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입장에서 혁신을 생각해라!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끄는 독창적 창업아이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는 개발자가 인정하는 혁신적 아이템이 아닌 시장이 인정하는 혁신 아이템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신제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수용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몇 가지 리스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캐즘(Chasm)이다. 캐즘은 혁신자와 조기 수용자로 대변되는 초기시장(Early market)과 그 이후의 주류 시장(Mainstream market)사이의 간극(Gap)이다.

기술력에만 치우친 혁신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가 발견한 이 간극은 초기 시장의 성공이 항상 주류 시장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주류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시장의 불확실성(Market uncertainty)도 또 하나의 리스크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고객의 니즈 및 반응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얘기한다.
LG경제연구원의 황혜정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 ‘시장이 알아주지 않는 혁신들’을 통해 혁신적 상품ㆍ서비스가 안고 있는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키 위해 기업에서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혁신을 수용하는 시장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2009년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간 기술적으로 실패한 10대 제품(The 10 Biggest Tech Failures of the Last Decade)’을 선정해 보도했다.
여기에 선정된 제품은 유명 글로벌 대기업이 개발을 시도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열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에 이렇다 할 만한 영향을 주지 못했거나 실패로 끝나 시장에서 사라진 제품이나 서비스였다.

‘더 나은 쥐덫의 오류(Better Mouset rap Fallacy)’라는 말이 있다. 품질이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 팔면 고객들이 스스로 알아서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는 기업들의 제품 중심적 사고를 꼬집는 표현이다. 이는 특히 하이테크 기업들이 종종 보이는 시장지향성 결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술은 혁신적인 신제품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제품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최고, 최첨단, 최초’라는 기술력에만 매료된 혁신은 신제품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혁신적인 신제품은 ‘변화’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의 정도가 혁신적인 신제품의 수용 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간은 변화에 저항한다. 이는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현재의 편안한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행동·습관 등 간과한 혁신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고객 반응을 과대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혁신 제품이 주는 효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혁신 제품이 주는 효용과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익숙한 대안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손실을 비교하여 행동한다.

기업은 제품이 혁신적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효용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수용의 저항 수준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혁신 제품이 주는 효용이 이를 극복할 만큼 뛰어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사용자들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행동적·심리적인 장벽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수용 범위를 넘어선 가격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할 때 간과하는 요소 중 하나가 가격이다. 제품 개발자들은 최첨단의 기술과 혁신적인 효용에 대한 과도한 기대 그리고 R&D에 들어간 비용 등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출시된 제품이 시장에서 수용되기 위해서는 가격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보다 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특정 가격대를 맞출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혁신 제품의 가격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이슈는 아니었다. 기업들은 출시 초기에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고 그 후에 대중들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가격을 내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빨리 많은 소비자들에게 도달하여 매스 마켓을 형성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최근의 혁신 제품의 속성이 더욱 더 지식 집중적(Knowledge  intensive)이 되어 가기 때문에 기업들은 제품 생산보다 제품 개발에 더 많은 비용을 쏟고 있고 상대적으로 생산 비용은 크지 않기 때문에 적정한 가격으로 빠른 시간 내에 매스 마켓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팔리는 제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품질과 효용을 잠재고객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다. 혁신 제품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어 정확한 품질수준과 기대효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 특히, 위험 회피형 소비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구매 및 사용 경험으로부터 일종의 단서를 찾고자 한다. 타인의 구매는 신제품에 대한 의심을 덜어주게 된다.

혁신 제품도 빠르게 매스마켓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혁신 제품은 고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가격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지향적 혁신, 성공 위한 필수조건

지금까지 혁신적인 제품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혁신을 수용하는 사용자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혁신적인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장 중심축에 놓아야 할 것이 사용자이다. 혁신적인 제품의 성공을 판단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혁신의 성공은 사용자가 혁신의 수준을 얼마나 유용하고 편리하다고 인지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하더라도 고객에게 채택되지 않으면 혁신의 의미가 없다.

개발자의 입장이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존 것보다 더 나아야 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들이 쓰기 쉽고 이용하기 편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술력에만 매료되거나, 고객의 급격한 행동이나 습관 변화를 초래하거나 새로운 가치 대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제품을 출시한다면 혁신 제품의 성공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혁신의 수준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고객의 니즈를 넘어선 과도한 기술로 인한 혁신의 오버슈팅이나 캐즘 등으로 시장에서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혁신을 생각해야 한다. 혁신은 잡초처럼 널리 살아남아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재무적인 성과를 일구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시장 지향적일 필요가 있다. 혁신적인 기술 우위와 뛰어난 제품 효용을 시장 성공으로 가져가게 하는 키는 시장과의 연결이다. 개발자들은 최고의 기술이나 혁신적인 제품이 주는 효용에만 매료되어 사용자 입장을 간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비자가 수용하지 않고 시장이 알아주지 않은 혁신은 진정한 혁신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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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