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3룡’ 건설사의 비밀

“대기업 비켜!” 거침없는 질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최근 건설업계서 파죽지세인 건설사 3인방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때 잘 나갔던 건설사를 M&A(인수합병)하며 사세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묘하게 비슷한 구석들이 있다. <일요시사>는 건설업계 3인방의 공통점을 짚어봤다.

국내 건설업의 불황으로 M&A시장에 건설사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매물 중에는 한때 잘나갔던 건설사들도 눈에 띈다. 반면 매물로 나온 건설사들을 족족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건설사 3인방이 있다. 호반건설, SM그룹, 세운건설이 바로 그 기업들. 3인방의 행보를 보며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것 같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호남 기반
자수성가 회장

호반건설(김상열 회장)의 4대 건설 법인의 외연은 3년 만에 2배가 됐다. 지난해 호반건설, 호반건설주택, 호반건설산업, 호반베르디움 등 4대 건설법인의 각 연결기준 매출액 합계는 3조908억원에 달했다. 작년 매출은 1조2195억원으로 호반건설 1조1593억원을 뛰어넘었다. 영업이익을 살피면 4개 법인은 작년 5275억원을 거뒀다.

SM그룹(우오현 회장)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우방, 우방산업, 우방건설산업, 우방건설의 매출액은 6092억원으로 전년 4617억원 대비 무려 30.95% 증가했다. SM그룹의 지난해 매출 2조45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 당기순이익 160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SM그룹은 법정관리 중인 경남기업에 M&A 전에 뛰어 들었다. 경남기업을 품에 안을 경우 중견 건설사로 발돋움할 교두보가 마련된다.

세운건설(봉명철 회장)은 위에 있는 2인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아직 미약하지만, M&A 시장서의 행보는 가히 독보적이다. 세운건설이 인수한 금광기업과 남광토건의 지난해 매출액은 260억원으로 전년도 156억보다 100억가량 증가했다. 세운건설은 극동건설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면서 중견 건설사 3곳을 거느린 종합건설사로 자리매김했다.


3인방은 하나같이 호남을 모태로 한 무명기업이었으며, 자수성가형 회장들이 이끌고 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1961년생 전남 보성 출신이다. 그는 조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건설사서 일하다가 호반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의 첫 사업은 광주 북구 삼각동의 호반맨션아파트 149가구였다. 변두리지역이라 수요가 많지 않았으나 아파트 완공 직전 살레시오고와 전남공고 등 시내 고등학교들이 주변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덕분에 호반이 세운 아파트는 완판됐다.
 

김 회장은 호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금융업을 시작했다. 지금 호반건설은 호반이 설립한 호반건설산업이 모체다. 호반건설산업은 현대파이낸스라는 이름으로 1996년 설립됐다. 김 회장은 이듬해 현대파이낸스의 회사이름을 현대여신금융으로 변경하고 할부금융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에 IMF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IMF사태는 김 회장에게 기회였다.

현대여신금융은 1999년 신화개발주식회사로 회사이름을 변경하고 호반의 건설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리고 2000년 이름을 호반건설산업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건설사업 확대에 나섰다. 김 회장은 IMF사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여러 곳에 땅을 사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이름으로 주택분양사업을 펼쳤다. 호반건설의 기반은 광주였지만 이때부터 울산, 대구, 천안 등 전국적으로 사세를 확장해갔다.

중견 3인방 호반건설·SM그룹·세운건설
‘죽어라 죽어라’ 건설 불황에도 파죽지세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1953년 전남 고흥 출신이다. 그는 광주상고와 광주대 건축공학과, 조선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88년 삼라건설을 설립하고 광주와 전남 일대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삼라건설은 승승장구했다. 90년대 광주에서는 아파트 붐이 크게 일어나 삼라건설이 분양한 아파트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 때문에 분양만 하면 팔린다는 말까지 나와 SM건설은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위험을 대비해 둔 덕분에 2000년대에는 수도권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경영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이 보유했던 수도권 택지들을 헐값에 내놨는데 삼라건설은 이 땅을 하나둘 인수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인천, 용인, 구리 등 수도권은 물론 서울시에도 삼라건설의 아파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
 

봉명철 세운건설 회장은 1961년 전남 화순 출신이다. 봉 회장은 1995년 전남 화순에 세운건설을 설립했다. 현재도 화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요 업종은 도로건설업과 지역 토목공사 등을 맡고 있다. 세운건설은 아직까지도 건설업계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세운건설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12년 2월 자신보다 10배 이상 몸집이 큰 금광기업을 집어삼키면서부터다.

3인방이 M&A를 통해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몸집을 불리려는 배경은 종합건설사로써 위상을 갖추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꾸준히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최근 울트라건설 인수를 위한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며 현재 인수가격을 놓고 조정 중이다. 울트라건설은 1965년 설립돼 토목, 관급 주택건설 도급사업이 주력인 중견건설업체로 2014년 연간 매출의 약 82%를 관급공사로 달성했다.

공격적 M&A
사세 급성장

업계에선 호반건설이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합병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울트라건설 인수에 적극적인 것은 사업 확장을 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또 최근 강점을 보이고 있는 주택사업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호반건설이 아파트 건설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때문에 토목 등 사업다각화를 이루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며 “최근 울트라건설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로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TOP10 진입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반건설은 이 외에도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중견 건설사 인수전에 뛰어들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초부터 쌍용건설, 금호산업, 동부건설 등 건설사는 물론 쉐라톤 인천호텔(대우건설)과 파르나스호텔(GS건설) 등의 인수 후보로도 끊임없이 거론됐다. 특히 금호산업 매각 전에는 단독으로 나서 6000억원이 넘는 응찰가를 써내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SM그룹은 올해만 3개의 건설사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항만 및 하천 준설 토목공사 분야서 기술력을 보유한 비상장사 태길종합건설을 인수했다. 올 들어 성우종합건설과 동아건설산업에 이어 세 번째 건설사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성우종합건설은 올해 초부터 추진한 공개매각이 무산되면서 회사 청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SM그룹이 인수자로 나서면서 기사회생하게 됐다. 법정관리 건설사 5~6개를 인수해 하나로 합쳐 대형 건설사로 키우겠다는 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정관리 건설사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SM그룹이 대형 종합건설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미 SM그룹은 M&A업계에서는 큰손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주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계열사를 17개(건설사 및 다른 업종 포함)까지 늘렸다.

세운건설의 M&A 행보는 가히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였다. 세운건설은 2012년 지역 대표 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인수하면서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지방 무명서…
전국구 발돋음

세운건설은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378억원으로 전국 440위였다. 금광기업은 시공능력평가액이 세운건설의 11배가 넘는 4310억원(55위)이었다. 법정관리 중이긴 했지만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전남 1위 대표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세운건설이 집어삼켰다.

금광기업은 세운건설로 인수된 직후 법정관리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최근 금광기업의 옛 주인인 송원그룹의 소송도 뿌리치고 소유권을 확고히 했다.

인수합병은 시공능력평가액 59위인 남광토건으로 이어졌다. 토목공사에 주력했던 남광토건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2014년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지난해 금광기업·오일랜드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유상증자와 출자전환을 거쳐 남광토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세운건설의 M&A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공능력평가액 44위인 극동건설로 계속됐다. 극동건설은 웅진그룹 산하에 있던 중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세운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극동건설과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인수합병을 추진해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 결정도 받아냈다.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면서 세운건설은 극동건설까지 품에 안았다. 세운건설이 금광기업·남광토건·극동건설까지 모두 인수하면 시공능력평가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30위권의 이내의 대형건설사로 올라섰다.


이들 3인방의 광폭행보에 업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자칫 잘못했다가는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서 무리한 인수합병은 자칫 건실했던 모기업을 부실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2006년 대우건설을 사들였다가 그룹을 통째로 위기에 빠뜨렸다. 이뿐만 아니라 굴지의 조선사들을 거침없이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던 STX그룹의 침몰 역시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다. 이들 3인방이 이런 선례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오버페이스 우려도

호반건설의 곳간이 넘친다고 하지만 호황기를 지난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업 다각화를 위해 무리하게 인수전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주택시장의 비중이 높은 호반에게 이런 M&A가 부담될 수 있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SM그룹의 무분별한 M&A에 대해서도 걱정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그룹의 기존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는 점은 위험요소로 꼽힌다. 앞서 2011년 SM그룹은 유압기 부품 계열회사인 태주를 인수했지만, 그룹 관리 아래 법정관리에 돌입하기도 했다.

법정관리가 진행돼 어느 정도 부실이 정리된 매물들만 인수했던 만큼 실제 기업회생 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SM그룹은 계열사 간의 연결고리도 상당히 약한 구조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세운건설의 행보 역시 거침없고 성공적인 듯 보이지만, 일부의 우려섞인 눈빛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먼저 세운건설이 피인수기업의 경영 안정화보다는 추가 M&A에만 몰두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실제로 금광기업은 인수 첫해인 2012년에 전년보다 매출이 22.52% 줄었다. 그 후 지난해까지 역성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실적은 악화되고 있는데 M&A에 투입돼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 금광기업은 남광토건에 100억원, 극동건설에 107억원을 투자했다.

인수 초기에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세운건설은 남광토건을 인수한 뒤 광주지점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영업 등 일부 부서만 제외하고 본사 인력들을 광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남광토건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광폭 행보에
불안한 시선

극동건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극동건설 노조는 세운건설이 인수하면 남광토건처럼 될 것을 우려, M&A 반대를 표명했다. 그리고 올해 초 서울시 서초구 금광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불안한 시선을 떨쳐 내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건설경기 전망 “더 안 좋아진다” 

국내 건설경기를 이끌던 주택산업의 위축으로 2018년에는 국내 건설업계가 수주불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은 19일 배포한 ‘국내 건설경기 하락 가능성 진단’보고서에서 “2016년 국내 건설수주는 123조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0% 이상 크게 하락할 전망”이라며 “2017년 이후에도 향후 2∼3년 간 감소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건산연은 작년 건설수주 호조를 이끌었던 민간주택 부문이 크게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수주불황 경고
20%↓ 주택산업 위축?

올해 부문별 국내 수주 전망은 공공 41조 8000억원, 민간 81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이전 각각 전년대비 6.5%와 28.3% 줄어든 것으로 민간 부문 중 주택 수주예상치가 전년대비 29% 줄어든 48조 1000억원으로 나온 영향이 컸다.

문제는 주택수주 전망이 갈수록 어둡다는 점이다. 건산연은 신규 주택 공급은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고 작년 신규주택 분양이 역대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공급과잉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방 주택입주물량은 2014년 이후 4년 연속 역대 최고수준인 점도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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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