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불통'이미지가 강했던 청와대에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정무수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자리를 옮긴 이 수석은 언론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목욕탕 토크' '쪽지 토크' '새벽 토크' 등 파격제안도 서슴없다. 하지만 이 수석의 자리이동에 대한 시각차는 있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일각에서는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라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공석이었던 청와대 홍보수석에 이정현 정무수석을 기용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홍보수석 자리는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사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이 수석의 수평이동으로 공석이 된 정무수석과 윤창중 전 대변인의 낙마로 비어있는 남성 대변인의 경우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소통 청와대' 시동 건 이정현 청와대는 지난 5월22일 이남기 전 홍보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이래 언론인과 정치인 출신 가운데 후임자를 물색해 왔다. 그러나 외부에서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결국 이 수석을 수평이동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정무수석
[일요시사=사회팀] 부자와 가난한 자, 역동성과 서정성,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 신정무 화백은 이 도시에 매료돼 순간순간을 종이에 담았다. 멋스러웠던 그의 삶처럼 그림도 그의 삶을 닮았다. 신정무 화백은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1970년대 동양방송(TBC)에 입사한 신 화백은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을 거쳐 <문화일보>에서 국장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소프라노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던 그는 아내와 결혼에 골인, 슬하의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성공한 삶 한 평생을 언론사에 종사했지만 그의 전공은 '미술'이다. <문화일보>에서 상무이사로 정년을 마감한 신 화백은 화가로 전직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경기 용인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는 색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우아한 클래식이 흐르는 그곳. 마주 본 소파에 앉아 한동안 골몰히 생각하던 신 화백은 기자에게 지난 얘기를 풀어냈다. "2000년에 정년을 마치고 '내 남은 인생은 그림을 그려야 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제가 언론사 임원을 하면서 지면에 많은 작가들도 소
[일요시사=사회팀]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동안을 가진 노(老)화백. 서양화가 박병호 선생은 때론 천진한 아이처럼 때론 속 깊은 맏형처럼 인터뷰에 응했다. 일생을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은 그지만 이면에는 남모를 고충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허물조차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당당한 사내였다. 비좁은 작업실, 수북이 쌓인 그림을 보며 그에게 물었다. "화가를 시작하고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으세요?" 서양화가 박병호 선생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후회한 적 없어요.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면 된 거지." 열악한 현실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50여년을 붓과 함께 살았다. 부부도 몇 십 년을 함께 살면 질린다는데 그림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박 선생은 아픈 아내를 간병하는 중에도 틈틈이 화실에 들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림이 자신의 직업이자 삶이기 때문. 하지만 그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있다. "한평생 그림만 그렸는데 지금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는 작가가 너무 많습니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일요시사=사회팀] "사진이 잘 나올지 모르겠네요." 해당 김영순 화백은 사진 촬영 내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늘 사람들을 향한 배려를 잃지 않는 그의 성품은 인터뷰 중간마다 빛났다. 하지만 온화한 그의 눈빛도 그림을 얘기할 때면 달라졌다. 수많은 문하생을 배출한 미술계의 중진으로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은 남달라보였다. 순수 예술의 위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렵게 인터뷰를 승낙한 해당 김영순 화백은 "예술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 30여 년간 누구보다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며 한국화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한 김 화백. 그는 "어려워도 결국은 그림"이란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보통 한국화하면 관객이 그림을 통해 향수를 느낀다고들 하죠. 농촌을 그린 산수화에서 사람들이 풀내음을 느끼듯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객이 그림과 혼연일체의 기쁨을 맛보게 할 책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벚꽃을 푸른색으로 표현했다고 하면 그걸 보는 관객은 푸른 벚꽃을 마주하면서 '아, 벚꽃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혹은 '이런 색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겠구나
[일요시사=사회팀] 유천 오수철 선생은 오직 사군자만으로 미술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작가다. "남들이 하는 건 싫다"고 말한 그는 "다른 걸 할 수 있어야 예술"이라고 말했다. 유천의 거침없는 언변과 확고한 철학은 그가 평생을 곁에 둔 사군자처럼 올곧으면서도 당당했다.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잘하는 걸 뛰어넘는 게 바로 예술이죠." 유천 오수철 선생은 문인화가다. '회화'가 다수인 미술판에서 '문인화'만 그리는 화가는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선 '사군자 말고 다른 것도 그려보라'는 유혹이 있다. 하지만 오 선생은 30년 넘게 사군자만을 고집했다. 공부 또 공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와 같은 지금 시대의 조류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유행을 따라하거나 남들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게 싫었어요. 시류에 편승한다는 얘기도 듣기 싫고. 물론 사군자가 미술의 전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 아직 그림에 대해 공부할 나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오 선생은 미술을 논할 때 '기교
[일요시사=경제1팀] 여의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끝내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야당 곳곳은 '홍준표 성토장'이 됐고 여당은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이다. '독불장군'홍준표 지사의 노림수는 뭘까. 진주의료원은 1910년 9월 진주시 중앙동에서 관립 자혜의원으로 출발했다. 82년 6월 옛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 1층~지상 5층 6638㎡의 새 건물을 신축하고 의료진과 의료 장비를 확충, 현대식 의료기관으로 탈바꿈했다. 이듬해 7월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지방공사 경남도 진주의료원'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이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면서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추고 진주시를 중심으로 사천시, 거창군, 산청군, 하동군 등 경남 서부지역의 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해왔다. 103년 공공의료 결국 강제퇴장 2002년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가 확장 이전을 약속, 2008년 5월 초전동으로 이사했다. 총 534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8층의 현대식 건물에 80실 325병상을 갖췄다. 문제는 지난해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 2월26일 만성적자와 부채 누적을 이유로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전격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진주의료
[일요시사=사회팀] 포스코건설 부사장,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을 역임했던 조용경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가 다문화가정 지킴이로 나섰다. 현역에 있는 동안 분에 넘치는 혜택을 받아 지금은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혜택을 돌려주고 싶다는 조 대표.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의 실상은 어떤지 들어봤다. 조용경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는 경상북도 산골에서 나고 자라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소통자문단장으로 잠시 정치에 발을 들였다가 이념의 문제로 정치권에서 발을 뗐다. 이후 조 대표는 현재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다문화가정의 처우를 개선시키기 위해 수호천사를 자처했다. 주례·강의로 봉사 “현역에 있는 동안 받아왔던 분에 넘치는 혜택을 받아왔죠. 은퇴 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지금은 젊은 예비부부들을 위해 주례를 봐주며 사례를 받지 않고 대신 봉사단체에 기부하도록 제의하곤 해죠. 전국 대학을 돌며 순회 특강도 하고요. 그리고 큰 개념의 봉사인 다문화센터 대표를 맡아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 이들을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어요.&rdq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정부의 '재벌 손보기'가 시작됐다. CJ그룹이 먼저 된서리를 맞았다. 전방위 압수수색에 이은 이재현 회장 일가의 출국금지까지. 재계 데뷔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이 회장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의 행보가 심상치 않더니 그 칼끝이 CJ그룹을 향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비자금 수사가 포문을 연 것이다. 수천억 비자금 판도라 열리나 지난 21일 서울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거액을 탈세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는 CJ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최근 CJ그룹이 탈세를 통해 조성한 70여억원의 해외 비자금을 국내로 반입, 사용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CJ그룹 서울 남대문로 본사를 포함한 5∼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장충동 CJ경영연구소, 쌍림동 제일제당센터, 임직원 자택, CJ인재원 등은 검찰의 표적이 됐다. 수색 과정에서 검찰은 비자금이 거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압수했다. 그리고 검찰은 이 회장 등 총수 일가와 전·현직 회사 간부 등을 무더기로 출국금지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과 CJ그룹의 악연은 지난 200
[일요시사=경제1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이른바 4대악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대통령도 '4대악 척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4대악을 뿌리 뽑겠다'는 단순 구호로는 안 된다. 민관합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팔을 걷어부친 사람이 있다. 조태임 한국부인회총본부 회장이다. <일요시사>가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거리에서는 물론 집에서조차 안심하고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해칠지 몰라 불안합니다. 특히 여성들, 아이들, 사회적 약자들은 더 불안합니다. 남성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태임 한국부인회총본부 회장의 말이다. 박근혜정부는 4대악 척결을 기치로 세웠다. 척결대상은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사정기관들은 전담반을 편성하는 각 지역사회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관 힘 합쳐야" 하지만 따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경찰은 경찰대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4대악 척결에 칼을 빼들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4대악이 생소하기만 하다. '연합'이
[일요시사=사회팀] 컴퓨터가 없던 시절, 한석봉은 '글 잘 쓰는 재주'로 천하가 알아주는 명인이 됐다. 하지만 16세기의 한석봉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한석봉은 아마 어머니와 함께 떡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천 이상명 선생은 21세기인 지금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서예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자 후세에 남겨야 할 보물이다. 흔히 양반(兩班)이라 하면 책상 앞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하는 문약한 선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학천(鶴天) 이상명 선생은 문인(文人)보다는 무인(武人)에 가까운 풍모를 갖고 있었다. "소싯적엔 맨손으로 흉악범을 제압해 경찰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태권도와 관련한 일화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문무 겸비 "제가 지금은 체격이 좀 있지만 어릴 때는 몸도 약하고 체구도 작아서 친구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런데 우리 형님 중에서 태권도를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 형님께 태권도를 처음 배운 게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때 배우기 시작해서 3년 뒤에는 단증을 땄고요." "중학교 때부터는 시골에
[일요시사=사회팀] 미술품 시장이 불황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갤러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넘친다. 갤러리의 꽃인 '큐레이터'도 마찬가지. 유학파 일색인 큐레이터 업계에서 국내파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알리고 있는 신진 큐레이터가 있다. 바로 박혜림씨. 크림처럼 달달하면서도 때론 맥주처럼 시원한 구석이 있는 매력적인 큐레이터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759개 직업 중 큐레이터의 직업 만족도는 6위다. 이는 전체 7위를 기록한 대학교수보다 높은 순위며, 예술 계통 직업군 가운데서는 두 번째다. 지난 1999년 서울 인사동에 개관한 '갤러리룩스'는 10여년 동안 '사진전문갤러리'로서의 입지를 차곡차곡 다져왔다. 큐레이터 4년차를 맞고 있는 박혜림씨도 마찬가지. 갤러리룩스 큐레이터로서 박씨는 큰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목표를 하나 둘 이뤄가고 있었다.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직업 "성격이 그래서인지 힘든 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관장님이 휴가도 많이 주시고(웃음). 누가 보면 내숭이라고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재밌어요. 아직 업계 선배에게 배워야 할 부분도 많고 다뤄보고 싶은 전시도 많은데 사실 직업의 어려움보다는 배움에 대한
[일요시사=사회팀]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는 '원죄'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기획 탈당'이란 초강수를 택했던 그는 대선 패배의 여파로 정가를 떠났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정치 인생은 민주당의 위기와 함께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이젠 권력의 정점에서 '정계개편'의 칼자루까지 거머쥐었다. 대세를 뒤집기에는 구도가 너무 뚜렷했다. 친노 대 비노의 혈투로 불렸던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웃었다. 대선 이후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였다. 비노 맑음 친노 흐림 이번 지도부 경선에서 일찍이 대세론을 굳힌 김 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좌장으로 불린다. 본인은 누구보다 '비주류'로 불리는 걸 싫어하지만 그의 과거 행보는 '비주류'를 넘어 '반노'로 불릴만한 구실을 여럿 제공했다. 김 대표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반역자'라는 오명. 참여정부 말기, 김 대표가 탈당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정치 행로를 걸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지난 2007년 2월, 김 대표는 22명의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명분은 '신당 창당을 통한 대선 승리'였다. 김 대표는 후발 주자로 합류한 염동연 의원 등 23명의
[일요시사=사회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가왕'이라 부르지만 정작 조용필은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자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이름만으로 한국 가요계의 신화가 된 그는 10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 또 다른 전설을 준비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이 노장의 심장은 아직도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쿵쾅댄다. 이미자부터 심수봉, 김광석, 브라운아이즈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한국 대중가요의 쟁쟁한 이름 한복판에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가왕' 조용필. 국내 현존하는 최고의 보컬 지난 2일 음악전문채널 Mnet은 교수와 문화전문기자, 음악평론가, 뮤지션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과 함께 20대 보컬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선정된 명단에는 김건모·김현식·나훈아·송창식·양희은·이선희·인순이·임재범 등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른 가수들이 자리했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의 가장 높은 곳에는 그가 있었다. 바로 '가왕' 조용필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보컬로 조용필을 선택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음악 관계자들은 물론 언론과 대중 모두 조용필을 90년에 달한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갖고 있는 뮤지션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극찬
[일요시사=사회팀]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사진을 배운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음직한 구절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이야기는 점차 유실되고 있다. 사진작가 허원은 "사진 하나로 레포트 3장은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찍을 때 왜 찍는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사진에 대한 작가로서의 예의라면서. 수십 년 넘게 셔터를 눌러온 노장이 있다. 소담(笑談) 허원은 한국사진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등재된 인물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다. 일흔을 앞둔 그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며 자신을 낮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뒤에 '선생'이나 '회장'과 같은 명칭 붙이는 걸 좋아하지만 전 그런 게 싫더라고요. 나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저는 그냥 사진 찍고, 찾아오는 후배들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후배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소박한 노장 2000년 무렵부터 유난히 증가한 사진 인구. 수많은 사진동호회가 생겨나고, 전문가를 자처한 이들도 우후죽순처럼 번졌다. 하
[일요시사=경제1팀] '친박원로'서청원이 돌아왔다. 5년 만이다. 상임고문으로 새누리당에 복귀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란 말처럼 국민들 시야에서 사라졌던 왕년의 정계 거물이 보란 듯이 컴백했다. 수차례 고비를 넘긴 그의 롤러코스터 정치인생과 역할론을 짚어봤다. '원조 친박계'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가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같이 의결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서 고문의 당 복귀는 5년 만이다. 당 들락날락 5년 만에 복귀 1943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서 고문은 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언론계 출신 정치인이다. 중앙대 총학생회장, 전국총학생연합회 위원장 출신으로 정치권의 대표적인 6·3 세대다. 6·3사태(1964년 6월3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한 사건) 주도 혐의로 100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1969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한 서 고문은 1980년 광주항쟁 때 '광주사태 특파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5·18 특파원 리포트>란 단행본을 발간했다. 같은해 민주한국당 선전분과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일요시사=사회팀] 박영길 화백은 상대의 목소리만 듣고도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인물화의 대가'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물화는 그가 가진 재능의 일부일 뿐. 사군자부터 정물화까지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붓은 막힘없이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산(芝山)이 붓을 들자 그곳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하얀 종이는 이내 푸른 대나무 숲으로 바뀌었고, 바위틈에는 어느 샌가 분홍빛 난이 봉우리를 틔우고 있었다. 서양화가로 이름 높은 지산 박영길 화백은 섬세한 붓놀림으로 마주 본 이를 매료시키는 묘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화려한 경력 "저는 그림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껴요. 자식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있잖아요. 어려움이 없었냐고요? (그림을 그리려고) 산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무릎이 깨지고, 무릎 맡에 있던 그림이 바람에 날아가고…. 이런 것들은 아주 사소한 건데 어려움이라 보긴 어렵죠." "어쩔 때는요. 내 그림을 보면 조금 창피해요. 제 벌거벗은 자태나 마찬가지거든요. 보통 분신이라고들 하죠. 내 분신인 아이를 잉태하면 몇 달 동안 애지중지하듯 그림에도 그렇게 정성을 들인답니다. 그게
[일요시사=사회팀] 4차원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강남으로 컴백했다. 그는 지난해 말 역대 대통령을 비롯, 대선후보를 유화 팝아트로 묘사해 개인전 <내정간섭>을 열었다. 이후 만 3개월도 안 돼 그는 동일한 묘사법으로 <낸시랭과 강남친구들>이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세계 거물들과 함께 강남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낸시랭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봤다.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고도 불리는 낸시랭. 그는 지난해 말 <내정간섭>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낸시랭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물 팝아트를 유화로 표현해 미술계에서는 이른바 “고정관념을 깼다”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내정간섭>에 등장한 인물들은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제18대 대선후보들이었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8∼9년 동안 함께한 코코샤넬 고양이를 각 정계인물과 합성시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기 때문. 이번 개인전 또한 세계 거물들을 등장시켜 뉴욕 맨하탄 유명 방송을 비롯한 영국 BBC, 프랑스 유명 매체 등에서 깊은 관심을 보여 절반 이상은 성공한 개인전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자 국민들로부터 가장 부패한 조직으로 불리는 검찰이 쇄신의 계기를 마련했다. 바로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한 것. 낙하산 총장이 아닌 검찰 내부로부터 추천된 인사기 때문에 채 총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 채 검찰 개혁을 완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왔다"는 채 총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121일간의 공백 끝에 '채동욱 시대'가 열렸다. 박근혜정부는 첫 검찰총장으로 채동욱 신임 총장을 선택했다. '독이 든 성배'란 우려 속에 채 총장은 지난 4일 취임 일성으로 "오욕의 시대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고 역설했다. 검 내부평가 '굿' "신망 두터운 리더" 채 총장은 지난 2월 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김진태 전 대검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과 함께 검찰총장 후보자로 추천받았다. 검찰이 직접 후보자를 낸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검찰 내부의 기대도 높았다. 과거 대통령이 낙점하던 총장과는 그 출발부터 달랐다는 얘기다. 세 후보자가 경합하는 형세 속에 채 총장의 인선을 처음부터 예상했던 이는 많지 않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김 전 차장. 그는 7
[일요시사=사회팀] 예상은 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웠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결국 새 정부 인사 태풍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그는 지난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쓸쓸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강 회장의 퇴장으로 MB노믹스는 이제 종언을 선언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상황에서 강 회장은 중도 낙마하며, 김재철 MBC사장과 함께 정권 물갈이의 신호탄이 됐다. 산업은행 민영화 등 손댄 사업마다 실패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으로 분류됐던 그는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며 '산업은행 민영화'의 특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받은 미션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있었던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에서 "4월 말쯤 발표되는 추경 예산안을 통해 세수 확충이 판가름 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선 정부가 2013년 예산안에 산은금융지주 매각 금액인 2조6000억원을 편성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무리하게 추진됐던 산업은행 민영화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요시사=사회팀] 규당 김인기 화백은 파란 산자락 밑에 작고 아담한 단층집을 마련했다. 밤이면 하얀 별이 하늘을 수놓고 낮이면 마당 앞의 초록 새싹이 말을 건네는 곳. "시골스러운 게 더 좋다"는 김 화백은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규당(閨堂)의 도록을 펼치자 그 안에 새로운 경관이 펼쳐졌다. 샛노란 꽃들이 전해오는 향내음과 푸른 나무 그늘의 서늘함, 굽이진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하얀 하늘과 맞닿아 보드라웠다. 추수를 앞둔 너른 들녘처럼 김인기 화백은 넓은 품으로 손님을 맞았다. 슬럼프 없는 활동 "전 그림에 관해서는 질투와 시기가 없어요. 꼭 유명해져야겠다는 욕심도 없고요. 라이벌은 더더군다나 없어요. 누구보다 잘 하려고 경쟁하듯이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니까…. 그림은 창작이잖아요.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작가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그걸로 된 거죠." 김 화백의 그림에는 먹과 멋이 있다. 먹의 올곧은 기운과 여유로운 멋의 조화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김 화백은 "그림 안에는 반드시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다"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