로 박철언 전 의원과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이건개 등 여러 고위인사를 체포하고 처벌했다.
정씨 형제는 1980년대 초부터 슬롯머신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고, 정계 권력 실세들과 법조계에 다각적 로비를 펼쳤다. 당시 수사 결과를 통해 이들이 제5공과 제6공화국 권력층의 정치자금원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한 YS입장에서는 ‘5공, 6공 청산’이라는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정치적 걸림돌인 박철언 전 의원을 제거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정씨 형제로부터 당시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 6개월 복역한 후 사면복권 됐다.
박 전의원은 구속 직전 “새벽이 왔다면서 닭의 목은 왜 비트는지 모르겠다”며 YS에게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실세 중의 실세로 정치자금은 물론, 공천과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슬롯머신 업자인 정덕진 형제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전화교환설비 교체비 6천억 사건
한보그룹 특혜분양 사건과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


사례5 이용재 전 대변인 한탕주의
최근에는 ㈜부산자원에 거액의 대출을 알선해 주고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용재(56)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ㅈ저축은행 회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 담보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대출을 성사시켜 돈을 챙긴 일이 벌어졌다.
이 전 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박모(48ㆍ구속) 부산자원 대표의 변제능력을 부풀려 말하면서 저축은행 회장에게 대출을 종용하고, 대출 현장에서 알선 대가를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이 전 대변인은 청와대 사정 담당관으로 근무하던 1993년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과 처음 만났다. 둘을 연결해 준 이는 동화은행 신모 전무로, 당시 안영모 행장이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 로비를 벌인 동화은행 사건으로 처벌받은 인물이다. 신 전무는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8백억원 가량을 관리해 준 의혹을 받아 다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또 2002년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이 전 대변인을 박 대표에게 소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이듬해 대선자금 수사 때 6백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양쪽을 알게 된 이 전 대변인은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3월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에게 박 대표를 소개했다. 그 뒤 6월 유 회장을 찾아가 부산 녹산공단에 폐기물처리장을 건설 중이던 부산자원에 4백억원의 담보대출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부산자원이 토지공사에서 사들인 부지의 감정가는 240억원에 불과해 이를 담보로 4백억원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씨는 유 회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대출을 성사시켰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박 대표를 정ㆍ관계에 두루 인맥을 뻗치고 있는 자산가로 소개하며 대출을 신속히 집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감 중인 진승현씨가 석방되면 박 대표는 2천억원을 받을 사람”이라며 유 회장을 설득했고, 또 “박 대표가 DJ 정권 때 동교동계 실세들을 전부 주무른 사람”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의 아들”이라고 내세웠다. 박 대표는 DJ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다.
이씨는 “박 대표가 경기도 포천에 땅 2백만평을 가지고 있고, 여의도와 강남에 빌딩이 한 채씩 있다”고 말한 뒤 대출에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씨는 당시 박 대표의 사업내용이나 재산상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박 대표의 대출금 수령 현장에 동석해 대출금 일부를 곧바로 챙겼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7월 박 대표가 ㅈ저축은행 사무실에서 대출금 2백70억원을 받을 때 함께 했던 이씨가 수표가 든 봉투에서 20억원을 꺼내 대출알선 대가로 자신의 윗옷 주머니에 넣고, 바로 20억원을 더 꺼내 유 회장에게 대출성사의 대가로 건넸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달 17일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자유선진당 대변인직을 사임했다.

 ‘조동만 비자금’ 연루 정치인 줄줄이
김현철 20억원 받은 혐의로 구속

2004년 4월, 조동만 비자금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조동만 비자금 사건은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이동통신 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받은 1천9백억원이 넘는 막대한 돈으로 전·현직 정치인들에게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으로 과거 황태자로 불렸던 김현철씨가 20억원을 받아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동안 정치활동을 포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조동만 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에게 대부분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났다. 공소시효를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
당시 김한길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돈을 받은 시점이 2000년 3월과 2001년 5월이다 보니 정치자금법 공소시효인 3년이 지났고, 수사무마청탁과 함께 1998년 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역시 알선수재 공소시효 5년이 넘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원형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대해서는 2002년 공기업 관련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조 씨가 이들에게 건넨 돈 이외에도 수억원의 비자금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사용처는 사실상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깊게 뿌리 박힌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부채로 허덕이던 부실기업의 주식을 시세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가격에 팔아, 엄청난 차익이 챙긴 것도 그렇거니와, 그 돈을 정치권에 뿌리면서, 구조조정이라는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기업주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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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