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조희준 막장 스캔들 풀스토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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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혼외정사…사랑과 전쟁 실사판

[일요시사=사회팀] 민주당 차영 전 대변인이 조용기 목사의 아들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불륜, 이혼, 동거, 출산, 소송'으로 이어진 이들의 인생사는 마치 막장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연상케 한다. 차 전 대변인이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포기하면서 소송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통합당 차영 전 대변인이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의 아들을 낳았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지난 1일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을 상대로 "아들 서모군을 친아들로 인정하고 2004년 초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양육비 8억원(매달 700만원으로 계산) 중 1억원을 우선 지급하라"는 소송을 7월31일 서울가정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차 전 대변인은 위자료 1억원과 함께 서군의 향후 양육비로 매달 700만원도 청구했다.

차 전 대변인이 제출한 소장의 내용은 이렇다. 2001년 3월 차 전 대변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일하다 청와대 만찬에서 조 전 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넥스트미디어그룹의 회장이던 조 전 회장은 그해 8월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됐다가 3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았다.

조용기 장남 조희준
세 번의 결혼·이혼

둘은 서로 배우자가 있었지만 2002년 중반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2002년 7월에는 조 전 회장이 자신이 대주주였던 넥스트미디어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차 전 대변인을 임명했다. 그해 11월에는 명품 피아제 시계를 선물하면서 청혼했다.

차 전 대변인과 조 전 회장은 각각 2003년 1월과 2002년 12월 서로의 배우자와 이혼했다. 이후 둘은 서울 강남의 고급 레지던스에서 동거했고 2003년 8월 하와이에서 서군을 낳았다.


차 전 대변인이 하와이에 머무르는 동안 조 전 회장은 운전기사가 딸린 최고급 리무진과 고급 주택, 매월 1200만원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대줬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은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4년 초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이 머물던 일본으로 갓난 아기였던 서군을 데리고 찾아가 수차례 연락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3월 조 전 회장 동생을 통해 조용기 원로목사를 따로 만나 서군 사진을 보여준 뒤 '우리 집 장손이 맞다'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조 전 회장의 연락은 없었고 차 전 대변인은 아이들을 생각해 2008년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

차 전 대변인은 올해 2월 서군을 데리고 조 원로목사와 조 전 회장의 형제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서군이 장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아들로 등재시키는 것도 동의를 받았다. 당시 조 전 회장은 운영하던 기업의 배임 혐의로 구속돼 식사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군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차 전 대변인 측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조 전 회장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지출하고 있는 양육비는 일반인들의 몇 배 이상일 것"이라며 과거 양육비 1억원에 매달 700만원 양육비를 요구했다.

"조용기 목사 손자 낳았다"친자확인소송
위자료 1억에 매달 양육비 700만원 청구

또한 "조 전 회장은 결혼만 하면 호화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혼으로 인해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며 위자료 1억원도 청구했다.


이어 "조 전 회장은 아들을 한 번도 찾지 않았고 심지어 다른 여성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고 있다"며 자신을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남 완도 출신의 차 전 대변인은 1984년 전남대 농경대학을 졸업한 후 1987년까지 광주 MBC 아나운서로 일했다. 이후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정치권과 안면을 텄다. 1992년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미디어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정책 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1999년에는 세종문화회관 공연 부장, 홍보실 실장을 역임했으며 홍조근정훈장(3등급)을 받기도 했다.

2001년 조 전 회장을 만난 차 전 대변인은 2002∼2004년까지 넥스트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2004∼2006년에는 KT 마케팅전략담당 상무, 2006∼2007년에는 KT 고문 자리까지 올라갔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중앙선거 대책위원회 홍보특보로 활동했고 2008년 3월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 4∼7월까지는 민주당 공동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는 민주당 언론특보를 맡았으며 지난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텃밭인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 출마해 길정우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근소한 차이로 아깝게 패배했다. 이후 서울양천갑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혔지만 올해 1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유로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화려한 정치 경력
포기한 이유는?

저서로는 <나는 대통령도 바꿀수 있다>(1997년), <젊은 그녀 전쟁터를 즐겨라>(2006년) 등이 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의 차 전 대변인이 정치생명까지 포기하면서 법조계를 통해 자신의 스캔들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게 중론이다. 차 전 대변인은 생계와 아이 문제 등으로 전 남편과 재결합했고 양육비 8억원 중 1억원을 우선 청구했다. 그러나 차 전 대변인이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차 전 대변인이 지난해 제19대 총선에 출마하며 신고한 재산내역만 23억232만원에 이른다.

차 전 대변인 측이 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소장에서도 밝혔듯이 아들 서군 때문이다. 올해 11살로 곧 중학생이 되는 서군은 예민한 시기인데다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의 양육은 서군의 외할머니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 전 대변인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자로서 창피하고 정치적 입지도 포기했지만 속은 시원하다"며 "어머니로서 늘 미안했는데 아들에게 잃어버린 인생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차 전 대변인의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또 다른 이유는 조 전 회장에 대한 배신감이다. 조 원로목사와 조 전 회장의 형제들까지 서군이 장손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후 조 전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가족들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올해 조용기 목사를 만났는데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얘기가 다 됐다. 그런데 최근 조희준이 석방돼 나와 딴소리를 했다. '내 아들이 맞긴 한데 친자 확인은 안 된다. 성년이 되면 해주겠다'고 했다. 법적으로 책임지기 싫다는 거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내 삶을 포기하고 소송을 하기로 했다.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어렵다"는 게 차 전 대변인이 언론을 통해 밝힌 입장이다.


하지만 차 전 대변인 측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차 전 대변인의 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다. 차 전 대변인은 소장에서 자신의 이혼으로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 전 대변인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계에 입문한 계기를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차 전 대변인은 당시 "주위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지원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3월15일 딸이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상중에 친정어머니가 부르시더니 아이가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느냐,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도록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조 전 회장 침묵
"휴가 중이다"

또 차 전 대변인은 "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유야교육학과에 다니던 딸은 저소득층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엄마가 국회의원이 돼서 그런 일을 해주길 바랐다"고 말한 적도 있다.

반면 제19대 총선 당시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 전 대변인은 "정치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다. 가족과 관련된 사연이라고 하던데"라는 질문에 "오늘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차영, 큰딸이 심장마비사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등 의문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차 전 대변인 측은 이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아들의 성씨다. 서군이 조 전 회장의 친자라면 성씨는 조씨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차 전 대변인 측은 재결합한 남편의 성씨를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큰딸이 세상을 등진 후 작은딸과 서군의 양육을 위해 작은딸의 친부와 재결합했고 남편의 동의를 얻어 서군을 호적에 등재하게 됐다는 것. 차 전 대변인의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차 전 대변인과 재결합했고 서군을 아들로 입적하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차 전 대변인이 제출한 소장과 그의 변호사가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은 모두 차 전 대변인의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조 전 회장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조 전 회장은 휴가 중이라며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마찬가지다.

유부남녀 신분으로 2002년 중반부터 '불륜'
이혼 후 은밀한 동거생활…2003년 원정출산

1965년 조 원로목사와 김성혜 한세대 총장 사이에서 태어난 조 전 회장은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가 맨해튼 음대를 졸업했다.

1988년 조 원로목사가 국민일보를 창간하자 상무이사로 발을 들여놓았으며 이후 해외사업당담 부사장을 거쳐 1997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국민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듬해에는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국민일보 경영을 맡은 그는 넥스트미디어홀딩스를 설립하고 스포츠투데이와 파이낸셜 뉴스 등을 창간하고 현대방송을 인수하는 등 언론 미디어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에는 파이낸셜뉴스 발행인 겸 회장을 지냈다.

2001년에는 국세청 세무조사 때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고발됐고, 같은 해 8월 조세포탈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월에는 넥스트미디어홀딩스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으나 이후 6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아들 성씨 '서씨'
전 남편과 재결합

이렇든 경영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조 전 회장은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나이 48세의 조 전 회장은 이미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80년대 후반 탤런트 나종미씨와 전격 결혼했지만 딸 하나를 남긴 채 법정소송 끝에 이혼했고 직후 일본인 나카무라 유리꼬씨와 1992년 2월 결혼식을 올렸으나 2년7개월 만에 다시 이혼소송에 휩싸였고 패소했다.

2002년 12월에는 넥스트미디어그룹에서 발행한 잡지 <엘르>의 과장인 장모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고 차 전 대변인과 만나던 2002년 12월 2년 만에 이혼을 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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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