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57)

한 번의 기회로 한판승을 내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소탐대실’ 푼돈 아끼려다 수억원 날려
정곡 찌르자 도둑 제발 저린 듯 변명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선배는 길길이 날뛰며 죽일 놈 살릴 놈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고선 또 다시 나에게 매달리며 부탁했다.
나는 흥분한 오 선배를 설득해서 당장에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말했다.
“선배님, 우선 당장에 토지 명의 이전 문제부터 해결합시다. 어서 등기비용을 지불하고 이전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죽 쒀서 개 준 꼴

화가 난 오 선배는 마지막으로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용을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허나 박 사장은 돈이 마련되는 대로 지급해 주겠다는 말뿐이었다. 일이 점점 더 꼬여 감을 느꼈는지 그때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오 선배가 마지못해 법무사에 비용을 입금했다. 그러나 산 넘어 또 산이었다.
법무사에서 법원에 등기신청을 위해 최종 등기부등본을 발급해보니, 박 사장과의 등기비용 문제로 시간을 끄는 며칠 사이에, 추가로 사채업자들로부터 근저당설정이 2건이나 되어 있고, 채권 가압류가 수억원이나 돼 있는 바람에 명의 이전해도 별 이득이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었다.
오 선배는 황당한 얼굴이 되어 다급히 나를 찾아와서는 한탄하듯 말했다.

“아니 임 이사, 박 사장 그놈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응? 나는 그래도 그놈을 믿고 그 많은 돈을 빌려주고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그 건축물과 대지를 모두 다른 놈들한테 넘겨줄 수가 있단 말인가?”
오 선배가 들고 온 등기부등본을 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추가로 4건이나 설정과 가압류가 되어있어,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박 사장보다 오히려 오 선배에게 속이 뒤틀렸다. 등기비용 수백만원을 아끼려다가 결국 수억원을 날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유부단한 박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면 건축물을 이전받은 사람이 제3자가 아니고, 건축업자인 추 사장 부인이라는 점이었다. 추 사장이 부인 명의로 이전해 놓았다는 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자의 명의를 빌려 신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오 선배에게 위로하며 말했다.
“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지막 수를 써야 합니다. 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움직여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한 번의 기회를 붙잡고 한판 승부를 내야 합니다. 만일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보게. 내가 이제 무슨 수로 자네 말을 거역하겠나. 독약을 마시라 해도 마실 판이네.”
“일단 건축업자 추 사장이 부인 명의로 이전한 것을 역이용 해보자는 겁니다. 어쨌든 무언가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내 말에 오 선배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선배님께서 지금 곧바로 박 사장을 만나 난리를 치면서 이번 행위에 대해 배임행위라고 하며 형사고소 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세요. 단 건축업자 처 명의로 이전한 것은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건 박 사장이 추 사장 부인에게 명의를 넘겨준 사해행위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우리 의도가 미리 발설되면 또 다른 장난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후에 내일 중으로 무조건 박 사장과의 면담을 주선해주세요.”
나는 오 선배에게 더 이상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 단단히 일러 주었다. 그 역시 내 말을 듣지 않고 일이 꼬인 걸 아는지라 걱정 말라며 두 번 세 번 안심을 시켰다.
이튿날 오후, 오 선배와 함께 박 사장을 먼저 만났다. 막상 박 사장을 대하자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장난을 쳤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괘씸하고 화도 치밀어 올랐다. 따끔하게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대의를 위해 내색치 않고 조용한 톤으로 부드럽게 대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 사장, 아니 동생,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그래도 동생을 믿고 맡겼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사님,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법무사 비용이 없어 구하던 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사채업자들이 찾아와 설정을 해달라고 하고, 또 건축공사비를 받지 못한 하도급 업자들이 눈치를 채고 가압류를 한 것 같습니다. 에이, 그냥 돈이 있었으면 바로 등기이전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 선배를 힐긋 쳐다보며 원망의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난 오 선배는 “가압류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당권까지 추가로 해준 이유는 뭐냐?”고 따졌다. 그제야 박 사장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오 선배를 제지하면서 박 사장에게 다시 물었다.
“이보게, 동생. 다 좋은데 건축업자 추 사장 부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잖은가? 그런데 왜 그 부인 명의로 공사현장 건축물을 넘겨줬느냐 이 말이네.”

정곡을 찌르자 박 사장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 눈길을 피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저하고 추 사장 부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추 사장이 공사대금과 오 사장님에게 보증선 것을 피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자신의 처 이름으로 하자고 하여 동의서를 작성해 명의를 이전해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 그 심정이야 이해하네. 한데 이미 법무사에 가서 매매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인감과 도장까지 찍은 상태에서, 제3자에게 넘겨주거나 담보를 제공해주어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어?”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 선배가 인상을 쓰며 협박하듯이 말했다.
“박 사장! 당신 말이야! 내일 당장 고소할거야. 두고 봐!”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오 선배를 만류하며 박 사장을 향해 엄하게 말했다.

“뭐 그렇다고 오 선배께서 고소를 반드시 하겠다는 것은 아닐세. 다만 형사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해행위혐의로 민사소송은 할 것이네. 그렇게 되면 그 추 사장도 별 이익이 없지 않겠나? 지난번에도 내가 말했다시피, 저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박 사장은 장래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가 없지 않겠어?”
“예, 실은 저도 이사님 말씀을 듣고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쌍방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끌다보니 옆에서 자꾸 협박하듯 해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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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