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평군 센터 사태 보도 이후…

2025.05.05 07:23:13 호수 1530호

죽으려 해도 소송 이겨도 절대 안 바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몇몇은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누군가는 직원이 몇 명 되지도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일이 일어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직원끼리의 ‘감정싸움’이라며 상황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갈등의 본질은 ‘구조 문제’라는 것을 불과 1년 만에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양평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양평군 센터)서 운전원 정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정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일요시사>와 만난 정씨는 극단적 선택의 배경으로 지회장 장모씨의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했다. 수차례에 걸친 장 지회장의 고소·고발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 일탈?

양평군 센터 내부서 일어난 사건은 그 뿌리가 깊다. 정씨 이전에 지병으로 사망한 상담원 윤모씨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윤씨는 2020년 6월 암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윤씨가 장 지회장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은 사후에 알려졌다.

뒤늦게 아내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윤씨의 배우자는 장 지회장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했다.

형사 소송에서는 패했지만 민사 재판부는 윤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장 지회장의 일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씨는 윤씨의 배우자가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그 이후 장 지회장이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극단적 선택 시도는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 상위 기관인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는 장 지회장이 센터 운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조치하고 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다. 정씨는 장 지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양평군은 센터를 기존 자리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센터 직원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움직인다”면서도 “그래도 조금씩 정상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반겼다. 그로부터 1년 뒤 양평군 센터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정씨를 돕고 있는 한 관계자는 “예전하고 다를 바 없다. 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상태로 돌아간 듯하다”고 한탄했다.

일단 장 지회장이 다시 센터 운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양평군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는 지난해 12월 장 지회장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봤다는 또 다른 직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장 지회장은 해당 사건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처분을 배경으로 장 지회장의 업무 권한을 돌려 놓은 것이다.

지난달에는 정씨가 장 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1심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양평군법원은 지난달 17일 장 지회장이 정씨에게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정씨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면서 “피고(장 지회장)의 원고(정씨)에 대한 행위는 불법행위(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직원이 6명에 불과한 센터서 2명이 같은 사람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일부 인정받은 것이다.

정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요양급여 신청도 승인됐다. 정씨는 “장 지회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정신과 진료를 받아왔지만 자살 시도에까지 이르게 돼 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동료 직원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 상급자(지회장)의 고소에 대응하는 과정서 ▲직업 유지에 대한 불안감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스트레스 등을 일관되게 호소한 점 ▲정신적 고통으로 지속적인 진료를 받아온 점 ▲진료를 받는 중에도 회사 내 갈등으로 자살을 시도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업무와 정씨가 앓고 있는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심의했다.

법원 ‘직장 내 괴롭힘’ 일부 인정
지회장 ‘선출직’ 방패로 무소불위

단, 정씨가 처음에 신청한 우울장애가 아닌 적응장애로 변경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아직 1심이긴 하지만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내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장 지회장은 센터에 영향력을 행사 중이고 정씨를 상대로 고소도 진행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장 지회장은 정씨를 사문서 위조, 사인장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과거 정씨가 무혐의를 받았던 내용으로, 양평경찰서는 지난 3월 ▲동일 범죄 사실로 피고발 및 수사돼 불송치된 점 ▲고소인(장 지회장)은 위조된 사문서 및 인장의 권한자로 볼 수 없는 점 등에 근거해 각하했다. 한 센터 관계자는 “장 지회장은 고소가 각하되자 센터장에게 대신 고소하라고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양평군 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양평군, 실질적인 운영 주체인 양평군 지회를 관리·감독하는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은 현 상황에 손놓고 있다. 양측 모두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보조금 횡령 등 돈과 관련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군 차원서 센터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군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다. 최종 판결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 역시 “정관을 보면 지회장이 형사소송 항소심까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직무 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양평군 센터의 경우는 민사소송이지 않나. 또 아직 1심 판결만 나온 상태이기에 연합회 차원서 지회장에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없다. 지난해 12월 장 지회장에게 업무 권한을 돌려준 것도 연합회 차원에서는 처음(지난해 8월)에 처리할 때 무리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지회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1심 판결 이후 “항소했다”고 밝혔다. 또 “저쪽(정씨 측)에서 낸 증거가 다 조작됐다. 재판부가 조작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판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씨를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 각하된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과)동일한 범죄로 고소했고 고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고소를 하니 각하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 외부 관계자 등은 “양평군,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장 지회장은 임기를 다 채우는 것도 모자라 다음 선거에도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지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말까지다. 지회장은 선출직이면서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뽑히기만 하면 계속 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한 센터 관계자는 “사망한 뒤에야 지회장직을 내려놓는 일도 있다”고 토로했다.

구조 문제


결국 양평군 센터 사태는 구조 문제로부터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시·군·구 지회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그 위로 시·도 지부가 있다. 지회장은 지회 회원의 투표로 뽑고, 센터장은 지회장이 임명하는 구조다. 센터장 인사권을 지회장이 쥐고 있어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자체나 시·도 지부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지회장의 직위에 손댈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셈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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