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장과 자원봉사자를 넘나드는최대호씨



세상이 흉흉하다. 한 학교 교장선생님이 만취해 휴대전화로 여고생의 허벅지 사진을 찍는가 하면 초등학생들에게 성추행을 가하는 교사도 있다. 그렇다 보니 교사를 비롯해 학원 강사 등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훈훈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가 있다. 학원장이자 자원봉사자로 살아가고 있는 최대호씨같은 이들이 있어서다. 지난 15일, 최씨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경기 안양시 호계동을 찾았다. 최씨가 운영하는 학원은 총 두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자칫 외양만 보면 경제력을 갖춘 학원장이 호기롭게 자원봉사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질 소지도 있었다. 하지만 최씨가 학원장이란 얼굴 이면에서 묵묵히 자원봉사를 하며 사는 것처럼 큰 현대식 학원 건물 안에 자기 삶에 떳떳한 최씨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이 뿌듯해져 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맞은 최씨에게선 기자가 상상한 그대로 사람냄새가 담뿍 묻어났다.

“누군가의 얼굴에 웃음꽃 피어날 때 가장 행복”

최씨는 1996년부터 안양에서 학원을 운영해왔다. 아무래도 학교 교사보다는 사회적 명예가 덜했지만 학생들을 교육하고 이끈다는 사명감 하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고, 그 일념으로 IMF도 넘겼다. 하지만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은 학원 선생님들과 아무리 똘똘 뭉쳐도 해결할 수 없는 산이었다. IMF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학원 운영이 사교육을 증대시켜 학교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가정의 경제를 휘청이게 한다’는 편견이었다.

일정한 기회 주고 싶어
소년소녀가장 돕기 시작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아니잖아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부에서도 대물림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판사, 의사가 나올 수 있었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요즘으로선 경제력이 없는 가정에서 용나는 일이 더욱 더 어렵기만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고 절감하면서 가난과 교육 부재의 대물림을 재현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외된 학생들을 생각하게 됐고, 이들에게도 일정한 기회를 주고 싶었죠. 그래서 불우 장학생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등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특히 2005년 저출산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던 당시 교육비가 워낙 높아 아이들을 낳지 않겠다는 말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셋째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지원하는 ‘무료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총 2백 42가정이 지원했지만 모두를 지원해줄 여건이 되지 않아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 위주로 1백1명을 선정해 지원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를 지원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죠.”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 내에서 실시한 시스템이었기에 사재(私財)를 털어 봉사한 것이지만 더 도와줄 수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최씨. 하지만 그가 그토록 안타까워하며 겨우겨우 선정해 낸 1백1명의 학생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 비록 한 달 학원비 25만원씩을 지원해주는 것이었지만 연 3백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이 가정환경이 어려워 꿈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학원이니 강의 한 번 더하는 격일 것이라 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비영리가 아닌 영리 단체로서 강사를 고용하고, 큰 학원을 운영해 나가야 하는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큰 결심이 아닐 수 없다.

“교육에는 때가 있다”는 생각 하에 가정 어려운 아이들 학원비 무료지원
편견의 눈초리, “가난하다” 속이는 이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봉사활동 할 것
난치병 환자 돕기 운동·사랑의 집짓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 통해 행복 느껴
“나보다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인생철학, 성실함으로 걸어가는 길

하지만 최씨는 오히려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면서 30년 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고, “정말 이 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제가 지원했던 1백1명 중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은행을 다니다 IMF로 실직하고 그후 재기하기 위해 사업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가 무척이나 똑똑했다는 겁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폭넓게 주어지지 못해 가슴앓이를 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마치 30~40년 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나더군요. 교육에는 때가 있습니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고 하지만 이때를 놓치게 되면 훨씬 어려운 길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의미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고, 제가 도와줄 수 있었을 땐 정말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뿐 아니다. 최씨가 실시한 ‘무료 교육 시스템’ 덕분에 ‘교육의 때’를 놓치지 않아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도 많다. 그중 한 아이는 얼마 전 만났는데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최씨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도 행복합니다”라며 최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좋은 일에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뒤따랐다. ‘무료 교육 시스템’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하는 제스처”라는 맹목적인 비난의 시선도 있었다. 이에 대해 최씨는 “그런 목적은 절대 있을 수도 없고, ‘선행은 선행일 뿐’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며 “목적을 악용하거나 보상받기를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어린 시절 기억 투영한
아이 도와줄 때 뿌듯해
오히려 최씨의 순수한 목적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학원비를 내지 않기 위해 “가난하다”고 사칭하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다는 것. 하지만 최씨는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양심의 문제다”라고 말한다. 무조건 순수한 마음에서 이뤄지는 무료 교육이기에 무료 교육을 원하는 이들이 최대한 양심적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가시 박힌 시선 속에서도 최씨는 굴하지 않고 ‘무료 교육 시스템’을 더욱 확산해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기회를 놓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데 여러 여건 때문에 생각처럼 되지가 않네요. 또 다른 학원들도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폭을 넓히는 의미에서 진짜 어려운 학생 100% 무료, 그렇지 않은 학생 50%, 교육이 어려운 학생 30% 무료 등으로 해줄 생각입니다. 그 기준을 잡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무료교육을 실시해주고 싶습니다.”
최씨의 나눔운동은 단지 학원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1년부터 난치병 환자 돕기 운동 본부에서 해마다 60~70명의 아이들을 도와왔으며, 사랑나눔연대 등에서 지원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도 하고 있는 것. 올해 4~6월까지 최씨의 손으로 수리해 준 가구만도 20~25가구나 된다. 여기에 날이 추워지기 전인 “9~10월 사이에 20~25가구를 더 수리하고 싶다”고 말하는 최씨에게 절로 탄복이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전 그저 조용히 후원을 하고 집짓기 등을 하며 동참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습니다. 대부분 지하셋방 습기가 가득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순수 도배 및 페인트칠, 싱크대 교체, 전기 수리 등의 일을 했지요. 매주 목·금·토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매일 참석하고 싶죠. 그래도 일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참석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시간이 비는 대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봉사활동…
행복한 “나의 천직”
최씨가 동참한 사랑의 집짓기 운동은 동사무소 및 복지기관의 신청을 받아 집수리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위주로 행해진다. 그러나 보증금 2백~3백만원에 월세를 내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집주인의 완강한 거부로 위기에 봉착할 때가 많다. 겨우 집수리를 해도 수리를 했다는 이유로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이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 최씨는 전한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최대한 집주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지하는 대부분 냄새가 심하고 암흑천지인 곳이 많습니다. 게다가 노인층이 많아요. 그래서 도배만 해도 새집처럼 변하거든요.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농담처럼 ‘신혼방처럼 꾸몄으니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겠다’고 말하면 웃으시는데 그럴 땐 제가 웃음을 되찾아드린 것 같아 행복합니다. 집짓기 운동을 통해 조그만 관심과 사랑만 나눠도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최씨의 인생철학은 ‘나보다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최씨 역시 살아오는 동안 고난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실’하면 언행일치가 가능하고, 인정받고 성공하길 원한다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며 좌절하지도, 주저하지도 않는다.  
인터뷰 내내 한사코 자신이 하는 일은 큰일이 아니라고 겸손함을 보이는 최씨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그 현실을 쪼개 조금이라도 남과 함께 나누려는 최씨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른 이들과 함께 웃음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는 최씨는 마지막까지 향기가 폴폴 나는 한마디를 했다.
“앞으로도 봉사활동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저의 조그마한 손길로 인해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원할 거예요.”  
늦가을, 봄꽃향기처럼 홀연 최씨의 사람향기가 퍼져나간다.

글 박형남·사진 송원제 기자 /hih122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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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