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㊵행복에 감춰진 비극

  • 김영권 작가
2023.07.10 09:05:53 호수 1435호

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옆에 앉았던 남자가 소주를 한잔 들이켜고 나서 상체만 흔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한 곡조 뽑았다. 

고개 넘어 령을 넘어 버스를 타고
도시 처녀 이 산천에 시집을 와요
차창 밖에 웃음꽃을 방실 날리며
새살림의 꿈을 안고 정들려 와요
시집와요 시집와요 도시 처녀 시집와요
모내기 때 남모르게 맺어진 사랑
황조 가을 좋은 날에 무르익었소
도시 처녀 농촌 총각 한 쌍이 됐소~

인간의 감정

노래(유행가)만큼 인간의 감정이 잘 반영되는 것도 드물다. 유치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게 대중가요이다. 그 누구도 남의 18번 곡을 무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의 정서 취향을 우롱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의 가요를 무시하고 늙은이가 젊은이의 유행가를 조롱하는 짓이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제 잘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 못난 사람들이 많은 까닭일까?

자기 세대, 자기 감정, 자기 아이만 최고라고 뽐내는 존재만큼 지독스런 괴물은 없다. 그들은 자기 청춘이 영원하길 바라며 착각하지만 추풍낙엽 꼴이 돼 곧 흩날리고 만다. 

그래도 노래는 영원하다. 

삼겹살을 굽던 여자가 간드러진 목청으로 한 곡 뽑았다.

오빤 강남 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 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헤이~ 그래 바로 너 헤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오빤 강남 스타일~

어느 결에 모두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겹게 말춤을 추었다. 저마다 개성적인 몸짓으로. 북한의 로봇 인형 훈련 같은 매스게임만 보아 온 내 눈엔 일견 의아스런 광경이었다.

오히려 남한 사람보다 자유롭게 자연스러우며 생명감 넘치는 모습이랄까. 순간적이지만 마치 통일이라도 된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동서남북 통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남한 사람이야말로 로봇 훈련 매스게임을 매일 일상적으로 살벌하게 치르며 살아가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공해 보려 아등바등…낙엽 신세로 전락
지목되지 않고 관문 통과 못하면 외톨이로  

모방적인 살인마들이 벌이는 생존경쟁의 매스게임. 피에로 씨가 그 무리 속에 섞여 절뚝거리며 애써 춤추고 있어서 그런지 몰랐다.


자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성공해 보려 나름 아등바등했으나 결국 떨어져 한 잎 낙엽 신세가 되어 버린 채 저기 저렇게 우스꽝스레 바스락거리고 있는 사람…. 

노래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남한 사람들은 정이 많은 척하면서도 참 잔인하다. 어울려 친한 사람들끼리 노는 자리에서도 왕따를 시키기가 일쑤 자행되곤 한다. 언젠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혹시 여러분 중엔 직접 경험한 분도 있으리라.) 

어느 동호회에서 좋은 여행 간 술자리에 노래 부르기 여흥이 시작되었다. 열명쯤 둘러앉은 백사장 한가운데엔 모닥불이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선 자발적인 노래가 어울릴 텐데 왠지 지명 릴레이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사람이 부르고 나서 다음 타자를 지명하는 것이다. 아무튼 장점이 있으니까 생겨났겠지. 처음엔 좀 따분했는데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차츰 초조해졌다. 

세 명쯤 남았을 땐 마치 그물 속에 몰린 물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또 한 명이 선택되고 이젠 두 사람만 남았다. 과연 누가 선택될 것인가? 지켜보는 자들도 사뭇 긴장된 표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데, 누군가로부터 지목돼 이미 관문을 통과한 남녀들은 짐짓 꽤 행복스런 모습으로 주시한다. 그물 속에 갇힌 두 사람의 낯빛은 성격에 따라 약간 상기되거나 창백하다.

마침내 지명된 사람은 조금쯤 흥분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어떤 심정일까? 하긴 아직 실망할 때는 아닐지도 모른다.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한다면 가장 큰 박수를 받을 수도 있으리라!


경쟁 후 외면

하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일종의 놀이인 이상 룰이 있는 모양인지 혹은 다른 까닭 때문인지, 동호회장은 헛기침을 한번 뽑은 뒤 종료해버렸다. 

음치인 나는 노래도 사양하고 지명권도 포기한 채 건너뛰었으나 그 꼴을 구경하고 있자니 씁쓸한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왕따를 당한 셈인 ‘최후의 1인’은 이후 동호회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정신적인 살인을 당한 게 아닐까 싶은 의문이 가끔 들곤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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