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보다 무서운 어린 포주들 천태만상

가출 여학생 모텔로 밀어넣고 ‘벗어!’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가출한 10대 여성 청소년을 유인해 성폭행한 후 성매매 시킨 10대 포주들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을 먹잇감 삼아 돈을 갈취하는 조폭 어른 포주들의 범죄도 잇따라 발생하면서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어른보다 무서운 10대 포주들의 범죄 행각을 살펴봤다.

지난 4일, 울산지방경찰청에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로 10대 청소년 2명을 포함한 일당 6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지난해 8월 가출한 자매 A(14)양과 B양(18)을 비롯한 10대 가출 여학생 6명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모텔로 유인한 후 성폭행했으며 스마트폰 채팅어플을 통해 1200여회의 성매매를 알선했다. 여학생들이 성매수 대가로 받은 화대 1억8000여만원을 갈취했으며 상습적인 감시와 폭행을 일삼아온 것으로 경찰은 설명했다. 일당은 울산 지역의 조폭 이모(30)씨가 성매수남으로 위장해 성매매 알선을 고발하겠다고 협박, 600여만원을 갈취하면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290건 
70%가 미성년자

지난해 4월 가출한 C(18)군과 D(13)양은 가출팸으로 만나 찜질방과 모텔을 전전하다 생활비가 떨어져 오갈 데가 없어지자 C군이 D양에게 성매매를 제안했다. 1년여간 부산 및 경북지역에서 성매매 활동을 해온 C군과 D양을 성매수자 E(21)군 등 일당 4명이 유인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 200여만원을 갈취했다. 부산사상경찰서는 지난 3일, E군 일당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C군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구속했다.

가출 여성 청소년들을 감금한 후 지방 대도시를 돌며 성매매를 시킨 박모(21·여)씨 등 일당 6명도 지난달 22일 서울경찰청에 의해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올해 3월부터 스마트폰 채팅어플에서 성매수남으로 가장해 17세, 18세 여성 4명에게 접촉, 가출팸을 구성한 후 지방 대도시에서 성매매 알선을 해왔다. 가출 여성 청소년에게 하루 최소 4번, 성매매 한 건당 13만∼14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게끔 강요하고, 이를 채우지 못할 시 부족금을 강탈하고 폭행했다.

박씨는 가출팸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나머지 남성 5명은 포주 및 감시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당은 모두 21세 동갑내기로 천안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후 친구로 지내던 사이로, 동종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가출팸 멤버 한 명이 탈출하자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 고향으로 피신했다가 경찰 수사로 붙잡혔으며, 성매매 청소년 4명도 함께 구속됐다.


청소년 성매매 배후 잡고보니…무서운 10대
스마트폰 채팅어플로 접근해 사지로 내몰아

지난달 7일, 전북지방경찰청은 조건만남을 미끼로 성매수남의 금품을 갈취한 10대 일당 6명을 붙잡았다. 18세 여학생으로 구성된 이들은 스마트폰 채팅어플로 성매수남을 모집, 고발 협박으로 남성 15명으로부터 900여만원을 뜯어내는 등 꽃뱀과 포주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저질러왔다. 전북지방경찰청은 포주 F양을 구속하고, 범행에 가담한 일당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대 여성을 6개월간 감금한 후 성매매를 시킨 20대 남성 김모(23)씨와 10대 동거녀 문모(19)씨가 지난 5월8일 경기시흥경찰서에 붙잡혔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경기도 시흥 소재 자신의 빌라에 G(20)양을 감금하고 400여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알선해왔다. 또 화대 5000여만원을 갈취해왔으며 협박 및 폭행도 일삼아왔다.

G양이 성매매로 임신까지 하게 되자 빌라에서 도망쳐 나와 어머니와 함께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게 됐다. 경찰은 동거녀와 짝퉁 지갑 사업을 하기 위해 G양을 납치·감금·성매매 알선을 해왔다고 경찰에 진술한 김씨를 구속하고, 임신 중인 문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G양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세 가출 여학생 2명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성매매를 알선한 장모(17)군 등 일당 5명이 지난 3월 구속됐다. 지난 1월 중순부터 10여일에 걸쳐 하루 2~3차례씩 성매매를 알선해왔으며,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일본에 팔아 넘기겠다”는 협박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 일당은 여학생들에게 성매수남의 현금 및 휴대전화를 훔치라고 지시하기도 했으며, 성매수남의 현금 도난 신고에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21일, 울산포항경찰서도 4개월 동안 14·17·19세 가출 여학생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박모(27)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씨는 지난 4월부터 가출팸 여성들을 대포차에 태워 김해·포항·진주 등을 돌며 스마트폰 채팅어플로 성매매를 알선해왔다. 성매매 한 건당 매수비 15만원 중 5만원을 챙기는 포주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경찰조사에서 “내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냐?”며 뻔뻔한 모습을 보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성매매 알선 10대 포주들의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승희 민주당 의원실은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성매매사범 연령별 사범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성매매사범이 2008년 4만7869명에서 2012년 2만903명, 2014년 2만4455명으로 줄어든 반면, 20세 이하 성매매사범은 2008년 871명(1.82%), 2012년 1094명(5.23%), 2014년 1290(5.27%)로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0세 이하 성매매사범은 2010년 대비 2.4배나 증가한 셈이다. 18세 이하 성매매사범은 2008년 388명(0.83%)에서 2012년 541명(2.59%)으로, 19세~20세 성매매사범은 483명(1.01%)에서 553명(2.65%)으로 증가했다.


하루 최소 4번
건당 13만∼14만원

유의원은 자료를 공개하면서 “청소년이 성매매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중·고교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을 제대로 시행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범으로 단속된 청소년에 대해서도 현장 전문가들과의 상담 연계·교육 등을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20세 이하 청소년 성매매사범 건수가 유독 증가한 것은 실제 현장에서는 청소년에 의한 성매매가 대폭 늘어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복준 전 동두천경찰서 수사과장도 YTN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 알선 범죄에서 10대 포주 범죄가 70%가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경찰서에 접수된 13~18세 가출 신고 건수는 1만1279건이나, 가출청소년의 규모는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4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추산되는 가출청소년의 규모는 남성 16만명, 여성 23만명으로 39만명이다. 가출 여성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생활비를 벌고자 성매매로 뛰어들고 있어 성매매사범은 경찰 조사 수치의 수십배에 달할 것이라는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201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생한 가출 청소년의 범죄는 17만1127건으로 주로 절도(36.3%), 폭력(27.4%), 사기 및 횡령(10.9%)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단체는 가출청소년의 주요 범죄유형이 남성 청소년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여성 청소년의 경우 절도나 사기 및 횡령보다 불법유흥업소(가요주점, 오피스 등) 취업 및 스마트폰 채팅어플을 통한 성매매가 높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찰청이 60만명 회원이 가입한 한 스마트폰 채팅어플을 조사한 결과, 한 달간 ‘조건만남’ ‘원조교제’ 등으로 메시지를 전송한 성매수남이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수남의 규모 이상의 성매매 알선자 및 성매매 여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스마트폰 채팅어플 운영 업체는 안드로이드, 구글플레이 등을 포함해 100여개 업체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성폭행…그리고 성매매 알선
대부분 미성년자 상대 ‘조건만남’

여성단체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부모 및 후견인 동의 없이 아르바이트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 가출 여성 청소년들이 성매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소년범죄 중 절도와 사기 및 횡령, 성매매가 높은 이유가 여기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단체는 “가출 여성 청소년들이 여전히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에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곳이 성매매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근로기준법 제66조(연소자증명서)에서는 ‘사용자는 18세 미만인 자에 대하여는 그 연령을 증명하는 가족관계기록사항에 관한 증명서와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서를 사업장에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 않은 미성년자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데도 제약이 따라 편의점·PC방·일반 식당 등의 청소년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성인은 줄고
아이는 늘고

여성인권상담소는 “가출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성매매하다 임신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하며 가출청소년에 대한 보호시설 마련이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가출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보호시설, 청소년쉼터는 전국 119개소로 수용인원은 1200여명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가출청소년 추산 대비 0.3%, 가출청소년 1000명 중 3명만이 청소년쉼터에 머무르는 셈이다. 청소년쉼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쉼터에 머물지 못한 가출청소년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및 밀집지역에서 가출팸을 모집해 숙박을 모색한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에는 해당 커뮤니티 카페나 스마트폰 채팅어플을 통해 숙식제공자를 모집, 이 과정에서 성매매 알선자 및 매수자와 접촉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가출청소년들의 커뮤니티 카페 ‘가출한사람들의놀이터’(회원수 5134명, 8월13일 기준) ‘일행구해요’ 카테고리에서는 금전 및 숙식 제공하는 도움 제공자의 글이 하루 40여건이나 게시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우발적인 가출이 많다”며 “청소년쉼터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안정을 찾은 후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속의 가출청소년들에게 청소년쉼터는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라 안타깝다”며 “정부 예산 확대 방침에 따라 청소년쉼터 증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다양한 가출청소년의 지원사업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남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소장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쉼터는 가출 여성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아이들이 편안하게 머물 만한 쉼터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조건만남은 가정폭력과 방임을 못 견뎌 가출한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위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 청소년들의 보호처분에 대한 처벌 피해 의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매매 알선자 및 성매수자들이 이를 악용해 신고를 못하도록 협박하거나 상습적인 성폭행을 하기도 해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다. 이에 청소년 성매매 피해 전문 상담소가 설치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숙식 어려워
성매매 자청?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도 <여성신문> 인터뷰를 통해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 체계가 빈약하다”며 “심지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피해 전문 상담소는 전국에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검찰과 경찰 수사 과정 시 안전하게 지원받을 수 있고, 재유입을 방지할 수 있는 통합지원 서비스가 제공하는 상담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한국소년정책학회는 ‘아동·청소년 성매매 지원 대책의 효과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매의 증가는 죄의식 약화(78.5%), 기업화 및 조직화(45.8%), 포주 및 보도방의 부활(13.3%) 등으로 분석된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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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