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객 실수로 실명한 캐디의 사연 인터넷에 일파만파
산재보험 가입 안 해 보험혜택조차 못 받아 생계 막막
골프장에서 난 사고로 실명한데다 실직까지 당한 캐디의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골프장 내장객이 휘두른 골프채에 맞아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캐디의 사연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골프장 캐디로 일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캐디들은 적지 않다. 특수노동자에 대한 근로법이 개정된 후에도 캐디에 대한 복지와 처우 개선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사고의 위험과 해고의 불안감에 떨고 있는 캐디들도 여전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구에서 캐디로 일하며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K(38·여)씨는 지난 8월7일 날벼락을 맞았다. 이날 오전 자신이 근무하는 골프장에서 티업을 준비하던 중 한 내장객이 연습 삼아 휘두른 골프채에 오른쪽 눈을 얻어맞은 것.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골프채를 맞은 눈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흐르는 피를 수건으로 닦아내다 119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극심한 통증에도 머릿속에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K씨. 막막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6시간의 대수술을 한 결과는 실명이었다.
“어떻게 살라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 불행 앞에서도 K씨는 머리에 맞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눈을 맞으면서 안구내벽에 있는 뼈가 부러져 골절수술을 했고 얼굴을 꿰매는 성형수술까지 해야 했던 것.
그 후에도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눈에 약을 넣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밥을 먹을 때도 잠이 들 때도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눈 한쪽을 잃었어도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딸의 위로였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K씨를 옥죄었다. 눈과 함께 직장까지 잃은 그녀는 자신과 딸의 생계가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치료비를 책임지겠다던 가해자는 퇴원을 한 뒤에도 차일피일 피해보상을 미루고 있는데다 골프장 측도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K씨는 “퇴원을 하고 가해자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 날이 되어도 연락이 없고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일주일을 기다려 달라 또 일주일을 기다리면 또 일주일… 결국 지금은 나 몰라라는 식이다. 전화 한 통 없이 말이다”라고 호소했다.
K씨는 또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내게 지금의 현실은 죽음과 같고 법으로 하라고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돈 또한 없다. 선임료는 커녕 치료비와 생활비도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 같은 K씨의 상황에 대해 가해자는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를 인정하고 최대한 피해를 보상할 생각이다. 다만 피해자가 요구한 합의금을 당장 줄 형편이 안 돼 돈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골프장 측은 “이번 사고는 가해자가 뚜렷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보고 있어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다”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K씨의 피해보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씨의 피해보상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K씨가 일한 골프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아 보험혜택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산업재해법의 개정으로 골프장 캐디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골프장들이 산재보험료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이를 거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다보니 골프장에서 사고를 당한 캐디들은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네티즌은 캐디로 일하고 있는 동생이 일을 하다 코뼈가 부러졌는데 어떻게 피해보상을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실수를 인정한 내장객이 병원비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치료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2~3개월 동안 일을 하지 못해 받을 수 없는 급여조차 보상받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캐디들의 어려움은 이뿐만 아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캐디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K씨는 자신의 글에서 “고용불안 속에 불이익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기에 도시락을 싸다니며 컵라면으로 2평 정도 되는 대기방에서 30명 가까이가 생활하며 지내야 했다. 바쁜 날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밀어 넣기 식의 티업 시간 때문에 손님들의 불평과 욕설 또한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이었다”라고 고용불안으로 인한 캐디들의 고충을 드러냈다.
파리 목숨보다 못해
K씨의 설명처럼 캐디들의 고용불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캐디, 학습지 교사, 간병인, 레미콘 운행자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는 업무 조건상 노동자와 유사하지만 형식상 자영업자라는 이유로 노동권의 보호를 받지 못해왔다.
때문에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것이 캐디들의 실상이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김은숙 분회장이 현재 단식투쟁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 역시 캐디로 일할 당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김 분회장과 57명의 동료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자신들이 일하던 골프장에서 무기한 출장유보 명령을 내렸던 것. 캐디에게 출장유보 명령은 곧 해고를 말한다. 이 때문에 1년 동안 회사를 상대로 투쟁을 하고 있지만 회사 측은 면담요청조차 거부하는 상황이라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현직에 있는 한 캐디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높은 급여 등에 이끌려 캐디 일을 시작했다가 실상에 놀라 금세 일을 그만두는 캐디들이 적지 않다”며 “캐디를 꿈꾸는 이들은 여전히 캐디들이 많은 부분에서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