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큰 웃음(?) 선사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보온병(兵)’ 출신에서 ‘동네북’으로…‘상수스럽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만신창이다. ‘보온병’ 발언과 관련, 모진 뭇매를 맞아서다. 국민과 언론, 정치권을 가리지 않고 매서운 주먹이 날아 왔다. 동네북이 따로 없다. 어찌나 두들겨 맞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안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 안 대표를 모를 이가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보낸 가난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야간고등학교 설립과 직장생활 그리고 사법고시 합격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부친이 돌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부모가 운영하던 기와공장은 사기꾼들에게 넘어갔다. 그때부터 그의 모친은 막노동을 하며 2남3녀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5남매가 모두 장티푸스에 걸려 앓아눕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데다, 치료약도 변변치 못해 그저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친의 지극한 간호로 그의 남매들은 모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안 대표에게 지난날의 어려웠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다. 안 대표가 ‘생활형편이 나아져도 늘 검소하고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한 안 대표는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술, 친구들과 함께 대학 1학년을 보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정치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안 대표는 후일 6·3학생운동으로 불리는 한·일 회담반대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3학년 때는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 사회를 보다 주모자로 유기정학을 받았다. 또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6·8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 ‘집시법’위반으로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안 대표는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갔다. 야간 중학교를 세워 진학을 못한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은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다. 자금난으로 1년도 안 돼 문을 닫은 것.

야간학교를 청산한 안 대표는 풍한방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년 만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시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년 후, 안 대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누리게 됐다.

서울법대 진학 후
학생운동 뛰어들어

안 대표는 전주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첫 출발했고 1985년 3월부터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1987년 1월 운명적인 사건을 접하게 됐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바로 그것. 이는 23세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중 고문으로 숨진 사건이다.

당시 정권의 안보와 관련된 시국사건은 외부 압력으로 소신껏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 대표는 ‘정의에 반하여 비굴하게 사느니 명예롭게 사직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박군 사건을 처리해 나갔다. 결국 그는 진실을 밝혀냈고 6월 민주항쟁과 6·29 항복선언을 받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검사직에서 물러난 안 대표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박군사건의 영향이 컸다. 다시는 그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끝에 안 대표는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인권의 파수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94년 9월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1996년, 4·11총선에서 경기도 과천·의왕시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안 대표는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중앙 정치무대에 본격 진출하게 됐다.
이후 검사출신 의원으로서 옷로비 의혹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 국회 국정조사에 위원으로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특보와 당대변인, 최병렬 전 대표 특보단장,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7대 국회 시절 박근혜 당대표 체제 하에선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주도했던 국가발전연구회와 수도분할반대투쟁위에서 활동하는 등 비주류 반박 진영에서 박 전 대표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어 17대 대선 당시 당내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장,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 원내대표로서 18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정부조직 개편 협상을 진두지휘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안 대표는 18대 국회 출범 이후 국회의장 경선에서 5선의 김형오 의원에게 패배했지만, 2009년 5월 원내대표직에 재도전, 친이계의 지지로 두 번째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2009년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당내 무기력증을 극복하고 강한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안상수 원내대표 체제’를 재탄생시킨 것. 이를 반영하듯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여권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민주당은 6월 국회 개회의 선결조건으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했으나 안 대표는 단독국회 소집으로 응수해 야당의 등원을 이끌어냈다. 또 야당의 ‘MB악법 저지’ 공세를 뚫고 미디어법, 4대강 사업 예산안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하는 돌파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친이 강경파’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원내대표 임기말 터진 불교계 외압설은 본인에게 악재가 됐다. 이 때문에 전대 과정에서 안 대표는 ‘강경 친이의 구체제로 회귀해선 안된다’는 경쟁후보의 공격에 시달렸다. 그러나 안 대표는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당의 변화와 개혁, 화합과 상생을 내걸고 당대표가 되는 데 성공했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전국에 이름 떨쳐

하지만 안 대표는 최근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모든 것은 한편의 영상물 때문이었다. 문제의 영상물에는 지난 11월30일 연평도 피격현장을 방문한 안 대표의 황당한 실수가 담겨 있다. 안 대표가 잔해 속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보온병을 집어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라고 말한 것.

이에 네티즌들은 “안상수 매뉴얼-전쟁이 나면 군에 입대해 보온병을 들고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 들어가서 적들로부터 밥을 훔쳐 행방불명된다”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고, 안상수 대표는 보온병 포탄을 제조해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안상수 함부로 까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웃음을 준 적이 있었느냐? (안도현의 시 <연탄재> 패러디)” 등의 패러디를 쏟아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뜻하는 ‘상수스럽다’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와 함께 네티즌들은 지난 흠결까지 들춰내며 조소했다.
지난 달 29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태와 관련해 열린 토론회에서 안 대표가 “지금이라도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서라도 입대해서 같이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데 대해 “가야 할 때 가야지, 늙어서 군대를 왜 가냐”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

보온병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네티즌 패러디 봇물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 확산된 건 병역 면제 받은 때문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영결식장에 참석한 안 대표의 사진도 구설에 올랐다. 모든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거나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가운데 안 대표 홀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된 것. 이에 네티즌들은 문제의 사진을 퍼 나르며 그를 비난하고 있다.

이어 야당 의원들까지 가세하며 사태가 확산됐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이니 착각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다 구긴 체면이라 한심스럽다”며 “더욱이 연평도에 가서 안보쇼를 벌이려다 생긴 해프닝이니 더욱 무안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의 실수는 자유선진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회자됐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 의원은 “탄두가 날아오지 어떻게 탄피가 날아오는가. 고무풍선으로 보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일침했다. 105mm 포병부대 출신인 변웅전 의원 역시 “포를 쏘면 탄피는 포의 뒤로 빠지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북에서 쏜 탄피가 연평도까지 날아올 수 있는가”라며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포탄이라고 하면 보온밥통은 핵무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조롱했다.

심지어 보온병 포탄 발언은 현재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독일의 시사평론지 <포커스(Focus)> 인터넷판은 지난 2일 “여당 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포탄과 보온병을 헷갈렸다”며 안 대표가 포탄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사진을 싣고 이번 해프닝을 자세히 다뤘다. 이 매체는 “한국 여당은 북한 미사일을 보온병과 헷갈리는 바람에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며 “네티즌들은 안 대표의 인터뷰를 보며 그의 미숙한 군사지식을 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다. 하지만 사태가 종잡을 수 없게 확산된 데는 안 대표가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안 대표는 지난 1966~1967년 사이 징병검사를 기피한 뒤 1969년에는 질병으로 입영 시기를 연기했다. 또한 1970년에는 2급 입대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 대상에 포함됐으나 입영을 기피했다. 그리고 다시 안 대표는 1973~1974년에도 입영기일을 연기했는데, 당시 사유가 눈에 띈다. ‘행방불명’된 때문인 것.

군 면제 사유가 통상 질병인 점을 감안하면 안 대표의 사유는 상당히 특이하다. 이후 안 대표는 1975년 질병으로 입영시기를 다시 연기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인 1977년 무관후보생으로 편입됐으나 신체검사 및 퇴교 조치자로 입영의무가 면제된 이후 1978년 끝내 ‘고령’으로 소집 대상에서 제외돼 최종 면제 판정을 받았다.

입영 기일 연기
사유=‘행방불명’

작은 실수에서 비롯된 후폭풍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뭇매에 안 대표는 만신창이가 됐다. 어찌 됐든 간에 이제 대한민국엔 그를 모를 이는 없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안 대표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특검 정국과 검사들 동향

특검 정국과 검사들 동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전 정부를 겨냥한 3대 특검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정부에서 계속 거부되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 첫 법안이 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특검 3개가 동시에 출범하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검찰에게 독이 될지, 정부에 독이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승인한 1호 법안이 3대 특검이 됐다. 헌정사상 최대 규모의 특검 수사팀이 구성될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는 오히려 특검을 반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수사력을 보여줄 기회이자 최근 검찰 출신을 반기지 않는 로펌으로의 이직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직이냐 영전이냐 이재명정부 출범 이틀 만에 전임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사정 수사에 발동이 걸렸다. 국회는 지난 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한 3개 특별검사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윤석열 내란·외환행위 진상규명 특검(내란 특검)’ ‘김건희 국정 농단 및 불법 선거개입 특검(김건희 특검)’ ‘순직 해병 수사방해 특검(순직 해병 특검)’ 등 3개 법안을 각각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부결’ 당론을 정하고 집단 퇴장했지만 안철수·배현진 의원 등 5~6명이 각각 이탈해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지난 10일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등 3개 특검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특검이 출범한다. 윤정부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특검 3개가 동시에 수사에 나서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가 끝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윤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 관련 전반을 수사하게 될 ‘내란 특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명품백 수수·불법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다룰 ‘김건희 특검’, 그리고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및 은폐 의혹을 규명할 ‘순직해병 특검’이 출범하게 된다”며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으로,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어 “내각 구성원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 심의와 의결을 마쳤다”며 “이재명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거부권에 막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던 국회의 입법 권한을 이제 다시 국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고자 한다”며 “이번 특검을 계기로 국민 여러분께서 바라시는 진실이 민주주의 원칙 아래 투명하고 소상하게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날 회의에선 3개 특검법을 포함한 법률안 공포 4건, 대통령령 3건, 일반 안건 1건이 심의 및 의결됐다”고 말했다. 특검 규모에 대해서는 “내란 특검법 최대 267명, 김건희 특검법 최대 205명, 순직해병특검법 최대 105명의 수사 인력이 배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선 후 1호 법안으로 의결 검사만 120명·총 수사팀 577명 이어 “순직해병특검법은 최장 140일, 나머지 두 특검법은 최장 170일까지 수사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강 대변인은 “이재명정부가 1호 법안으로 특검법 3개를 심의·의결한 것은 대선으로 확인된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원하는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조치”라고 언급했다. 이번 3대 특검에서는 전례없는 규모의 특검이 가동될 예정이다. 파견 검사의 수만 해도 120명으로 전체 검사 인력의 6%에 달한다. 내란 특검의 경우 60명, 김건희 특검 40명, 해병대원 특검은 20명에 달하는 검사가 파견될 예정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파견 검사(20명)의 6배 수준이다. 전체 수사 인력은 577명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내란 특검은 특검 1명, 특검보 6명, 파견 검사 60명 등 총 267명으로 구성된다. 김건희 특검은 특검보 4명, 검사 40명을 포함해 총 205명, 채상병 특검은 특검보 4명, 검사 20명 등 총 105명 규모다. 특검별 수사 기간은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해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이 최대 170일, 채상병 특검은 최대 140일로 규정돼있다. 늦어도 오는 7월 중순에는 각 특검 사무실이 출범해 연말까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특검법 공포 전부터 특검 후보를 물색하고 후보자들에 연락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 수사팀장은 통상 부장검사, 특검보는 차장검사, 특검은 검사장급 인사가 맡는다. 하지만 ‘최순실 특검’ 당시 수사팀장을 차장급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 맡은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특검 역시 사건 성격과 수사 난이도에 따라 유동적인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란 특검은 파견 검사 수가 많아 복수의 차장급 간부가 함께 투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 파견 검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너무 많은 인력들이 특검에 몰려 주요 수사가 불가능해 민생 수사에 위험이 된다는 입장이 나온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최대 6개월에 가까운 기간에 서울남부지검 검사 수(107명)보다 많은 검사들이 3개 특검에 투입되면, 검찰의 주요 수사가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관련 특검에 기존 수사팀이 합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문제는 해당 부서가 맡고 있는 사건이 특검에 속한 사건 외에도 많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인원으로 부서를 다시 꾸린다고 해도 수사기록을 훑어보는 데 시간이 더 걸려 수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한 검찰 수사관은 “특검팀으로 파견되지 않으면 남은 사람들이 산적해 있는 모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업무가 과중돼있는 상황이라 ‘차라리 특검으로 파견을 가서 원활하게 수사하고 싶다’는 의견이 수사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 난이도 유동적 인선 한 부장검사는 “특검으로 지정된 사건의 규모가 만만치 않기에 수사 베테랑이 파견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수사 지휘부는 물론 베테랑도 일선청에 남아있지 않아 수사를 하더라도 미흡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검을 경험한 적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검에는 한창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검사들의 파견된다”며 “하나의 특검만 시작하더라도 일선청에서는 업무과중이 일어나는데 3개의 특검, 특히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3개의 특검을 한번에 하는 것은 검찰을 완전히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특검을 통해 수사력을 인정받아 새롭게 개편되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에서 영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검에 파견되는 검사들은 수사력을 인정받았다. 성공적인 특검으로 평가받는 ‘ 드루킹 특검’의 허익범 전 특검도 “수사 검사가 특검 성공의 기본”이라며 “가장 정치적인 사건을 비정치적으로 풀어야 하기에 무엇보다 수사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 검찰 특수부 소속 평검사는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으로 파견 요청이 온다는 것은 지휘부에 수사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라며 “평검사들 사이에선 ‘파견 이후 특검 지휘부에 수사력을 인정받으면 이후 중수청에서 더 기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윤 전 대통령이 문재인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을 잘 이끈 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으며 그와 같이 수사팀에서 근무했던 검사들도 한 자리씩 꿰찼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차장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기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같은 경우 지검장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도 특검에서 수사력을 인정받고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특검은 지난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보다 파견 검사가 많아 수사력뿐만 아니라 지휘력까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휘부 눈도장 부장 및 차장급 검사들은 특검과 더불어 이직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윤정부 들어서 로펌으로 이직이 잦던 검사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이후 검찰을 퇴직하더라도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거나 기업의 법무팀으로 이직하는 것 외에는 법조계에 남을 방도가 없던 검찰 간부들이 특검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이직해 검찰개혁을 피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복수의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특검이 진행되는 동안 겸직과 영리행위가 금지돼있는 만큼 특검 이후에는 돌아갈 검찰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로펌들은 이 때를 위해 실력있는 검찰 출신 법조인을 로펌으로 데려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10대 로펌 소속 변호사는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며 “3대 특검에 검찰만 다수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로펌 업계에서도 다수 파견을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자리가 없다며 이직을 받아주지 않던 로펌들이 문을 열고 다른 사건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검찰 출신 인재 스카우트 제의도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건희 특검의 경우 기업 사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기업이 신속하게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최근 동기들에게 기업 법무팀 이직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이 늘었다”라며 “이재명정부가 나온 후 공정거래위원회 인력 충원,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과 관련된 법안을 손보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상황에 기업은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김건희 특검에서 기업 사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권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3대 특검을 지휘할 특별 검사는 지난 13일에 지명됐다. 3대 특검을 지휘할 특별검사는 ▲내란 특검은 조은석 전 감사원장 권한대행 ▲김건희 특검은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채상병 특검에는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이 지명됐다. “민생 수사에 차질 있어” 검 개혁과는 모순적 태도 조 특검은 박근혜정부 당시인 2014년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세월호 참사 검경 합동 수사를 지휘했고, 문정부에서 서울고검장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냈다. 윤정부 때 감사원 감사위원 시절에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가 ‘표적 감사’라며 제동을 걸었고, 감사원의 대통령 관저 비리 의혹 감사 결과가 부실하다며 재심의를 주장하는 등 전 정권과 대립했다. 민 특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문정부 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건 조사를 주도했고,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이 특검은 군법무관 출신으로, 2022년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장남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한 이력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 인력으로 신속한 수사 착수와 효율성을 위해 기존 수사팀 인원과 특수통 출신 검사 차출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3대 특검은 수사팀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음 달 초에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각 당 추천 후보자 중 1명씩을 임명하는 시한은 3일 이내인데, 추천 당일 즉시 지명을 완료함에 따라 3대 특검팀 출범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면서 전 정권 수사엔 검사를 쓰겠다는 모순적 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안팎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을 없애겠다고 외치면서, 정치적 성과가 필요한 수사에 검사를 끌어다 쓰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 10년 차 검사는 “이재명정부가 검찰청 문을 닫겠다고 하는데 직장을 잃게 생긴 검사들이 특검에 들어가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있는 한 부장검사도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상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수사이다 보니, 선뜻 특검에 가겠다는 검사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부부장검사도 “굳이 특검에 발을 담가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육아휴직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당시 검찰에 재직했던 한 변호사는 “과거 특검팀은 검찰총장에게 편지까지 써가며 수사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젊은 검사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개혁과 수사를 동시에 하겠다고 하니, 후배 검사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에 참여” 젊은 검사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의 칼이 이정부에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정부 시절 전 정권 수사를 이끌었던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2019년 ‘조국 사태’를 집중 수사하며 정권에 맞선 것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차장검사는 “전 정권 수사와 검찰개혁을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며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수사도, 개혁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게 되면, 결국 특수부 검사들의 힘이 훨씬 더 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