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도자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폭신한 흙이 물감을 빨아들인다. 꽃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도자의 고운 선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도자공예가 정명훈 작가는 독특한 핸드프린팅으로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내 작업이 다른 사람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조 작가. 그의 그림은 마음의 위로이자 누군가에게는 가슴 따뜻한 선물이다. "인터뷰를 별로 안 좋아해요." 도자공예가 정명훈 작가는 무척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긋나긋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는 그의 꼼꼼한 성격을 대변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작은 공예샵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본어 강사로 10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자신의 본래 전공인 도자로 돌아왔다. 정 작가는 "흙이 좋아서 다른 걸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흙'을 물었다. 도자에 그림 "흙을 무엇무엇이라고 정의내리는 건 안 했으면 해요. 모든 단어는 상황과 연령에 따라 변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가령 엄마란 단어도 어릴 때는 보살펴주는 존재고, 청소년 때는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 북촌에서 작은 소품샵을 운영 중인 김유하 작가. 전직 영화감독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조명 받는 작가다. 현대적인 디자인과 동양적인 색감을 조합한 그의 섬유 작품들은 오늘도 진열장 곳곳에서 수줍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 고유의 특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심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상을 배제한 표현물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상품'이 됐다. 작가주의니 작가정신이니 하는 말 등은 결국 예술가가 지닌 고유의 정체성, 즉 오리지널리티와 연관이 있다. 카메라 대신 바늘 자수공예가 김유하 작가는 엄밀한 기준에서 '장인'으로 볼 수 없다. 대신 그는 '예술가' 집단에 가깝다. 촉망받는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한 방송국을 거쳐 서울 북촌에 자리를 잡게 됐다. 부모님의 골동품 가게를 물려받은 이 예술가는 배우 대신 바늘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독립영화 연출은 2006년까지 했고요. 다수 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고요(웃음). 하루는 방송국에 있는 선배가 미술감독을 해달라고 해서 잠시 일한다는 게 2010년까지 했어요. 돌아보니 드라마 스크립터가 돼 있
[일요시사=사회팀] "가방을 만든다. 그 전에 가방을 만들기 위한 원단부터 만들어야겠다. (원단에) 색을 입히고 문양을 더한다. 원단의 형태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때론 다른 재료와 결합을 해본다." 섬유공예가 조영주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면 그의 작업은 무척 담백하게 묘사돼 있다. 그러나 원단을 염색하고, 프린팅하고, 바느질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은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틀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조 작가. 아이디어 넘치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다. 섬유공예가 조영주 작가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다. 독일 유학파 출신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작가’지만 그의 생활은 다분히 아날로그적이다. 크레파스로 해맑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던 소녀. 어른이 되면서 반대도 많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앞으로도 쭉 즐거운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 조 작가. 그가 수놓고 있는 세상은 디지털화된 차가움과 한 발짝 빗겨서있다. '행복전도사' "부모님 뜻에 따라 어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하
[일요시사=사회팀] 차가운 금속은 예술가의 손을 거쳐 내 몸에 꼭 맞는 장신구로 변형된다. 그러나 인체를 배제한 장신구는 결국 차가운 금속에 불과하다. 인간이 가진 따뜻한 체온이 장신구와 만났을 때 비로소 금속은 온기를 품은 '보석'이 된다. 다양한 금속공예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조수정 작가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된 표현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금속에 접목하고 있다. 조 작가가 만든 주얼리는 여타 보석들처럼 인간의 주체성을 정의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던 '미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신화'에 가깝다. 대학교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한 조수정 작가는 졸업 후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다. 한 대기업 의류회사에 취업한 그는 직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게 아닌 잘 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으로 조 작가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서 예술가로 "저는 인테리어 일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전 성격이 꼼꼼하고 작은 걸 잘하는 사람이었죠. 대학교 때도 남들은 다 큰 조형만 만드는데 저는 작은 걸 만들었어요. 그게 싫었죠. 인테리어를 선
[일요시사=사회팀] 서른넷. 평범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할 나이.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소녀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섬유공예가 이람 작가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치열했다. 현실이란 높은 담이 그를 에워싸고 있을 때에도 이 작가는 담 너머에 있는 세상을 그렸다. 인생이란 무한한 천에 자신의 꿈을 수놓고 있는 이 작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귀한 손으로 옮기고 있는 이 작가를 <일요시사>가 만났다. 섬유 공예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종류가 많다. 자수나 직조(위빙), 편물(니트), 홀치기염(천의 일부를 실로 묶은 뒤 염료를 묻혀 문양을 나타내는 방법) 등 각각의 공예법마다 구현 가능한 시각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두 번째 일본유학 이람 작가는 이중 양모(양털)를 원료로 한 펠트(섬유를 가공한 원단의 일종, 부직물) 공예를 선보이고 있다. 대다수 펠트공예가 알록달록한 색에 초점을 맞춰 염색에 공을 들이는 것과 달리 이 작가는 가급적 염색을 배제하고 천연 그대로의 양모를 조합하여 색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저는 양모를 원료로 한 작품을 많이 했는데요. 큰 타피스트리로 벽면을 메꾼다든가 펠팅 처리된 원단
[일요시사=사회팀] 훤칠한 얼굴의 사내가 홍대 한 커피숍에 모습을 드러냈다. 몇 해 전까지 그는 '한국 팝아트의 차세대 주자' '컨템포러리 아트의 샛별' 등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준식 작가는 더 이상 '차세대 주자'도 '샛별'도 아닌 '리얼리즘 아티스트'로 세계 곳곳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페인팅으로 평면 위에 '현실'을 증강하고 있는 김 작가, 그의 놀라운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으로 대변됐던 현대미술은 영국을 거쳐 최근 중국으로 시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중국을 주목하기 전 김준식 작가는 황해를 건너 중국 심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조용한 작업 환경을 찾아갔던 김 작가는 그곳에서 중국 미술시장의 팽창을 경험하며, 중국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가 무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간 작가 중에선 1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실제 해외에 나가보니 국내에 있는 것과는 파급 효과가 달라요. 제 그림은 서울은 물론 홍콩·대만·싱가폴·중국&midd
[일요시사=사화팀] 백승주 작가는 팬이 많다.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을 작업의 오브제로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고 여린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보드라운 흙에 담겨 예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스한 손길로 생명을 빚고 있는 백 작가를 홍대에서 만났다. 백승주 작가가 기른 강아지의 이름은 '아지'였다. 백 작가가 '아지'의 이름을 지었을 때 아지는 백 작가에게 와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백 작가는 아지와 함께했던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이겠지만 그 사소한 일마저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 연민으로 승화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일상의 기록 "전 회화가 아닌 도예를 전공했는데요. 디자이너 일도 함께하다 보니까 정말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한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소재를 찾던 중에 키우던 강아지를 소재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아지라고 하는데, 제가 아지를 한 번 떨어뜨리면서 아지가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사람으로 치면 치매가 왔는데요. 아지가 늙고 병들고 떠나는 과정을 슬픔으로 해석했어요. 그게 '푸른 기억'이라는
[일요시사=사회팀] 조삼현 아이엠핸드메이드 대표는 이른바 초짜였다. 문화계와 연결된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도 없었던 그는 오로지 진심만으로 수백명의 예술가와 만났다. 창작자의 정직한 '손'에 인생을 걸었던 조 대표. "핸드메이드 문화를 꽃피우겠다"던 그의 땀방울은 이제 조금씩 그 싹을 틔우고 있다. 이 세상 단 하나 밖에 없는 머그컵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도 나를 위해 누군가 손수 만들어 준 머그컵이라고 해보자. 과연 이 머그컵의 가치는 계량화될 수 있을까. 조삼현 아이엠핸드메이드 대표는 현업 예술 작가가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소개·전시·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쓰는 주방·생활용품부터 귀여운 장난감·액세서리,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인테리어 소품까지 그야말로 장인이 '한땀 한땀' 공들인 작품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온기를 상기시킨다. 직접 손으로 "핸드메이드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핸드크래프트라고 불러요.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인간의 손을 이용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만드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다루는 수공예품은 예술가 고유의 창의성이 집약된 작품
[일요시사=사회팀] "진도 출신으로 국전에 입·특선한 작가만 350명에 달합니다. 이러한 점을 키워 진도를 문화예술 특구로 지정하고 이에 일조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동양화가 길산 김길록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도 지킴이'다. 서울 유명 갤러리의 무수한 스카웃 요청을 뿌리치고 진도를 지키고 있다. 전시회를 열 때 빼고는 진도를 떠나본 적이 없다. 전남 진도는 남도 문화예술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진도는 운림산방의 소치일가며 6대 화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 동양의 서성 소전 손재형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서화가와 국악계의 명인 명창 인간문화재의 보고다. 유별난 고향 사랑 땅끝 해남을 지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불과 13척의 병선으로 133척의 일본 병선을 물리친 명량해협 울둘목을 건너면 예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진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 진도를 지키고 사랑하면서 문화예술의 도시로의 발전에 일조하고 있는 동양화가 길산 김길록 화백이 산다. 김 화백의 작업 공간이자 삶의 터전은 진도다. 전시회를 열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진도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는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함께 그림을
[일요시사 = 취재1팀] 강현석 기자 = 은은한 묵향과 함께 피어나는 매화를 닮은 한 사내의 그림은 잔잔한 감동을 관객에게 안긴다. 예술의 본고장인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문인화가 김민재 화백은 목포서 활동했던 10여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진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림과 문학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한 소년은 앓고 있던 소아마비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활동의 제약을 딛고, 먹을 통해 무한한 세계와 만났다. 진도 토박이 '문인화 대가' 김민재 화백은 교습본으로 독학을 시작한 뒤 금봉(金峰) 박행보 선생의 제자로 입문한 케이스다. 박행보 선생은 남종화의 대가인 의제(毅齋) 허백련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명인 중에 명인. 그래서 한 언론 관계자는 김 화백에 대해 "허백련과 박행보의 화풍을 이어받은 선비"라고 극찬했다. 남종화는 당나라의 왕유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한 분파로 화가(선비) 자신의 내면세계를 수묵과 담채로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남종화는 간일한 문법이 그 멋스러움을 더하는데 예로부터 남종화를 그리기 위해선 인격적인 도야를 먼저 해야 할 정도로 배움의 과정이 엄격했다고 한다. 허백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