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이야기> '도박 빚에 부모 재산 노려...' 희대의 패륜아가 저지른 끔찍한 청부살인

[기사 전문]

2008년 봄, 한 70대 여성이 자신의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어.

여성의 이름은 한순애, 사망 당시 그녀는 혼자 사는 노인이었고, 집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어. ‘어머니가 원래 당뇨를 앓고 있었다’는 한순애 아들의 진술에 따라, 경찰은 한순애의 사인을 ‘당뇨성 혼수로 인한 자연사’라고 판단했어. 그렇게 사건은 서서히 잊히는 듯했는데...

1년 3개월 뒤, 경찰은 한순애의 살해 용의자로 두 명의 남성을 체포했어.

끈질긴 수사 끝에 경찰은 한순애가 살해당한 것이라 확신했고, 즉시 용의자 신민섭과 김상호를 체포했지. 사건 당일 용의자들은 한순애의 집에 미리 숨어 있다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어.

근데 몇 가지 의문점이 있어. 어째서 용의자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던 한순애를 살해한 것일까? 어떻게 주인이 없는 집을 흔적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걸까?


놀랍게도 용의자들에게 살인을 사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순애의 아들 강형식이었어.

강형식은 문제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어. 여러 가지 사업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경마 도박에 빠져 빚까지 지며 한순애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거야. 이런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서 어느 날은 무능력한 아들을 돌보는 것에 지친 그녀가 “너에게 돈을 줄 바엔 사회에 전부 기부하겠다”고 말하자 이에 분노한 강형식은 ‘엄마를 살해하고 재산을 상속받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살해를 결심한 강형식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었고 이렇게 해서 신민섭과 김상호를 만나게 돼.

살인의 조건은 ‘한순애를 죽인 후 자연사로 위장할 것’, 성공 시 그 대가는 1억원이었지.

첫 번째 시도는 ‘뺑소니’였어. ‘엄마는 매일 새벽 산책하러 나간다’는 강형식의 조언에 따라 신민섭과 김상호는 한순애의 산책 코스에 차를 대기해두었어.

그들의 계획은 김상호가 사인을 주면, 신민섭이 그녀를 차로 친 후 도주하는 것이었지.


4월30일 새벽 5시, 계획대로 신민섭은 K대학교 부근에서 김상호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어. 강형식의 조언대로 정말 한순애가 나타났고, 김상호의 신호에 따라 신민섭은 액셀을 강하게 밟았어.

그런데 변수가 생기고 말았어. 그들이 구한 차량은 생각만큼 엔진 출력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한순애가 차에 ‘치일 뻔한’ 정도로 상황은 끝나고 말았어. 야심한 계획치고는 꽤나 허무한 실패였지.

그럼에도 그들은 다음 계획을 준비해. 새로운 계획은 ‘한순애를 덮쳐서 질식시킨 뒤, 인절미를 먹다가 목에 걸려 사망한 것처럼 꾸미자’는 거였지.

강형식은 비닐랩과 운동화, 인절미를 구입해 둘에게 전달했고, 한순애의 집 비밀번호를 알려줬어.

5월2일 새벽 4시, 한순애는 여느 때와 같이 새벽 산책하러 나갔어. 그 사이 신민섭과 김상호는 한순애의 집에 잠입했고, 약 한 시간 동안 숨죽여 그녀를 기다렸지.

한 시간 후인 새벽 5시, 한순애가 귀가하자 구석에 숨어있던 김상호는 그녀의 뒤로 달려들어 빠르게 붙잡았고, 신민섭은 그녀의 얼굴에 랩을 감았지. 성인 남성도 이 상황이면 벗어나기 힘들었을 텐데, 70대 노인이 건장한 남자 둘에게서 벗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

결국 극한의 공포 속에 그녀의 숨이 끊어지고 말았어.

그렇게 강형식은 자신의 어머니인 한순애를 청부살해한 거야.

그런데 경찰 조사가 진행되던 중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어. 사실 강형식은 30여년 전, 한순애가 운영하던 철물점 앞에 버려졌던 갓난아이였어. 즉, 친부모가 아니었던 거지.

그런 강형식을 한순애는 자기 친자식처럼 보살폈어. 명문 대학에 보낸 것은 물론, 그가 결혼할 때 집까지 마련해주는 등 열과 성을 다해 보살폈던 거야. 그렇게 마음으로 길러낸 자식이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말았어.

당시 동네 이웃들은 이 사건에 대해 ‘희대의 패륜’이라며 혀를 찼다고 해.

더 씁쓸한 사실은 강형식은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는 거야.


더욱 허무했던 건 혐의가 밝혀진 당시, 강형식은 청부살해를 성공한 이들에게 약속대로 1억원을 입금하고 남은 상속액 20억원 중 15억5000만원을 도박에 탕진했어.

결국 강형식은 무기징역을, 신민섭은 징역 15년을, 김상호는 징역 13년을 선고받았어.

돈 앞에서 천륜을 져버린 아들의 사건, 인간의 탈을 쓰고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기획: 강운지
진행: 김소정
촬영&구성&편집: 김희구/배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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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