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4) 권총 탈취

일본서 의기투합…계획대로 ‘척척’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새벽 2시 무렵 정동일이 어둠 속에서 오사카 미나미 경찰서 다까즈 파출소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난 저녁 무렵 활발하게 움직였던 파출소 내부의 움직임이 자정이 가까워지자 뜸해지기 시작했고 두 시경이 되자 적막감이 돌 정도로 한산했다.

그를 살피며 품속에서 검정색 마스크를 꺼내 쓰고 저만치 앞에, 역시 어둠속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차주선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서서히 파출소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오사카 외곽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음식점 밀실에서 정동일이 차주선을 만났다. 이제 일본에서의 일을 서서히 정리해야 할 시점에서 최종 점검할 요량으로 동일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회합이었다.

“문석원의 심리상태는 문제없습니까?”

“얼마나 심하게 다루었든지 오줌까지 지렸다 합니다. 그 일로 풀은 죽었지만 앞으로 진행될 사건에 대해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동일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렇다고 의지까지 꺾어버린 건 아니겠지요?”

“지금 그 부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또 스스로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습니다.”

“비자야 제 손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고. 그러면 이제는 권총만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그 문제로 즉 총기 문제 때문에 저 역시 정 팀장을 만나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유로…”

“그 일을 문석원에게 맡겨 보고픈 생각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문석원의 정신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직접 권총을 구하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일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가볍게 고개 저었다.

“문제 있습니까?”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말씀주시겠습니까?”

“먼저 문석원의 정신교육이 확고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 권총 탈취를 기회로 스스로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즉 그 과정에서 일부러 검거되어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주선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다음은 문석원이 정말로 일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을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라도 그 친구가 자력으로 권총을 탈취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직접 경찰서 혹은 파출소에 들어가서 탈취해야 하는데 그 친구에게 그게 가능하겠느냐 이겁니다. 아울러…”

“말씀하시지요.”

“차 사장, 우리가 원하는 건 프로가 아닙니다. 그저 일시적인 꼭두각시를 원할 뿐이지요.”

“하긴 그렇지요. 행여나 정말로 프로라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요.”


“당연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의 상태, 그저 객기만 앞세우는 20대 초반의 좀 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함이 가장 이롭지요.”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렵니까?”

“제가 움직여야지요.”

“정 팀장께서?”

주선이 마치 이외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왜요, 그러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뭐 그런 일까지…”

동일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차 사장, 지금 이 일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떠나서 사장님과 제 운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주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사건에서 총기의 출처가 어디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차 사장께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야 이를 말입니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오히려 제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건만.”

차주선이 송구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마주잡고 비벼댔다.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여하튼 일전에 말씀하셨듯이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이 자리를 파하고장소를 한번 물색해보지요.”

차주선이 잠시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어디로 정하려 합니까?”

“오사카에서 찾아보아야겠지요?”

파출소 잠입 총기 탈취 성공
의문점 남는 납치의 전말은?

“굳이 오사카에서 취하려는 데에는 그 사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문석원과 연계시키고자 한다면 오사카 지역이 알맞습니다. 다른 곳에서 일을 벌이면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만. 결국 그렇군요.”

“그래서 한번 차 사장과 함께 이곳에서 장소를 물색해보려 합니다.”

주선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를 표했다. 이어 의기투합된 두 사람이 곧바로 자리를 파하고 차주선의 차에 올랐다.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요?”

“문석원이 거주하는 곳이 오사카의 동쪽이니만큼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지요.”

주선이 남쪽을 되뇌며 액셀을 밟았다.

“가급적이면 혼란한 곳 보다 한산한 곳이 좋을 터인데.”

“오히려 그 반대 아닙니까. 혼란한 틈을 타서.”

주선이 순간적으로 동일을 향해 고개 돌렸다.

“혼란스러우면 자신의 총기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지요. 행여나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니까요.”

주선이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살피던 동일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일어났는지 한 방향을 주시하며 그리 차를 몰도록 주문했다.

“깜박했습니다. 마침 적당한 파출소가 있는데 그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디입니까?”

“다까즈 파출소라고, 일전에 일이 있어 들러봤는데 괜찮을 듯합니다. 일단 가서 한번 관찰해봅시다.”

주선이 동일이 일러주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 가기를 잠시 후 한적한 곳에 아담한 파출소가 시선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승용차 안에서 파출소와 주변 정경을 훑어보았다. 주변에 여러 가구가 배치되어 있건만 공허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해 보였다.

“역시 정 팀장의 안목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잠입해서 권총을 탈취할 계획입니까?”

“이제 사장님과 함께 구상해봐야겠지요.”

동일이 파출소 후문으로 접근했을 시점에 주선이 당당하게 파출소 앞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어 근무 중인 경찰관 두 명과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살피던 동일이 품에서 만능열쇠를 꺼내 조심스럽게 문을 땄다.

발소리를 죽여 앞으로 나아가기를 잠시 저만치 앞에서 경찰들과 담소를 나누는 주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동일이 다시 파출소 내 당직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칠흑의 어두움 속에서 숨소리만 흐릿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의 관찰을 통해 파출소 저녁 근무가 2인 2교대로 진행된다는 사실 그리고 전반 근무조는 열 두 시 이후 당직실에서 취침에 들어간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던 터였다. 하여 그 틈을 노리기로 하였고 행여나 근무조들이 인기척을 느낄까봐 주선으로 하여금 그들의 시선을 끌기로 했던 터였다.

당직실의 문을 닫은 동일이 볼펜처럼 생긴 초소형 손전등을 손으로 가리고 켜서 바닥을 향하도록 했다. 손바닥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에 희미하게나마 방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멀지 않은 다다미에 두 사람이 누워 있었고 그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옷걸이에 권총 두 정이 사이좋게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다가선 동일이 걸려 있는 두 자루의 권총집을 풀어 역시 미끄러지듯이 방을 벗어나서는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서자 주선이 아직도 경찰들과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선에게 눈짓을 주면서 신속하게 파출소를 벗어나 차로 이동했다. 오래지 않아 주선도 소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차로 돌아왔다.

“천천히 움직이지요.”

동일의 제안에 주선이 이동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동일을 주시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리 쉽게 파출소에서 권총을 한 자루도 아닌 두 자루씩이나 훔쳐낼 수 있습니까?”

동일이 손에 들려 있는 권총을 미리 준비해간 가방에 넣으면서 미소를 건넸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일도 아닙니다.”

“하긴, 그러니까 백주에 도쿄 한복판에서 윤대중도 그렇게 감쪽같이 납치할 수 있었겠지요.”

“허허, 차 사장께서 너무 비약하십니다.”

“그러면 아닙니까? 윤대중을 납치한 일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특히 정 팀장께서….”

주선이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자 동일이 방금 나온 파출소를 주시했다.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니라고도 말씀 못 드립니다.”

동일이 말을 마치고 야릇한 미소를 짓자 주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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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