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품수수 의혹’ 전재수, 사퇴만이 능사인가?

2025.12.12 12:37:13 호수 0호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1일,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자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귀국길 공항 기자회견을 자처한 후 해당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고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부인했지만, 정부와 부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사의를 선택했다.



장관직 사의가 일견 공직자의 책임 있는 처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단순한 개인적 결단을 넘어 정치적, 제도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번 사퇴와 관련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판적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원칙 뒤흔드는 ‘사퇴 압박’

혐의를 부인한 상태에서의 사퇴는 법치주의의 핵심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전 장관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복해 부정하며, 장관직을 내려놓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같은 선택은 공직자가 혐의를 밝히기 전에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장관 본인이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사실상 의혹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사퇴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는 앞으로 공직사회가 혐의가 있음 자체만으로도 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또 결과적으로 공직자의 혐의 해명 기회 자체를 빼앗는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정치적 공방으로 전락한 수사 문제

특히 이번 사태는 객관적 진실규명보다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회와 언론에서는 여야 모두 상대 당을 겨냥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야권 일부에서는 전 장관의 사퇴와 향후 행보를 두고 선거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 장관이 사퇴 후 부산시장 출마로 ‘김경수의 길’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출마 여부부터 명확히 밝히라고 압박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에 대한 대응이 공정한 수사보다 정치적 공세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번 사건이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사퇴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부담 분산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은 공정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여론의 기대에 역행한다.

정책의 연속성 가치 훼손

정부 부처의 장이 중도 사퇴하는 것은 그 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정면으로 저해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대형 국책사업과 국제협력, 각종 규제 개혁 등을 책임지는 핵심 부처다. 이 같은 중요한 시기에 장관의 사퇴는 조직의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해양·수산 관련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전 장관은 유엔 해양총회 유치 등 국제적 과제를 수행하며 해수부를 대표해 왔다. 이런 업무 연속성이 훼손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퇴진을 넘어 국익 차원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일교 의혹 수사의 방향성과 독립성

게다가 이번 사태는 특별검사나 수사기관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현재 통일교 관련 수사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철저한 조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게만 수사가 집중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공정한 수사는 법과 증거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혹 제기→정치 공세→사퇴라는 일련의 패턴이 반복되며, 혐의가 사실로 확정되지도 않았음에도 공직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줘온 관행이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전 장관 사퇴는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혐의가 제기된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되, 공정한 절차와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보장하는 ‘절차적 정의’가 확보돼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

아울러 전 장관의 사퇴는 곧 다가올 내년 부산시장 선거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이번 사퇴로 그 지위가 불투명해졌으며 여야 모두 공천 전략의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의혹 자체가 사실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퇴와 선거 논쟁은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는 민주적 대선과 지방선거 제도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 장관의 사퇴는 표면적으로는 책임 있는 공직자의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 정치적 공방으로의 왜곡, 정부 정책의 불안정성, 수사의 독립성 문제, 선거 판도 영향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

진정한 공직자 책임과 국민적 신뢰 회복은 단순한 사퇴가 아니라, 투명한 수사와 법적 절차를 통한 진실규명, 그리고 정치권 스스로가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성찰적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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