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발언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타이밍과 목적을 가진 행동이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이재명 낙선을 바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발언이 나온 시점이다. 발언의 내용보다 타이밍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정치에서 우연이란 없다.
2022년 대선은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갈린 초접전이었다. 그 결과를 두고 책임 공방은 계속돼 왔지만,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고의적 비협조’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 전 대표는 친문계 일부가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낙선을 바랐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의도’를 문제 삼는 발언이다.
그는 더 나아가 대장동 의혹 확산의 출발점까지 특정 계파로 지목했고, 대선 직후 자신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에게 양보한 것에 대해서는 “원외에 뒀으면 구속돼 정치 생명이 끊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내 지역구라도 내어줘서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과거 사건을 현재 정치에 다시 끌어오는 효과를 만든다. 이미 지나간 선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갈등’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시 호출되는 자원이다. 이번 송 전 대표의 발언은 바로 그 호출의 신호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시점은 분명하다. 오는 6월3일 재보궐선거, 그리고 그 이후의 당권 경쟁이다. 계양을 출마를 앞둔 상황에서 이 발언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지형 정리’의 성격을 갖는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동시에 설정하는 방식이다. 정치에서 권력은 언제나 적의 설정을 통해 강화된다.
이 발언은 세 가지 층위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첫째는 과거 책임의 재배치다. 대선 패배 책임을 특정 계파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공천 국면에서의 영향력 확보다. 셋째는 미래 당권 경쟁을 위한 명분 축적이다. 이 세 가지가 연결될 때 발언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전략’이 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친문’이라는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단순한 계파 구분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싸움이다. 누가 당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가, 누가 당의 미래를 대표하는가라는 문제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이 구도를 다시 흔들고 있다. 기존의 친문 중심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권력 축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뉴이재명’이다. 기존 지지층과는 다른 성격의 정치 집단이 형성되고 있고, 그 내부에서 이미 ‘친문 비협조론’이 공유되고 있었다. 송 전 대표는 그 비공식 담론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발언이 아니라 정치 집단의 정서를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서사다. 누가 배신했고, 누가 지켰으며,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이야기 구조가 형성되면 권력은 그 위에서 움직인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바로 이 서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재명을 지키려 했던 세력’과 ‘낙선을 바랐던 세력’이라는 이분법이 만들어지는 순간 정치 지형은 재편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송 전 대표 자신의 위치다. 그는 스스로를 ‘이재명정부 탄생에 기여한 인물’로 규정한다. 동시에 희생자이자 보호자라는 이중의 서사를 구축한다. 정치에서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곧 권력의 출발점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다시 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송 전 대표를 두고 ‘현대판 수렴청정 정희왕후’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왕을 보호하고 권력을 조율하는 존재, 직접 권력의 전면에 서기보다는 뒤에서 판을 움직이는 역할이다. 물론 과장된 비유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그의 행보가 단순한 지역구 출마를 넘어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의미다.
정희왕후가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섭정이 아니다. 권력의 공백기에 질서를 재편하고 차기 권력구조를 설계한 인물이다. 이 프레임을 현재 정치에 대입하면, 송 전 대표의 행보는 ‘과거 정리 + 미래 설계’라는 이중 구조로 읽힌다. 발언은 그 설계의 일부다.
문제는 이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다. 정치에서 내부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는 탓이다. 특히 집권 세력 내부에서의 갈등은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결집될 때 강하지만 분열될 때 급격히 약해진다.
또 하나의 변수는 당 지도부다. 공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지도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당원 중심 공천’이라는 원칙과 ‘전략적 판단’ 사이의 긴장을 키우는 것이다. 정치에서 공천은 곧 권력이며 이를 둘러싼 갈등은 언제나 당의 본질을 드러낸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결국 ‘민주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또 과거를 정리하는 정당인가, 아니면 미래를 설계하는 정당인가. 내부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미래 전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모적 갈등에 그칠 수 있다.
정치는 기억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설계의 싸움이다.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권력이 결정된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과거를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다. 그리고 그 해석의 방향은 분명하다. ‘누가 진짜였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이 미래를 위한 설계로 이어질 때만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한 내부 전쟁에 그친다. 지금 한국 정치가 직면한 문제는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권력의 설계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어떻게 권력을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분명 정치적 파장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파장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것이 권력 재편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내부 갈등으로 소모될지는 앞으로의 정치가 결정할 일이다. 정치는 결국 결과로 평가된다. 말이 아니라 구조로 남는 것이 정치다.
이번 발언이 단순한 폭탄으로 끝날지, 아니면 권력 설계의 신호탄이 될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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