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람들 대기업에 둥지 튼 까닭

국가에 충성하던 비밀요원들 회장님께 충성

국가정보원 출신들이 대기업에 둥지를 틀고 있다. 국정원 전직 고위인사들이 재계에 잇달아 영입되고 있는 것. 기업의 러브콜에 배를 갈아탄 이들의 임무는 대관업무부터 정보전, 루머통제 등 다양하다. 궂은일도 마다 않는다. 각 회사 요직에 배치된 이들의 영입이나 이동은 극비리에 진행된다. 몇몇 핵심 인사만 알고 있을 정도다. 과연 국정원 출신 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 기업의 속내가 뭘까.


퇴직한 국정원 직원 4명 대기업 임원급으로 취업
사정기관 ‘살생부’에 오르내리는 기업정보망 확대

최근 국가정보원에서 물의를 일으켜 퇴직한 직원 4명이 대기업 임원급으로 취업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다 물의를 일으킨 직원은 A중공업에, 부당한 골프를 치거나 국정원 자체 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된 지부장 출신 직원 3명은 B양회, C전자, D조선 등에 상임고문으로 각각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지역 지부장(1∼2급)은 간부급으로 상당한 위치다.

국정원 퇴직 직원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7월 E그룹은 국정원 경제국장을 지낸 박모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같은 달 F그룹도 국정원 경기지부장을 지낸 김모씨를 역시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8년 3월 G그룹도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국정원 대전지부장을 역임한 차모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이런 움직임은 수년전부터 계속돼 왔다. 지난 2005년, H그룹의 경우 국정원 국내정보 총괄책임자를 역임한 실장급 인사를 회장의 비서실격인 투자관리실 소속 부사장급 고문으로 임명했다. H그룹은 이 인사를 책임자로 하는 ‘대외협력단’을 신설하기도 했다.

앞서 국정원 내부감사를 맡던 과장급 인사는 I그룹에 영입돼 임원으로 대외업무를 맡았다. 같은 해 J그룹도 국정원의 박사출신 기획인력을 스카우트해 임원으로 재직시켰다.

골프, 물의 일으켜 직원 4명 퇴직

이밖에 다른 주요 대기업중 상당수도 국정원 출신 인사들을 이미 채용했거나 현재 영입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국가 수사·정보 전문가도 대기업 사이에서 영입 1순위로 꼽히지만, 그중 국정원 출신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덩달아 국정원 ‘정보통’들의 주가도 많이 오른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재계가 국정원 출신 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 속내가 뭘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이 보유한 ‘정보력’을 활용할 심산이다. ‘정보가 곧 힘’이라는 판단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정보가 모이는 곳에 국정원이 있다’는 말처럼 국정원은 국내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나아가 개인정보와 해외 정보까지 쥐고 있다”며 “새 정권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정보 안테나’를 풀가동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국정원 정보부서를 두루 거친 정보통만한 스카우트 타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부급으로 영입한 국정원 출신 인사의 주요임무는 대관업무다. 특히 재계는 지금 검찰과 국세청의 사정으로 뒤숭숭하다. 언제 어디로 ‘칼바람’이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살생부’에 사명이 오르내리는 기업은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한 형국이다. 따라서 일부 기업에선 사전 위기관리 차원에서 극비리로 국정원 출신을 껴안은 눈치도 엿보인다.
 
한 업계관계자는 “기업에 영입된 국정원 출신 인사들은 주로 정보수집을 통한 대외업무를 한다”며 “특히 사정설에 휩싸이거나 중요한 사안을 앞두고 정보동향에 더욱 신경을 쓰기 위해 국정원 출신을 영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대형 인수전(M&A)에 뛰어든 그룹이 국정원 출신 인사에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열띤 입찰 경쟁이 벌어지는 M&A는 더욱 그렇다. 실제, 그간 벌어진 인수·합병(M&A) 전쟁에서 국정원 출신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진 각 그룹은 정부와 라이벌 동향 파악에 촉각을 세우는 등 정보전에서 치열한 물밑 경쟁을 펼쳤다. 자금조달 능력과 컨소시엄 구성원 등 비슷한 조건에서 승부가 정보전에서 갈리는 상황이 잇따라 연출되기도 했다. 심지어 경쟁사의 회장 일가 사생활 등 약점만 캐러 다니는 전직 국정원 직원들도 있었다. 반대로 총수 일가의 사고 전담처리반 노릇을 하는 이들도 있다. 경영진의 사생활 관련 뒷말이 나오면 다른 민감한 사안을 은근슬쩍 뿌려 무마하는 식이다.

국정원 출신 인사는 회사를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를 통제하는 일에도 요긴하게 활용된다. 악성루머는 기업의 실적과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장 경계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한번 퍼진 루머는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해명과 사정당국의 수사에도 헛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오히려 기업의 강력 대응이 소문의 확대 및 재생산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것이다.

M&A 정보전 악성루머 진압반

한 재계관계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짜임새를 가진 확인되지 않은 첩보 수준의 ‘찌라시’ 정보들은 금세 입소문을 타게 된다”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럴듯한 출처와 여러 정황까지 연계되는 등 더욱 부풀어지면서 루머가 아닌 사실로 대중들에 인지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시중에 루머가 떠돌기 전 차단하거나 이미 나돌았다면 꼬리를 자르는 것이 급선무라고 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따라서 기업들은 사전 위기관리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사내 부서에 별도로 정보팀을 두고 있다. 이 정보팀에서 맹활약을 하는 게 바로 국정원 출신들이다.

이들은 적게는 2∼3명에서 많게는 5∼6명으로 이뤄져 있다. 단 1명이 움직이는 기업도 있다.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정해진 방법이나 특별한 영역은 없다. 동종업계는 물론 각계각층의 동향, 나아가 특정인의 개인정보와 해외 정보까지 수집해 상부에 수시로 일일보고 하는 게 임무다.

총수일가 사고처리 전담반 노릇 하는 이들도 있어
대기업 러브콜 받으면 “국정원 연봉의 2배는 기본”


이들은 정·관계, 사정기관 등의 동태를 살피며 이들 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정보모임’을 갖고 ‘소스’를 주고받는다. 또 증권가발 정보들을 취합·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문서형식의 찌라시가 생산되기도 한다. 총수가 직접 정보맨들의 보고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재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각종 설이 난무하는 요즘엔 믿을 만한 건 자체 정보밖에 없다”며 “사실 여부를 떠나 작은 루머와 정보에 큰 기업이 쓰러질 수도 일어설 수도 있는 만큼 국정원 출신 정보맨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정원 출신들은 언론사를 텃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각종 매체의 기자들을 통해 다양한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비교적 쉽게 캐치하려는 의도다. 무엇보다 기자들과의 돈독한 유대관계로 호의적인 기사를 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네거티브성 기사를 솎아 내거나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최근엔 시민단체를 담당하는 정보맨도 부쩍 늘어났다. 일단 시민단체의 표적이 되면 반기업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가의 녹을 먹던 국정원 인사들이 기업의 ‘보험용’내지 ‘로비용’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대기업이 ‘힘 있는’ 국정원 인사들을 앞세워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동시에 ‘전관예우’ 효과를 볼 요량이라고 지적한다.

파격적 연봉·대우 음지에서 양지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직 고위급 관료들이 대기업 고문, 이사 등 간부직으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들은 사실상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정원 출신 인사를 영입한 기업들은 이런 의혹의 눈초리를 부인하고 있다. 모 그룹 관계자는 “특별한 사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 업무와 관련한 대외적인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국정원 인사를 영입한 것”이라며 “기존에도 그룹 내 정보업무팀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특정 사안과 인사를 연관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국정원 출신들이 이 같은 시선을 뒤로 하고 대기업을 고집하는 까닭은 뭘까. 우선은 돈이다. 국정원 직원의 연봉은 국가기밀로 취급돼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기본봉급에 각종 수당이 붙는데다 일반 공무원에 비해 활동비 등 혜택을 많아 대기업 연봉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경우 그 조건은 파격적이다. 국정원 연봉의 2배는 기본이라는 게 재계관계자의 전언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메리트다. 국정원 직원은 보안과 기밀을 위해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퇴직 후에도 국정원으로부터의 관리를 받는다고는 해도 대기업 임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양지를 당당히 활보할 수 있다는 건 국정원 직원들에게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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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쿠팡 사태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뜻처럼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외교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더불어 쿠팡의 ‘믿는 구석’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을 넘어 미국 정가마저 반응하고 있는 쿠팡 사태를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온라인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가 3000만건 이상 유출됐다.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규모를 웃도는 수치였다. 지난달 28일로 쿠팡 사태는 두 달째를 맞았다. 그동안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쿠팡 사태를 언급했다. 미국 기업 방패 삼아 하지만 쿠팡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뻔뻔함’을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쿠팡 사태는 지난해 11월29일 쿠팡 고객에게 발송된 문자로 시작됐다. 문자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배송 주소록, 주문 정보 등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괜찮다고 했다. 주말 사이에 문자를 받은 고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앞서 상반기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직원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번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쿠팡 시스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는 쿠팡 사태 발생 직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쿠팡 본사 현장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쿠팡 유출 대응 범부처 TF를 구성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세청도 가세해 전방위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쿠팡 때문에 우리 국민이 걱정이 많다”며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현실화하는 등의 대책에 나서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된 기관별 업무보고에서도 쿠팡에 대한 질책을 이어갔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 하는 곳에서 규정을 어기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에 대한 처벌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전방위서 압박했는데도… 그러면서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이야기가 사실 쿠팡 때문 아니냐. 너무 가혹하고 심야 노동 때문에 많이 죽는 것 아니냐. 금지시키자는 주장도 있다”며 “새로운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 기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뿐만 아니라 쿠팡 자체를 정조준한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전방위적 공격에도 쿠팡의 태도는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정부와 논의되지 않은 자체 조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자라 실제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3000여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에 경찰 등이 반박했지만 쿠팡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쿠팡의 주장대로면 피해 규모는 1만분의 1로 줄어든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대국민 사과도 사태 발생 한 달 만에야 나왔다. 김 의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아 사과의 진정성이 바랬다. 실제 김 의장뿐만 아니라 김유석 쿠팡 부사장 등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쿠팡에서 제시한 보상안은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쿠팡은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등 총 3370만명의 고객에게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금 배상이 아니라 쿠팡, 쿠팡이츠(배달), 쿠팡트래블(여행), 쿠팡알럭스(명품)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쪼개놓은 것도 모자라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의 지급이라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도 나섰는데 심지어 사용 조건도 까다롭게 설정해 놨다. 쿠폰 사용 기간을 지급일로부터 3개월로 제한하고 도서, 주류, 상품권 등은 구매할 수 없으며, 쿠팡이츠에서 사용할 때는 최소 주문 금액 이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보상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비판했지만 쿠팡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되다 보니 쿠팡의 ‘뻣뻣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쿠팡의 ‘믿는 구석’이 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쿠팡이 그동안 정치권 인사를 영입한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언급됐다. 쿠팡은 정부 부처 출신을 많이 데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치권 인사와 쿠팡 관계자가 식사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탈당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보좌관 관련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자신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전직 보좌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쿠팡이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뻔뻔하게 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쿠팡은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도 전국에 지어놓은 물류센터가 배송 거점 역할을 하는 중이고 ‘로켓배송’이라 이름 붙인 새벽배송은 배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월 구독료 7890원의 ‘로켓와우’ 서비스는 2024년 말 기준으로 1500만명 이상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켓와우에 가입하면 무료 배송, 무료 반품은 물론 쿠팡에서 론칭한 OTT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회원 탈퇴 등으로 이용자가 감소 중이지만, 여전히 후발 주자와는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격 없이 흘러가나 실제 사건 발생 직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쿠팡에 미칠 손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언급했다. 쿠팡이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개인정보가 유출됐어도 이용자는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최근 또 하나의 의견이 더해졌다. 쿠팡이 미국을 믿고 우리나라 상황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매출 대부분을 올리고 있지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미국 기업이다. 쿠팡의 대처가 주가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사태 규모를 축소한 자체 조사 결과가 주가 방어용이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견은 최근 미국의 행보로 힘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회가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 대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외신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간 대화라는 점에서 쿠팡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뻔뻔한 태도 일관하더니 ‘믿는 구석’ 있었나 의심 <WSJ>는 관계자 발언 등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김 총리와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대화는 양국 간 무역 긴장이 정점에 이르기 불과 며칠 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대응이 주가 하락 등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 정보 근절법)과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정부와 의회 일부에서는 검열이자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비판을 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내용,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 금지 약속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표는 이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관계자를 급파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메시지가 나온 뒤 저희가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안갯속 조 장관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특정키가 어렵다”며 “그런 이유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추가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협상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승인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한 번 우리나라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셈이다. 동시에 쿠팡 사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