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르포> 요즘 뜨는 ‘허그방’ 가보니…

  • 최용환 cyh@ilyosisa.co.kr
  • 등록 2014.01.02 10: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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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만 출입한다고? 외로운 기러기아빠들 “만져주세요”

[일요시사=사회팀] ‘키스방’ ‘유리방’ ‘귀청소방’ 등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정체불명의 간판을 내걸고 유사성행위를 하는 업소들이다. 이러한 신변종 유해업소들은 단속망과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여전히 성행 중이다. 최근에는 ‘허그방’이 외로운 남자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허그방’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남자들이 외로움을 달래는 곳으로 알려진다. 경기도 일대에서 성업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방 이름 그대로 주 스킨십은 포옹이다. 이 같은 유사성행위 업소는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는 현장을 적발하지 않는 이상 처벌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대낮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낮부터 새벽까지, 허그방 안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외로운 사람들이
자주 찾는 ‘힐링박스’

키스방은 과거부터 성행해 익히 들었지만 허그방은 조금 생소했다. 그렇지만 키스방이 키스만 하지 않듯이, 허그방도 포옹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그 실태를 알아보고자 미리 예약을 하고 지난 23일 인천에 있는 허그방을 찾았다. 인근 지하철역에 도착해 업주에게 전화해 자세한 위치를 물었다. 업주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길을 걸어 도착해보니 즐비한 술집들 사이에 수줍게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건물 4층으로 올라갔다.

허그방 문 앞에는 ‘벨을 눌러주세요’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었다. 문구에 따라 순순히 벨을 눌렀다. 그러자 한 남성이 응답했다. “저번에 전화하고 오신 분이죠? 추우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벨을 누르고 입구에 들어서자 슬리퍼 여러 켤레가 정돈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허그방 업주는 신발장 앞까지 나와 손을 내밀어 반갑게 맞이해줬다. 업주는 헬스장 트레이너처럼 몸이 건장했다. 순간 헬스장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포스가 남달랐다.

“금방 잘 찾아오셨네요. 신발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세요. 가격은 말씀드렸다시피 30분에 4만원이고요. 선불이에요. 시간 추가 시 미리 말씀해주세요.” 안내에 따라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서 있는 업주 뒤에는 ‘사업자등록증’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찬찬히 둘러본 결과 낯선 여성과 포옹이 이루어지는 방은 총 8개였다. 이른 저녁에 찾아간 탓일까.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허그방 아가씨가 준비될 찰나에 업주는 기자를 방으로 인도했다. 방의 크기는 2평 남짓했다.

“여기서 편하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가씨가 들어오면 알람시계를 누를 거예요. 그때부터 30분 동안 스킨십 하시면 됩니다. 아참, 아가씨 오기 전에 옆에서 양치질 해주세요.”

업주는 방을 안내함과 동시에 양치질을 요구했다. ‘키스도 가능한가?’ 역시나 포옹만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치를 위해 화장실로 이동했다. 화장실에는 일회용 칫솔이 가득했다. 밑에 있는 휴지통을 내려다보니 칫솔 포장지로 꽉 차 있었다. 그만큼 많은 손님이 다녀갔다는 방증이었다. 이내 양치를 하고 방으로 향했다.

경기 일대서 성업 점차 전국으로 확산
30분 4만원…낮부터 손님 끊이지 않아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야릇한 핑크빛 조명 외에는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공간 안에는 성인 2인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2인용 소파와 큰 물티슈가 놓인 탁자가 있었다. 방 내부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소파에 앉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20대 초반, 키가 170cm는 족히 돼 보이는 날씬한 여성이 들어왔다. 푹 파인 주황빛 원피스 사이로 육감적인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허그녀의 자태는 남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친절한 말투로 환하게 인사하며 들어온 그녀는 조그마한 알람시계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이내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어두운 공간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힐링박스’로 변했다. 남성들이 낯선 여체를 느낄 시간은 단 30분.

“오빠 손이 차네요. 추운가봐?”


허그녀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건네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그방에 처음 왔다는 것을 밝히고, 정해진 시간 동안 궁금증을 풀어내고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방에서 어디까지 가능하죠?”

허그녀는 피식 웃으며 “허그방이니까 껴안으면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기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요즘 너무 외롭다. 스킨십보단 편안한 대화로 외로움을 씻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허그녀는 소리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꽉 안아 줄게요”
또 하나의 변태 업소

그녀에 따르면 허그방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진다. 허그방 아가씨들은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뉘어 외로운 남자들을 달래준다. 이들의 나이는 보통 20∼27세로 꽤 젊은 편이었다. 기자가 만난 허그녀 또한 23살로 어린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건 스킨십의 정도였다. 허그녀는 “옷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며 “가슴, 허리, 엉덩이, 다리를 만지는 건 기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흥분한 나머지 허그녀의 가슴을 옷 밖으로 꺼내 원피스와 브레지어를 벗기고 애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팬티를 벗기고 강제로 만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허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린 채 자위를 하며 그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요구하거나, 성기를 잡고 오랄을 해달라고 조르는 남성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허그방 내 포옹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약간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삽입 없이 자극적인 스킨십을 즐기기 위해 찾는 것으로 보였다.

허그녀의 말을 듣다보니 2차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그녀는 2차 여부에 대해 “언니들 마다 다르다”며 “돈을 더 주거나 기분이 좋으면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외로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니 한편으로는 절제를 못하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허그방을 찾는 사람들은 포옹뿐만이 아니라 키스와 가슴애무 등 다양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골들의 연령대는 4∼50대 중년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주로 오전이나 낮에 찾아와 주간조 아가씨들과 몸을 섞는다고 한다. 꾸준히 얼굴을 비치는 단골도 많다고. 물론 젊은이들도 허그방을 즐겨 찾는다. 2∼30대도 분명 단골이 있다고 한다. 보통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이곳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허그녀는 “아무래도 주변에 술집이 많다보니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이 온다”며 “친구들끼리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술에 취해 가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야간조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깽판을 부리면 오빠(업주)가 컨트롤 한다”고 덧붙였다.

허그방 아가씨들은 업주가 앉아있는 카운터 뒤에 있는 조그마한 방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출되면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방마다 번호가 붙어있다. 기자는 그녀의 수입이 궁금했다.

“얼마 벌 것 같아요?”

“글쎄….”


“한 번 맞춰 봐”

“이걸로만 벌진 않겠죠? 투잡이죠?”

“오빠 나 이것만 해.”(웃음)

웃음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쫌 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녀는 거침없이 자신의 수입을 공개했다.

“한 달에 최소 300은 찍어요. 솔직히 300은 벌어야 이 짓 하죠. 그래도 삽입 없이 이정도면 깔끔하고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저 포옹만? 대딸에 2차도 가능
진상 손님은? 허그녀 몸에 침 질질


300이라는 수입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솔직했다. 하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에 따르면 허그방은 주 5일제다.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 조금 의아했다. 주말에 손님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반대였다. 오히려 평일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 수익원이었던 것이다.

주말에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쉬기 때문에 허그 업무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허그녀를 만난 날은 23일.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브와 크리스마스 날 영업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틀은 쉬어야죠”라며 “내일은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에 놀러간다”며 밝게 웃었다.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아가씨였다.

그렇다면 허그녀는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 우회적으로 질문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허그방을 통해 모은 돈으로 성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오빠 나 어디 고치면 이쁠까?” “어려 보여 나이 들어 보여?” 이런 식의 질문을 쏟으며 자신의 외모를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키스방 능가하는
야릇한 욕구해소

그런데 실제로 스킨십은 하지 않고 순수하게 대화만 하고 가는 손님도 존재했다. 그녀에 따르면 허그방을 찾는 4∼50대 중년 중에는 기러기아빠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욕구를 푸는 것을 원하지만, 단골의 경우 어깨에 손을 얹고 대화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허그방의 표면적인 정체성이 지켜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외로운 사람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한 기분이 엄습했다.
정신없이 대화를 하다가 문득 알람시계를 봤더니 그녀와 헤어지기 5분 전이었다. 알람시계를 의식한 탓이었을까. 그녀가 말했다.

“오빠 이대로 가기 아쉬운 거야? 바지 벗어봐 흔들어서 물 빼줄게요.”

그녀는 자위를 대신 해주려고 시도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냥 가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고 짧고도 길었던 30분의 시간을 마감했다. 그리고 서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신발을 갈아 신고 나가는 순간까지 허그녀와 업주는 친절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

대낮에 찾아오는
중년의 손길…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한 유사성행위 업소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허그방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신종 유사성행위 업소는 도심 곳곳에 우후죽순 늘어나 외로운 남자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키스에 이어 허그로 시작하는 ‘힐링박스’ 허그방은 키스방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자극이 있는 곳이다.

허그방에 단골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육체적인 욕구를 풀기 위해 찾는 사람이 다수인 게 사실이지만, 허그방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진짜 포옹만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벗이 필요해 4만원을 지불하고 30분 동안 속 얘기를 털어놓는 중년들이 많다고 한다. 한편으로 매우 씁쓸한 이야기다.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끊임없이 낯선 여성을 마주하는 사람들. 이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외롭다. 그리고 변태업소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용환 기자 <cyh@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프트’ 간판 보고 가보니…

감옥, 또는 병실…변태 테마룸

지난 30일 광주 서부경찰서는 도심 빌딩 사무실을 임대해 변태적 성매매업소를 운영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전모(3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씨의 업소에서 일한 20대 여종업원 2명, 성매수를 한 남성 1명 등 3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회사 위장 유사성행위
단골만 대상으로 영업

전씨는 지난달부터 광주시 서구 쌍촌동 한 건물 7층에서 유사성행위를 하는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며 여종업원과 남성간 성매매를 알선해 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전씨는 ‘○○소프트’로 업소를 위장해 감옥, 교실, 병원, 한국방, 중국방, 일본방 등 변태적 테마의 방을 차려 영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씨는 과거 자신의 업소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영업하고, 유사성행위 알선 대가로 받은 돈을 여종업과 나눠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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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띄운 이재명<br> ‘장기 집권’ 노림수?

개헌 띄운 이재명
‘장기 집권’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이재명정부가 개헌 추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정 운영 동력이 강한 임기 초에 드라이브를 걸어 개헌을 성공시키겠단 구상이다.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안을 걸고 넘어졌다. “이재명의 장기 집권”이라며 공포탄을 쏘아 올리고 있어 개헌 로드맵마저 흐릿해지는 형국이다. 개헌은 매 선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대통령 후보들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겠다”며 앞다퉈 개헌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막상 당선된 이후에는 흐지부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미루기 일쑤였다. 취임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이재명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이 대통령 역시 임기 초반부터 개헌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개헌 논의 걸림돌은?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시절부터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의 헌법은 87년 체제에 멈춰있는 만큼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대선 국면이던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을 수면 위로 띄웠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서 윤석열 전 정권처럼 친위 군사 쿠데타를 하거나, 국가권력을 남용해 국민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불가능하도록 통제 장치를 좀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저나 민주당은 87년 체제가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는데 객관적 상황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쉽게 조정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개헌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비롯한 ▲대통령 결선투표제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명령·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사후 승인제 등 대통령 권한 축소안과 더불어 ▲감사원 국회 이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공수처장·국가인권위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 및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제 등을 제안했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단연 대통령 4년 연임제였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행 단임제에선 현직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돼있다. 이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운영 방식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기존에 있던 사업은 물론 장기 프로젝트까지 엎어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문재인도 실패...“제왕적 대통령” 비판 헌법 128조 설명에도 먼 산 보는 국힘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되는 게 중임제와 연임제다. 두 제도 모두 대통령 권력 분산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중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 또는 차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연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그 다음 치러지는 차기 대선에만 출마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 6일 이 대통령은 ‘국민주도상생개헌행동’과 1시간40분 동안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공약이었던 개헌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정권 초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국정기획위원회(이하 국정위)도 이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개헌 논의 착수에 나섰다. 국정위 조승래 대변인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개헌안은 이미 공약한 것이라 정리가 돼있고 문제는 시기”라며 “(개헌안을) 대통령이 발의하든 국회에서 발의하든 간에 국회 개헌특위 등 국회 논의에 따라 추진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위는 국회와 국민 공감대 양쪽 모두를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개헌 논의는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하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점에서다. 조 대변인은 “여당과의 협의만으로 될 문제는 아니”라며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 일이라 야당과의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정위는 개헌안을 성안하는 곳은 아니다. 대통령이 공약한 사항을 정리해 국정 과제 목록에 첨부할 것”이라며 “국정위는 개헌 추진 절차와 방법,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르면 내년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총선이라며 시기도 못 박았다. 그러나 4년 연임제와 같은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가 남아 있어 국정위 역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안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3월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4년 연임제가 담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고 이를 위해서는 개헌안 발의 시점을 더 늦출 수 없다”며 개헌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개헌은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외쳤던 촛불 광장의 민심을 헌법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패한 개헌 8년 전 데자뷔 문 전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만약 채택이 된다면 지금 대통령하고 지방정부와 임기가 거의 비슷해진다”며 “이번에 선출되는 지방정부의 임기를 약간만 조정해서 맞춘다면 차기 대선부터는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임기를 함께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당시 개헌안에는 대통령의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삭제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과 헌법기관 구성 등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 담겼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에서는 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그간 전직 대통령들이 불행을 겪어왔는데 4년 연임제는 4년은 선거운동하고 4년은 레임덕에 빠지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 개헌안은 완전히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했다. 당장 4년 연임제를 포함한 개헌이 통과되더라도 이는 현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현행 헌법 제128조의 제2항을 예시로 든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혹시라도 이 개헌이 저에게 무슨 정치적인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해들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분명히 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문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도중 개헌안의 국회 송부와 공고를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단상에 선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4년 연임제로 개헌하더라도 문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마치 문 대통령이 4년 연임제 적용을 받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거듭 말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의 개헌안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야당의 반발로 총 114명의 의원만 표결에 참석해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 2(192명)를 채우지 못해 표결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 것이다. 1980년 ‘간선제 5공화국’ 헌법 개정안 이후 38년 만에 발의된 개헌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시작도 전에 브레이크 문재인정부의 개헌이 실패한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과 연관돼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졌다. 헌법 제128조를 예시로 들었지만,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단임제 체제를 바꾸는 것에 국민이 부담감을 느낀 것 또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헌 방식에 대한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전자결재로 대통령 헌법개정안 발의를 관철해 야당의 거센 비판을 산 것이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조 수석을 언급한 뒤 “언젠가 이런 사고를 칠 줄 알았다. 처음이 아니다. 권력기관 개편안을 들고 나와 혼자 (발표)하더니 국민을 상대로 개헌안을 교육시켰다”며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비서다. 법무부 장관이,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을 일개 비서가 나서서 설쳐대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회는 대통령의 비서가 보낸 개헌안을 검토할 수 없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한 헌법 전문가 역시 와의 통화에서 “문재인정부는 헌법 개정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당시 발표자로 조국 민정수석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이 파격적”이라며 “하나의 이유로 개헌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기 말에 개헌을 시도했다면 차기 대선주자 등이 반발해 마찬가지로 추진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부의 개헌 역시 4년 연임제가 발목을 잡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4년 연임제를 띄우자,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장기 집권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권력을 나누겠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축을 다시 짜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이재명의 푸틴식 장기 집권 개헌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며 “지난번에는 중임제를 얘기하더니 (이 후보가) 슬쩍 끼워 넣은 연임 두 글자에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임은 단 한 번의 재선 기회만 허용하며 8년을 못 넘기지만 연임은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는 혹세무민의 단어”라며 “푸틴이 바로 이 연임 규정으로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개헌을 위한 개헌? “음모론에 가까워” ‘4년 연임제’ 국정과제서 제외 가능성도 대선이 끝난 후에는 “이재명 50년 장기 집권”이라는 공세도 쏟아졌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지난달 4일 대선 결과에 대해 “우리 당이 뼛속까지 바뀌어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이라면서도 “이 대통령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악법을 밀어붙이고 보수 궤멸을 통한 50년 장기 집권을 획책할 것인데, 야당으로서 하루 빨리 전열을 정비해 독재를 막아내기 위한 싸움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 노림수’라는 군불을 땔 때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없다는 게 현 헌법 부칙에 명시돼있다”며 임기 연장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며 겪었던 고난을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정부가 헌법 제128조 제2항까지 뜯어고칠 것이란 의혹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일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국민의 뜻’ ‘국민주권정부의 희망 사항’ 등을 핑계로 4년 중임제를 현 정부부터 적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장기 집권 의혹에 부채질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단순 음모론”이라고 선을 그었으며 헌법학자 역시 “일각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지만 (이 대통령이)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것을 뭐 하려고 시도하겠는가”라고 일축했다. 개헌 시기에도 눈길이 쏠린다. 앞서 이 대통령은 빠르면 2026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임기 내에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대표적인 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70%를 넘기고, 개헌 정족수인 200석을 여당이 확보해야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가 힘을 받는다. 현재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0%대를 웃돌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개헌을 띄웠을 때 지지율도 마찬가지로 60%대였던 만큼 적어도 국민 7할을 편으로 두어야 개헌 논의가 매끄럽게 진행될 것이란 설명이다. 야당과의 협조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180석에 그치는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개헌 저지선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4년 연임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어 첫발을 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4년 연임제 논의가 개헌안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4년 연임제는 국정과제가 대통령실과 총리실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 권한과 직결돼 논쟁의 여지가 큰 데다가 여야는 물론 국민과의 합의도 충분히 이뤄어지지 않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사안에 대해 국정위는 “아직 어떤 사안도 결정된 바 없다”고 알렸다. 연임 논란 이대로 패스? 신평 변호사는 와의 통화에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관해서는 전 국민 합의가 거의 이뤄진 상태”라면서도 “이번 개헌은 추진되고 유종의 성과를 거두리라 본다. 여야 합의가 중요한 부분인데 정부 내에서 개헌 추진 위원회를 만들고 헌법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현실적인 개헌 작업을 실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 역량을 가진 곳은 국회가 아니라 정부다. 정부가 단단히 뒷받침해줘야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