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탐욕에 찌든 금융가 실태

서민 코 묻은 돈 끌어 모아 배 두드린다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은행, 카드사, 보험사를 막론한 금융권의 탐욕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수수료 잔치를 벌이며 서민들의 푼돈을 뜯어 내는가하면, 보험료율 담합으로 고객에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모두 제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봉’ 취급당한 국민들로서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참다 못 한 국민들은 결국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고 여론은 금새 가열됐다. 화들짝 놀란 금융회사들은 그제야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의 탐욕스러운 민낯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연일 수수료 논란이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마당에 은행권이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사업보다 서민들 ‘푼돈’을 뜯어 제 잇속을 차린다는 비판 속에 논란은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신용카드업계

가맹점 수수료 사상 최대…영세 상인들 반발
0.2%p 인하하기로 결정했지만 ‘생색내기’ 지적


카드사들은 올해 상반기 7016억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지난해 상반기(8617억원)보다 18.6% 줄어든 수치다. 외견상으로는 경영사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회계기준이 바뀐 데 따른 착시에 불과하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지난해 상반기 2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5000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순이익은 1400억원이나 늘어난 셈이 된다.

카드사 수익은 가맹점수수료, 할부카드수수료, 현금서비스수수료, 카드론 수익 등으로 나눠진다. 이중 가맹점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즉 카드사의 가장 중요한 수익 원천이다.

그리고 가맹점수수료는 매년 1조원씩 늘고 있다. 가맹점수수료는 ▲2008년 5조5847억원 ▲2009년 6조1296억원 ▲2010년 7조1949억원 등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카드사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4조956억원에 달하는 가맹점수수료를 챙겼다. 하반기에 여름철 휴가와 추석 연휴 등으로 대규모 카드 결제가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가맹점수수료는 8조원 중반대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카드 결제가 일반화되면서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자연스럽게 늘고 있을 뿐 부당하게 수수료율을 높여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카드사들의 항변이다. 그러나 음식업종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수료를 대폭 인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치업종으로 분류되는 골프장 수수료가 1.5%인데 평균 2.65%에 달하는 음식점 수수료는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음식점중앙회는 수수료를 1.5% 이하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며 18일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처럼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론이 거세지면서 카드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카드 업계는 중소형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침을 정했다. 인하폭은 0.2%포인트 내외. 이렇게 되면 2% 수준인 수수료율이 1%대로 떨어지게 된다. 카드사들은 담합 등을 의식해 대형사가 먼저 내린 뒤 다른 업체가 이를 뒤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영세상인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음식업중앙회 측 관계자는 “0.2%포인트 인하를 하더라도 1.8~1.9% 수수료가 유지되는데, 이를 대형업체와 똑같은 1.5%까지 낮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관계자는 또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 검토 대상 업체들은 1억2000만원 이하 영세 업체들로, 휴·폐업의 위험에 상시노출 돼 있을 정도로 경영이 어려운 업체들”이라며 “소폭 인하하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나마 연매출 1억2000만원 이상인 외식업체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인하 검토 발표는 당장의 비난 여론을 피해가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은행업계

이자이익률보다 높다 수수료 수익…사실상 폭리
ATM 수수료 인하?적용범위 확대…실효성 의문

은행권에서도 ‘수수료 잔치’가 한창이다. 올해 상반기 18개 국내 은행의 수수료 이익은 무려 2조2567억원. 은행들이 총 15조원의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렸던 2007년 상반기의 수수료 이익(2조2366억원)을 이미 뛰어넘은 수치다.

업무 처리에 들어가는 원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은행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일부 수수료는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은행들의 상반기 이자이익은 17조1375억원으로 이자수익(34조3052억원)의 50%정도에 해당한다. 이자이익률이 50%라는 얘기다. 그런데 은행들의 상반기 수수료 이익은 수수료 수익(3조3015억원)의 68%에 달해 이익률이 이자이익률보다 훨씬 높다. 사실상 폭리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수수료가 미국보다 싸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은행 고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인 자동화기기(ATM) 현금인출 수수료는 은행별로 500~1200원에 달한다. 영업시간보다 시간외 인출이 훨씬 비싸고, 다른 은행 ATM에서 인출하면 그 수수료는 2배에 달한다.

그런데 미국 씨티은행, 영국 바클레이즈은행 등의 글로벌 은행은 자기 은행이나 다른 은행, 영업시간이나 시간외를 막론하고 대부분 `0원을 적용하고 있다. 주거래은행 창구를 이용한 계좌이체도 이들 해외은행은 자기 은행 지점간 계좌이체는 모두 무료로 하고 있다. 인건비 운운하며 최대 2000원을 받는 국내 은행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은행들은 고객들이 펀드에 가입할 때 가입액의 1%가 넘는 판매수수료를 떼는 것도 모자라 매년 1%가량의 ‘판매보수’를 따로 받고 있다. 고객들이 매년 내는 펀드 수수료 가운데 판매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가까워 10∼30%에 불과한 선진국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수수료가 차지하는 이익 비중도 문제다 은행들은 글로벌 은행들의 수수료 이익 비중이 40%에 가까워 7.1%에 불과한 국내 은행들의 비중보다 훨씬 높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만큼 수수료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은행들이 벌어들이는 수수료는 인수합병(M&A) 중개, 기업상장(IPO), 채권 발행 등 고부가가치 금융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대부분이다. 국내 은행들처럼 계좌이체수수료, 현금인출수수료 등 서민들의 ‘푼돈’을 뜯어낸 수수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수수료 잔치’를 질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행태다. 서민 달래기에 나선 카드사들과 달리 은행들은 요지부동인 모습이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금융당국은 외압을 가했고 은행들은 그 제서야 대책을 내놨다.

은행들은 ATM 이용 시 과도하게 적용했던 수수료를 인하할 방침이다. 현재 은행들은 영업시간 내 ATM을 이용할 경우 자행(같은 은행)은 면제하지만 타행(다른 은행)은 인출수수료(800∼1000원)와 송금수수료(600∼1000원)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영업시간 내 ATM 인출수수료와 송금수수료가 400∼500원과 300∼500원으로 인하되는 방안이 마련된다.

영업시간 내 창구를 통한 송금수수료 역시 최고 1500원(자행)과 600∼3000원(타행)이지만 이 역시 내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영업시간 외 자행 ATM을 이용할 때도 인출·송금수수료가 500∼600원과 최고 600원이었지만 250∼300원과 최고 300원으로 각각 50% 낮춰진다. 같은 시간대 타행 ATM을 이용할 경우에 1000∼1200원과 800∼1600원인 인출·송금수수료 역시 500∼600원과 400∼800원으로 인하된다.

수수료 면제 대상도 확대된다. 65세 이상 노인은 물론 차상위계층, 소년소녀 가장과 대학생에 대해서도 인출·송금수수료를 면제하는 쪽으로 은행들의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겉보기엔 파격적이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다. 수수료 인하 혜택의 대상이 저소득층에 국한돼 있는데다, 고객 문의가 많은 타행이체 수수료 등은 여전히 과도하게 부과하고 있어 고객들의 체감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보험료율을 담합해 소비자들에게 큰 손해 끼쳐
불법·편법 동원해 벌어들인 돈 흥청망청 사용해

보험사의 탐욕도 만만치 않다. 보험사들은 보험료율을 담합해 제 배를 불리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 공정위는 최근 생명보험시장에서 종신보험, 연금보험, 교육보험 등 개인 보험상품의 이자율을 밀약한 12개 생명보험회사에 과징금 3600여억원을 부과키로 했다.

이들의 담합이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에는 14개 생명보험사와 10개 손해보험사, 농협이 단체보험과 퇴직보험료 결정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265억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보험사들은 지난 2007년에도 손보상품의 보험료율을 짠 것이 적발돼 과징금 500억원을 부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손해보험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21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보험사는 불법?편법을 동원해 손쉽게 벌어들인 돈을 대주주 고배당과 임직원 고임금으로 흥청망청 사용했다. 지난해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배당성향을 보면 대한생명이 42.06%로 가장 높았다. 이 보험사 배당금 1천995억원의 절반가량이 계열사인 한화건설(지분율 24.88%), 한화(21.67%), 한화케미칼(3.71%) 등에 돌아갔다. 다른 보험사들의 배당성향도 LIG손해보험 36.02%, 현대해상 35.30%, 메리츠화재 32.47%, 삼성화재 26.28% 등으로 높은 수준이다.

또 작년 회계연도(사외이사 제외) 등기이사들의 연봉은 메리츠화재가 31억4600만이었고 LIG손해보험(16억3300만원), 삼성생명(14억5700만원), 현대해상(10억9900만원), 코리안리(10억3200만원) 등도 10억원을 넘었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코리안리가 9000만원이었고 삼성생명(8200만원), 현대해상(7400만원), LIG손해보험(6900만원), 메리츠화재(6100만원) 등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