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가 형제의 난 불씨 꺼지지 않는 내막

할 일이 태산인데 저들끼리 티격태격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금호의 ‘형제의 난-시즌3’가 예고되고 있다. 선방을 날린 건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 인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부터다. 박삼구 회장은 애써 태연한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종전의 사태를 돌이켜 보면 언제 반격에 나설지 모를 일이다.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는 고요함에 입이 바짝 마를 지경이다. 재계는 숨을 죽인 채 언제 3라운드 공이 울릴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박삼구 회장 인사들 검찰에 고발
형제 사이 앙금?…3차 형제의 난 벌어질까 촉각

금호석유화학(대표 박찬구)은 최근 기옥 금호산업 대표이사를 포함해 전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호석화는 기 대표와 전 관리담당 상무 박모씨가 임의로 법인인감을 사용해 위조문서를 작성했다는 정황을 최근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형님 사람’ 기옥 전 대표
문서 위조 검찰 고발

당시 기 대표가 금호렌터카의 재무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대한통운을 인수하려는 박삼구 회장의 지시에 따라 금호석화에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8년 1월 기 전 대표는 금호석화가 1000억원 규모의 금호렌터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회사 명의의 확약서를 만들어 금호렌터카에 제공했고 금호아시아나그룹 컨소시엄이 대한통운 인수를 위한 입찰 절차에 이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장에서 금호석화 측은 기 전 대표 등이 주요 투자안건에 관해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회의 소집조차 하지 않은 채 독단으로 확약서를 작성했으며, 법인인감 사용대장과 공문철에도 확약서 관련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 대표가 박삼구 회장 측 인사라는 점에서 재계는 삼구-찬구 형제 간 벌어졌던 그룹 경영권 갈등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이번 고소가 제3차 형제의 난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은 물고물리는 혈투를 벌이고 있는 삼구-찬구 형제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과거 금호가는 모범적인 형제경영으로 골육상쟁이 난무하던 재계의 모범이었다. 집안의 대소사부터 그룹의 경영현안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은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할 정도였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건 지난 2006년부터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이 여세를 몰아 지난 2008년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집어삼키면서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민영화 공기업 제외)로 급부상했다.

그룹 측은 2건의 대형 인수·합병(M&A)에 자그마치 10조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었다. 국내 M&A 사상 최대의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당시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M&A하면 경영 상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대로 그룹은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 간 불신의 싹이 자랐다.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은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켰다. 박찬구 회장은 아들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렸다. ‘10.01%’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씨를 제외한 금호가 4형제(성용-정구-삼구-찬구) 일가가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이 꺼내 든 것은 ‘동반퇴진’ 카드였다. 박삼구 회장은 당시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 박 전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형제경영의 모범’이라 불릴 만큼 형제애를 과시했던 금호가의 25년 아름다운 전통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금호가 두 형제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동안 두 선장을 잃은 ‘금호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을 감당하지 못해 인수 2년여 만에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됐다.

지난 2006년부터
형제의 난 발발

또 글로벌 금융위기로 계열사들이 실적부진을 겪으며 금호산업,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작업)을 개시하고 금호석화와 아시아나항공 등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결국 그룹의 운명이 채권단 손에 넘어가게 된 것. 그룹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가 오너의 사재출연을 요구했고 채권단과 최종 합의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금호 일가가 주식·부동산 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긴다는 경영책임 이행 합의서를 제출했다”며 “금호가가 제시한 ‘분리 경영안’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두 형제는 2세들 지분까지 포함해 대주주 주식 의결·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이들이 채권단에 위임한 사재는 집을 제외한 주식과 부동산 등을 합쳐 25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당초 금호가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다 막판에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후 삼구-찬구 형제는 동반퇴진하면서 계열사를 쪼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분쟁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2009년 가족경영 ‘좋은 예’서 ‘나쁜 예’로
순이익 -50.1% 기록…‘형제의 난’ 때문에?

이윽고 삼구-찬구 형제는 각각 지난해 11월과 3월 금호아시아나 회장, 금호석화 대표이사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계열분리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외부적으로 양측의 갈등이 봉합된 듯 보였다. 특히 형제는 모친 이순정 여사가 별세하자 빈소에서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등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화해 행보를 걷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갑자기 불거진 박찬구 회장에 대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조사 과정에서 박 회장이 배후로 박삼구 회장을 지목하면서 갈등은 재점화 됐다. 급기야 박삼구 회장을 사기·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이처럼 2차전에서 서로 ‘한방’씩 주고받은 형제의 사이는 전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예 끝장을 볼 태세여서 둘 중 하나가 피를 보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의 측근을 고소하면서 보기 좋게 선방을 날렸다. 금호석화의 공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애써 태연한 척 표정관리에 나섰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새삼스럽게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재계는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 터질지 위태로운 것이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경영 정상화 코앞
아직도 티격태격


금호석화는 지난해 6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박찬구 회장은 광폭 행보를 보이며 경영정상화에 ‘올인’해왔다. 이 결과 금호석화는 지난해 36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뒀다. 1970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올해도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마찬가지. 지난 3년간 이어져 오던 구조조정은 현재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계열사 실적만 개선된다면 그룹 회생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 정상화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다. 표면상으로는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경우 얼마나 오랫동안 레일 위를 달릴 수 있느냐다.

재계는 삼구-찬구 형제의 관계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재계관계자는 “힘을 합쳐 회사를 일으켜도 모자랄 판에 서로 티격태격 대고 있다”며 “금호가 정상화 된다한들 향후 언제라도 부실에 빠질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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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