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임금피크제’ 예견된 혼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08 09:23:23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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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기 짝이 없는 ‘묻지 마 감액’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임금피크제는 중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됐고, 기업들은 2010년과 2019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노사 간 쟁점이 될 거라고 지적됐던 ▲임금 조정 시점 ▲임금 감액률 등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그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보통은 정년을 60세로 늘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고 정년 3~5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임금을 삭감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거나 정년 후에도 고용을 연장한다. 

단계별 축소

이때 삭감에 들어가기 직전 월급은 ‘피크 월급’이라고 한다. 임금피크제에서 월급이 삭감되는 것은 주로 그만큼의 나이가 됐다는 의미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1998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산성과 인건 비용 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업경영의 과제를 해결하려 경영자와 근로자 사이에 합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1998년 일본에서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면서 먼저 도입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2013년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됐으며, 당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체는 8.3% 정도였다.

2016년부터는 ▲삼성 ▲LG ▲롯데 ▲포스코 등 11개 그룹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2019년에는 도입 사업체가 21.7%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령자 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은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일정 연령 근로자 임금 삭감하고 정년 보장
“연령 이유로 한 도입은 위법” 잇단 판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사업주는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없애고, 고령자의 직업능력 계발‧향상과 작업시설‧업무 등의 개선을 통해 고령자에게 그 능력에 맞는 고용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정년 연장 등의 방법으로 고령자의 고용이 확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기재됐다.

이날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기준을 설정했다.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은 도입 때부터 있었다. 이미 앞선 대법원 판례에서 임금피크제가 얼마나 허술한 제도인지 드러난다.

교육서비스업을 하는 A 회사는 2006년 임금피크제 개념과 같은 직급 정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직급 정년제 도입 과정에서 소속 근로자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에 A 회사는 직급 정년제 도입과 임금피크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한 취업 규칙 개정안에 대해 전체 직원 84.4%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84.4% 동의를 얻는 과정 중 문제가 발생했다. 취업 규칙을 변경한다는 취지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의견 취합 일정만을 기재한 서면에다 변경될 제도 내용을 요약해 사내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취업 규칙 마음대로 
소송 대응만 늘어나

특히 취업 규칙 개정안 동의 여부를 파악할 때는 ‘취업 규칙 및 제규정 변경 동의서’란에 직무 등급과 사번, 그리고 성명을 기재한 후 해당란에 마련된 ‘찬성’과 ‘반대’ 중 본인의 서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관리자인 지점장은 직원을 직접 대면해 동의서를 교부 및 징구하고, 기명날인된 찬반 의사를 취합해 회사의 인사팀에 보고했다. A 회사의 직원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관리자 때문에 찬성에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A 회사 임금피크제는 직급별로 정년을 2년간 연장하는 대신 직무 등급별로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거나 직급 정년제에 해당할 경우 단계별로 임금을 축소했다. 

정년은 57세다. 바뀐 취업 규칙에는, 가장 직급이 높은 B는 50세부터, 그 다음 C는 48세, D와 E는 55세부터 역산해 약 10여년 이전부터 임금을 삭감했다. 위 연령 기준에 도달하지 않은 근로자도 직급 정년제 적용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했다. 

이에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한 취업 규칙 개정에 있어 근로자들의 동의 의사를 구할 때 회의 방식을 통한 근로자들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러나 회사 측이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을 소수의 관리자가 했다. 해당 절차에 회사 측의 관여도를 직간접적으로 확보하려는 조치로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고령화 대비하고 청년 취업률 늘려?
차별받는 근로자만 늘어나는 현실

아울러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경우 불이익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통상적인 임금피크제의 성격과는 너무 달라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판례에서 보듯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은 첫 도입 시기부터 있었고, 그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정년 60세 의무화 시행 전 ‘청년고용확대’ 및 ‘청년고용절벽’을 이유로 강행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했고, 여기에는 ‘퇴직 연장자만큼 신규 채용을 실시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되, 이미 도입한 기관도 권고안에 따라 제도를 보완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당시 정년까지 도달해 퇴직하는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노동자의 평균 1차 퇴직 연령은 53세며, 취업 경험이 있는 고령층인 만 55세부터 64세가 이직한 평균 연령은 49세였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정년 연장 효과가 적어서 정년제도가 유명무실했다. 이런 상황에 임금피크제로 발생한 임금 감소는 가계소득을 저하시켜 가계부채 증가에 이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와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결국 당시의 사항은 고려되지 않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만 한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지난달 26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정책

이들은 “박근혜정부는 청년 고용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회예상처가 발행한 ‘임금피크제 도입의 고용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고용 증대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임금피크제라는 잘못된 정책의 시행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숙련 노동자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이는 세대 간 갈등이 심해져 협업이 중요한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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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