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정국 정점에 선 김준규 검찰총장

정권의 시녀인가 정의의 사도인가


최초 대기업을 덮치는 듯 했던 사정 바람이 돌연 진로를 바꿔 정치권에 불어 닥쳤다. 난데없는 급습에 정치권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검찰과 일전을 불사할 기세다. 이례적으로 여야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들이 치켜든 총부리가 향한 곳은 바로 김준규 검찰총장. 태풍의 핵에 서있는 그의 신상을 파헤쳐 봤다.

검찰 내에서 최고 ‘국제통’ ‘기획통’으로 꼽혀
검찰 급습에 정치권 ‘발끈’…탄핵론까지 제기

서울서부지검의 한화·태광그룹 수사, 대검 중수부의 C&그룹 비리수사로 이어져온 사정 바람이 갈수록 세력을 키워가는 가운데 이번엔 정치권 한복판에 불어 닥쳤다. 그 태풍의 핵에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있다.

사정 바람
정치권 급습

그는 검찰 내에서 최고의 ‘국제통’ ‘기획통’으로 꼽힌다. 김 총장이 국제통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1998년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을 지내면서부터다. 이때 외교관 경험과 국제적 감각을 갖췄으며, 영어 구사력면에서 검찰 내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8월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김 총장은 검찰에서 근무하는 동안 주로 ‘외국의 검찰 운영’과 ‘수사 기법’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가 기획통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토대로 사법 선진국의 앞선 제도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고, 한국 검찰에 도입해 법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김 내정자는 조용하고 성실하면서도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윗사람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는 곧은 자세와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김 총장과 정치권의 전쟁이 터진 것은 지난 5일 검찰이 청목회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에 들이닥치면서다. 검찰의 ‘급습’에 정치권은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검찰을 나무랐고, 야당에선 탄핵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민주당은 이날 손학규 대표 긴급기자회견, 긴급최고위원회의, 비공개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검찰 국회탄압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소속 의원 전원에게 주말 비상대기령도 내렸다. 이어 지난 8일엔 ‘검찰의 국회말살 규탄대회’를 열고,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5당 원내대표 회담을 통해 공동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손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압수수색은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정치를 말살하고자 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압수수색은 국회의원을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려고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추잡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검찰의 느닷없는 압수수색이 ‘대포폰’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와 함께,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와 관련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춘석 대변인은 “대포폰 의혹 수사는 제대로 못하면서 왜 칼날을 돌리느냐”며 “대포폰을 견제하기 위한 술수로 국회의원을 탄압하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개인 성명을 내어 “검찰의 폭거가 민간인 사찰과 대포폰 의혹의 핵심인 청와대를 감싸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의회주의 파괴의 당사자인 검찰총장을 탄핵할 것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이날 성명을 내어 “특별히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필 본회의 대정부질문 중에 일시에 압수수색을 벌인 것은 분명히 과잉수사”라고 꼬집었다.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정면 돌파 주문
정치권·검찰의 전쟁은 김 총장의 ‘도전’이기도

정치권의 검찰에 대한 비판은 지난 10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 대정부질문까지 이어졌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청목회가 다수 명의로 위장해서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게 검찰의 논리”라며 “로비를 했다고 치자, 급여를 올리고 정년을 연장했다고 치자, 그래봐야 15년 근무에 월급 4만 원 올라가는 것인데 과연 죄가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김 의원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대변자를 찾아다니며 호소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라며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포폰’ 사건
덮으려는 의도

또 김 의원은 “이미 힘센 자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 로비를 하고 있다”며 “그런데 검찰은 거꾸로 힘센 사람만 살아남고 약한 자는 다 죽어야 하는 세상으로 가자고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들은 어디에 가서 호소를 하겠느냐”고 성토했다.
김 의원은 “압수수색을 당한 11명의 동료의원들은 우리를 대신한 희생자”라며 “이 참담한 순간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부 전원이 하나가 되어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검찰의 저 무도한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수수색을 당한 당사자이기도 한 최규식 민주당 의원은 “청원경찰법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시대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이라며 “배부른 자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법도, 밀실타협에 의한 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그래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본회의에서도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가결됐다”며 “소액 후원금이어서 대부분 알지도 못했는데, 검찰이 이를 대가성으로 몰아간다면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여지없이 침해당하고, 국회의 존립 근거마저 흔들리게 된다”고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은 부실수사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민간인 사찰파문을 언급하며 “대포폰을 개설한 청와대 행정관을 검찰은 소환하지도 않고 출장조사했다”며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도 압수수색하라, 과연 시도라도 했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김정권 의원은 “검찰은 온 국민을 향해 국회의원들의 범죄를 확인한 것처럼 떠들었다”며 “비겁하게 언론 뒤에 숨어 확인되지도 않은 일을 질질 흘리는 일은 엄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정치권의 반발에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적극 진화에 나섰다. 이 장관은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청목회 사건은 다른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끝내도록 지시하겠으며, 후원금 전반으로 수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압수수색이 국면전환용 아니냐는 질문에도 이 장관은 “검찰이 국면전환용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그런 취지는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압수수색은 검찰이 독자 판단했고 수사상황에 따라 필요성이 있어 검찰이 정상적 절차를 거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김 총장의 경우, 빗발치는 정치권의 비난 속에서도 “이럴 때일수록 의연히 대처하라”며 검찰의 정면 돌파를 주문했다. 김 총장은 이어 “검찰은 수사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칫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 외압 등에 영향을 받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와 경계를 나타낸 것이다. 동시에 원칙대로 성역 없는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수사는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까지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는 검찰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지난 정권초기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선후보의 목 아래까지 칼끝을 들이댔던 대선자금 수사 정도가 비슷한 사례다.
하지만 당시 검찰에게는 ‘깨끗한 정치를 위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반면, 이번 청목회 수사는 그때만큼 명분을 갖췄다고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번 수사는 ‘민간인 사찰 의혹’과 ‘대포폰’ 사건을 덮기 위해서라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수사할 만큼 했다”며 버티고 있지만 여론은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검찰의 해명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이 시점에 이런 ‘모험’을 감행한 것일까.

이에 대해 검찰은 “구속된 청목회 관계자들 기소시한이 며칠 남지 않아서였다”고 말한다. 수사논리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 이후 바닥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제 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다른 집단보다 정치권을 우선 타깃으로 택하게 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한편으로는 정치권과 검찰의 전쟁은 김 총장의 ‘도전’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9월 도덕성 문제로 천성관 총장내정자가 낙마하는 등 검찰조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와중에서 취임해 1년여 동안 수사다운 수사를 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스폰서 검사’ 사건이 불거져 나오면서 검찰 전체의 도덕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때문에 그는 올 6·2지방선거 이후 내년까지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을 거론하며 수차례에 걸쳐 “상처받은 검찰의 자존심과 땅에 떨어진 국민신뢰는 수사로 회복해야 한다”고 일선검사들을 독려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각급 검찰청에 “수사상황을 나에게 직보해도 좋다”며 일선 사령관 역할을 자임했다고 한다. 서울서부지검과 서울북부지검 등이 통상적인 보고라인인 대검 중수부를 거치지 않고, 총장에게 직보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윗선수사 외면
국민들 눈총

현재 일각에서는 김 총장이 지휘봉을 제대로 휘두른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검찰의 정치권 압박을 통쾌해할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권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민간인 사찰의 ‘윗선’수사는 외면하는 모습을 곱게 볼 리는 없기 때문이다.

김준규 검찰총장 프로필

2009 제37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2009 제17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국제검사협회의 집행임원
2008 국제검사협회의 아시아지역 대표 부회장
2008 제21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2007 제51대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2006 법무부 인권국장 직무대리
2005 법무부 법무실 실장
2004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2003 수원지방검찰청 1차장검사
2002 인천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2001 창원지방검찰청 차장검사
2000 서울지방검찰청 형사2부 부장
2000 서울지방검찰청 형사6부 부장
1999 법무부 법무심의관
1998 법무부 국제법무과 과장
1997 수원지방검찰청 형사3부 부장
1995 인천지방검찰청 공판송부 부장
1994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93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1993.03~1993.09 제28대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 지청장
1991 서울지방검찰청 고등검찰관
1984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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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