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류 ‘롯데가 형제’ 주판알 튕겨보니…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20 09: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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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경쟁’ 아버지 재산 누가 더 챙길까

[일요시사=경제팀] 롯데일가에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그룹회장의 한 살 터울 친형이 갑자기 지분 매입에 나선 것. 기존 지분율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민감한 시기인 만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기업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왕회장’이 올해 91세 고령인 점도 두 형제 간 힘겨루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9일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겸 일본롯데상사 사장이 주식 643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6일부터 사흘간 이뤄진 이번 주식 취득으로 신 부회장의 보유주식수는 4만9450주에서 5만93주로, 지분율은 3.48%에서 3.52%로 늘었다. 투입금액은 10억원이다.

롯데제과는 롯데알미늄이 15.29%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뒤를 신격호 총괄회장(6.38%),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34%)이 잇고 있다. 신 부회장이 추가로 주식을 취득했다고 해서 기존 지분율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현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 수사 앞두고
계열분리 신호탄?

롯데그룹은 사상 최대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국세청은 얼마 전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통보도 없었고 150여명의 대규모 인원이 투입됐다. 특히 특별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이 동원됐다. 롯데그룹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특별 세무조사라고 볼 수 있다. 롯데쇼핑은 오너 일가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실질적 지주사. 매출도 그룹 전체 매출액 82조원의 약 31%를 차지한다.

앞서 2∼6월에는 호텔롯데에 대한 세정당국의 조사가 있었다. 당시 국세청은 호텔롯데에 20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재계 안팎에서는 CJ와 롯데그룹이 사정당국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따라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는 총수 일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이끌어내고 있다.

롯데그룹이 현 정부 들어서면서 사정당국의 주목을 받은 첫 번째 이유는 롯데그룹이 MB정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MB정부 시절 롯데의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의 사업허가를 받았으며 맥주 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산롯데타운은 시작부터 특혜의혹에 휩싸였고 면세점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 독과점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밖에 경남 김해유통단지, 대전 롯데복합테마파크, 경기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이 특혜설에 휘말리면서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해 ‘베이스캠프’로 사용한 롯데호텔은 ‘제2의 청와대’로 불리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MB정부와의 밀월 관계를 통해 무섭게 성장했다. 2007년 말 46개사에 불과했던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2011년 말 79개사로 크게 늘었다. 2008년 초 43조6790억원이었던 보유 자산 총액은 2012년 초 83조3050억원으로 늘었다. 5년새 2배가 불어난 셈이다.

경영권 승계 막바지…갑자기 변수 돌출
‘장남 일본 차남 한국’구도에 변화 감지

MB정부가 절정의 권력을 행사하던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성장폭은 더 크다. 2009년 계열사 54개, 자산총액 48조9000억원이었던 롯데그룹은 1년 뒤인 2010년 계열사 60개, 자산총액 67조2000억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재계 순위는 6∼7위권에서 단숨에 5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땅따먹기’도 수준급이다. 롯데그룹의 2008년 토지 보유액은 10조3153억원. 2011년 말 기준으로는 13조6245억원으로 10대 기업 중 토지 보유액 1위를 차지했다. 3년 사이에 무려 32.1%가 증가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룹 계열사 간 높은 내부거래 비중이다. 롯데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지난 2011년 14.19%에서 지난해 15.47%로 상승했다. 이는 10대 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롯데는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를 의식해 지난 2월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에 맡겼던 영화관 매점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했지만 아직도 내부거래 비중이 과도한 계열사가 상당수로 파악된다. 롯데상사와 롯데정보통신, 대홍기획, 롯데닷컴, 롯데후레쉬델리카, 에스앤에스인터내셜날 등이다.

양측 지배력
강화에 촉각

롯데상사는 2011년 매출 9994억원 가운데 6510억원(65%)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으며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7497억원 중 4392억원(59%)을, 8029억원 중 4784억원(60%)을 계열사에서 올렸다.

롯데정보통신은 2009년 79%, 2010년 80%, 2011년 79%의 매출을 계열사들과 거래에서 올렸다. 대홍기획의 내부거래율은 2009년 96%, 2010년 92%, 2011년 67%로 조사됐으며 롯데닷컴은 2009년 49%, 2010년 53%, 2011년 66%에 달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2009년 96% 2010년 93%, 2011년 95%의 내부거래율을 기록했으며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2010년과 2011년 매출 100%를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올렸다.

내부거래와 배당금 형태로 총수 일가에게 돌아간 자금 때문에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의 불똥은 오너 일가 쪽으로 튈 가능성도 보인다. 그룹 회장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6월 신 회장이 개인 돈 100억2300만원을 들여 롯데제과 지분을 4.88%에서 5.34%로 늘린 것과 신 총괄회장이 올해 91세의 고령이라는 점이 더해져 이번 신 부회장의 지분 매입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90년대 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동주·동빈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념겼다. 97년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캐미칼) 부사장에서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났고 당시 신 부회장은 일본롯데 전무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일본롯데는 신 부회장이 가져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상 이들 형제 중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를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는 호텔롯데가, 한국롯데는 롯데쇼핑이 각각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롯데쇼핑은 30여 개 계열사에 출자하며 신 회장이 이끄는 한국롯데의 중심이자 단순 계열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롯데의 주요 순환출자고리는 ‘롯데쇼핑→롯데카드→롯데칠성음료→롯데쇼핑’으로 이어진다. 롯데쇼핑은 롯데카드의 지분 92.6%를 보유하고 있고 롯데카드는 롯데칠성음료의 지분 1.5%를, 롯데칠성음료는 롯데쇼핑의 지분 4.3%를 갖고 있다. 

실속계산 보니…형보다 아우
고령 ‘왕회장’지시 있었나

지난 9일 기업 경엉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롯데그룹 계열사의 순환출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계열사들의 지분 관계로 맺어진 순환고리는 51개. 이 중 43개 고리에 롯데쇼핑이 걸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쇼핑의 주요 주주는 신 회장(13.46%), 신 부회장(13.45%), 호텔롯데(8.83%), 한국후지필름(7.86%), 롯데제과(7.86%) 등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호텔롯데의 지분율이다. 일본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의 지분 19.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리고 신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다.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쇼핑의 지분은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신 부회장이 롯데쇼핑 지분을 22% 정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호텔롯데는 롯데건설(38.34%), 롯데상사(34.64%), 롯데물산(31.07%), 롯데캐피탈(26.60%), 롯데손해보험(26.09%), 롯데닷컴(17.20%), 롯데케미칼(12.68%), 롯데쇼핑(9.58%), 롯데푸드(9.33%), 롯데칠성음료(5.83%), 롯데제과(3.21%) 등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롯데카드, 롯데리아,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산개발, 롯데로지스틱스, 롯데햄, 대홍기획 등 37개 계열사의 지분을 많게는 100%에서 적게는 1.24%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롯데건설, 한국후지필름, 캐논코리아, 롯데물산, 롯데손해보험, 롯데DF글로벌 등과 롯데쇼핑과 관계없이 호텔롯데가 독자적 출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수도”

이러한 구조는 향후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깨질 경우 그룹 장악력에서 신 회장이 열세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롯데그룹 전반을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질적인 경영권은 신 회장이 갖고 있으며 신 총괄회장이 일본롯데는 신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맡도록 교통정리를 해놨기 때문이다.


신 회장 스스로도 그룹 내 또 다른 주력계열사인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의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는 등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는 식품 계열사로서 유통 계열사와 함께 롯데그룹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그룹 내 51개 순환출자 고리 중 24개에 걸려있으며 롯데제과는 12개 고리에 들어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쇼핑 다음으로 덩치가 큰 계열사다.

신 회장은 지난 1월과 5월 롯데케미칼 주식을 202억원어치 매입했다. 지난 6월26일에는 롯데제과 주식 6500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 7580주를 각각 100억원, 99억원에 사들였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의 롯데케미칼 지분율은 0%에서 0.3%로, 롯데제과 지분율은 4.9%에서 5.3%로, 롯데칠성음료 지분율은 5.1%에서 5.7%로 높아졌다. 주목할만한 점은 신 회장이 개인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신 회장은 2003년 롯데제과 주식을 처음 매입한 후 지난 9년간 단 한 번도 개인 돈으로 지분 확장에 나선 적이 없다.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고리를 통해 2007년 말 46개였던 계열사 수를 지난해 말 79개사로 늘린 게 전부다.

신 회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롯데그룹의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앞두고 경영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롯데쇼핑은 제쳐두고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 나머지 주요 계열사에서 우위를 점해 지배구조의 축으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계열분리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 회장은 IT(정보기술) 계열사인 롯데정보통신의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이다. 롯데그룹은 2006년 롯데쇼핑 이후 7년 동안 계열사를 증시에 상장한 적이 없다. 롯데정보통신의 최대주주는 롯데리아로 3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대홍기획(28.1%), 롯데제과(6.1%), 호텔롯데(2.9%), 롯데칠성음료(1.5%), 롯데장학재단(0.9%), 롯데삼강(0.4%) 등 계열사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그룹 오너일가는 신 회장(7.5%), 신 부회장(4%),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3.5%) 순으로 지분을 보유 중이다.

코리아세븐은 일본계 자금 유치를 위해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코리아세븐은 롯데쇼핑(51.14%)과 롯데제과(16.50%) 등이 대주주다. 전체 지분의 98.94%를 롯데그룹 계열사와 오너 일가가 소유 중이다.


롯데쇼핑은 싱가포르에 부동산투자회사(REITs)를 설립하고 기업공개를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십년을 넘게 보유하고 있던 롯데카드 지분 1.24%를 지난 4월 293억원에 처분했고 최근에는 부산 국제빌딩 토지 및 건물을 121억원에 롯데케미칼에 매각했다.

MB정부 최대수혜
팔 걷은 국세청

이러한 롯데그룹의 움직임은 그간 롯데그룹의 보수적 경영방침과 비교했을 때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롯데는 기업공개를 꺼리고 외부투자 유치를 멀리하는 기업풍토로 잘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의 이러한 심상치 않은 최근 행보에 재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정기관의 관심이 롯데그룹과 오너 일가에 집중된 상태에서 돌출적 행동을 이어간다면 롯데그룹이 순환출자구조 해소와 계열분리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내 두 형제의 움직임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동주·동빈 승진 비교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990년 일본롯데그룹 이사로 취임하면서 롯데그룹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같은 해 바로 일본롯데그룹 부사장 자리에 올랐고 2003년 롯데칠성의 해외담당 이사 및 롯데쇼핑 이사직을 맡으며 한국롯데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일본롯데상사 사장직과 함께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해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롯데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전에는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

91년 롯데 오리온즈(현·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 사장 대행으로 취임하고 95년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불러들이고 침체하던 팀을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

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롯데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한국롯데의 경영권을 맡았다. 2004년부터는 롯데그룹의 정책본부장을 겸임하면서 케이피케이칼,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대한화재, 마크로(중국), 마크로(인도네시아), 럭키파이(중국), 길리안(벨기에), 타이탄(말레이시아) 등을 인수하며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룹 회장에는 2011년 2월 취임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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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