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 못 잡는 '쪽지 처방' 실태

약 이름 끄적끄적 “이거 한 번 잡숴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가 의료인에게 리베이트를 주는 경우 제공자와 수수자 모두 처벌되는 리베이트 쌍벌제는 시행된 지 오래다. 그동안 경찰, 검찰,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적발된 많은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 의료인들이 형사 처벌과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의료계의 리베이트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쪽지 처방’이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우회적 리베이트의 수단으로 부상 중이다.

2016년 5월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조사부는 전국의 병·의원 의사 등에게 수십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 파마킹의 대표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불법

회사는 2010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영업사원을 동원해 현금, 상품권 등 총 56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회사로부터 뒷돈을 챙긴 의사 270여명도 검거됐다. 2년 뒤 대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조씨 등 3명에 대해 벌금 400만~1500만원 및 추징금 850만~3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파마킹 영업사원으로부터 의약품 채택·처방 유도 등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전인 리베이트를 반복적으로 수수한 바, 계속된 범죄 의도를 가지고 일정 기간 계속 행한 것이므로 의료법 위반죄의 포괄일죄에 해당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파마킹 사건은 의료계 리베이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의료인과 제약회사 간의 리베이트는 새로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처방하면 이를 유지, 증대하는 조건의 대가를 받는 형태로 이뤄졌다. 


과거 기존의 제약회사에서는 병원이나 약국 등의 부서 회식비를 지원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빌려주거나, 접대성 경비를 외형상 제품설명회 경비로 처리했다. 또 매달 처방금액의 일정 비율을 따로 지급하거나, 의료인의 학회 참석 시 관광경비를 지원, 의사들의 사적 모임의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가 이뤄졌다.

하지만 의료계 리베이트 논란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자 시장조사 업체 등 제3자를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응답비를 받는 등 보다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리베이트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중 최근 리베이트에 사용된 ‘쪽지 처방’은 현행법상 리베이트로 처벌이 불가능해 법망을 빠져 나가는 방법으로 더욱 부각됐다. 쪽지 처방이란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의약품 등을 별도의 종이에 기재해 알려주거나 발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사가 판매 수익을 받는 조건으로 특정 영양제 등을 수기로 처방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가 해당 제품을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고 오인할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약사 절반 경험한 뒷거래 의혹
의료법상 리베이트 처벌 불가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의약품등은 소비자가 의사 처방 없이 제품을 고를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의사가 처방을 내렸으니 별다른 이견 없이 해당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는 점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약품 시장은 의약품의 기능과 효능에 관한 정보를 비용 부담자인 환자보다 이를 처방하는 의료인이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 소비자는 구매 가격 전체를 지불하지 않고 건강보험이 적용된 일부 금액을 지급한다. 따라서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런 행위가 소비자에게 오인을 유발하고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쪽지 처방이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의료진에게 뒷돈이 주어지는 형태의 리베이트 의혹에도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포함돼 의료진을 처벌할 수 없다.

약국 약사들은 쪽지 처방 품목이 아닌 동일 성분 혹은 함량이 더 높은 제품을 추천해도 의사의 말을 신뢰하는 환자로 인해 해당 제품을 건넬 수밖에 없다고 현 상황에 대해 지적한다.

환자는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해당 제품 외에는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약국은 사실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지속적인 리베이트 의혹에도 현행 의료법상 리베이트로 처벌받는 대상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에만 국한됐다. 

실제 올해 3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된 ‘쪽지 처방’에도 의료진은 처벌을 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쪽지 처방을 쓰라고 산부인과 병원에 요청한 에프앤디넷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7200만원 부과했다. 

지난 2011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거래 중인 산부인과 의료인이 자사 제품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소비자가 처방받도록 유도한 에프앤디넷은 이를 위해 계약을 맺을 때 병원에 50% 수준의 판매수익을 보장하는 조건과 함께 자사의 제품만 취급하라는 독점판매 조항을 넣었다. 

떠오르는 뒷돈 거래 수단 
단속 사각지대서 관행화

당시 회사와 관련된 병원의 의료인은 내원한 산모 등에게 임신 준비기부터 임신 4개월까지는 ‘닥터 맘스 엽산’을 추천한다는 내용 등이 적힌 종이를 주고 병원 내 설치된 건강기능식품판매장으로 안내했다. 

2019년 8월 공정위 조사 이후 회사는 쪽지 처방에서 자사 제품명을 지우고 영양소만 기재하도록 시정했다. 하지만 당시 판매수익의 절반을 전달받은 의료진은 처벌받지 않았다.

당시 공정위는 “쪽지 처방을 스스로 시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도 쪽지 처방은 여전히 업계 관행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올해 10월 대한약사회와 함께 전국의 약사 2079명을 대상으로 쪽지 처방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최근 5년 이내 병‧의원으로부터 쪽지 처방을 받아본 적 있다는 약사는 559명으로 나타났다.

본인이 경험한 적은 없으나 들은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5.6%에 이르는 527명이었다. 조사 대상으로 한 약사의 절반 이상이 쪽지 처방을 직접 경험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에 국회는 의료법상 리베이트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대안을 촉구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리베이트는 가격 할인과 같은 통상적인 리베이트와는 달리 환자가 리베이트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의료인이나 의료기관만 그 혜택을 받는다”며 “리베이트 쌍벌제 등으로 의약품 리베이트를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베이트 관행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지 못하면 리베이트로 제공되는 제약회사들의 비용은 의약품의 가격에 전가되어 결과적으로 국민과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공정위는 올해 6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와 함께 건강기능식품 ‘쪽지 처방’ 자진신고 센터를 운영했다. 당시 공정위는 “올해 안에 건강기능식품 분야 공정경쟁 규약을 제정해 관련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 관행이 정착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뒷돈

김 의원은 지난달 7일, 정부에 대안을 촉구하면서 “쪽지 처방을 대가로 의료진이 뒷돈을 받을 경우 의료법상 리베이트로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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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