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엄마였던 ‘40대 미혼女’ 기막힌 사연

2009.08.25 11:48:18 호수 0호

시집도 안 갔는데…13살 먹은 딸이?

결혼도 안한 40대 미혼여성이 남의 딸이 자신의 호적에 올랐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정정했다.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가족관계등록부를 떼본 이 여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3살짜리 여자아이가 자신의 딸로 등재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사정을 알아보니 생면부지의 한 부부가 내연관계에 있을 당시 낳은 딸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이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과거 호적제도의 허점 탓이다.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아버지 호적에 등재하기 때문에 여성의 호적등본으로는 아이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 13년간 호적상 유부녀로 살아야 했던 미혼여성의 사연을 알아봤다.

가족관계등록부 떼본 미혼녀, 호적상 딸 있었던 사실 뒤늦게 알아
내연관계 당시 낳은 딸 호적에 올리지 못한 부부 소행으로 드러나


미혼으로 살아 온 유모(46·여)씨는 지난해 결혼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가족관계등록부를 뗐다가 아연실색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모(13)양이 자신의 친딸로 등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출산, 입양을 한 적이 없었던 유씨는 생면부지의 여자 아이와 서류상 모녀지간으로 묶여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양이 누군지, 왜 자신의 호적에 올랐는지를 알아내야 했던 유씨는 구청과 법원 등을 찾아다니며 추적한 끝에 사연을 알게 됐다.



호적제도 허점이 문제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던 이모(54)씨가 유씨의 명의를 도용해 자신의 딸을 호적에 올린 것. 10여 년 동안 모르는 사람이 호적상 딸로 등재되어 있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에는 과거 호적제도의 허점이 있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전양은 1996년 내연관계였던 이씨와 전모(53)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당시 이씨가 전 남편과 헤어지기 전이었던 탓에 전양을 두 사람 사이의 친딸로 호적에 올릴 수 없었다.

민법에 따르면 혼인관계종료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낳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양을 호적에 올리게 되면 전 남편의 아이로 기록된다. 전씨 역시 1999년까지 전 부인과의 결혼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 딸을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전양은 어느 곳에도 호적을 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전양이 4세가 될 때까지 출생신고조차 못했던 이들은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유씨의 명의를 도용해 출생신고를 하겠다는 것. 이들은 평소 알던 법무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유씨의 인적사항을 입수한 뒤 딸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유씨의 호적에 전양을 올렸다. 이로 인해 전양의 아버지는 전씨가, 어머니는 유씨가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나중에라도 딸의 호적을 자신들 앞으로 돌리려고 생각했지만 가정형편상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10여 년간 유씨의 호적은 딸을 가진 유부녀로 남게 됐다.

그러나 유씨는 이런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옛 호적 제도에선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일반적으로 아이의 아버지 호적에만 등재되기 때문에 여성의 호적등본에는 아이가 있어도 기재가 되지 않는다는 허점 탓이다. 실제 유씨는 이전에도 호적등본을 떼어봤지만 당시에는 전양이 자신의 딸로 기록되어 있단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월부터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면서 전씨 부부의 위험한 호적 도용사실이 발각됐다. 가족관계등록부는 개인마다 하나의 등록부를 갖게 돼 남녀를 불문하고 가족관계를 등재하기 때문에 자식이 있는지의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씨가 결혼을 위해 서류를 뗐던 지난해에도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어 있었고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전양이 버젓이 딸로 등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도 안한 자신에게 무려 13년 동안 호적상 딸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던 유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전양을 상대로 한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을 냈다. 유씨는 자신의 딸이 아니란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산부인과에서 출산경험이 없다는 소견서까지 받아 제출했다. 법원은 또 전씨 부부에게 전양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명령했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유전자 검사는 받을 수 없다며 가족관계등록부에 전양이 올라간 사정에 대해 서면으로 설명을 했다. 이에 재판부는 “전양은 유씨가 낳은 딸이 아니다”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딸을 남의 호적에 올린 전씨 부부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유씨는 전씨 부부를 고소하려 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그리고 서울남부지법은 “전씨 부부는 유씨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세월은 누가 보상?

이처럼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는 바람에 과거에 호적의 허점을 악용해 몰래 저지른 범행이 들통이 나는 경우는 앞으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남편이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몰래 호적에 올려놓는 등의 경우다.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뀐 이후에는 이런 사실이 모두 발각될 수밖에 없다. 법원 한 관계자는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교체되어 개인이 하나의 등록부를 갖게 되면서 예전에 명의도용 등을 한 사실이 드러나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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