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푹 빠진 대한민국 ① ‘한탕주의 공화국’ 자화상

‘권력’으로만 만족 못해?

어느 분야 못지않게 한탕주의가 판치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이 정치권력과 함께 교묘히 맞물려 가기 때문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곳이 정치권이다. 최근 경제가 갈수록 어렵다 보니 정치권력을 이용해 부정적으로 돈을 모으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 경찰에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계에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들의 한탕주의 사례를 들춰봤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도덕과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정상적, 도덕적으로 나라 살림살이를 챙겨왔더라면 사회가 이렇게 혼란과 불균형으로 혼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재계 고위층들은 피땀 없이 부를 누리게 됨에 따라 국민경제가 곤두박질쳐 서민이나 노동계층의 불만, 불신이 팽배하면서 도박과 도둑이 난무하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사례1 전두환 전 대통령 한탕주의
한국 정치에서 ‘비자금’에 대해 말할 때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치하의 제5공화국은 대규모 권력형 금융 비리사건으로 시작됐다. 그 당시 어마어마한 검은 비자금들이 나돌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겠다는  한탕주의에 빠진 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지난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전화교환설비를 새 기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봐도 충분히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바로 교체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단 반전자식 교환기로 교체한 다음 전자식 교환기로 바꿨다. 그 결과 교환기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2배나 많이 공급돼야 했고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지난 1988년 제6공화국인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야당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전두환 정부 당시 삼성과 금성 같은 대기업들로부터 전화 교환기를 구매하면서 기종에 따라 회선 당 1백40달러~69달러씩을 비싸게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낭비된 국민 세금은 지난 1982~1988년 동안 무려 6천2백억원이 넘었고, 이중 상당한 금액의 돈이 당시 권력층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곧바로 교체하지 않고 중간에 반전자식 교환기를 설치한 것은 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이다.

사례2 노태우 전 대통령 한탕주의
전직 대통령들의 이러한 비자금을 통한 한탕주의는 전두환 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제6공화국 시절이었던 지난 1990년 10월30일 대검 중앙수사부는 서울 강남구 수서ㆍ대치 택지개발지구 주택 건설을 맡은 한보가 택지 분양과 관련해 로비자금을 뿌리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이태섭 의원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담당비서관 등이 한보를 위해 서울시에 외압을 넣은 사실을 포착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민정당 이태섭 의원과 평민당 이원배 의원에게 각각 2억원, 평민당 김태식 의원과 민정당 김동주 의원에게는 거액의 로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장 비서관에게도 9차례에 걸쳐 2억 6천만원이 건네진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정태수 회장은 수서 택지분양 특혜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구속됐고,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99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당시 정 회장은 풀려난 지 석 달 뒤인 1995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서사건과 관련해 1백억원을 노 전 대통령에게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구속됐다. 정 회장은 1997년 2월 한보특혜대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이 외에도 막대한 로비자금이 당시 권력층에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

사례3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 한탕주의
한참 잘 나가던 시절, 돈을 만지거나 받은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정치인은 이외에도 많다. ‘떡을 만지면 떡고물이 손에 묻기 마련’이라는 이후락 전 안기부장의 말에서 보듯 각 정권의 실세 주변에는 늘 돈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다.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정부패사범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매서웠다. 2003년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해 윤창열 대표 등 관련자 30여명을 기소했다.
조사 결과 윤 대표는 2001년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자기 자본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리 사채나 금융기관 대출금 차입에 의존, 사업을 개시해 피해자 1천2백9명으로부터 분양대금 3천7백33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윤 대표는 이 과정에서 회사자금 1백69억원을 개인 채무금 변제, 개인명의 투자, 가족 주택 구입 등의 명목으로 횡령했으며 (주)한양 인수 및 다단계판매회사 설립 등 쇼핑몰 사업 외에 수백억원을 임의로 유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윤 대표는 당시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와 중구청 등에 로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탁병오, 서울시의정회 사무총장 김인동씨 등 고위 공무원에게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뿌렸다. 또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는 윤대표에게서 건축 인허가 명목으로 4억원의 뇌물을 받는 등 20억여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 받았다.

사례4‘6공의 황태자’박철언 한탕주의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을 통한 한탕주의에 빠진 정치인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정권 시절 정치권 사정의 첫출발인 1993년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자민련 의원이 또 대표적인 인사다.
YS 정권 초기 당시 슬롯머신계의 대부인 정덕진, 정덕일 형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홍준표 검사는 정씨 형제를 선처해주는 대가로 많은 단서를 얻어냈고(유죄거래협상, plea bargaining), 이를 근거로 박철언 전 의원과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이건개 등 여러 고위인사를 체포하고 처벌했다.
정씨 형제는 1980년대 초부터 슬롯머신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고, 정계 권력 실세들과 법조계에 다각적 로비를 펼쳤다. 당시 수사 결과를 통해 이들이 제5공과 제6공화국 권력층의 정치자금원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한 YS입장에서는 ‘5공, 6공 청산’이라는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정치적 걸림돌인 박철언 전 의원을 제거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정씨 형제로부터 당시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 6개월 복역한 후 사면복권 됐다.
박 전의원은 구속 직전 “새벽이 왔다면서 닭의 목은 왜 비트는지 모르겠다”며 YS에게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실세 중의 실세로 정치자금은 물론, 공천과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슬롯머신 업자인 정덕진 형제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전화교환설비 교체비 6천억 사건
한보그룹 특혜분양 사건과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


사례5 이용재 전 대변인 한탕주의
최근에는 ㈜부산자원에 거액의 대출을 알선해 주고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용재(56)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ㅈ저축은행 회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 담보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대출을 성사시켜 돈을 챙긴 일이 벌어졌다.
이 전 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박모(48ㆍ구속) 부산자원 대표의 변제능력을 부풀려 말하면서 저축은행 회장에게 대출을 종용하고, 대출 현장에서 알선 대가를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이 전 대변인은 청와대 사정 담당관으로 근무하던 1993년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과 처음 만났다. 둘을 연결해 준 이는 동화은행 신모 전무로, 당시 안영모 행장이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 로비를 벌인 동화은행 사건으로 처벌받은 인물이다. 신 전무는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8백억원 가량을 관리해 준 의혹을 받아 다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또 2002년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이 전 대변인을 박 대표에게 소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이듬해 대선자금 수사 때 6백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양쪽을 알게 된 이 전 대변인은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3월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에게 박 대표를 소개했다. 그 뒤 6월 유 회장을 찾아가 부산 녹산공단에 폐기물처리장을 건설 중이던 부산자원에 4백억원의 담보대출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부산자원이 토지공사에서 사들인 부지의 감정가는 240억원에 불과해 이를 담보로 4백억원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씨는 유 회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대출을 성사시켰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박 대표를 정ㆍ관계에 두루 인맥을 뻗치고 있는 자산가로 소개하며 대출을 신속히 집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감 중인 진승현씨가 석방되면 박 대표는 2천억원을 받을 사람”이라며 유 회장을 설득했고, 또 “박 대표가 DJ 정권 때 동교동계 실세들을 전부 주무른 사람”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의 아들”이라고 내세웠다. 박 대표는 DJ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다.
이씨는 “박 대표가 경기도 포천에 땅 2백만평을 가지고 있고, 여의도와 강남에 빌딩이 한 채씩 있다”고 말한 뒤 대출에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씨는 당시 박 대표의 사업내용이나 재산상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박 대표의 대출금 수령 현장에 동석해 대출금 일부를 곧바로 챙겼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7월 박 대표가 ㅈ저축은행 사무실에서 대출금 2백70억원을 받을 때 함께 했던 이씨가 수표가 든 봉투에서 20억원을 꺼내 대출알선 대가로 자신의 윗옷 주머니에 넣고, 바로 20억원을 더 꺼내 유 회장에게 대출성사의 대가로 건넸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달 17일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자유선진당 대변인직을 사임했다.

 ‘조동만 비자금’ 연루 정치인 줄줄이
김현철 20억원 받은 혐의로 구속

2004년 4월, 조동만 비자금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조동만 비자금 사건은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이동통신 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받은 1천9백억원이 넘는 막대한 돈으로 전·현직 정치인들에게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으로 과거 황태자로 불렸던 김현철씨가 20억원을 받아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동안 정치활동을 포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조동만 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에게 대부분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났다. 공소시효를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
당시 김한길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돈을 받은 시점이 2000년 3월과 2001년 5월이다 보니 정치자금법 공소시효인 3년이 지났고, 수사무마청탁과 함께 1998년 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역시 알선수재 공소시효 5년이 넘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원형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대해서는 2002년 공기업 관련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조 씨가 이들에게 건넨 돈 이외에도 수억원의 비자금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사용처는 사실상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깊게 뿌리 박힌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부채로 허덕이던 부실기업의 주식을 시세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가격에 팔아, 엄청난 차익이 챙긴 것도 그렇거니와, 그 돈을 정치권에 뿌리면서, 구조조정이라는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기업주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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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